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독의 잔향
「객잔에서 싸우지 않은 건 좋은 판단이었네. 그곳에서 싸우게 된다면 계승자인 자네라도 버거울 수밖에 없지. 신경 쓰지 말게나. 그곳에 준비해둔 함정은 불청객을 상대하기 위한 거니.」
“불청객? 이곳을 찾아온 이들이 또 있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신성력을 다루는 제국의 인간들 말이네.」
“루미에르 교단이 왔다 갔군요.”
「녀석들은 우리의 유산을 갖고 싶어라 했으니 말이다.」
우스운 일이라는 듯 암독제는 끌끌거리며 웃었다.
“뭘 평화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야! 뭘 해야 하는지 잊은 거야? 내가 왜 그 고생을 하며 당신을 꺼내왔는데!”
「알고 있으니 재촉하지 말거라. 노부의 억지를 들어주느라 고생이 많았다.」
외야가 시끄럽다. 투정을 부리는 것 같은 마녀의 목소리에 암독제는 말을 이었다.
「너무 저 아이를 원망하지 말게. 노부의 부탁을 받고 자네를 찾은 것뿐이니. 가급적 폭력적인 수단은 배제해달라고 했지만. 결과가 어땠는지는 모르겠군.」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예의 언데드가 공격에 소극적이었던 까닭은 그런 연유에서였던 모양이다.
「노부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철이 들지 않았다고는 해도, 귀여운 후손의 부탁이다. 오게나, 계승자여. 그대가 주군의 이름을 이을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보겠다.」
“한쪽 팔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거기에 이곳은 노선배의 사냥터도 아닙니다.”
「누굴 걱정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노부가 아무리 약해졌다 해도, 자네에게 그런 말을 들을 처지는 아닐세.」
품 안으로 왼손을 옮긴 그는 알베르트를 응시했다.
그러나 암독제가 두른 기도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
알베르트가 맨 처음 마주했던 무덤 수호자, 녹림왕과 비교해도 반절밖에 되지 않는 기운이다. 거기에 이미 한쪽 팔을 잃은 상태다. 지금의 알베르트라면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무는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결과는 나와 있다.
암독제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그가 이 비무를 원하는 건…….
[죽을 장소를 찾고 있군요.]
천칭의 말이 맞다. 그는 자신의 꿈이 끝나는 장소로 이곳을 골랐다.
암독제는 몸을 구부렸다.
투기와도 비슷한 전의가 느껴졌다.
「시작하지.」
검이 노래했다.
시작은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지면에서 떨어진 발이 알베르트의 머리를 노렸다. 튕겨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노리는 것은 머리가 아니다. 팔 안에서 날붙이가 빛났다. 검? 다르다. 서늘한 느낌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확인할 필요는 없다. 아마도 암기겠지. 그러나 그 수는 실수가 되어 돌아왔다. 지나갔을 터인 암기가 방향을 틀었다.
배후에서 섬뜩한 느낌이 달렸다.
검과 암기. 둘 중 우선해야 할 것을 고른다. 맞받아쳐야 하는 것은 검이다. 암기는 최선을 다해 피한다. 극한까지 단련된 신체가 반응한다. 얼굴을 노리고 들어오는 검. 쳐낸다. 머리로 꺾여 오는 암기. 고개를 돌린다. 날카로운 아픔이 남는다. 한 끗 차이로 은침이 이마를 스쳤다.
암독제가 회수한 은침은 그의 소매로 돌아갔다. 일종의 장치로 보인다. 소매 끝에서 나온 기구가 암기를 붙잡고 있었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알베르트는 천천히 닦아냈다.
시선을 고정한다. 암독제를 관찰한다.
망자였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다. 기세가 죽었다고 한들, 한쪽 팔을 잃었다고 한들. 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흑도의 고수다.
여유를 두고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자만하고 있던 것은 알베르트였던 걸지도 모른다.
검기나 검강을 끌어내는 일은 없다.
이 비무를 그르치게 하는 요소는 굳이 가져올 이유가 없다.
겨루는 것은 순수한 검술과 체술이다.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거겠지.
암독제의 검에 검기가 맺히는 일은 없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기기묘묘한 변화다.
