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8화.수상한 동태(2) (138/200)

 # 138

수상한 동태(2)

루드비히 공작가의 시녀 마린은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최근 공작가로 돌아온 소문의 집사를 본 것 같은데, 갑자기 그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이해할 수가 없다. 복도 한복판에서 모습을 감출 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 숨은 것도 아니다. 밖과 연결된 곳은 창문뿐이지만, 여기는 3층이다. 기사도, 마법사도 아닌 집사가 뛰어내릴 만한 층수가 아니다.

“왜 그래, 마린?”

“아, 언니.”

마린이 두 눈을 비비면서 주변을 살펴보는데, 지나가던 쌍둥이 언니, 루인이 그녀를 불렀다.

“그게 집사님이 앞에 있었는데. 사라졌어.”

“집사? 알베르트 님 말이야?”

“응. 여기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졌어.”

“…….”

루인은 복도를 둘러보았다.

집사의 모습은 고사하고, 연미복조차 보이지 않는다. 창밖까지 확인해보았지만, 정원 한쪽에 있는 키 큰 거인. 필립이 보일 뿐이지. 동생이 찾고 있는 집사는 보이지 않았다.

“헛것을 볼 정도라니. 많이 피곤한 모양이네.”

“아닌데. 정말로 있었단 말이야.”

“저번에도 그렇게 말한 거 기억하니?”

“그, 그때도 진짜였는걸!”

안쓰럽게 바라보는 언니의 시선이 아프다.

마린은 화를 냈지만, 루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저택 내에서는 알베르트와 관련된 이상한 소문이 하나 더 늘어나고 있었다.

*&*

알베르트는 금지된 숲을 거닐고 있었다.

에일린이 발 벗고 나서준 덕분에 며칠 동안은 혼자서 움직여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라시엘 공작은 별로 탐탁지 않아 했지만, 세바스찬 집사장의 설득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는 알베르트가 뭔가 얼토당토않은 기술을 배운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 기회에 무공까지 전부 말해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그리 쉬운 이야기가 아니네.’

알베르트가 손에 넣은 힘.

무공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알베르트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에일린이라는 강한 지원군이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무공을 설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엘프에게 신세를 졌다고 해도 적당한 선이 있기 마련이니까. 거기에 주인님이라면 이 기술이 마족의 무공이라는 것을 꿰뚫어 보리라.

아니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베르트는 에일린에게 받은 지도를 펼쳤다.

대략적이나마 숲에 대해서 표기가 된 지도는 이쪽 길이 맞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지도에는 이름 없는 성, 유피의 성이 어디에 있는지도 표시되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베르트는 성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지만, 낡은 폐성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에일린의 말이 맞군요. 유피에르의 허락이 없으면 성은 나타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런 것 같군.’

본래 마족의 현자라는 위나 바토리가 사용했던 성이다.

이름 없는 성이라고 불리는 이 성은, 성주가 마음만 먹는다면 결계 속에 성을 숨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확실하냐는 알베르트의 물음에 에일린은 말했었다.

「선녀님의 지시로 황녀 전하를 찾으러 나온 적이 있었거든. 지금이야 편하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죽을 뻔한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는지 몰라. 결국, 만나지도 못했고 말이야.」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 같다.

이 앞에 유피의 성이 있는 것 같은데, 들어가는 것은 할 수 없다.

[혹시 유피에르가 성에 없는 건 아닐까요, 마스터?]

‘유피가 말인가?’

[그렇습니다. 아직 마계에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아리시엘의 말이 맞다면 루미에르 교는 그녀를 찾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 대책도 없이 자리를 비웠을 리는 없을 테니,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겠죠.]

‘과연…….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유피가 알베르트를 거절한 게 아니다.

단순히 성에 없어서. 알베르트가 방문해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뿐이다.

[마스터는 알기 쉬운 사람입니다.]

알베르트의 발걸음이 가벼워진 걸 느낀 천칭은 말했다.

사자기사단의 순찰로에서 벗어난 숲 안쪽은 수상쩍은 기류로 가득했다.

에일린의 지도에서도 붉은색으로 표시된 지역이다. 안전 지역과는 거리가 멀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알베르트는 허리춤의 검으로 손을 옮겼다.

숲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마물이 아니다.

하급 언데드인 스켈레톤과 오크 좀비(Zombie)다. 평범한 언데드로는 보이지 않는다. 골격도 크고, 반쯤 떨어진 얼굴은 숲에서 살아가는 마물로 보였다.

알베르트는 검을 뽑았다.

월아는 아니다. 신검은 이런 곳에서 갖고 다니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검이다. 무엇보다 월아가 흩뿌리는 빛은 주변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평범한 롱소드를 든 알베르트는 다가오는 언데드를 확인했다. 어기적어기적 다가오는 녀석들을 향해 알베르트는 가볍게 다가갔다.

빛이 달렸다.

앞에서 다가오는 오크 좀비의 목을 잘라낸다. 질긴 근육이 검과 맞닿아 늘어진다. 눈이 움직인다. 죽지 않았다. 녹슨 면갑 틈을 노린다. 알베르트의 검이 녀석의 눈을 노렸다. 썩은 살점을 꿰뚫는다. 머리가 반쯤 파헤쳐졌을 텐데도, 녀석은 멈추지 않는다.

