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성기사와 점쟁이(1) (143/200)

 # 143

성기사와 점쟁이(1)

두 시녀는 루드비히 저택을 방문한 손님을 안내하고 있었다.

손님의 가슴에서 교단의 상징과도 같은 로사리오가 흔들렸다. 루미에르 교에서 내려온 귀한 사람이다. 그녀들은 실례를 범하는 일 없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안은 그런 시녀를 살펴보고 있었다.

똑같은 얼굴을 한 쌍둥이 자매다.

밤색 머리를 왼쪽으로 올린 쪽이 언니인 루인이고, 오른쪽으로 올린 것은 동생인 마린이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말수가 적은 언니와 달리 동생은 수다쟁이였다.

기억을 더듬는 성기사를 향해 루인이 말했다.

“주인님은 연무장에 계십니다. 괜찮으시다면 수련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응접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니. 그건 예의가 아니겠지. 연무장에 가서 뵙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두 시녀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연무장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사자기사단이 훈련하는 연무장은 저택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앞서나가는 두 시녀의 뒤를 따라 이안은 발을 옮겼다.

말없이 걷는 것도 그렇다. 마린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수도는 어떠셨나요?”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지.”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붙임성 있는 동생 쪽이다. 그녀는 실망하는 기색 없이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돌아가셨는데, 회포는 전부 푸셨나요? 저희 이야기긴 하지만, 언니랑 저는 집에 돌아가면 한동안은 바깥으로 나오질 않거든요. 그렇잖아요. 고향에 돌아가면 먹을 것도 먹을 거지만, 사람들도 만나러 다녀야 하고. 또…….”

재잘대는 마린의 목소리에 이안은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사적으로 찾아온 자리가 아니다. 자신은 루미에르 교단을 대표해서 찾아온 것이다.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마린.”

“죄송합니다.”

결국, 루인이 말 많은 동생의 입을 단속했다.

세 사람은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연무장을 앞에 둔 채 그는 발을 멈췄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두 사람이다. 연미복 차림을 한 남자와 찬란한 금빛이 시선을 사로잡는 소녀였다. 소녀 측은 이안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남자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가씨와 알베르트 라나입니다.”

“알베르트?”

이안의 시선을 느낀 루인이 말했다.

“네. 아마 이안 경도 아실 거로 생각합니다. 10년 전에 있었던 집사 시험에서 행방불명 되었던 견습 집사입니다.”

“그 무덤의 주인공인가. 이거 놀랍군. 살아 있었던 건가? 금지된 숲에서.”

“그렇습니다. 금지된 숲에 엘프들의 거처가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그곳에서 보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엘프에게서 검을 배운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실력이 대단해서, 최근에는 아가씨의 검을 봐주고 있을 정도입니다.”

평화로운 광경이다.

웃음기 하나 없는 아가씨는 나름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고 있는 듯 싶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집사의 얼굴은 딸아이를 보는 것처럼 따스했다.

“아직입니다, 아가씨. 그저 막 휘두르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렇죠. 아가씨는 검을 다루는 게 아니라, 검에 끌려다니고 있을 뿐입니다.”

“으, 알베르트의 말은 어려워.”

그러나 그것뿐이다.

곧 흥미를 잃은 그는 연무장으로 들어갔다.

*&*

연무장의 훈련은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늘 밑에서 햇빛을 피하고 있던 이안은 땀을 닦으며 다가오는 라시엘 공작을 볼 수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기 무섭게 그는 고개를 숙였다. 이안을 맞이한 라시엘 공작은 여유가 넘치는 표정이었다. 40대 중반에 들어선 그 얼굴에는 주름 한 점 보이지 않는다.

제국에서도 네 명 밖에 안 되는 소드 마스터 중 한 명.

제국의 수호자로 불리는 루드비히 가문의 현 가주.

라시엘 루드비히.

기사의 정점에 선 남자다. 미카엘라 단장과는 또 다른 압박감이 느껴진다.

커다란 벽과 마주한 느낌에 이안은 마른 침을 삼켰다.

“루미에르 교단의 성기사 이안 란스터. 제국의 검을 쥔 귀인, 라시엘 루드비히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흠. 오랜만이군, 이안 경.”

곁에 다가온 집사장에게 수건을 넘긴 라시엘 공작은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얼굴을 보는 건 5년 만의 일인가?”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눈을 감으면 어제 있었던 일처럼 훤한 데 말입니다.”

이안은 루드비히 저택에서 식객으로 지냈던 일을 떠올렸다.

라시엘 공작이 직접 검을 사사해준 기억은 없다. 하지만 사자기사단의 기사들은 이안에게 검을 잡는 자세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곤 했다. 제국 내에서도 최강으로 칭송받는 사자기사단이다. 그들이 내린 가르침은 지금도 이안의 검술에 어려있었다.