나아가는 검로에는 허초와 변초가 섞여 있다. 실체가 없는 초식과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가져오는 초식이 혼재해 있다. 일순간 검이 수십 개의 잔상을 남기는 것 같은 환각. 따라갈 수 없다. 사실상 그의 검로를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그 검로를 박살 낸다.
챙
검이 끝에 이르렀을 때 알베르트의 손이 움직였다.
무명검법(無名劍法)
참(斬)
일찍이 검성의 손에서 펼쳐졌다는 패도적인 검법이 재현된다.
힘에 밀린 암독제의 팔이 날아갔다. 충격 때문일까, 그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안쪽으로 파고든다. 노리는 곳은 가슴. 이 일격으로 승기를 가져온다.
시야 한 편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알베르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젖혔다. 얼굴을 지나 지면에 떨어진 것은 은침이다. 소매가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암기가 쏘아진 것은 암독제의 입안이다. 주공은 암기가 아니다.
첫 번째 침은 미끼다.
그 뒤를 잇는 두 침을 차분하게 받아낸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고와 마찬가지로 알베르트의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검을 든 암독제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기교에서 밀릴지언정, 힘과 속도는 알베르트가 압도한다. 노선배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가급적 그는 정면에서 벌이는 힘겨루기를 피했다. 하나, 이번에는 피할 수 없다. 검신의 끝. 무게 중심을 흩트려 놓기 위해 팔이 움직였다.
아직 초식은 전개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따라갈 수 있다. 알베르트의 검은 빠르고 정확하다. 따라잡히기 시작한 암독제의 검은 점차 활로를 잃어갔다.
쯧, 하고 그는 혀를 찼다.
팔 한쪽이 없는 상태에서 그가 펼칠 수 있는 무공에는 한계가 있다.
망자에서 막 돌아온 몸이다.
기혈이 들끓는다. 착각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목 아래까지 차오른 것이 피처럼 느껴진다. 계승자의 검을 받아내는 팔이 점차 무거워진다. 내려앉은 시선이 올라가지 않는다. 몸이 무거워질수록 움직임 또한 느려진다.
검로가 이지러진다. 암독제의 의사에서 벗어난 검은 이리저리 얽혔다.
남겨놓은 암기도 몇 되지 않는다. 계승자의 검에 대처할 방도가 사라졌다.
그런가. 끝은 생각 이상으로 가까웠다.
암독제의 검이 날아갔다.
검을 쥐고 있던 주름 진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 지면에 떨어진 검과 빈 손아귀를 바라본 그는 한숨을 쉬었다.
「역시, 이런 비무는 노부와 어울리지 않는군.」
암독제의 전투 방법은 어디까지나 거미와 같다.
사냥터를 준비하고, 함정을 마련한 뒤 지쳐 쓰러지는 먹잇감의 숨통을 끊어낸다.
이곳에서 그의 사냥터는 객잔이다.
객잔이 아닌 바깥에서 싸운다는 것 자체가 승기를 포기한 것과 같았다.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져 있던 비무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저 자기만족이다. 그저 보고 싶었다.
젊은 계승자가 펼쳐내는 무공은 틀림없이 주군의 것이다. 무언가 다른 것이 섞인 것도 보이지만, 그 안에 깃든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계승자 나름대로 갈고 닦은 건지도 모르지.
계승자의 머리는 타오르듯이 붉은빛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그리운 모습이 아른거리는 것 같다.
다시는 보지 못할 거로 생각했던 주군의 자취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
이제 마지막이다.
꿈의 끝.
그 시대를 이 눈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그렇지만 그 편린을 잡는 것이 가능하다면…….
암독제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마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자, 잠깐!”
에르체베트의 목소리는 아무래도 좋다.
마녀의 허리춤에 있던 도검이 암독제의 내공에 따라 움직였다.
허공섭물(虛空攝物).
도검은 알베르트의 앞으로 날아갔다.
「받게나. 이제 주군의 이름을 이은 그 힘을 보여주게나.」
롱소드를 내린 알베르트는 도검을 잡았다.
