# 154
북부에서 온 손님(1)
꽃이 피는 계절을 맞이한 저택은 아침부터 분주하기 짝이 없었다.
하인들이 꽃병을 든 채 뛰어다니고, 도착한 꽃병을 시녀들이 장식한다. 단순 작업에 가까운 허드렛일은 하인의 몫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하는 부분에서는 시녀가 움직였다. 색을 고려해서 구도를 잡고, 화려함이 지나치지 않게 조화를 생각한다. 전체적인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은 시녀장인 빅토리아였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시녀 각각의 임기응변에 맡기고 있었다.
현장에서의 일은 현장직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루드비히 가에서 일해온 만큼 잔뼈가 굵은 이들이다.
귀빈이 방문하는 금일. 부족한 모습으로 창피를 사는 일만큼은 피해야 했다.
사용인 전체가 노력하지 않고서는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쉴 시간이 있다면 손을 놀려라. 발품을 팔고 부족한 것을 계속 챙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쌍둥이 시녀인 루인과 마린도 마찬가지였다.
사이 좋은 자매는 귀빈이 지낼 별실을 맡고 있었다.
사전에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저택을 방문하는 손님의 수는 대략 200명 안팎. 그들이 쓰고 닦을 생필품만 해도 어마어마한 양이다. 오늘을 위해 준비한 기간만 대략 두 달. 실패는 있어선 안 됐다.
“로도릭 화병은 테이블 위에 올려둘게.”
“기다려 봐, 마린. 혹시 붉은색이야?”
“아니. 모자이크가 들어간 푸른색이야.”
“그럼 초상화 앞쪽으로 옮겨줘. 초대 가주님을 등진 쪽으로 해서 말이야.”
“검성님 앞에는 화분이 있는데?”
“화분? 아, 맞다. 아까 아침에 코미가 갖다 놓은 거야. 일단 그건 치워놓자. 로도릭 화병을 갖다 두는 게 더 예쁠 거야.”
화분을 치우고 그 자리에 화병을 옮겨놓는다.
마린은 종종걸음으로 문 앞까지 돌아왔다. 장식을 마친 별실을 둘러본다. 언니의 말대로다. 화분이 있던 때보다 지금 구도가 좀 더 깔끔하다. 이거면 손님들도 만족하겠지.
“드레스룸은 어때?”
“그쪽은 괜찮아. 두 공자님은 의복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는 분이 아니라고 들었어.”
“그래도 기본은 해놓아야 할 거 아냐.”
“여벌 옷은 전부 챙겨놓았어. 그래도 모자란 것이 있을지 모르니, 그건 그쪽과 이야기를 나눠보자.”
“내가 이래서 언니를 좋아한다니까.”
북부에서 오는 귀빈이다.
아마 이쪽과는 원하는 것이 다를지도 모른다. 준비가 거의 끝나갈 때쯤, 알베르트가 별실을 방문했다.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놀라지 마세요. 벌써 마무리 단계랍니다. 말하자면 수성전의 준비가 끝난 셈이죠. 자, 준비도 끝났으니 언제든지 쳐들어오라고 해요!”
“마린.”
“언니도 참. 우리밖에 없는데 기분 좀 내봐.”
이거면 끝내면 드디어 쉴 수 있다.
몇 달간 쌓인 스트레스가 상당했는지. 마린은 완전히 풀어져 있었다. 푹신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긴 그녀는 되는대로 말하고 있었다.
“분위기부터 팍팍 잡아볼까요? 프랑소와 성녀님이 이곳에 있었다면. 으음. 자, 성전이 눈앞입니다! 검을 드세요, 기사들이여! 사악한 마족을 무찌르는 겁니다!”
소파에서 일어난 마린이 손가락을 높이 들었다. 그녀 나름대로 프랑소와 성녀를 흉내 내고 있는 것 같다. 철부지나 다름없는 시녀의 모습에 알베르트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성전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어때, 언니? 공주 자리는 내가 양보할게.”
“필요 없어.”
“뭘 뒤로 빼고 그래. 긴장을 풀어둬야 실수도 안 하는 법이야.”
“그렇구나, 마린. 성전이라니. 오늘 방문하는 손님들과 전쟁을 치를 생각이니?”
“당연하죠. 이런 건 팍팍 기분을 내야 이기는 법이에요!”
