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화.아가씨와 검(2) (141/200)

 # 141

아가씨와 검(2)

“힘들어.”

부드러운 무릎을 베고 누운 아리시엘은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몸 전체가 무거웠다. 이전에도 몰래몰래 저택을 빠져나가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지칠 때까지 움직인 적은 없었다. 반면,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집사는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곳까지 함께 뛰어왔을 터인데, 무언가 불공평하다.

왠지 자신이 꾀병을 부리는 것 같다.

괜스레 화가 난 그녀는 알베르트를 불만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원래 기본 체력을 쌓는 게 가장 힘듭니다.”

“알베르트의 몸에는 피가 안 흐를 것 같아.”

“저도 사람입니다, 아가씨.”

“몰라.”

듣기 싫다.

아리시엘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이 남자가 조금 모나긴 했어도 피는 붉은색이더라고요, 아가씨.”

“진짜?”

“그럼요. 알베르트도 사람이라는 거죠.”

그녀가 베고 있는 무릎의 주인, 에일린이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었다.

그 곁에서 날아다니고 있던 실프와 운디네가 아리시엘에게 내려왔다. 두 정령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던 아가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있지, 에일린. 알베르트에게 들었는데 말이야. 에일린의 부족 중에는 네크로맨서가 있다면서? 막 스켈레톤이 진을 치고 있다던데. 사실이야?”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에일린이 알베르트를 보았다.

[차후에 설명할게. 입 좀 맞춰줘.]

머릿속에서 직접 울리는 목소리. 알베르트의 전음(傳音)을 들은 에일린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한 모양이다. 아니, 아예 거짓말은 아닌가.

은빛 머리가 아름다운 황녀 전하를 떠올린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거짓말이죠, 아가씨.”

“에일린.”

“거짓말이야?”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우, 하고 알베르트를 돌아본 아리시엘은 얼굴을 찌푸렸다.

“네크로맨서가 아니라 그 스켈레톤 혼자 멋대로 일어난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엘프 중에 네크로맨서는 없죠.”

“스켈레톤이 있는 건 맞지만, 네크로맨서가 부리는 게 아니다?”

“그래요. 스스로 의지를 갖고 있는 거죠.”

“의지를 가진 엘프 언데드…….”

아가씨의 푸른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있지, 에일린.”

“네, 혹시 다음에 가게 될 일이 생기면 보여드릴게요.”

“고마워!”

물론 이루어지기 힘든 바람이다. 그녀의 신분을 생각했을 때, 금지된 숲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으리라. 에일린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썩 유쾌한 표정은 아니었다.

“지금은 다른 수업이 있는 거로 아는데, 빼먹고 오신 건가요?”

“응, 궁금했거든.”

궁금하니까 물어보러 왔다.

하고 싶으니까 하고 싶은 걸 한다.

진짜 아이나 다름없는 사고방식이다.

눈앞의 아가씨가 귀여워진 에일린은 손을 들었다. 귀밑으로 흘러내린 땀을 닦아낸다. 아리시엘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에일린은 웃음을 머금었다.

아리시엘도 이히히, 하고 웃었다.

“공작님께는 비밀로 할게요.”

“고마워!”

*&*

나무 위에 앉은 알베르트는 연무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자기사단의 훈련 시간이다. 수준이 높다. 양양 성에서 봤던 병사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기사 대부분이 익스퍼트. 부단장인 로엔 경에 이르러서는 소드 마스터의 초입에 가까웠다.

해이해진 기강은 보이지 않는다. 묵묵히 수련에 임하는 그 자세는, 아직도 발전의 여지가 남아 있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제국이 보유한 최강의 기사단.

마족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기사들이라 할만했다.

[대단한 실력입니다. 이만한 기사들이 숲 곳곳을 경계하고 있다. 과연, 그렇군요. 이 정도 전력이라면 마족과 국경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주머니 속의 칼이 너무 날카로우면 위험한 거 아닙니까?]

‘루드비히 가에 한해서는 그럴 일은 없다네. 그건 황제께서도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지.’

[흠……. 그렇습니까?]

연무장에서 시선을 돌린 알베르트는 한쪽에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찬란한 금빛의 소녀는 아리시엘 루드비히다.

평소와 같은 드레스 차림이 아니다. 그녀는 움직이기 편한 가벼운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 앞에 서 있는 남자는 제국의 4대 명검 중 하나인 유그피르의 검을 지니고 있었다.

