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
루미너스 일루젼
라베린 도시를 포위했던 언데드 사태가 일어난 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저택 어디를 둘러봐도 새하얀 눈꽃이 가득했다. 하얗게 물든 세상이 아름답다. 창에서 시선을 돌린 루인은 벽난로를 확인했다. 장작은 충분하다. 얼어붙었던 방 안의 공기는 금방 데워졌다.
장작을 너무 넣으면 역으로 숨이 텁텁해진다.
응접실의 온도를 조절한 루인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테이블의 준비는 마린이 끝내놓은 상태다. 고급스러운 향초와 부드러운 담요. 차와 쿠키의 준비도 완벽하다. 서로의 옷차림을 확인한 두 시녀는 방문 앞으로 나왔다.
청소가 끝난 복도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미 하녀들이 오전 중으로 청소를 끝내놓은 참이다. 저택은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끝나 있었다.
잠시 후, 찬란한 금빛과 함께 일련의 손님이 응접실로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안쪽입니다.”
두 시녀는 약속한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
쪼르르.
찻주전자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화려한 호선을 그렸다.
잔에서 물방울이 튀어 오르는 일은 없다. 손님의 잔을 먼저 채운 집사는 아가씨의 잔을 채웠다. 아리시엘은 잔을 들었다. 잔에서 올라오는 향기는 조금 씁쓸하다. 평소 그녀가 즐기는 홍차가 아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블랙 커피다.
아무리 그래도 그냥 마시는 건 힘들다.
알베르트는 아가씨의 잔에 각설탕을 넣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소리 나지 않게 수저를 젓는다. 설탕이 녹은 걸 확인한 그녀는 입가로 잔을 가져갔다.
음, 달다.
“향이 좋군요. 설마 타향에서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거로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루드비히 가는 그만큼 당신을 대우하고 있는 겁니다. 모하메드 님.”
“님이라니요. 일개 상인에게 존댓말을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리시엘 공녀.”
실눈이 인상적인 검은 피부의 남자, 모하메드는 만면에 미소를 띄웠다.
아리시엘 역시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럴 수는 없죠. 모하메드 님은 공화국의 의석을 맡은 분이시니까요. 혹여 부족한 대우를 해드린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네요.”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늘은 의장으로 방문한 게 아니라 거래를 트러 온 거니까요.”
압둘레이 공화국의 의장. 모하메드 아르바.
오늘 루드비히 저택을 방문한 손님은 귀빈 중의 귀빈이었다. 본래 공화국의 손님이 루드비히 영지를 찾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공화국과는 거리가 먼 탓도 있지만. 이 땅은 마족이 나오는 금지된 숲의 국경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의 수도인 블러드 로열과는 교류를 나눠도, 이곳까지 올 이유는 없었다.
그럼 오늘의 방문은 무엇을 위한 건가. 답은 간단했다. 조만간 북부에서 내려오는 교류단을 맞이하기 위한 마지막 준비. 공화국의 귀한 물건을 갖춰뒀으면 좋겠다는 공작부인의 의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화국은 루드비히 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교류가 많지 않다고는 해도, 루드비히 가는 귀한 손님이다. 물건을 거래하는 공화국 측에서는, 자신들의 물건을 사는 루드비히의 차기 가주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고 싶었다.
즉 오늘 이 자리에 온 모하메드 의장은 아리시엘 루드비히의 그릇을 재고 있었다.
“공화국의 날씨는 매우 덥다고 들었습니다. 반면 저희 제국은 계절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죠. 방 안이 춥다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온도를 조절해드리겠습니다.”
“공녀의 말이 맞습니다. 저희 공화국의 한낮은 덥다 못해 열기로 쓰러지는 사람이 생길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한밤중의 날씨는 서리가 맺힐 정도로 춥죠. 이만한 한기는 별로 놀라운 것도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거 놀랍네요. 일교차가 그렇게 크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공화국을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감기에 걸리는 일이 많습니다. 만약 공녀분께서 공화국을 방문할 일이 생기신다면, 여분의 옷을 많이 챙겨오시는 게 좋답니다.”
“들었지, 알?”