“예를 갖추는 건 좋지만, 자네는 여전히 융통성이 떨어지는군. 오늘도 그렇지 않나. 집무실에서 따뜻한 차나 마시면서 기다렸으면 서로 이야기하기 편했을 텐데 말이지.”

“죄송합니다, 공작 각하. 차후에는 숙지해두겠습니다.”

“괜찮네. 그건 어디까지나 공적인 이야기네. 사적으로는 고맙지. 훈련도 다 끝난 참이니. 이제 날이 저물 때까지 지겨운 집무를 봐야 했거든. 자네가 와줬으니 서류 지옥은 피할 수 있을 거야.”

“공작 각하가 바쁠수록 아랫사람들의 삶은 풍족해지기 마련이죠. 영지민들이 얼굴이 밝아 보였던 것은 제 착각이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수도에 다녀오더니 입에 꿀을 발랐구먼. 무언가 맛있는 거라도 잔뜩 먹은 모양이야. 안 그런가, 세바스찬?”

집사장의 손길은 유려하다. 호를 그리듯이 떨어진 차는 잔을 채웠다.

“확실히 이안 경의 얼굴이 밝아진 것 같습니다.”

“집사장님도 여전하시군요.”

라시엘 공작의 그림자 같은 남자. 이 사람에게는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많은 신세를 졌다.

“다음에 또 시간이 된다면 낚시라도 같이 가지 않겠습니까?”

“푸르멜 호수 말씀이군요.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랜 추억을 떠올린 세바스찬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낚싯대를 기울이면서 먹는 술은 각별하죠.”

“갓 잡은 물고기와 함께 먹는다면 그 맛은 더 특별합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그때 잡은 물고기는 상당히 작았던 것 같습니다만.”

“월척은 아니었지만, 맛있었지 않았습니까?”

한 손바닥 안에 들어오던 송사리였다. 크기까지 기억하고 있을지는 몰랐다.

이안이 멋쩍은 표정을 짓자, 세바스찬은 웃었다.

“저택은 여전하군요. 어디를 둘러봐도 녹음이 가득하고, 바람에는 생기가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기분 탓이 아니라면, 마기도 많이 줄어든 느낌입니다.”

“마족이 옆에 있는 이 땅을 그렇게 여겨주는 건 자네뿐이네.”

“유유자적하게 살 수 있는 곳입니다.”

“과연 마족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구먼. 녀석들의 눈에는 탐스러운 영지로 보일 테니 말이야.”

차로 입을 적신 라시엘 공작은 두 손을 모았다.

“그래, 소식은 들었네. 자네의 눈으로 보고 온 던전은 어땠는가. 평소에는 모험가들에게 맡기고 있는지라, 나도 그곳에 대해서는 잘 아는 것이 없다네.”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이안은 알고 있었다.

공작령 내에서 도는 이야기는 모두 라시엘 공작에게 흘러 들어간다. 그 눈과 귀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 그림자와 같은 집사장이다. 이안은 그를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세바스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과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안은 말을 골랐다.

이것은 그저 확인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혹은 시험이라고 해도 좋겠지.

과연 그가 이 건에 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어디까지 보고 왔는지, 라시엘 공작은 그 사실이 알고 싶은 것 같다.

“라베린 도시 근처에 있는 던전은 마족이 남긴 고대 유적지더군요. 특이한 점이 있다면 마물이 아니라 언데드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전에는 길을 잃은 마물들이 발견되었다는 모양이지만, 이제는 언데드 외에는 나타나지 않더군요. 제가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소문으로 들었던 네크로맨서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지. 데스 나이트와 마주했습니다.”

“데스 나이트라. 그렇군. 데스 나이트라면 하위 언데드를 부리는 것이 가능했지.”

“일단 저와 마주한 녀석은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여전히 던전 내에서는 언데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길을 잃은 언데드가 도시 쪽까지 올라온다는 말을 보았을 때, 아무래도 네크로맨서가 있다는 이야기는 사실로 보입니다.”

“소재는 파악했는가?”

“저는 능력이 부족해서 알 수 없었지만, 공작 각하께서 마음만 먹으면 금방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은 이미 파악했는지도 모른다.

이안의 시선을 느낀 라시엘 공작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모험가들의 수준은 어떠했는가. 일개 모험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단하지 않던가? 수도의 늙은이들은 모르겠지만, 라베린 도시에 모인 모험가들은 실력이 대단하거든. 여차하면 전력으로 삼을 수 있을 걸세. 용병이 많으면 앞으로 있을 전쟁에서도 큰 도움이 되겠지.”

“마족과의 전쟁 말씀입니까? 각하께서는 어디까지 보고 계신 겁니까?”

“우리의 적은 비단 마족만이 아니지. 그건 나보다 자네가 더 잘 알 거로 생각하네.”

