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시체들의 밤(1)
알베르트는 투레질하는 말을 달랬다.
익숙하지 않은 길로 나온 탓일까, 마차를 끄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고삐를 바로 쥔다. 자칫 잘못해서 다른 길로 빠져나가면 곤란하다. 라베린 도시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루드비히 저택을 나온 지도 벌써 2시간이 넘어간다.
알베르트는 청량한 가을 공기를 맞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차를 호위하고 있는 것은 사자기사단이다.
단원의 수는 몇 되지 않는다. 선발대로 먼저 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출발한 단원이 7명. 이곳에 남은 단원은, 성기사인 이안과 로엔을 포함해 5명이다. 네크로맨서 사태를 확인하기 위해 파견된 것은 기사뿐이다. 이례적으로 휘하 사병은 없었다.
“그런가. 자네 말대로라면 위험한 상황과 맞닥뜨릴 일은 없겠군.”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오크 좀비나 스켈레톤은 분명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수는 적지 않습니다. 거기에 하급 언데드를 제어하는 데스 나이트가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죠.”
“모험가들 있으니 전력이라면 충분하네. 무엇보다 아가씨의 첫 출진이지 않나. 단원들도 이만큼이나 모여있고 걱정할 필요는 없네. ”
“공작 각하께도 말씀드렸지만. 아가씨는 아직 어립니다.”
“평범한 귀족의 여식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아가씨는 루드비히 가문의 후계자일세. 기준의 척도가 다르지. 오히려 나는 늦었다고 생각하네. 단장님이 처음으로 전장에 나갔던 것은 10살 때의 일이네. 식객으로 지냈던 자네라면 충분히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러니 아가씨의 동행을 받아들인 거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 외인인 제가 꺼낼 말은 아니죠.”
“섭섭한 소리를 하는군. 우리 저택에서 자네를 외인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다네.”
알베르트는 성기사 이안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로엔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성수는 충분합니까?”
“술 파티를 열어도 될 정도다. 설령 언데드 대군과 맞붙는 일이 있다 해도 성수가 떨어지는 일은 없겠지. 여차하면 자네의 신성력도 있으니 기대하겠네.”
“저는 신관이 아니라 성기사입니다.”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도 급급하다. 누군가를 지원해줄 만큼 강한 신성력은 없다.
만약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었다면 그는 성기사가 아니라 신관의 길을 걷고 있었으리라.
“약한 소리는 그만두게. 그대는 이제 식객이 아니라 성기사 이안 경이네. 투정을 부리는 건 그때로 충분하지 않은가?”
“알고 있습니다, 로엔 경.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그래야 루미에르 교의 성기사지. 믿고 있네, 이안 경.”
이안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조나단이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잔을 건넸다.
“아, 저는 술은 조금…….”
“알고 있네. 이안 꼬맹이에게는 음료가 어울리지.”
“내 것도 음료인가?”
“그럴 리가 있겠나. 에일(Ale)이네.”
조나단은 고지식한 청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치 나들이라도 나가는 것처럼 기사들의 모습에서는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럴 것이 여기에 모인 기사들은 하나 같이 역전의 용사들이다.
제국 내에서도 최강으로 칭송받는 사자기사단.
그 괴물 같은 마족과 싸우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기사들이다. 하급 언데드를 부리는 네크로맨서 따위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실전 경험만 놓고 본다면, 세인트 월을 지키는 북부의 병사들을 제외하고는 이름조차 내밀지 못하리라.
요컨대 네크로맨서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라지만, 이만큼이나 되는 기사가 움직일 필요는 없다. 믿을 수 있는 기사 한 명과 휘하의 사병을 파견하면 끝날 일이다.
로엔은 찬물을 마시는 젊은 성기사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자신을 포함해서 열 명이나 되는 사자기사단이 출진한 것.
평소의 단장님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다.
하나뿐인 자식에게는 서투른 아버지인가. 설마 그 단장님에게 이런 약점이 생길 줄은 몰랐다. 표현은 안 해도 하나뿐인 딸아이에게는 한없이 약한 사람이다.
잔에서 올라오는 술 냄새를 맡아 본다. 좋은 술은 아니다. 하지만 불평이 나올 정도로 안 좋은 술도 아니다. 잔을 입으로 가져간 로엔은 마차를 돌아보았다.