“그래. 이기면 좋겠구나. 정말로 좋을 것 같아.”
“…….”
기운차게 목소리를 높이던 마린은 아, 하고 입을 다물었다.
기분 나쁜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의 말에 대답한 것은 언니도. 알베르트도 아니었다.
마린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는 무서운 미소를 단 빅토리아 시녀장이 있었다.
“내 필히 듣고 싶구나.”
“아, 아. 저기. 그……. 시녀장님. 그게 아니라 이건…….”
“우리 따로 이야기 좀 하자꾸나.”
“죄. 죄송해요!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시녀장님! 살려줘요. 알베르트 님! 언니!”
“그래, 조금 이따가 보자.”
시녀장의 손에 잡힌 마린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질질 끌려갔다.
알베르트와 루인은 쓴웃음을 지은 채 그녀를 배웅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저런 잔소리를 듣게 되리라. 평상시라면 한 시간은 넘게 시달리겠지만. 오늘은 금방 풀어주지 않을까.
그럴 것이 이제 곧 북부에서 온 교류단이 도착할 시간이었다.
*&*
교류단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저택은 화려한 모습이었다.
실용성을 중시하던 평소의 저택은 이곳에 있지 않다. 귀하게 아껴두었던 이국의 레이스 장식을 꺼내고, 입구에서 들어오는 길에는 붉은 융단이 깔려 있었다. 안뜰에서 올려다볼 수 있는 테라스에는 체크무늬가 들어간 양탄자가 걸려있었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란과 달리 저택은 고요했다.
대기 중인 사용인들의 얼굴에는 웃음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제 곧 이곳은 전쟁터가 된다. 저택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루드비히 가의 사용인으로서, 부끄러움 없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긴장된 기색으로 주먹을 쥔 손에 힘을 넣는다. 마른 침을 삼키며 저택의 입구를 응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교류단이 도착했다.
가장 먼저 부지 안으로 들어온 것은 커다란 늑대였다.
새하얀 눈을 닮은 갈기가 바람을 타고 물결친다. 차디찬 북부의 대지에서 살아가는 화이트 울프(White Wolf)다. 새끼 때부터 기르지 않는 한 사람의 손길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영물이다. 녀석은 자신을 응시하는 루드비히 가의 가신들을 돌아보더니 목을 빼고 길게 울었다.
늑대의 울음소리가 안뜰에 울렸다.
누구 하나 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다. 잠시 후, 소리가 멎는 걸 기다렸다는 듯 일련의 사람들이 안뜰로 들어왔다. 두꺼운 털가죽으로 온몸을 두른 사람들이었다. 한겨울에 어울리는 복장이다. 봄이 피기 시작한 지금 입기에는 조금 덥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필요 없다. 힘차게 걸음을 옮기는 북부의 손님들에게서는 불편함은 엿보이지 않았다.
봄바람을 타고 깃발이 펄럭인다.
은빛의 창과 은빛의 검이 어우러졌다. 검의 주인은 익히 아는 대로 루드비히 가의 상징이다. 반면, 은빛의 창은 오늘 저택을 방문한 교류단을 이끄는 자들의 상징이었다.
낯익은 문양을 본 알베르트는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성 미뉴에트 가.
사람의 마음에 깃든 사악함을 몰아내고, 바른길로 이끈다는 북부의 명문이다. 예로부터 성 미뉴에트 가문의 핏줄에는 크고 작은 신성력이 깃들었다. 루미에르 교단과는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일족이다. 시기에 따라서는 성녀를 보필하는 호위 성기사까지 배출했으니. 그 위상은 높았다.
그러나 그것도 전부 과거의 이야기다.
현재는 북부에서 첸드리 변방백과 함께 캘러미티를 향해 창을 뻗치는 가문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도 백사자 에드워드 백작이 이끄는 오늘날의 성 미뉴에트 가문은,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정문을 통과한 백작가의 가신들은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을 끄는 사람은 선두에서 그들을 이끄는 기사다. 주황빛의 단발머리를 한 중년 남성은 장창을 등에 메고 있었다. 그 뒤에는 아직 앳돼 보이는 소년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먼저 들어왔던 화이트 울프의 주인이었는지, 그의 곁으로 다가간 화이트 울프는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라시엘 공작의 앞에 선 기사는 예를 갖췄다.