“…….”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말은 루미에르 교단을 대표한다. 이곳에서 허투루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라베린 도시는 모험가들의 자치에 맡기고 있지. 너무 큰 간섭은 좋아하지 않을 걸세. 하지만 여신님의 말을 대변하는 자네의 방문을 거절하지는 않을 걸세. 허니, 사자기사단의 단원을 10명 내주겠네. 전력은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자네의 마음이 내킬 때까지 이 사태를 조사해보게.”

“열 명씩이나……. 공작 각하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제국 내에서도 사자기사단의 기사들은 굴지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

네크로맨서를 퇴치하기에는 차고도 남는 전력이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이안을 능가하는 기사다. 네크로맨서의 실력이 변변치 않다면 기사 개개인이 숨통을 끊어내는 것도 가능하리라.

“교단에 대한 성의는 충분히 보였다고 생각하네. 이제 내 조건을 말하지.”

“경청하겠습니다.”

라시엘 공작의 시선이 이안의 뒤로 향한다.

연무장 바깥을 넌지시 바라보던 그는 입을 열었다.

“아리시엘을 데리고 가게.”

“…….”

순간 말문이 막힌 이안은 라시엘 공작을 바라보았다.

이것도 일종의 시험인가? 하지만 이어서 나온 말은 그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나는 그 아이가 전장의 냄새를 맡아봤으면 하네. 언제까지고 우리가 품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슬슬 그 아이의 그릇을 봤으면 하네.”

“네크로맨서와 마주한다면 작든 크든, 전장과 마주하게 될 겁니다. 언데드가 사람을 납치한다는 소문까지 있는 걸 봤을 때, 난전이 벌어지게 된다면 아가씨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 점이라면 로엔을 보낼 생각이니, 걱정하지 말게.”

“로엔 경 말씀입니까.”

사자기사단의 부단장.

쾌검으로 이름 높은 그 남자가 함께한다면 아가씨의 안전은 걱정할 필요 없다.

이안은 로엔의 검을 기억했다.

진심으로 다루는 그의 검을 이안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무언가 벌어지고 나면 늦는다. 그 속도. 자신은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만약 제국에서 6번째 소드 마스터가 나타난다면 그건 로엔일 확률이 높으리라.

“공작 각하.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성기사 이안이 아니라 식객 이안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딱딱한 말을 올릴 생각인가 보군. 그래, 성기사가 아니라 식객으로 올리는 말이라면 내 거절할 수는 없지. 어디 한번 말해보게나.”

라시엘 공작의 허락을 받은 이안은 입을 열었다.

“아가씨는 아직 어립니다.”

“12살이면 전장을 겪을 만한 나이지. 북부의 소년병들은 그보다 더 어린 나이에 전장으로 향한다네. 단지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 캘러미티와 싸우기 위해서 말이지.”

잔인한 야만인들과의 싸움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곁을 지키는 기사들의 수도 충분하다. 요람 속의 아이가 바깥 공기를 쐬기에는 충분한 장소다. 그러나 빈말로도 만만치 않은 환경이다. 처음으로 겪는 전장. 좀 더 천천히, 나이를 먹은 후에 부딪쳐도 늦지 않다.

“아가씨는 여성입니다.”

“성별은 중요하지 않네.”

라시엘 공작은 단언했다.

“명예로운 루드비히의 피를 이은 아이다. 전장에서 살고, 전장에서 죽는 것이 제국의 수호자가 할 일이지. 이번 기회에 그 아이가 많은 것을 느꼈으면 한다네.”

“그래도…….”

“내 딸아이를 생각해주는 건 고맙네. 하지만 그 아이는 그렇게 약하지 않다네. 또한, 약해서도 안 되지. 이곳에 화원의 꽃을 바라는 이는 없네. 전장에서 피어나는 야생화야말로, 아리시엘이 걸어야 할 길이네.”

“…….”

평범한 여식의 삶은 바라지 않는다.

아리시엘 루드비히는 향후 루드비히 가문을 이끌고 나아가야 할 후계자다. 그리고 그때가 온다면 라시엘 공작은 딸아이의 곁에 없다.

“주제넘은 발언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작 각하.”

무례한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고 덧붙이는 이안의 말에 라시엘 공작은 손을 저었다.

“괜찮네. 아랫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서야 어떻게 다른 이들을 이끌겠는가? 무엇보다 자네는 딸아이를 알고 있지. 내가 보지 못한 무언가를 봤어도 이상하지 않아. 그런 자네의 눈으로 봤을 때 딸아이에게 이번 일은 버거울지도 모른다는 거군.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세바스찬?”

“아가씨는 약하지 않습니다. 저보다 주인님이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죠.”

“그렇지. 그렇고말고. 누구 딸인데.”

라시엘 공작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안은 테이블 위의 찻잔을 들었다.

식어버린 허브티는 입안에서 미묘한 맛이 돌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