마차의 고삐를 쥐고 있는 건 아가씨의 집사인 알베르트다.
그 곁으로는 푸른 머리가 인상적인 엘프 여인이 나와 있었다.
“힘들지는 않아?”
에일린의 물음에 알베르트는 대답했다.
“이 정도로 힘들다는 소리는 못 하지.”
“힘들면 바꿔주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겠네.”
“교대가 필요하면 따로 말할게.”
“그때 가면 들어주기 싫을 것 같은데.”
노을이 진 하늘은 붉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이 속도라면 라베린 도시에 도착하고 나면 한밤중이 될 것 같다. 곁에서 장난을 치기 시작한 두 정령을 보며 알베르트는 물었다.
“아가씨는?”
“꽤 긴장한 상태야.”
“역시 그런가.”
생각지도 못한 첫 출진이다.
알베르트의 고향이자 모험가들의 도시, 라베린. 몇 달 전에 방문했던 장소를 이런 식으로 다시 찾아가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 선에서 확실하게 끊어놓을 걸 그랬어.”
“어비스 나이트라면 제압했다고 하지 않았어?”
“마석을 설치해둔 범인은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그걸 갖다 놓은 게 네크로맨서라는 거지.”
“아마 그럴 확률이 높겠지.”
억지로라도 무덤 안쪽까지 들어가는 편이 나았으려나.
아니, 주변에 모험가들이 없었다면 모를까. 그 상황에서는 조사에 임할 수 없었다.
“여기는 내가 맡고 있을게.”
마차는 자신이 몰겠다는 듯 에일린이 손을 들었다.
그녀의 배려를 받아들인다. 고삐를 넘긴 알베르트는 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마차 내부는 찬란한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아가씨는 평소에 즐겨 입는 드레스 차림이 아니었다. 검술 연습을 할 때 입었던 가벼운 옷차림이다. 단장 하나 하지 않은 얼굴과 한 갈래로 묶은 머리. 아리시엘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아가씨.”
“아.”
인기척을 내자 아가씨는 그제야 알베르트를 돌아보았다.
“에일린이랑 교대한 거야?”
“그렇습니다. 몸은 좀 어떠신지요?”
“엉덩이가 조금 아프긴 하지만, 괜찮아.”
잘 보면 그녀가 앉은 자리에는 화려한 방석이 있었다.
저택에 나서기 전 노아가 맡긴 물건이다. 아가씨는 필요 없다면서 한사코 거절한 탓에 결국, 알베르트가 챙겨온 방석이다. 부자연스럽게 굳은 아가씨를 보고 있던 알베르트는 무한의 꾸러미를 꺼냈다.
“차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여기서? 찻잎도 그렇고, 아무것도 없는데.”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꾸러미에서 준비해둔 찻주전자와 찻잔을 꺼낸다.
유피에게 받은 도구들은 아직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마차 안쪽은 곧 진한 홍차 향으로 가득 찼다. 유피가 마시는 홍차와는 타는 방법이 조금 다르다. 아가씨가 좋아하는 홍차는 달달한 향이 좀 더 강하다. 이쪽이 아직 어린 그녀의 입맛에 맞았다.
“신비한 마도구네.”
“선물로 받은 물건치고는 귀한 마도구입니다.”
“누구에게 받은 거야?”
“유피입니다.”
아리시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피? 유피라면 알베르트가 좋아하는 그 여자 말이지?”
“맞습니다.”
“언젠가 나도 볼 수 있을까?”
“물론이죠. 기회가 된다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물론 그녀와 만나고 난 이후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아가씨와 유피의 만남이라.
어떤 의미로든 매우 즐거운 만남이 되리라. 알베르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다과와 차를 비운 뒤. 아리시엘은 입을 열었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아가씨라면 당연히 잘 해내실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이 듣고 싶은 게 아니야.”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아가씨는 혼자가 아니니까요. 이안 경과 로엔 경도 있습니다. 두 분이 함께 있는 이상, 아가씨가 검을 뽑을 일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알베르트의 위로에도 아리시엘의 안색은 어두웠다.
