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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시체들의 밤(2) (14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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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들의 밤(2)

사자기사단이 출진하고 난 뒤, 아가씨는 라베린 도시로 향했다.

에일린의 두 정령이 주변을 탐색한다. 교전이 일어나는 지역을 피해 앞으로 나아간다.

도시를 포위한 언데드의 움직임은 이상했다.

주변을 지나가는 일행을 보고도 반응하지 않는다. 이안과 로엔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들은 바짝 긴장한 아가씨를 뒤로 한 채, 스켈레톤의 앞으로 다가갔다.

생자가 다가와도 스켈레톤은 손을 들지 않는다. 그저 터벅터벅 걸어갈 뿐이다.

적의를 감지하는 걸까. 이안이 메이스를 들자 녀석은 그제야 반응했다.

녹슨 검이 흔들린다.

느리다. 신성력이 담긴 메이스가 스켈레톤의 머리를 날렸다.

“목적이 있는 것은 확실하군.”

“무언가 다른 명을 받은 것 같습니다.”

단순히 언데드를 풀어놓은 거로는 보이지 않는다.

손을 쓰고 있는 건 소문의 네크로맨서인가.

일행은 언데드를 제거하며 도시 쪽으로 나아갔다.

오크 좀비와 스켈레톤을 상대로 손은 많이 필요하지 않다.

가까이에서 언데드를 본 아가씨의 안색은 밝지 않았다.

시체가 썩어가는 냄새. 그로테스크한 언데드의 외관.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한들, 그 모습은 무엇 하나 어린 소녀가 받아들이기에는 힘들다. 보다 못한 아리시엘이 시선을 돌렸다.

“아가씨.”

“…….”

집사의 목소리에 아가씨는 고개를 들었다.

푸른 두 눈이 불안스럽게 떨리고 있다. 주변에 가득 찬 사자의 냄새는 떨어지지 않는다. 눈을 감고 현실을 외면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깊은 한숨 소리가 났다. 억지로 눈을 뜬다. 두 눈에 힘을 쥔 그녀는 앞을 바라보았다.

“알고 있어.”

검을 들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마주하기를 피해서는 안 된다.

그런 아가씨의 심리를 알고 있기 때문일까. 이안과 로엔은 진로를 방해하는 언데드에 한해서만 손을 썼다. 검을 많이 휘두를 필요도 없다. 하급 언데드는 일합을 버티지 못했다.

검이 오갈수록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렸다.

썩은 살점과 뼛조각이 떨어진다.

눈앞에서 쓰러지는 오크 좀비를 본 아리시엘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부패한 살점에서는 구더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가씨.”

“으, 응!?”

에일린의 목소리에 아리시엘이 반문했다.

“한 번 만져보시겠어요?”

“뭐, 뭘?”

“스켈레톤의 뼈요.”

“…….”

엘프의 손에 들린 건 로엔이 쓰러뜨린 스켈레톤의 뼈다.

아가씨는 알베르트를 보았다. 넘쳐흐르지 않을 뿐이지, 그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쉽사리 손을 뻗지 못하는 아리시엘의 모습에 알베르트가 대신 손을 내밀었다.

“괜찮습니다, 아가씨.”

“정말로?”

“아무 문제 없습니다. 단순한 뼈입니다.”

“…….”

아리시엘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하얀 장갑이 뼈를 만지작거린다. 그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담긴 걸까. 파사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뼈가 부서졌다.

“아.”

“별거 아니죠?”

“언데드라고는 해도 하급 언데드니까요. 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

아리시엘의 곁으로 두 정령이 날아들었다.

정령이 흩뿌리는 가루와 맞닿은 아가씨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빠진 것 같다.

“라베린까지는 얼마나 남았어?”

“10분 내로 도착할 듯 싶습니다.”

로엔의 말이 맞았다.

곧 일행은 큰 교전 없이 라베린 도시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문 앞에서는 밝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모닥불을 피운 일련의 모험가들이 언데드의 시체를 치우고 있었다.

“이것 봐, 호레인. 언데드가 아니라 손님이 왔어.”

“아직 날이 밝으려면 멀었는데. 누가 왔다고? 아무리 그래도 일하는 시간은 지켜줘야지. 그래, 누가 왔어? 나말 용병단이냐? 하여튼 요즘 젊은 놈들은 뭐만 시켰다 하면 농땡이 친다니까…….”

“아니, 애들이 아니라 손님이 왔다니까.”

“뭔 헛소리야. 이 난리통 속에 손님이 왔다고?”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제법 나이가 든 중년 모험가는 다가오는 일행을 보고 허 참, 하고 놀란 목소리를 냈다.