“알겠습니다, 아가씨.”
아리시엘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럼 그때는 모하메드 의장님께 신세를 지고 싶네요. 괜찮을까요?”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루드비히 가의 공녀가 공화국을 방문하니, 그에 걸맞은 환영식을 준비하고 기다리죠.”
“어머, 정말이신가요? 저희는 변변찮은 환영식밖에 못 해드렸는데.”
“가치를 증명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죠.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제 가치를 보여드렸으니, 다음 방문 때는 화려한 환영식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모하메드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는다.
기분 나쁠 정도로 산뜻한 얼굴은 마치 유리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상인의 얼굴이다.
별로 상대하고 싶은 남자는 아니다.
아리시엘은 찝찝한 기분을 억누르면서 말을 이었다.
“아버님에게 들었어요. 신기한 물건을 가져왔다고 하던데. 제게도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이곳에 왔으니 말입니다.”
바깥을 지키고 있던 마린과 루인이 모하메드 의장의 짐을 갖고 들어왔다.
수수한 꾸러미에서 나온 물건들은 하나같이 이국적인 느낌이 넘치고 있었다.
종류도 다양하다.
모래 냄새가 나는 것 같은 향초와 톡톡 쏘는 것 같은 향신료. 곡도와 원형 방패. 팔목에 다는 작은 곡궁을 비롯해 날카로운 암기도 있다. 그중에는 드워프의 손길이 닿은 것 같은 검도 보였다. 한동안 검을 바라보던 아리시엘이 물었다.
“의장님이 추천하는 물건은 있나요?”
“제가 추천하는 물건이라. 흠. 그렇군요. 혹시 집사를 물려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알을?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이제부터 말씀드리는 물건은 남성분이 듣기에는 조금 그렇습니다.”
“상관없어요. 알은 제 가족이니까요.”
“그렇습니까.”
모하메드는 향신료가 담긴 꾸러미를 뒤적거렸다. 검은 통을 꺼낸 그는 내용물을 보였다. 안쪽에는 붉은빛의 환약이 담겨 있었다.
“약으로 보이는군요.”
“그렇습니다.”
“어떤 약인지 알 수 있을까요?”
“만유환(滿乳丸)입니다.”
만유환? 처음 들어보는 약이다.
아리시엘은 알베르트를 보았다. 집사는 고개를 저었다. 공화국에 대해서는 그도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제국은 모르겠지만, 죽음의 바다 너머에는 다양한 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중 한 부족이 만드는 약입니다. 전통 의식을 위해서 준비하는 약인지라. 특정 시기가 아니면 구할 수 없는 물건입니다. 이 약은 특수한 효능이 있어서 제국의 수도권에서는 웃돈을 얹어서라도 사고 싶어라 하는 약입니다.”
“요컨대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물건이라는 말이군요. 굉장하군요. 혹시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건가요?”
“아뇨. 가슴이 성장하는 약입니다.”
“네?”
아리시엘이 반문했다.
“여성의 가슴이 성장하는 약입니다.”
“…….”
아가씨는 시선을 내렸다. 살짝 부푼 가슴을 확인한 그녀는 모하메드를 보았다.
“농담이 짓궂으시군요.”
“저는 물건을 갖고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실제 효과는 인기가 보증하고 있습니다.”
꿀꺽, 하고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아가씨는 메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가격은 얼마나 하죠?”
“백금화 다섯 장이면 어떻습니까?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다섯 장에 통 하나라. 약 치고는 꽤 비싸군요.”
“환약 열 개당 다섯 장입니다.”
“진심이신가요? 고작 이런 약이…….”
“아니죠. 아리시엘 공녀. 여성 분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약입니다. 블러드 로열에서는 이보다 10배를 더 불러도 구하지 못하실 겁니다. 귀부인들 사이에서는 도시 전설 같은 약이거든요.”
아리시엘의 눈에 고민의 빛이 어렸다.
살 수 있다면 살 수 있다. 가격이 지나칠 정도로 비싸지만, 그녀의 용돈에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손톱을 입으로 가져가는 아가씨를 향해 집사가 속삭였다.