보기 드문 얼굴이다.

업무로 바쁜 라시엘 공작이 아가씨에게 얼굴을 보이는 시간은 거의 한정되어 있었다. 함께 식사를 드는 아침을 제외한다면 드문드문 얼굴을 마주칠 뿐이다.

아버지의 시선을 앞에 둔 아가씨의 몸은 굳어 있었다.

어설픈 움직임. 손에 든 것은 목검 같은 게 아니다. 날이 있는 진검이다.

얇은 세검.

아직 어린 그녀가 다루기에는 괜찮은 검으로 보인다. 아가씨는 몇 번이고 세검을 들고 팔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자세는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다.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을 어린애 같다. 근력도 부치는지, 검을 들고 있는 양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시간이 거듭될수록 그녀의 자세는 무너졌다.

몇 분 버티지 못한 아가씨는 손을 내렸다. 조심스레 그녀의 시선이 아버지를 향했다. 라시엘 공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나뿐인 딸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아리시엘은 다시 세검을 들었다.

어설픈 찌르기와 베기가 반복된다.

한쪽에서 훈련 중인 기사들과 비교하면 소꿉장난이나 다름없다. 냉정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라시엘 공작이 입을 열었다. 세검이 멈춘다. 아가씨는 멍하니 아버지를 보았다.

실망한 것일까.

이야기를 마친 라시엘 공작은 자리를 떴다.

아가씨는 움직이지 않는다.

찬란한 금빛이 힘을 잃는 것 같다. 어깨가 들썩인다. 홀로 남은 그녀는 울먹이고 있었다.

몇 번이고 검을 휘둘러보지만, 정상적인 자세로는 보이지 않는다. 무너진 몸은 검에 끌려가고 뿐이다. 이윽고 아리시엘은 세검을 높이 들었다. 그녀는 있는 힘껏 바닥을 향해 검을 던졌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떨어진 세검은 한 남자의 발치에서 멈췄다.

혹시 아버님이 돌아온 걸까. 아리시엘은 겁먹은 시선으로 고개를 들었다. 떨어진 세검을 든 남자는 라시엘 공작이 아녔다.

“아, 알베르트?”

“세검이 바닥에 떨어졌군요. 손이 미끄러지신 건가요, 아가씨?”

알베르트를 보는 아리시엘의 얼굴은 엉망진창이다.

흐르는 눈물을 깨달은 건지, 그녀는 맨손으로 얼굴을 훔치려고 했다. 알베르트는 손수건을 건넸다. 휙, 하고 손수건을 받은 아리시엘은 얼굴을 닦았다. 상처 하나 없던 그녀의 하얀 손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조금 실패하신 모양이군요.”

“천재라도 실패는 하는 거야.”

“그렇죠. 언제나 천재일 수는 없으니까요.”

“…….”

아리시엘의 두 눈은 팅팅 부어 있었다.

계속 바라보는 것도 실례다. 시선을 내린 알베르트는 세검을 살펴보았다. 시중에서 흔히 돌아다니는 물건은 아니다.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은 이 검을 만든 대장장이의 실력을 엿보게 했다. 아마도 주인님이 아가씨를 위해 준비한 물건이다.

한 손으로 무게를 가늠하던 알베르트는 이 세검이 단순한 철이 아니라, 미스릴로 만들어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진검은 아무래도 목검과는 다르죠. 생각보다 무거우셨나요?”

“안 무거워. 나도 그 정도는 들 수 있어.”

어느 정도 감정이 수습되었는지, 아리시엘의 목소리에는 힘이 돌아와 있었다.

“무례를 용서해주신다면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말해봐.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지난번에 검을 가르쳐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지금이 딱 좋은 상황인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아가씨가 바라신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됐어. 이젠 필요 없어. 이미 다 끝났는걸.”

“그렇습니까?”

알베르트는 세검의 날을 잡았다. 집사의 굳은살이 베인다. 붉은 핏방울이 날 끝에 맺혔다.

당황한 아리시엘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알베르트는 세검을 돌렸다.

빙글.

세검의 손잡이가 아리시엘을 향했다.

검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떨렸다. 망설이는 아가씨의 기색을 느낀 알베르트는 입을 열었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건 천재나 범재나 다 똑같죠.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답니다. 한 번에 많은 계단을 올라가려면 힘들지만, 하나하나 올라가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죠.”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계단을 오르는 거랑 검을 다루는 게 어떻게 같아?”

