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7화.시체들의 밤(3) (14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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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들의 밤(3)

“봐. 처음 듣는 말이지?”

“확실히……. 꼭 마족이 쓰는 말 같네.”

“통역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말이야. 이것 참, 곤란하다니까.”

스켈레톤 메이지는 재차 입을 열었다.

「계승자는 아직 멀었는가?」

검을 쥔 모험가들과 계승자를 찾는 언데드.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녀석은 곧 등을 돌렸다. 스켈레톤 메이지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멀어지는 녀석을 보던 두 모험가는 허리춤에서 손을 내렸다.

[마스터.]

‘알고 있네.’

그들이 부르는 계승자는 자신이다.

역시 이 사태의 원인은 천마의 무덤에 있는 것 같다.

중원으로 통하던 마법진이 있던 비밀 통로. 다시 그 객잔으로 향해야 할 것 같다.

도시 안쪽이 소란스럽다.

길드장과 이야기가 된 것일까. 무장한 모험가들이 하나둘 도시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아가씨.”

움직일 시간이다. 알베르트의 목소리에 아리시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구마. 맛있었어. 다음에 우리 저택에 놀러 와. 맛있는 걸 대접해줄게.”

“아직 어린 아가씨가 기특하기도 하네. 그렇지만 됐다. 그런 걸 바라고 준 게 아니니까.”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조용할 때 놀러 와라, 하고 호레인은 손을 흔들었다.

도시에서 나오는 모험가들의 앞에는 이안의 모습이 보였다.

아가씨는 긴장된 기색으로 지나가는 모험들을 보았다. 무언가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녀가 해야 하는 일은 보는 것. 전장이 어떤 장소인지 느끼는 것이다.

도시 밖으로 나온 모험가들은 각기 개성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복장이 일통된 저택의 병사들과는 다르다. 자신의 몸보다 큰 도끼를 등에 진 남자. 허리춤에 서너 개의 검을 찬 남자. 작은 단검과 지팡이를 든 남자. 석궁을 든 이도 있는가 하면, 양손으로 창을 쥔 이도 있다.

“종류 상관없이 머릿수 하나당 동화 두 개랬지?”

“네크로맨서를 잡으면 특별 수당이 있다더군. 빨리 끝내면 백금화를 준다고 하던데?”

“이 난리통 속에서 네크로맨서를 찾으라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군. 주기 싫으면 주기 싫다고 말할 것이지. 색적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가 몇이나 될 것 같은가?”

“그렇지도 않네. 붉은 꽃의 리안나가 있지 않나. 적당히 놀면 아클레이가 알아서 끝내주겠지.”

“현상금 사냥꾼 란돌도 있지. 녀석은 마법 같은 것에 기대지 않고 네크로맨서를 찾아낼 거야.”

“현상금 사냥꾼은 개뿔이. 개코의 란돌이겠지.”

늘어지게 하품을 토해낸 모험가의 손에는 단도가 잡혀 있었다.

장난치듯이 단도를 만지작거리던 놈은 손을 휘둘렀다. 날아간 단도는 다가오던 스켈레톤의 머리를 꿰뚫었다. 썩은 두개골이 그대로 부서졌다. 쓰러진 녀석의 위로 한 줄기의 성수가 떨어졌다.

“성수. 마음대로 써도 상관없음.”

“비용이 장난 아닐 텐데. 루미에르 교단도 제법 통이 크군.”

“신경 쓸 필요 없음. 우리 돈, 아님.”

“우리 마법사는 오늘도 차갑네.”

“네크로맨서. 색적하겠음.”

“그럼 빠르게 끝내볼까.”

문 앞이 전장으로 변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서너 명씩 한 팀을 이루는 모험가들은 순식간에 앞으로 치고 나갔다. 곳곳에서 교전이 행해진다. 연무장에서 행해지는 훈련과는 다르다. 진열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모험가들의 전투를 지켜보는 아리시엘의 눈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아클레이 모험단이군요. 검을 잘 다루는 단장이 있는 모험단입니다.”

“강해?”

“단장만 놓고 본다면 공화국의 기사단과 비슷한 실력의 소유자라고 들었습니다. 검술을 다듬는다면 좀 더 높은 경지까지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화국의 기사단과? 일개 모험가가 그렇게 강해?”

아가씨는 선두에 선 아클레이를 보았다.

성수를 머금은 검은 거침없이 언데드를 베어내고 있었다.

그 뒤를 붉은 머리의 마법사가 따르고 있었다.

“눈썰미가 좋군, 알베르트. 최근 세바스찬 집사장과 같이 있던 것을 보았다만. 모험가들에 대해서는 그때 배운 것인가?”

“그렇습니다, 로엔 경. 라베린 도시에서 유명한 모험단은 대부분 꿰고 있습니다.”