“아가씨의 몸은 아직 성장 중이니, 굳이 약에 의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떻게 확신해? 또 엘프가 알려준 수상쩍은 기술로 알아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마나의 흐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략적이나마 육체의 성장이 어떻게 될지 볼 수 있는 법이죠. 누님과도 비슷한 크기로 자란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진짜야?”
“물론 약간의 오차는 있을 수 있습니다.”
“…….”
덧붙이는 알베르트의 말에 아리시엘은 얼굴을 찌푸렸다.
유모인 노아의 가슴은 작지도, 크지도 않다. 그렇지만 아리시엘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작은 편에 속했다. 못해도 어머님 수준은 되었으면 한다. 귀부인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풍만한 느낌이 들지 않은가.
“좋아요. 시험 삼아 한 통만 살게요.”
“탁월하신 선택입니다.”
그는 꾸러미 안쪽에서 통 한 개를 더 꺼냈다.
조금 전 꺼낸 물건은 견본품이었던 듯 이쪽은 깨끗하게 포장이 되어 있었다.
아리시엘은 다른 물건을 둘러보았다.
드워프의 손길이 닿은 곡도를 어렵사리 밀어낸다.
다음으로 그녀의 시선이 닿는 건 공화국의 전통 의복이었다.
온몸을 감싸 안는 로브와도 같은 옷이 있는가 하면, 안감 안쪽이 투명하게 보이는 검은빛의 옷도 있었다. 그중에는 얼굴을 가리는 면사도 있다. 고민 끝에 몇몇 옷을 구입했다.
장물을 정리하는 모하메드를 향해 아가씨는 물었다.
“오늘 준비하신 물건은 이게 전부인가요?”
“달리 원하시는 물건이라도 있으십니까? 말씀해주신다면 최대한 비슷한 것으로 준비해드리죠.”
“제가 바라는 물건은 실체가 있는 게 아닙니다. 만족할 수 없는 대답이라면 아무것도 드릴 수가 없어요.”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취급하는 물건들은 하나 같이 가치 있는 물건들뿐이니까요. 그리고 그건 공작님도 인정하셨습니다.”
아리시엘은 잔을 들었다.
이야기를 나누느라 메말랐던 목에 커피가 스며들었다. 혀에 남는 쓴맛은 싫지만, 설탕을 듬뿍 넣은지라 달달한 느낌은 있다. 당분을 섭취한 아가씨는 입을 열었다.
“뱀을 숭배하는 수상한 종교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듣기로는 공화국에서도 비슷한 사교가 돌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종교 말씀입니까. 공녀분께서 아실련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공화국은 제국과 달리 종교에 대한 자유가 있습니다. 제국처럼 루미에르 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해신(海神)을 모시는 이도 있고, 선조님을 신으로 받드는 종교도 있죠. 지금 공화국 내의 종교는 못 해도 수십 개가 넘을 겁니다. 그중에서 뱀을 숭배하는 종교를 찾으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모하메드는 자신이 걸고 있는 로사리오를 만지작거렸다.
그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상인 특유의 가면과도 같은 웃음이다.
“그런 것보다 다른 정보를 사시는 건 어떻습니까? 공녀분께서 궁금해하실만한 정보는 전부 섭외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요 몇 년 사이 사교회에서 유행하는 의복이라든지. 귀부인들 사이에서 오가는 화제라든지. 혹은 괜찮은 자제분에 관한 이야기도 괜찮겠죠. 어떻습니까?”
“확실히 흥미가 동하는 이야기네요. 하지만 그런 정보는 괜찮답니다. 이곳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이야기니까요. 제가 알고 싶은 건 뱀을 숭배하는 사교입니다. 분수도 모르고 공작령에 들어온 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거든요.”
아리시엘의 얼굴은 차갑게 얼어 있었다.
몇 달 전부터 귀에 들어오는 꺼림칙한 이야기다.
공작령 내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쩍은 종교가 유행하고 있다. 다프네 여신님을 부정하고, 루미에르 교를 비난하는 사교. 일설에 의하면 그 사교도들이 거리 내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다고 한다.