손안에 들어오는 느낌은 썩 나쁘지 않다. 화려한 외관. 가벼운 무게. 날은 그리 날카롭지 않다. 실전 무기라기보다는 관상용으로 쓰는 예술품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알베르트와 시선이 마주치자 에르체베트는 얼굴을 찌푸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에르체베트에게 물은 것이 아니다. 암독제를 향한 물음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승자는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있다.
의사를 물어보는 게 아니다. 확인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심으로 오게나.」
이미 각오는 끝나 있었다.
그를 이곳에 부른 시점부터.
아니, 아마도 그보다 더 이전에. 이미 자신의 이야기는 끝나 있었으니까.
우리들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막을 내린다.
그럼 안녕히.
도검을 바로 쥔 알베르트는 마음속으로 작별을 고했다.
아름다운 검신 위로 검붉은 검기가 맺혔다.
검기는 실을 자아내고, 실은 타오르는 붉은 강기를 만든다. 완성된 검강의 빛은 주변을 매료시킨다. 젊은 계승자가 취하는 자세는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천마신공 오의
천마혈참
빛이 달렸다.
계승자의 손에서 펼쳐진 검붉은 궤적은 암독제를 갈랐다.
소리는 잇따르지 않았다.
말을 잃은 에르체베트와 움직이지 않는 두 사람.
알베르트가 도검을 수납하자, 암독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맙네, 계승자여. 우리의 꿈. 그대에게 맡기도록 하지.」
“편히 잠드시기를. 암독제.”
한 줌의 독기가 암독제로부터 떨어졌다.
모래와도 같이 떨어지는 독기는 그의 몸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그 몸을 유지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눈앞이 어두워지고, 그 안을 채우고 있던 빛이 사라져간다.
이것이 꿈의 끝이라는 걸 암독제는 깨달았다.
남은 미련은 없다.
뒤는 계승자가 그 의지를 잇고 달려갈 터이다.
생각해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나잇값도 못 한 채 찬란한 꿈을 좇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
이루어질 리 없는 꿈의 편린을 보았다.
사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가진 그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다.
이정표는 꺾여버렸고, 그 뒤를 쫓던 이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떨어졌다.
한 줄기의 빛이 이끌던 풍경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불에 모이는 불나방이 그러하듯.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화려하게 피어났던 그들의 꽃은 그렇게 졌다. 결국, 그 끝에는 닿지 못했다. 그렇지만…….
괜찮다.
꽃이 져야만 비로소 열매가 맺히는 법이다.
자신들이 밟고 지나간 길은 절대 헛수고가 아니니까.
아아, 정말 행복한 나날이였다.
어둠밖에 남지 않은 세상에 빛이 돌아왔다.
그 눈에 비치는 것은 이제는 닿을 수 없는 그 시기의 광경이었다.
충성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남자가 있었다.
우둔한 소리를 늘여놓지만, 무에 집착하는 사내가 있었다.
사랑에 빠진 눈치 없는 여아가 있었다.
어둠에서 나오고자 했던 그림자가 있었다.
새가 날갯짓한다.
떠오르는 해와 마찬가지로, 이름 모를 새는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자유를 바라듯이.
옭아매던 모든 것에서 벗어난 새는 드디어…….
『함께 가겠는가, 암독제.』
당연한 걸 물으시는군요. 노부의 검은 언제나 주군의 것입니다.
『본좌가 짊어진 것은 모두의 꿈이네. 닿을 수 없더라도, 한 번 보고 나면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영겁의 저주지. 그래도 자네는 본좌와 함께 갈 것인가? 이 저주를, 같이 짊어질 각오는 되어 있는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루지 못하더라도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게 사내라는 것을.
『그런가. 바보 같은 물음이었군.』
그렇습니다, 주군. 우리는 결국 이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 몸은 이렇게 노쇠 해버렸지만, 꿈은 퇴색되지 않은 채 시대를 이어갈 테니까요.
사고가 끊기기 직전, 암독제의 입가에서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품 안의 독기와 함께 재가 되어버린 그는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모래바람이 흩날렸다.
흙으로 변해 사라지는 그 모습을 알베르트는 조용히 응시했다.
[남은 건 한 사람이군요.]
천칭의 목소리에 알베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포권을 취했을 뿐이다.
에르체베트는 흙더미 앞에 주저앉았다.