“조금 전 자네는 아클레이의 실력이 공화국의 기사들과 비슷하다고 했지. 그건 들었을 때의 이야기고. 실제로 이렇게 그들을 보는 건 처음이지 않나? 자, 어떤가. 자네의 눈으로 본 아클레이의 능력은.”

알베르트는 아클레이를 보았다.

쉐도우 소드를 다루는 그의 움직임은 가볍기 짝이 없다. 같은 동료의 뒤를 봐주면서 점차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일까. 아클레이 모험단 주변에 모인 모험가들의 수는 적지 않았다.

“제 두 눈으로 공화국의 기사들을 본 게 아니므로 확답을 드릴 순 없겠지만. 아클레이 단장만 놓고 봤을 때. 일반 단원들과는 검을 겨룰만한 실력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러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모험가를 높게 쳐주는군.”

“일부러 다루지 않는 걸지도 모릅니다. 오러를 두르지 않고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으니까요.”

작은 힘으로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다면, 굳이 오러를 다룰 필요는 없다.

오러를 두른 검으로 상대를 베어내든, 오러가 없는 검으로 상대를 베어내든. 어떤 무기를 다룬다고 해도 쓰러뜨린다는 결과는 같으니까.

로엔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즉, 자네의 말은 아클레이가 일부러 오러를 다루지 않는다는 건가.”

“아클레이 모험단의 명성을 생각해봤을 때,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물론 기사들과 비교한다면 오러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건 사실일 겁니다.”

모험가는 기사처럼 체계화된 교육을 받은 게 아니다.

실전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차곡차곡 돌탑을 쌓는 것과 같다. 처음부터 틀을 잡고 만들어가는 기사와는 다르다.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니, 숙련도 면에서는 떨어질 수밖에 없으리라.

“아가씨는 어떻게 보십니까?”

“특이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강한지는 잘 모르겠어. 이 정도쯤이라면 우리 기사들도 다 가능하잖아?”

아가씨는 별로 놀라지 않는다.

그것도 당연하다. 평상시 그녀가 봐온 사람들은 제국 내에서도 최강으로 불리는 사자기사단의 단원이다. 눈에 익은 그들과 모험가를 비교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로엔의 생각은 어때?”

“전체의 힘만 놓고 본다면 기사단과 비교할 전력이 못됩니다. 특히나 정규군과의 전투라면 더 그러하겠죠. 하지만…….”

말꼬리를 흐린 로엔은 교전이 벌어지는 곳을 봤다.

병사들을 통제하는 진열 같은 건 없다. 성수를 두른 무기를 든 모험가들은 거칠 것 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전투가 이렇게 난전으로 돌입하게 된다면 이들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지휘를 받지 못하는 정규군이라면, 이 모험가들을 상대로 승기를 가져오기 힘들 겁니다.”

“정말로? 하지만 기사들에 비할 바는 아니잖아.”

“동료들과 호흡을 맞춘 모험가는 약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이곳에 모인 모험가들은 전력 자체가 다릅니다. 이들이 쌓은 실전 경험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힘이니까요.”

로엔의 말대로다.

모험가들은 서너 명씩 한 조가 되어서 움직이고 있었다. 적과의 경험치가 다르다. 모험가의 움직임이 너무 가볍다. 전방에서 검과 방패를 든 모험가가 이목을 끌고, 뒤에서 창과 검을 든 모험가가 마무리를 짓는다. 후방에서 지원하는 궁수를 비롯해 배후를 노리는 이들도 있다.

사전에 이야기가 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당연한 것처럼 호흡을 맞추며 나아간다. 위기감이 없는 느낌이다.

전장의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리시엘이 입을 열었다.

“냄새가 안 난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 이 전장은 위험하지 않다는 거지?”

“조금 다릅니다, 아가씨. 전장은 어디든지 위험합니다. 그 점을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건, 이곳이 큰 전장이 될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에 가깝겠죠.”

“으음…….”

아클레이 모험단의 뒤를 쫓아간다.

붉은 꽃의 리안나가 안내하고 있기 때문일까. 일행은 언데드가 모인 중심부를 향해 다가갔다. 안쪽에는 스켈레톤과 오크 좀비만 있는 게 아니다. 스켈레톤 나이트. 아처를 비롯해 레이스(Wraith)가 나타났다. 스켈레톤 나이트도 눈에 들어오지만, 그 정도로는 아클레이의 발을 묶을 수 없다.

그들은 곧 문 앞으로 왔던 스켈레톤 메이지와 마주했다.

“네크로맨서는 아니네.”

“녀석이, 여기 통괄.”

“그런가.”

앞서 나온 아클레이를 보고 스켈레톤 메이지는 입을 열었다.

「너는, 계승자가 아니다.」

“뭐라고 하는지 알겠어, 리안나?”

“누군가를, 찾고 있어.”

통역 마법을 활성화하고 있는지, 리안나는 스켈레톤 메이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누구?”

“계승자, 라는 모양이야.”