언데드는 이 정도로 죽지 않는다.

숨통을 끊어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미 죽은 존재다. 움직일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목을 잘라낸다. 머리통이 발치에서 뒹군다. 그래도 움직이는 오크 좀비를 본 알베르트는 너덜너덜한 다리까지 마저 잘라냈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놈을 보며 알베르트는 천칭에게 물었다.

‘무언가 좀 알 수 있겠는가?’

[네크로맨서가 만든 것은 확실합니다. 링크는……. 끊어져 있군요. 필요가 없어져서 버린 건지. 감당할 수 없어서 버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주인을 잃은 녀석들은 이곳을 방황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용의 무덤에서 아가씨와 만나고 난 뒤, 천칭은 좀 더 자신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알베르트의 몸을 빌려 마법을 쓰는 게 가능해졌다고 할까. 덕분에 이런저런 조사가 훨씬 편해졌다.

‘어느 쪽이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가. 일부러 그런 건가? 그렇지 않으면…….’

[이것만으로는 판단하기 힘들군요.]

‘그런가.’

알베르트는 품에서 성수를 꺼냈다.

루미에르 교에서 보급하는 성수다. 마족의 국경선과 맞닿은 루드비히 공작령에서는 필수품으로 여겨지는 물건이다. 오크 좀비의 위로 성수를 뿌리자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몸이 녹아내렸다. 언데드의 뒷정리를 끝낸 알베르트는 지도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천마의 무덤이었다.

알베르트의 기억이 맞다면 13번째 무덤으로, 그때는 혼자가 아니었지만. 지금 이곳을 방문한 그는 혼자였다.

천마의 무덤은 기억 속의 광경과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무덤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천막은 물론이고, 제법 많은 모험가가 모여있었다.

“던전을 탐색하는 데 필수품인 탐색 마법이 담긴 스크롤입니다!”

“클레멘트에서 온 물건입니다. 미숙한 모험가라도 이 세트만 있으면 뭐든지 척척! 당신의 첫 모험이 안전한 탐색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쓸만한 길잡이를 찾고 있나? 그럼 언제든지 말만 하게. 이 내가 바로 안내해 줄 터이니.”

알베르트는 무심코 지도를 확인했다. 잘못 온 건 아니다. 분명 이곳은 천마의 무덤이 맞았다.

공화국 근처에 있다는 크라시아 던전의 입구가 이런 느낌일까.

대륙 내에서도 가장 유명한 던전으로 손꼽히는 크라시아는, 층계별로 나타나는 마물이 다양한 던전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제 막 모험을 떠나는 이들부터 시작해서 베테랑 모험가들의 입맛까지 전부 만족시킬 수 있는 던전으로. 그 주변은 마치 시장 거리처럼 활성화되어 있다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

물론 유명 던전과 비교할 바는 아니겠지만, 이곳에 모인 모험가는 적은 수가 아니었다.

적당한 나무에 기대앉은 알베르트는 잠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오늘은 괜찮은 걸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이미 선발대가 다 털어간 장소인데요. 우리야 남은 찌꺼기나 챙겨 먹는 스캐빈저(Scavenger) 신세죠. 우연히 안쪽까지 들어간 용병단이 있는 거, 없는 거 다 털어먹어 다던데. 참 부러워요.”

“그래도 안에서 나오는 마석은 제법 비싸잖아. 루드비히 가에서 건 현상금도 있고.”

“그렇죠. 여기만큼 안전하게 노다지를 벌 수 있는 곳은 없으니까요.”

…….

“최근 언데드의 수가 더 늘었어.”

“스켈레톤과 오크 좀비가 대부분이지 않나? 성수만으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텐데.”

“헛소문이면 좋겠지만, 어비스 나이트를 봤다는 말이 있다.”

“어비스 나이트? 말도 안 되는군. 데스 나이트를 착각한 거겠지.”

…….

“사실 이 던전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장소가 더 있다고 하더군.”

“그 헛소문은 아직도 돌고 있는 모양이군.”

“아니, 그게 말이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는 것 같아. 던전의 끝까지 가봤다는 제이크 용병단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라네.”

“더 믿음이 안 가는군. 럭키 용병단에서 나온 말을 누가 믿겠나?”

“목소리가 크군, 자네.”

“크면 어쩔 텐가?”

…….

“최근 이상한 인간들이 늘었다는 말이 있어.”

“라베린 도시에 수상한 종자들이 모이는 건 늘 있던 일이지. 지난번에는 소문이 자자한 인형사까지 오지 않았나? 볼 것도 없는 이곳까지 말이야.”

“아니, 단순히 미쳤다는 말로 끝날 인간들이 아닌 것 같아. 약을 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있어.”

“마약 말인가? 흠. 술집으로 데려와 보게나. 사람은 술이 들어가면 솔직해지기 마련이니, 정말로 미친놈들인지 알 수 있겠지.”

“술값은 자네가 낼 건가?”