“이렇게 환영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루드비히 공작 각하.”
“음,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네. 백의 창, 피에르 경.”
단지 지위가 높은 귀족에게 향하는 형식적인 예가 아니다.
자신의 앞에 있는 분은 기사의 정점에 선 존재. 제국에서도 최강의 소드 마스터라고 칭해지는 라시엘 루드비히 공작이다. 북부에서는 마족과 묶여있는 그를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비하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모두 헛소문이라는 걸 백기사단의 피에르는 알 수 있었다.
이런 변방에서 죽으라고 수련만 쌓은 건가.
농담이 아니다. 이 영감탱이. 이전보다 더 강해졌을지도 모른다.
“강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그런 자네는 늙었군. 황야를 달리던 늑대의 발톱은 이제 무뎌졌을지도 모르겠어.”
면식이 있는 두 사람이다.
한때는 같은 전장에 서서 외적을 물리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서로의 이마에 생긴 주름 정도다.
“공작 각하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제 창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물론 상대방도 부족함이 없는 기사였으면 하는군요.”
피에르는 좌열에 선 기사들을 보았다.
사자기사단.
제국 최강의 기사단이 그곳에서 성 미뉴에트 가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에르의 시선이 향한 곳은 그 필두에 선 기사다. 긴 금발이 아름다운 남자다. 로엔 발 나하드. 쾌검으로 정평이 난 사자기사단의 부단장이다. 그 실력에 관해서는 끝과 끝을 달리는 북부에도 소문이 무성했다.
“흠. 과연. 알겠네.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내 노력해보지.”
“감사합니다, 공작 각하.”
물러나는 피에르를 대신하듯 뒤에 서 있던 소년이 앞으로 나왔다.
“라시엘 루드비히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트리스탄 성 미뉴에트입니다. ”
“하얀 사자. 에드워드 백작의 아드님인가. 과연, 그분의 핏줄을 이은 것이 틀림없군. 훌륭한 기도네. 자네 같은 아들을 둔 에드워드 백작이 부럽군.”
“과, 과찬의 말씀입니다. 공작 각하.”
라시엘 공작의 칭찬에 트리스탄의 얼굴이 밝아졌다.
올해로 열 살이 된 소년이다. 가문을 대변하는 자리에 나왔다고는 하지만. 아직 이런 자리는 서투른 모양이다. 작은 기침 소리가 났다. 집사가 낸 소리에 트리스탄은 표정을 바로잡았다.
“루, 루드비히 공작령은 척박한 곳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이렇게 보니 전부 헛소문에 지나지 않는군요. 작물도 풍부하고, 볼거리도 많고. 무엇보다 영지민들의 얼굴이 밝습니다. 이래서야 저희 백작령이 더 척박한 느낌입니다.”
“꼭 그렇지도 않지. 잘 생각하게나. 이 땅은 마족과 맞닿아 있네.”
“그건 저희도 다를 바 없습니다. 캘러미티가 있으니까요.”
“북부의 야만족들 말이군. 그래, 녀석들이 날뛴다는 소문은 들었네.”
“공작 각하께서 괜찮으시다면,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그렇다면 나는 마족에 대해서 알려주겠네.”
한데, 하고 라시엘 공작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군가를 찾는 그 모습에 트리스탄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말씀드리는 것이 늦었습니다. 자하단 형님이라면 몸 상태가 갑자기 나빠진지라, 이 자리에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몸 상태가? 건강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만……. 분명 희귀병을 앓고 있다 했지.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괜찮다면 우리 쪽 치료사를 보내주겠네.”
“공작 각하의 배려, 감사히 받겠습니다.”
소년의 얼굴에 기쁨이 달렸다.
그런 트리스탄을 바라보던 아리시엘은 한숨을 쉬었다.
아침부터 한껏 준비한 그녀의 모습은, 마치 이곳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귀엽기 짝이 없었다. 노아 누님의 실력만 들어간 게 아니다. 머리끝에 단 장식은 알베르트의 작품이고, 화려한 장식은 쌍둥이 시녀의 회심작이다. 따로 보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장신구를, 아가씨는 어렵지 않게 소화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본인의 얼굴이 이렇게 어두워서야 모처럼 꾸민 의미가 없다.
