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수상한 동태(1)
“저기! 다음은 저기로 가자!”
“아가씨. 체통을 지켜주세요.”
“응? 아, 맞다. 으음! 좋아. 저쪽으로 가볼까?”
“저택으로 돌아가면 주인님에게 다 말할 거에요.”
“농담이야, 농담. 노아는 밖에만 나오면 잔소리꾼이 된다니까.”
“누가 잔소리꾼이에요!”
잔소리를 시작하는 노아를 피한 아가씨는 거리로 뛰어갔다.
알베르트는 주변을 경계하며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공작령 내에서도 가장 발달한 대도시, 클레멘트는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재주를 파는 기인들과 춤을 선보이는 집시들. 마술과도 같은 신비한 행사가 거리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었다. 좌판에는 알록달록한 과일들이 넘쳐나고, 짐수레에는 터질 것 같은 포대가 쌓여있었다.
수확의 계절에 어울리는 시장의 모습이다.
상인들은 호객 행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 모든 걸 지켜보는 아리시엘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두 달에 한 번 있는 영지 시찰이다. 답답한 저택에서 나온 그녀는 지금이 기회라는 듯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리시엘의 눈을 끄는 것은 먹거리다.
저택에서 나오는 요리는 하나같이 훌륭하지만, 거리에서 파는 군것질거리는 노점만의 특색이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 음료와 이름 모를 고기로 만든 꼬치구이. 단맛을 내기 위해 겉면에 꿀을 바른 빵도 있다. 아리시엘은 불판 위에서 구워지는 고기를 바라보았다.
“안 됩니다, 아가씨.”
“하나만 안 될까?”
“지난번에도 그랬다가 배탈이 나셨잖아요.”
“히잉.”
“안 되는 건 안 돼요.”
칭얼거리는 목소리도 소용없다.
그녀를 상대하는 데 도가 튼 노아는 딱 잘라 거절했다.
“한 개쯤은 괜찮지 않겠습니까, 누님.”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예상 밖의 지원군이었다. 함께 나온 알베르트가 노아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알은 못 봐서 그래. 아가씨가 노점상에서 파는 걸 잘못 드셨다가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알아? 신관님도 안 계셔서 무려 사흘을 넘게 아파하셨다고.”
“그, 그건 단순히 많이 먹어서 그랬던 거잖아.”
“루드비히 가문의 공녀분이 과식으로 쓰러졌다고요? 어느 누가 그런 헛소문을 흘리고 다니는지 궁금하네요.”
“…….”
쌍심지를 켜는 유모의 모습에 아리시엘은 고개를 돌렸다. 지은 죄가 있는지라, 그녀는 더 항변할 수 없었다. 살짝 붉어진 아가씨의 얼굴을 본 알베르트가 입을 열었다.
“그럼 먹는 양만 조절하면 되겠군요.”
“알.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누님은 조금 유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너한테만큼은 듣고 싶지 않은데. 그리고 저 꼬치 말이야. 분명…….”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름 별미지 않습니까?”
“…….”
알베르트는 노점상에서 고기꼬치를 사 왔다.
아가씨에게 꼬치를 건넸다.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콧가를 간질인다. 먹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아리시엘은 슬쩍 노아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얼굴을 찌푸린 유모는 짤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저게 쥐 고기라는 걸 아가씨는 알고 있을까. 알고 있을 리가 없지.
“이번 한 번만이에요, 아가씨.”
“응!”
고마워, 하고 아가씨는 작게 속삭였다.
한입 가득 꼬치를 넣은 아리시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믿기지 않는군요. 아리시엘 루드비히에게 이런 시절이 있을 거로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아가씨가 변한 것은 참사 이후였지. 그전까지는 어디에나 있는 참한 아가씨였다네.’
[그렇습니까?]
‘속단이라고 생각되면 좀 더 지켜보게나. 앞으로도 시간은 많으니까.’
천칭의 목소리를 들으며 알베르트는 시장을 둘러보았다.
사자기사단의 일원들이 아가씨 주변을 경호하고 있었다. 모자를 짙게 눌러쓴 남자 중에서는 긴 금발이 아름다운 로엔 경의 모습이 보였다. 첨탑 위쪽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은 에일린이다. 주변에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실프와 운디네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루드비히 가의 후계자가 직접 나온 시찰이다. 이 정도 경계는 아무것도 아니다. 삼엄한 경비를 모르는 건 아가씨뿐이다.
아가씨가 시찰을 나온 쟈스민 거리는 클레멘트 내에서도 가장 발달한 구역이었다.
좋은 것만 봐야 할 나이다. 어느 정도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밀집된 이곳은, 어린 공녀가 기분 전환으로 찾아오기에는 충분한 장소였다.
검은 손이 뒤에 있는 류드 거리와는 다르다.
제국의 뒷세계를 휘어잡은 검은 손. 클레멘트의 슬럼가는 아가씨가 갈만한 곳이 못 됐다. 도시의 어둠이 꿈틀거리는 곳. 명문가의 자제가 찾아갈 장소는 아니다.
하지만 알베르트에게는 이야기가 달랐다.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것이 더러운 손을 빌리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악마를 신봉하는 뱀의 추종자들이, 양지에서 정체를 드러낸 채 걷지는 않을 테니까.
괴물을 잡으려면 괴물이 있는 곳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건 선택 사항이 아니다.
“노아.”