“물론 자네가 내야지.”

“그만두지.”

…….

“오면서 본 건데, 모험가의 길에 언데드가 침범한 흔적이 남아 있었어.”

“상황을 봐서 정리해 두는 쪽이 좋겠네. 길드에 보고는 된 거야?”

“이미 귀에 들어갔다는 모양이야. 이야기가 잘 되어서 루미에르 교에서 높으신 분이 나왔다는 말이 있어.”

“루미에르 교가? 정말이야? 녀석들은 금지된 숲이라면 질색하잖아. 마기가 넘쳐나는 그런 부정한 곳에는 갈 수 없습니다, 하고 말이야.”

“점잔뺄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겠지. 마족도 북부의 야만인과 싸우느라 바쁜 것 같고. 혹시 뒤를 칠 생각은 아닐까? 나름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알베르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황 파악은 끝났다.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했다. 생각해보면 그때도 라피엘이 정보를 흘렸다는 말을 했었다. 이 무덤은 이제 완전히 마족의 손에서 벗어난 모양이다. 유피가 알면 많이 서운하겠는데. 훼손된 무인의 상을 보며 알베르트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동료를 구하는 모험가들을 지나 무덤 안쪽으로 향한다.

무덤 내부는 곳곳에 불이 가득했다. 통로를 밝히는 빛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무덤의 초입은 조사가 완료된 구역이어서 그랬던 건지, 안쪽은 점차 빛이 사그라들었다. 목소리가 멀어지고 어둠이 드리워진다. 챙겨온 램프에 불을 넣은 알베르트는 발을 옮겼다.

[비슷하군요. 링크가 끊겨 있습니다. 무덤에 있는 언데드가 전부 이 상태라면, 그냥 방치해둔 것 같군요.]

‘방치했다고? 이유를 알 수가 없구먼.’

[단순히 마도의 길을 걷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네크로맨서 중에는 언데드를 제작하는 것이 목적인 이들도 있으니까요.]

‘방치한 게 아니라 만들었으니 더는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뒤처리 따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건 비단 네크로맨서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도를 연구하는 마법사들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마스터의 아가씨였던 아리시엘이 안쪽은 완전히 망가진 것처럼. 유피에르가 공방에 처박혀서 스켈레톤의 골격을 보고 좋아하는 것처럼. 마음속의 제어장치가 부서진 것이 마법사라는 족속들입니다.]

무덤 곳곳에 남은 언데드의 시체를 확인하며 나아간다.

얼마나 조사를 거듭했을까. 앞쪽에서 두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게나마 마기가 느껴지는군.”

“지금은 보잘 것 없는 던전이 되었지만, 한 때는 마왕의 던전이라고 소문났던 곳입니다. 안쪽은 텅 비었지만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두 남자였다. 그레이트 엑스를 든 덩치가 큰 남자와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아 보이는 남자다. 갈색빛의 로브를 몸에 두른 두 사람은 무덤을 살펴보고 있었다.

“어떻게 확신하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여기를 조사한 게 저희 용병단이거든요.”

“럭키 용병단…….”

“제이크 용병단입니다. 제이크. 럭키 용병단이 아닙니다.”

“나름 괜찮은 이름이라고 생각하는데.”

“우스운 이름이겠죠. 다들 아닌 척하지만, 뒤에서 그런 말을…….”

목소리가 끊긴다.

덩치가 큰 남자의 말을 막은 것은 다른 남자였다. 그 앞에서 검과 낡은 투구를 쓴 스켈레톤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켈레톤 나이트다. 덩치가 큰 남자는 그레이트 엑스를 다잡았다. 하지만 남자는 그 손을 막았다.

도끼가 다시 등으로 돌아간다.

스켈레톤 나이트에게 다가간 남자는 손을 들었다. 하얗게 물든 손에서 신성한 빛이 흘러나왔다. 뿌려지는 신성력과 맞닿은 스켈레톤은 의지를 잃고 무너졌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하군요, 신성력이라는 건.”

“루미에르 교단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정식으로 길을 밟고 싶다면 언제든지 문을 두드려라.”

“어이쿠, 괜찮습니다요. 저같이 못 배운 것이 들어갈 만한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신분으로 차별을 두는 기사단과는 다르다, 제이크.”

제이크라고 불린 덩치 큰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루미에르 교에 들어가면 술을 못 하지 않습니까. 전 그런 건 싫습니다.”

“술이라면 마실 수 있다.”

“루체리(Lu-Cherry) 말씀입니까? 교단의 와인은 술이 아닙니다. 도수가 그리 약해서야 음료나 다름없죠.”

“말이 지나치군.”

“농담입니다, 이안 성기사님.”

이안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하는 걸 본 제이크는 장난스레 고개를 숙였다. 그 반응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이안의 목소리에는 불쾌함이 어려있었다.

“다시는 내 앞에서 교단을 모욕하지 말아라.”

“조심하겠습니다.”

대화가 끊긴다.

두 사람이 걸음을 옮긴다. 성기사와 안내인을 맡은 모험가. 드문 조합이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알베르트는 뒤를 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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