루드비히 공작령 내에는 루미에르 교의 신전이 없다.
그 말은 사교도들의 활동을 막을 이단심문관이 없다는 걸 의미했다.
“그렇군요. 하지만 그런 일은 아버님이신 공작님께 맡기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굳이 공녀분께서 나설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는군요.”
“저는 모하메드 의장님의 의견을 물은 게 아닙니다. 검을 이끄는 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건가요? 모하메드 의장님께서는 지금, 제 그릇을 의심하는 겁니까?”
“…….”
아가씨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은 모하메드는 입가에 어린 웃음을 지웠다.
실눈을 지운 그는 살그머니 눈을 떴다. 푸른 두 눈이 아리시엘의 모습을 담았다. 말없이 아가씨를 응시하던 모하메드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아리시엘 공녀님. 제가 아무리 근본 없는 장사치라고는 하지만, 한 정보를 같은 가문의 사람에게 두 번이나 팔 수는 없습니다.”
“두 번? 아버님께서도 같은 걸 물어보셨다는 말이군요.”
“좋습니다. 이 정보는 파는 게 아니라 제가 알려드리는 쪽으로 가죠. 조금 전 범한 실례를 사과하는 뜻에서 말입니다.”
모하메드는 테이블 위로 한 조각상을 올렸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검은 뱀. 뱀은 나무 끝에 맺힌 과실을 노리듯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뱀의 추종자라고 부릅니다.”
“뱀의 추종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가씨를 향해 그는 말을 이었다.
“공녀분께서 모르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 사교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니까요. 저희가 아는 것도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간신히 잡아낸 것은 놈들의 꼬리 정도니까요.”
“몸통은 아직 살아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몸통을 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아마 그들의 몸통을 쳐낼 수 있다면, 그건 루미에르 교단밖에 없겠죠. 부끄럽게도 꼬리를 잘라내는 데만도 엄청난 노력이 들어갔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면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수면 아래에서는 아직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르죠.”
“잔존 세력이 남아 있다는 거군요. 이해할 수가 없네요. 모하메드 의장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공화국은 이미 그들의 위험성을 인지한 게 아닙니까? 어째서 몸 안의 벌레를 내버려 두는 거죠? 당장이라도 정리하는 편이…….”
아리시엘은 말꼬리를 흐렸다.
혹시 공화국은 내버려 둔 게 아니라,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던 건가?
“말하자면 녀석들은 벌레나 다름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벌레를 죽인다고 해서, 그 벌레가 멸종되지는 않죠.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가 보는 앞에서 벌레를 관리하는 쪽이 좋지 않겠습니까?”
조각상으로 손을 옮긴 모하메드 의장은 나무의 과실을 땄다.
검은 과실은 손안에서 툭 하고 터졌다. 피와도 비슷한 검은빛의 액체가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무언가 달콤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뱀의 추종자들이 사용하는 물건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루미너스 일루젼이라고 부릅니다.”
“과일의 일종이야?”
알베르트는 과실을 향해 손을 뻗는 아가씨를 막았다.
“위험합니다, 아가씨. 이건 평범한 과일이 아닙니다.”
수상쩍은 마나가 느껴진다.
끈적끈적하면서도 꺼림칙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기운이다. 마기와도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경계하는 알베르트의 모습에 모하메드가 말했다.
“그리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상태에서는 그냥 달짝지근한 열매에 지나지 않거든요. 다만, 물과 닿게 되면…….”
주전자를 든 모하메드는 과실즙 위로 물을 부었다.
“이런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이 상태의 루미너스 일루젼은 중독성이 강한 마약으로 돌변하게 되죠. 얼마나 지독한 녀석인지 암계(暗界) 쪽에서는 근절시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조심하는 편이 좋습니다. 만약 이 물건이 공작령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 상태라면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
알베르트는 물과 닿은 루미너스 일루젼을 보고 있었다.
끈적거리는 절편처럼 변해버린 그것은 마치 선녀가 만들었던 월편과도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각오라는 건 무슨 말씀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있는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이 과일의 재료는 살아 있는 인간이니까요.”
아가씨의 물음에 모하메드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