“전부 그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가씨. 저한테 검을 가르쳐준 사부님도 몸의 기틀을 잡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근골의 기본. 몸의 자세. 검을 다루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의 몸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계가 어디고.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아가씨는 천재니까, 제가 드리는 말씀을 전부 이해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몸이 만족스럽게 따라가지 못할 뿐이겠죠.”

“…….”

아리시엘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녀는 알베르트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가씨의 머리가 얼마나 비상한지, 집사는 잘 알고 있었다.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

그리고 그것을 범재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천재라는 인간들이다.

범재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과정을 생략해버린다.

과정을 보지 않고 결과를 손에 쥔다. 불합리하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 당연한 일이다.

“머리가 조금 좋은 건 아무 의미도 없어. 나는 루드비히 가의 아리시엘인걸.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아. 검을 다루지 못하면 후계자 자격도 없는 반푼이에 지나지 않아.”

“아가씨는 반푼이가 아닙니다.”

“반푼이야.”

“요령을 모르실 뿐입니다. 무에는 지름길이 없으니까요. 탑을 쌓듯이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천천히…….”

세검을 든 아리시엘의 손에 힘이 담겼다.

알았다는 듯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베르트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한 번만 더 해볼게.”

“감사합니다, 아가씨.”

아리시엘은 엉거주춤 검을 들었다.

아무렇게나 벌어진 다리. 뒤로 쭉 빠진 무게중심. 이미 힘이 빠진 두 손으로 어떻게든 들고 있는 세검. 여전히 어설픈 자세다. 어떻게 보아도 어린애가 억지로 검을 든 것 같은 자세.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연무장 한쪽에서 훈련 중인 사자기사단의 움직임을 본 알베르트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가씨가 원하는 자세를 라시엘 공작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주인님이 바랬던 것은 단순히 검을 드는 자세. 하지만 아가씨는 그저 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여차하면 세검을 앞으로 찌를 수 있는 준비 자세. 그 욕심이 자세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거겠지. 최근 알베르트와 함께한 단련 때문에 어느 정도 체력이 붙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주인님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 사실을 알아차린 알베르트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역시 아가씨입니다. 노력하셨군요. 하지만 찌르기는 좀 더 이후에 익히셔도 좋습니다.”

“…….”

따뜻한 알베르트의 말에 아리시엘의 시야가 흐려졌다.

울컥, 하고 치밀어오르는 걸 삼키듯이 그녀는 손에 힘을 쥐었다.

“찌르기는 기본이야. 루드비히 가의 후계자가 그것도 못 해서 뭘 어떻게 할 건데.”

“검을 다루는 것은 가장 마지막입니다. 일단은 검을 쥔 자세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편해집니다. 말하자면, 검에 익숙해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아가씨.”

그리운 광경이 떠오를 것 같다.

이름 없는 성에서 자세를 봐주던 사부님이 떠오른 알베르트는 말을 이었다.

“검은 단순히 힘만으로 드는 게 아닙니다. 몇 분 쥐고 놓는 게 아니니까요. 팔과 어깨만 사용하셔서는 안 됩니다. 달릴 때를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단순히 발만 사용하는 게 아닙니다. 발에서 연결되는 다리, 무릎, 엉덩이, 몸, 어깨, 팔. 더 나아가서 머리까지. 모든 몸을 써서 움직이게 됩니다. 검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을 따로 생각하지 마세요. 손에서 연결되는 손가락. 손가락에서 검으로 연결되는 겁니다. 신체 일부분이라고 생각하세요.”

지면을 지지하는 아가씨의 발부터 자리를 정한다.

평평한 대지에서 양어깨만큼 다리 너비를 벌리고, 무게중심을 하반신으로 옮긴다. 엉거주춤 뒤쪽으로 빠지는 그녀의 엉덩이를 알베르트는 앞으로 밀었다. 웃, 하고 아리시엘이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집중하세요, 아가씨.”

“으, 응.”

자세를 다잡은 아가씨를 살펴본다.

아까 전보다는 낫다.

그래도 뭔가 어색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자신을 가르치던 사부님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떠신가요? 지금도 많이 불편하신가요?”

“잘 모르겠어. 조금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리시엘은 아리송한 표정이다.

하지만 세검을 든 그녀의 두 손은 떨고 있지 않았다. 아쉽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자.