주변에서 바라는 자신의 책무가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녀의 나이는 12살이다. 기대에 응하고 싶지만, 경험이 없는 만큼 자신감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내가 여기까지 나온 이유가 없잖아.”
“직접 싸우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은걸. 분명 아버님은 그럴 생각으로 날 보낸 거야.”
“주인님께서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전을 바라고 보낸 것이 아니다.
하나뿐인 딸아이를 전장으로 보낸 것은, 분명 두 눈으로 보고 오라는 의미가 강할 것이다.
무엇이 전장인지.
전장에 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장차 가문을 이끌 아가씨의 그릇이 보고 싶다는 의미겠지.
“첫 출진에서 너무 많은 걸 해내려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알베르트도 내가 못한다고 생각하는구나.”
“아뇨. 아가씨라면 충분히 하실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그 이후를 걱정하는 겁니다.”
“이후?”
아리시엘의 반문에 알베르트는 대답했다.
“전장은 아가씨의 생각보다 더 무서운 곳입니다. 인간의 정념이 몰아치는 장소라는 건, 정말로 끔찍한 곳이죠. 무엇을 보게 되든 아가씨는 충격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언데드를 부리는 네크로맨서와 싸우는 것이니. 일반적인 전쟁과는 다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직 어린 아가씨가 느끼기에는 자극이 심할 것이다.
죽음에서 돌아온 사자의 모습은, 어느 누가 봐도 혐오스러운 거니까.
“이번에는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전장을 보고 나시면, 눈앞에 비치는 광경이 다르게 보이실 겁니다.
“알았어.”
아리시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개운해졌다는 듯 그녀는 입을 열었다.
“알베르트는 신비한 사람이네.”
“그럴 리가요. 저 같은 건 아가씨의 발밑조차 따라가지 못합니다.”
“넌 항상 자신을 낮추더라. 가능하면 그런 말은 줄여. 내 집사는 변변찮은 남자가 아니니까.”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혹시 기분 나쁘셨습니까?”
얼굴을 찌푸린 아가씨는 말을 이었다.
“바보. 지금은 칭찬한 거야. 좀 더 자랑스럽게 받아들여.”
“알겠습니다, 아가씨.”
마차의 속도가 느려졌다.
노크 소리와 함께 로엔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로엔입니다. 괜찮으시면 바깥으로 나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알았어”
이윽고 마음을 다잡은 아리시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알.”
무심코 알베르트는 아가씨를 보았다.
빤히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게 된다. 그것이 실례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막을 수 없었다. 집사의 시선을 받은 아가씨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피한다.
“따르겠습니다, 아가씨.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따라올 필요는 없어.”
툴툴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수줍은 느낌이 가득했다.
*&*
어느새 해가 떨어졌는지 바깥의 풍경은 어둡기 짝이 없었다.
어둠 너머에서 라베린 도시가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주변을 덮은 짙은 기운은 사람이 풍기는 인기척이 아니다. 알베르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드넓은 평원에는 언데드와 모험가들이 뒤섞여 있었다.
[언데드군요.]
‘수가 꽤 많네.’
기사들은 앞쪽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안과 선발대로 나섰던 기사들도 모두 자리에 있다. 마차에서 나온 아가씨를 확인한 기사들이 다가왔다.
“아가씨, 라베린 도시가 포위당했습니다.”
“포위?”
“네크로맨서가 움직인 모양입니다. 이미 도시 앞은 전쟁터나 다름없습니다.”
“그럼 위험한 거 아니야? 어서 도와주러 가야 하지 않겠어?”
당황한 아가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로엔을 비롯한 기사들의 표정은 꺼림칙했다.
“그렇지는 않겠죠.”
“그렇지 않아?”
“아가씨도 알고 계시겠지만, 라베린 도시는 모험가들이 모여 세운 도시입니다.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공작령의 사병도 최소한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병사밖에 없죠.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음……. 모험가들 때문에?”
“맞습니다, 아가씨.”
로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 내에서도 뛰어난 솜씨를 가진 모험가들은 전부 모여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 단원들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중에는 역전의 용병들도 모여있죠. 마음만 먹는다면 하급 언데드로 만들어진 포위망 정도는 가볍게 뚫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왜 포위망을 내버려 두는 거야?”
“돈이 안 되니까요.”