아리시엘은 마이너스, 마이너스 하고 중얼거렸다.
감정을 숨기는 데 서투른 걸까. 그렇지 않으면 감정을 숨길 생각이 없는 걸까.
어느 쪽이든 어린애다. 여기가 어떤 자리인지 자각이 없는 모양이다.
정말 저런 남자와 연을 맺어야 하는 걸까?
“잔뜩 기대했는데. 이래서야 꼬맹이잖아.”
너무 실망한 탓일까. 아가씨는 자신도 모르게 생각한 바를 입 밖으로 냈다.
“아가씨. 듣는 귀가 많습니다.”
“알고 있어. 하지만 너무 어리잖아.”
“몇 년 안 지나서 훌륭한 남성분으로 성장하실 겁니다.”
“아아, 기다리는 건 싫은데.”
솔직히 별로 기대도 안 되고.
알베르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트리스탄이 아리시엘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어머님에게 인사를 마친 소년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혹시 목소리가 들린 건 아니겠지? 아리시엘은 표정을 관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리시엘 공녀님. 트리스탄 성 미뉴에트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트리스탄 공자님. 이렇게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군요.”
아리시엘은 하얀 장갑을 벗었다. 트리스탄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몇 번이고 반복한 동작이다. 우아하게 뻗은 손을 본 트리스탄은 아가씨의 손등에 입술을 가져갔다.
“죄송합니다. 예정대로라면 형님이 이 자리에 계셨어야 했습니다만. 몸 상태가 나빠진지라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부디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이 자리에 없는 자하단 공자님이 빨리 쾌차하시길 바라요.”
“감사합니다. 공녀님께서 걱정해주신다면, 형님도 곧 병상을 털고 일어나실 겁니다.”
“말씀을 잘하시는군요, 트리스탄 공자님은.”
“네? 아, 아뇨. 별로 그런 것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면서 말하자, 트리스탄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역시나 꼬맹이라니까.
부끄러워하는 소년을 보며 아리시엘은 더 떨어질 것도 없는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
행사와 같은 환영식이 끝나고, 알베르트는 창고 앞에서 들어온 물건을 분류하고 있었다.
하녀와 하인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선물은 성 미뉴에트 가에서만 보내온 것이 아니다. 북부의 유력 가문들이 하나둘 손을 보탠 물건들은 엄청난 숫자였다.
“이건 어디로 옮길까요? 집사님. 과일? 아니, 무슨 물건 같은데.”
“멜론이군. 여기서는 구하기 힘든 과일이네. 안쪽으로 옮겨주게나. 냉동창고가 있네.”
“집사님. 이건 어디로 드리면 될까요?”
“내용품은 확인해봤나?”
“북부에서 나는 맥주랍니다.”
“그렇다면 버터 맥주일걸세. 그것도 안쪽으로 가져가게.”
버터 맥주라면 북부의 특산품이라고 해도 좋다.
알베르트는 알고 있지만, 공작령에서만 지내온 하인들은 알 수 없는 물건이다. 하다못해 이 자리에 집사장이나 시녀장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거기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다.
“집사님. 이건 어떻게 할까요?”
“의류는 이쪽이 아니라 호수 반대쪽 창고다.”
“알겠습니다.”
“어이, 너희들. 여기가 아니란다!”
분류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
창고 앞에 선 짐은 아직 반절도 줄지 않았다.
*&*
아리시엘은 침대를 뒹굴고 있었다.
모처럼 차려입은 드레스와 머리가 지저분해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잔소리꾼인 노아나 알베르트도 이 자리에는 없다. 이 방 안에는 그녀 혼자다. 금일 저택을 방문한 귀빈은 성 미뉴에트 가문의 사람만이 아니다. 다른 북부의 유력 가문의 손님들도 잔뜩 온 탓에 아리시엘의 몸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몇 번이나 인사를 나눈 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얼굴까지는 어떻게든 기억하겠는데, 이름까지는 떠올릴 수 없다.
힘들다.
바쁜 건 다 끝났으니 당분간은 쉬어도 되겠지만. 방 안에서 쉬는 건 뭔가 탐탁지 않다.
그렇다고 많이 움직이는 것도 귀찮다.
잠시 고민하던 아리시엘은 이윽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들었다.
기분 전환을 할 생각에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