“오늘은 첫날이니, 1분씩 다섯 번 정도만 해볼까요.”

“이, 이러고 있으라고? 5번이나?”

“그렇습니다.”

“우…….”

아가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안 한다는 말은 꺼내지 않는다. 나름대로 고집이 있으신 분이다. 이런 자세야말로 아가씨가 위로 올라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겠지. 1분씩 5번. 알베르트가 내준 과제를 간신히 끝낸 아리시엘은 자리에 누웠다.

후아, 하고 깊게 숨을 토해내는 그녀의 손에는 세검이 쥐어져 있었다.

하늘은 푸르다.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며 호흡을 정리하던 아가씨는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해서 정말 강해질 수 있을까?”

“아가씨는 천재입니다.”

알베르트의 즉답에도 아리시엘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다.

“난 천재 같은 게 아닌걸.”

“아니요. 아가씨는 천재가 맞습니다.”

“놀리는 거야?”

“아가씨가 모를 뿐입니다.”

집사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한 건지, 아리시엘은 불만 어린 눈으로 알베르트를 보았다.

하지만 시선을 돌린 건 그녀였다. 아가씨를 바라보는 집사의 시선에는 한 점의 의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노력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가씨는 천재죠. 노력하는 천재는 반드시 성공하는 법입니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 거야?”

“왜냐하면, 아가씨가 노력하신 거니까요.”

“…….”

이쯤 되면 아리시엘도 할 말이 없다.

자신보다 더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확신에 찬 알베르트의 태도에 아리시엘은 웃었다.

“알베르트는 이상하구나.”

“그렇습니까?”

“응, 처음에는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단순히 바보인 것 같아.”

“바보, 입니까.”

“칭찬한 거야.”

뒤에서 수군거리는 다른 사용인들과는 다르다.

이 남자만큼은 자신이 무조건 성공한다고 말하고 있다.

없던 자신감도 어디선가 생길 것만 같다. 아리시엘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검을 들고 집사가 알려준 자세를 다시 취해본다.

“오늘은 그만하시는 게 좋습니다. 너무 지나친 수련은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아직 더 할 수 있어.”

“아가씨의 몸에 좋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다…… 꺅!”

등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 아리시엘은 새된 비명을 질렀다.

뒤를 돌아보자, 알베르트가 내민 손가락이 보였다.

“무, 무슨 짓이야!?”

“근육이 놀랐군요. 평소에 운동량이 적었던 탓입니다. 내일 일어나시면 근육통에 시달리실 겁니다.”

아가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픈 건 싫다. 더군다나 근육통이라면 단발로 끝나는 통증이 아니다. 누르면 아프고, 내버려 두면 신경 쓰이는 껄끄러움. 어떻게 만질 수도 없다. 놀란 근육이 진정되기를 바라는 길밖에 없다.

“아가씨만 괜찮으시다면 근육통을 피할 방법이 있습니다만.”

“그런 게 있어?”

“그렇습니다. 엘프들이 알려준 신기한 기술이 있습니다. 한데, 이 기술을 쓰려면 제가 아가씨의 등에 손을 대야 합니다.”

“으음…….”

아리시엘은 잠시 고민했다.

집사에게 등을 보이는 것과 내일 시달릴 근육통. 후자가 더 두렵다. 아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줘.”

“알겠습니다.”

자리에 앉은 아가씨의 등에 알베르트는 손을 얹었다.

아란 씨와 란랑이 하던 치료의 일종이다. 내공이 주인의 의지에 답한다. 알베르트의 손을 타고 아리시엘의 몸으로 흘러 들어간 내공은 그녀의 근육을 풀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 아가씨의 몸에 부담이 가지 않게, 천천히 몸을 한 바퀴 돈 내공은 알베르트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시술이 끝나자, 아리시엘은 신기하다는 듯 알베르트를 보았다.

“아프지가 않아. 저기, 혹시 신성력이야?”

“아닙니다. 엘프들만이 다루는 비전 기술이라고 하더군요.”

“비전 기술……. 있지. 이런 걸 나한테 보여줘도 되는 거야?”

“당연히 아가씨와 저만의 비밀입니다.”

“비밀. 알았어. 알베르트의 비밀은 내가 지켜줄게!”

반짝반짝 빛나는 아가씨의 얼굴이 귀엽다.

따스한 온기가 맞닿는 것 같다. 알베르트는 자신도 모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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