“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아리시엘이 반문했다.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로엔과 시선이 마주친 알베르트가 설명을 이었다.
“아가씨. 언데드를 완벽하게 제압하려면 적든 많든, 성수가 필요합니다.”
“부정한 마나가 모이는 장소에서는 언데드가 나타난다. 이를 정화하기 위해서는 마법 행사나 신성력이 필요하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그렇습니다. 공작령 내에서 성수는 구하기 쉽지만.”
“그 비용을 내는 건 다 개인이라는 겁니다. 주인님이 건 보상금으로도 감당이 안 될 만큼의 돈이 든다는 말이죠.”
“그게 뭐야. 결국, 돈 때문에 이 사태가 되도록 내버려 뒀다는 말이야?”
설명을 들은 아가씨는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볼을 부풀렸다.
“그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죠. 사람은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특히나 일당으로 먹고사는 모험가들에게는 말입니다.”
“그럼 구해주지 말자.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해.”
“아가씨.”
“알고 있어.”
그런 억지를 부릴 수는 없다.
라베린 도시는 엄연히 루드비히 공작령에 포함된 마을이다.
그렇기에 아리시엘의 얼굴에는 짜증이 어려있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사전 이야기가 되어 있습니다. 이미 곳곳에서 교전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빈말로라도 적극적이다고는 할 수 없지만요. 일단 지휘권을 받아올 필요가 있습니다. 그 건은 성기사인 이안 경에게 부탁하고 싶네요.”
“알겠습니다. 라베린 도시의 길드장과는 면식이 있습니다.”
“안쪽과는 어떻게 이야기할 생각이야? 우리는 마법사가 없잖아.”
“포위망을 돌파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아가씨는 전장을 바라보았다.
스멀스멀한 기운이 가득한 그곳은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다. 귀를 기울여보면 언데드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간혹 병장기가 부딪치거나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분명 기분 탓은 아니리라.
“차라리 이 혼란을 이용해서, 네크로맨서를 노리는 건 어때?”
아가씨가 던진 말에 조나단이 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좋은 제안이군요, 아가씨. 오늘 들은 말 중 최고입니다.”
“조나단. 우리 단원들만으로 놈을 노리기에는 수가 너무 적네.”
“머릿수라면 충분하죠. 널린 게 사람입니다. 보수만 두둑하게 안겨준다면 흔쾌히 따라올 겁니다. 물론 이 경우에는 아가씨의 허락이 필요하겠죠.”
모험가는 그냥 움직여주지 않는다. 비용을 감당하는 건 루드비히 가다.
“조나단 경. 저도 이안 경과 같은 생각입니다. 선조치 후보고라고는 하지만, 이 상황에서 모험가를 바로 고용하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최소한 제가 길드장과 이야기를 나눌 때까지만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꼬맹이는 시간이 흘러도 똑같구먼. 이런 일은 말이지. 적진에 침투해서 수장의 목을 따오면 순식간에 끝나는 법이라고. 피해를 더 낼 필요도 없고, 후딱 마무리 짓는 거지. 고금동서를 통틀어서 이보다 더 좋은 해결 방법은 없어. 아니면 피해가 날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리고 있으란 말인가? 그거야말로 어떤가 싶은데.”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절차를…….”
“지금은 절차를 지킬 때가 아니야. 이런 제멋대로인 모험가들도. 일단은 우리 영지민이거든. 이들을 위해 검을 드는 것이야말로 우리들의 역할이니까. 그게 기사라는 거야, 이안 경.”
“그만하면 됐어. 네 뜻은 잘 알겠어. 할 수 있겠어, 조나단?”
아가씨의 물음에 조나단은 무릎을 꿇었다.
예를 갖춘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아가씨. 지금 당장 건방진 우환거리를 제거하겠습니다.”
“좋은 대답입니다, 조나단 경. 작은 검을 이끄는 자, 아리시엘 루드비히의 이름으로 명합니다. 감히 분수도 모르고 우리 땅에 침범한 침입자를. 이 언데드를 사역하고 있는 네크로맨서를 제거하세요.”
“사자기사단의 조나단 이레프. 작은 검의 명을 받듭니다.”
조나단을 비롯한 기사들이 아가씨의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