“계승자? 루드비히 공녀를 말하는 건가?”

아클레이의 반문에 리안나는 뒤를 따라오던 아리시엘을 보았다.

응? 하고 아가씨와 시선이 마주친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계승자는, 공녀를 말하는 게.”

「계승자가 아니라면, 너희에게 용무는 없다.」

볼 일은 그것으로 끝이라는 듯 스켈레톤 메이지는 몸을 돌렸다.

주변을 떠돌고 있던 언데드가 다가온다. 이곳에 모인 언데드 중에서도 가장 강한 개체인 스켈레톤 나이트다. 적은 수가 아니다.

이런 것들에게 시간을 소모하는 건 아깝다. 아클레이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싸울 생각으로 가득하네. 좋아. 리안나. 나는 저 녀석의 마석을 챙겨올게.”

“알았어. 뒤는, 내가.”

“괜찮겠어?”

“걱정, 필요 없음.”

리안나의 지팡이에서 시작된 불길이 지면을 타고 달렸다.

별을 닮은 마법진이 그녀의 발치에서 나타났다. 서클 마법의 발현이다. 술식을 공정한 그녀는 입을 열었다.

“파이어 월(Fire Wall).”

다가오는 스켈레톤 나이트의 발에 닿은 불은 삽시간에 녀석의 몸을 집어삼켰다. 불길 속에서 언데드가 움직인다. 발이 지면을 밟고 거리를 좁힌다. 리안나는 조금 놀란 듯 했지만, 그것뿐이다. 그녀의 마나가 더욱 선명해졌다.

스켈레톤 나이트의 몸이 녹아내린다. 이윽고 재가 되어버린 녀석들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이상을 느낀 스켈레톤 메이지가 시선을 돌렸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안쪽까지 파고 든 아클레이의 쉐도우 소드가 놈의 몸을 갈랐다.

「아, 아직 계승자는…….」

“형편없군. 네크로맨서의 위치는?”

“여기가, 아니야.”

움직이지 않게 된 스켈레톤 메이지로부터 아클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리안나의 손이 앞쪽을 가리켰다. 그 손끝이 향하는 곳은 금지된 숲이다.

“숲 안. 너무 멀어. 그런데도 이들을, 제어했어. 뛰어난 솜씨.”

“숲 안쪽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마탑에서도 탑 클래스 수준의 마법사.”

“…….”

“이 전력으로 들어가는 건, 바보 같은 짓. 무엇보다…….”

아직 주변에는 정리되지 않은 언데드가 많다.

교전은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지만, 함부로 움직이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아직 많아. 백금화 한 장. 수지가 안 맞아.”

“그렇네. 그럼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아클레이는 스켈레톤 메이지의 주검에서 마석을 챙겼다. 거무튀튀한 색이다. 좋은 값을 받기는 힘들겠지. 그래도 아클레이의 안색은 밝았다.

“이거라도 가져가면 꽤 돈을 쳐주지 않을까.”

“일단, 여기 우두머리. 보증 부탁. 괜찮지, 공녀님?”

아클레이와 리안나는 아리시엘을 돌아보았다.

이쪽이 이미 누구인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딱히 숨길 만한 상황은 아니다. 아가씨는 그렇게 판단했는지, 당돌한 마법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리시엘 루드비히의 이름으로 당신들의 공적을 치하하겠어.”

“감사합니다, 공녀님.”

“남은 돈으로. 마법서.”

“알고 있어. 남은 돈으로는 술이나 마셔 볼까.”

“…….”

아클레이와 리안나는 몸을 돌렸다.

이것으로 상황은 일단락이다. 남은 건 이곳을 둘러싼 언데드를 제거하는 것뿐이다.

한쪽에서 언데드가 날아다닌다. 거침없이 언데드 무리를 뚫어내고 있는 것은 갑옷에 문양이 새겨진 기사들이었다. 사자기사단. 아가씨의 명을 받고 출진했던 조나단과 동료 단원들이다.

“어라, 아가씨? 도시로 들어가셨던 게 아닙니까?”

“늦어.”

뚱한 목소리를 낸 아리시엘의 입가는 미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

달빛조차 내려오지 않는 야심한 새벽.

라베린 도시를 둘러싼 언데드를 정리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는 도시에서 빠져나온 알베르트는, 천마의 무덤을 앞에 두고 있었다.

아가씨는 이미 잠든 지 오래다.

손을 들지 않았다고 해도, 처음으로 본 전장이다. 깊은 잠에 빠진 그녀가 새벽에 일어나는 일은 없으리라. 안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네크로맨서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무사히 돌아온 사자기사단이 그녀의 곁에 있었다.

여차할 경우를 대비해 에일린에게도 말해뒀으니 문제는 발생하지 않겠지.

그래, 걱정할 것은 없다.

그렇게 자신을 안심시킨 알베르트는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가실까요, 마스터.]

이곳에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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