“어지간히 실력에 자신이 있는 분들이구먼. 그리 생각하지 않나, 제빈?”

“검 문양이라니……. 이 사람아. 딱 보면 모르겠는가? 루드비히 가의 사자기사단이네. 거기에 로사리오 표시라니. 루미에르 교단의 성기사도 함께 있군. 이거 보통 손님들이 아니야.”

어설프게 예의를 취하는 제빈과 달리 호레인은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친구의 머리로 손을 옮긴 제빈은 그 고개를 억지로 숙였다.

“라베린 도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기사님들. 한데, 보다시피 상황이 이런지라 제대로 된 대접은 못 해 드릴 것 같습니다.”

“그건 됐네. 언제부터 이랬는지 알 수 있겠는가?”

상황을 설명해달라는 이안의 말에 제빈이 대답했다.

“언데드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이제 반나절은 됐을 겁니다.”

“반나절이나……. 그런데 왜 가만히 있는 건가?”

“대처라면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젊은것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죠.”

“시간 때우기를 잘못 말한 거겠지. 이런 하급 언데드로 만들어진 포위망 따위, 자네들이 진심을 다했다면 진작 정리하고도 남았을 사태다.”

“너무 그러지 마쇼, 성기사 양반. 공격받은 것도 아니고. 저놈들도 대충 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어른의 대처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억지로 어울려줄 의리도 없고 말입니다.”

대답을 받은 건 호레인이었다.

모닥불 안쪽에서 고구마를 꺼낸다. 맛있는 냄새가 퍼졌다. 앉아 있던 자리에 고구마를 올린 그는 말을 이었다.

“나리들은 어떨련지 모르겠지만, 돈도 안 되는 일에 우리가 발 벗고 나설 이유는 없습니다.”

“길드장과는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다. 언질을 못 들은 건가?”

“언질? 그러고 보니 찰스가 무언가 말한 것 같긴 한데…….”

“그건 로나프 선술집의 야간 메뉴가 일주일 동안 맥줏값을 싸게 준다고 한 이야기네.”

“아, 그랬지. 자네 기억력도 좋군. 그럼 이 일이 끝나면 한잔하러 갈 텐가?”

“물론이지. 돈은 자네가 내게.”

“외상값으로 하되, 자네 이름으로 달아놓지.”

이야기가 딴 길로 샌다. 이안은 대화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그래서 이야기가 있었던 건가, 없었던 건가?”

“우리에게는 딱히 움직임을 취하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보수 이야기도 없었고요. 그러니 산발적인 교전만 일어나고 있죠.”

“뭐하면 나리들이 돈을 줄 겁니까? 그럼 즐겁게 움직여줄 친구들이 좀 있을 겁니다.”

그럴 리가 없겠지. 두 모험가는 킥킥거리면서 웃었다.

“길드장은 안에 있는가?”

“물론이죠. 길을 따라서 쭉 들어가시면 커다란 건물이 나올 겁니다. 모험가 문양이 있는 3층 건물이니, 찾기 쉬우실 겁니다.”

“알겠네.”

이안은 아리시엘을 돌아보았다.

아가씨가 허락하자 그는 도시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리시엘은 도시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녀는 고구마를 먹기 시작한 호레인에게 물었다.

“아까 공격받은 게 아니라고 했지?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어?”

“응? 꼬마 아가씨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안 그래도 흉흉한 지금 여기까지 온다고 고생했으니, 앉아서 고구마나 먹으려무나. 귀엽게 생겼으니 특별히 하나 주마.”

“호레인.”

“왜 그러는가? 아, 그렇지. 자네 것도 있다네 자. 사이 좋게 먹게.”

“그게 아니라…….”

“좋아. 진상하는 물건이라면 기쁘게 받을게.”

김이 나는 고구마를 향해 아가씨는 손을 내밀었다.

하얀 장갑에 검은 재가 묻는다. 아리시엘은 신경 쓰지 않았다. 고구마를 받은 그녀는 짚 위에 앉았다. 약간 놀란 눈으로 아가씨를 바라보던 로엔은 조심스레 두 모험가를 살펴보았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라.”

“응.”

조심스레 껍질을 벗긴 아가씨는 고구마를 한 입 베어먹었다.

입안에서 퍼지는 단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소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맛있지?”

“맛있네.”

코에 재가 묻은 건지도 모르는지, 아가씨는 계속해서 고구마를 입으로 가져갔다.

귀족답지 않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호레인은 호탕하게 웃었다.

“제법 마음에 드는 아가씨군! 그래, 그렇게 먹어야지.”

“…….”

알베르트는 아가씨의 코에 묻은 재를 닦아냈다.