손가락 사이로 재가 흘러내린다. 망자의 끝. 그녀는 암독제의 마지막 흔적을 매만졌다.
“말도 안 돼. 뭘 혼자서 만족하고 사라지는 거야? 나, 나는 이런 걸 바란 게 아니라…….”
“노선배의 부탁은 이게 마지막이었는가.”
“…….”
자리에서 일어난 마녀는 알베르트를 노려보았다.
“누가 대답할 줄 알아?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누가 당신 같은 남자를 계승자로……!”
휘릭, 하고 에르체베트는 지팡이를 흔들었다.
이미 술법의 준비가 끝나있었던 건지, 그녀의 발치에서 연보랏빛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마버진의 빛이 선명해졌다. 극한까지 끌어올린 마나가 마법을 공정했다.
지팡이의 끝이 알베르트를 향했다.
“천흑뇌편(天黑雷鞭)!”
……
…….
빛은 반짝이지 않았다.
에르체베트의 지팡이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처, 천흑뇌편!”
“…….”
마녀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녀를 닮은 연보랏빛의 마나가 반짝이긴 했지만, 그것이 전부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지팡이를 흔드는 에르체베트의 모습이 안쓰럽다. 알베르트가 아는 두 마녀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매달리는 것 같은 시선이 그를 향했다. 부인해달라는 것 같다.
잠시 고민하던 알베르트는 어른의 대처를 보여줬다.
“노선배의 부탁은 이게 마지막이었는가.”
“그런 배려 필요 없거든!?”
“…….”
이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쿠르르릉!
천장에서 돌무더기가 떨어진다. 발을 타고 전해져 오는 충격은 가볍지 않다. 유적지 전체가 떨리는 것 같다. 충격을 견디지 못한 객잔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건…….”
“어, 그러니까. 엑? 설마…….”
무너지고 있는 건 객잔만이 아니다. 흔들리고 있는 건 무덤 전체다.
[그렇군요. 저 어설픈 마녀가 펼쳐낸 마법은 여기가 아니라 바깥에서 일어난 모양입니다.]
‘정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서투른 마녀구먼.’
[그냥 경험이 부족해 보이는군요.]
‘아직 어리니까 말이지.’
여기에 그대로 있는 것은 자살행위다.
마녀는 대화를 나누고 싶은 의사도 없는 것 같으니, 통로가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빠져나가자. 아직 온전한 길을 향해 알베르트는 발걸음을 돌렸다.
털썩, 하고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에르체베트다.
조금 전처럼 자리에 주저앉은 그녀의 몸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자, 잠깐만. 나. 그, 마. 마나가 없어서…….”
“…….”
뭐 어쩌라는 거야.
[민폐가 따로 없군요.]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아가씨구먼.’
두고 갈 수는 없다. 이런 여자라도 유피의 소중한 동생이다. 언데드로 여러 가지 사태를 일으키긴 했지만, 애초에 불순한 목적을 갖고 움직인 것은 아니다. 피해다운 피해가 없는 것도 그녀가 신경 써줬기 때문이겠지.
알베르트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일부러 들으라고 낸 소리에 에르체베트의 얼굴이 붉어졌다. 울먹이는 그녀에게 다가간 알베르트는 그녀의 허리춤을 한 손으로 잡았다.
“어, 어딜 만지는 거야! 아니, 그보다 이런 식으로…….”
“불평할 처지가 아닐 텐데.”
짐처럼 그녀를 옆구리에 낀 알베르트는 무너지는 파편을 피해 달려나갔다.
“빠빠빠빠빨리 뛰어! 이 바보야! 으아. 으아아아!? 아, 앞에 떨어진다. 까, 깔아 뭉개진다고!?”
“시끄럽게 굴면 두고 간다.”
“아, 그러지 마! 아. 앞을 봐! 야, 앞을 보라고! 우아아악!”
바둥거리는 마녀가 시끄럽다. 정말로 짐이 따로 없다.
아슬아슬한 위치에 돌무더기가 떨어졌다. 등 옆으로 떨어진 파편을 본 에르체베트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똑바로 달리라고!? 우아아아악!?”
[여자도 이런 식으로 소리를 지르는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아무 감흥 없다는 듯 천칭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