여유분의 손수건을 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다 드시고 나면 입가를 닦으시리라.

소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눈치를 살피던 제빈이 입을 열었다.

“이 언데드는 말입니다. 며칠 전부터 도시 바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밤이 되면 도시 주변을 배회하고, 새벽이 되면 숲으로 돌아갑니다.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피해는 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수가 많은 건 오늘 처음 보지만 말이죠.”

“동태가 수상한 언데드라는 거네. 네크로맨서는 봤어?”

“네크로맨서? 아아, 그 소문 말이군요. 스켈레톤 메이지는 봤지만, 네크로맨서는 못 봤습니다”

“대신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언데드가 있지.”

“그게 무슨 말이야? 말하는 언데드가 찾아온다는 거야?”

“그럼. 문 앞까지 와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지. 구시렁구시렁. 발음도 어눌해서 뭐라고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원.”

아리시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반응에 호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도 들어보면 이해할 거야. 아무리 내가 무식하다지만, 그건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말이 아니라 그냥 소리일지도 모르네.”

“그런가? 하지만 붉은 꽃의 리안나가 그랬네.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언어 같다고 말이야.”

“마탑 출신의 리안나 말인가……. 그렇군. 그 과묵한 여자가 그랬다면 사실일지도 모르겠어.”

모험가들은 다시 자신들만의 세상에 빠졌다. 뭔가 자기들만이 아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로엔이 아가씨에게 물었다.

“이만 도시로 들어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로엔은 들어가도 돼. 난 좀 더 보고 있을게.”

“이 광경을 말입니까?”

“응, 전장을 보는 게 오늘 내 역할이니까.”

상황을 추이 하고 싶다는 아가씨의 의향에 로엔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저 보는 것뿐이라면 이미 충분했다. 굳이 이 자리를 더 지키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말괄량이로만 보이던 아가씨와는 다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앞을 바라보는 공녀의 모습에 그는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아가씨의 곁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믿고 있을게요, 로엔 경.”

“기대를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응.”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호레인이 입을 열었다.

“어느 집 아가씨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당차구먼. 루드비히 가의 공녀님도 금발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뭐…….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쪽 아가씨는 꽤 말괄량이라고 들었거든.”

“말괄량이?”

“공녀님이 클레멘트 도시로 시찰을 나오면 꽤 소란스럽다고 들었지. 호위도 호위지만, 상인들이 비위를 맞추려고 이것저것 다 준다고 하더군. 참 세상 살기 힘들지. 우리 모험가들이야 어느 정도 독립을 인정받지만, 영지민들은 다르니까 말이야. 아직 아가씨는 어려서 잘 모르려나.”

“…….”

기분 좋게 웃는 호레인과 달리 제빈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로엔과 아리시엘의 얼굴이 굳는 걸 본 그는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처음 보는 전장은 어떻습니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누가 처음이라는 거야.”

“그야 당연히 아가씨지. 우리 눈을 속일 수는 없어. 이래 보여도 일평생을 전장에서 지내온 몸이니까. 다른 건 몰라도 보는 눈은 있다고 자부해.”

“그러니까 나는…….”

“괜찮아, 아가씨. 그건 부끄러워할 게 아니야. 처음이라면 일단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중요한 걸 놓치기 마련이야.”

조금 화가 난 듯한 아리시엘을 보며 두 모험가는 말을 이었다.

“거기에 첫 전장으로 이런 전장을 보는 건 다시 없을 기회지. 노렸을 리는 없을 테고. 아가씨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야.”

“이 친구 말이 좀 그래서 그렇지. 그 말이 맞습니다. 냄새가 나지 않는 전장이라는 건, 원해서 만날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요.”

아리시엘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냄새는 조금 옅어졌지만, 여전히 이곳은 언데드의 냄새가 가득했다.

“아직 어린 아가씨는 모르려나.”

“잘 보세요. 무언가 느껴지는 게 있을 겁니다.”

“귀한 신분의 아가씨라도 앞으로 전장에 나설 일은 있겠지. 이 아저씨가 보장하지. 두 눈에 힘을 주고 잘 보라고. 이 경험은 아가씨의 뼈와 살이 될 테니까.”

암, 그렇고말고. 고개를 끄덕이는 호레인을 보며 아리시엘은 표정을 구겼다.

그녀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를 내려는 찰나 문 앞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있었다.

호레인과 제빈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반사적으로 반응한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누더기 같은 로브를 입은 언데드였다. 스켈레톤메이지다. 낡은 지팡이를 든 언데드는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입이 천천히 열렸다.

「계승자는 어디에 있는가.」

에일린의 몸이 떨렸다.

어눌한 그 목소리는, 분명 마족의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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