“안 됩니다.”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늪지의 점쟁이를 보러 가고 싶으신 거잖아요? 류드 거리에 있는 집시잖아요. 루인이랑 마린에게 다 들었어요. 거기가 어디라고……. 아무리 호위가 있다고 해도 안 돼요.”
“그러지 말고, 응?”
“투정 부려도 안 돼요. 위험해요.”
아가씨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풀이 죽은 그녀의 모습에 알베르트는 노아를 봤다. 시끄러운 집사의 입이 다시 열린다. 오늘의 나쁜 역할은 전부 내 몫인가. 결과가 보이는 느낌에 노아는 마지못해 덧붙였다.
“대신에 따로 사람을 보내서 저택으로 초대할게요.”
“고마워, 노아!”
*&*
해가 진 류드 거리는 불온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알베르트가 향한 곳은 슬럼가의 한 판잣집이었다. 쥐 죽은 것처럼 조용한 집 안에서는 작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하얀 가면을 쓴 알베르트는, 평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문에 노크를 넣자 안쪽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림자는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검은 다시 떠오르리라.”
사전에 들은 암구호를 나눈다.
알베르트의 대답을 들은 문이 천천히 열렸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내는 알베르트를 보고 경계를 풀었다. 이전부터 길드를 이용하던 단골이다.
“또 당신이군. 용무는?”
“정보를 사고 싶다.”
“따라와라.”
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사내의 뒤를 따라 알베르트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다른 남자가 앉았다. 책상에 두 손을 올린 그는 다른 손님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사내가 안내한 곳은 독방이었다. 성인 남성이 간신히 앉을 수 있는 비좁은 공간. 판자로 가려진 책상 아래로는 서류가 오갈 수 있는 작은 틈이 있었다.
도둑 길드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책상 면에 붙은 정보에 따른 대금 설명을 본 알베르트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언제나 마찬가지인 정보를. 추가로 최근 돌기 시작한 네크로맨서의 정보에 대해서 알고 싶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를 원하십니까?”
“사소한 것도 상관없다. 길드가 가진 전부를 원한다.”
“대금은 백금화 20장입니다.”
알베르트는 얼굴을 찌푸렸다.
터무니없이 비싼 값이다. 평범한 일가족이라면 죽을 때까지 손에 얻기 힘든 돈이다.
풍문처럼 들리는 네크로맨서에 대한 정보를 얻을 뿐인데, 이만한 금액을 요구한다는 건 정보를 팔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무언가 뒤에 있는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백금화 20장이 손에 있을 리 없다.
경계를 사게 되더라도 별수 없나.
아니, 아마 녀석들은 알베르트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을 터다.
도둑 길드의 정보력을 얕봐서는 안 된다.
알베르트는 금화 대신에 다른 물건을 틈 사이로 내밀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검 문양을 확인한 정보상의 목소리는 굳어 있었다.
“아무리 검을 지닌 분이라도 저희 길드에 손을 댈 수는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이 도시의 사람들은 누구나 검의 비호 아래에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착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에 걸맞은 대가를 지불하고 있죠. 모시는 주인이 다를지라도,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들어오면서 본 건데 쥐새끼가 많이 있더군요. 창고 안에 있는 치즈가 부족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알베르트의 대답을 들은 정보상은 입을 다물었다.
판자 너머로 그의 망설임이 전해진다. 검을 쥐고 있는 것은 이쪽이다. 클레멘트의 도둑 길드 지점이 루드비히 가문뿐만 아니라, 다른 가문에도 줄을 대고 있다는 것은 몇몇 이들만이 아는 정보였다. 그리고 그쪽으로 빠져나가는 돈은 당연하게도 탈세가 일어난다.
“모아둔 치즈의 양이 괜찮은 모양이군요.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겠죠. 쥐새끼들이라도 같은 길드 내에서 자라는 미물이니까요. 그럼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등을 살짝 떠민다.
알베르트가 일어나는 소리를 들은 정보상이 대답했다.
“잠깐.”
“결정하셨나 보군요.”
“셈이 맞질 않는다. 최소한 쥐새끼들의 명부를 넘겨받고 싶다.”
“거기까지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무사히 나갈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문밖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못 해도 세 명.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알베르트는 한숨을 쉬었다.
“후회하실 겁니다.”
“죽이지는 말고 사로잡아라. 필요하다면 팬텀 소드(Phantom Sword)를 불러라.”
거칠게 열린 문밖에서 커다란 덩치가 들어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알베르트는 의자를 발에 걸었다. 위로 띄운다. 덩치를 사이에 두고 떠오른 의자를 알베르트는 걷어찼다.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의자와 부딪친 녀석이 주춤거렸다. 그 뒤를 따라 뛰어오른 알베르트는 그대로 녀석의 몸을 밟았다. 밀려난다. 그대로 넘어가는 놈을 짓밟은 알베르트는 방 밖으로 나왔다.
놀라는 기색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두 남자가 알베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작은 날붙이가 보인다. 대거(Dagger)의 끝이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다.
“독인가.”
내공을 운용할 필요는 없다.
안쪽으로 파고든다. 대거가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간다. 팔꿈치가 빈 복부로 들어간다. 손등이 안면을 강타했다. 빠직, 하고 녀석의 얼굴에서 피가 튀겼다. 깨진 이가 떨어진다. 무너진 놈의 뒤에서 다른 조직원이 양손을 뻗었다.
“잡았다!”
“…….”
긴장감 없는 시선이 돌아왔다. 평온한 알베르트의 얼굴을 본 남자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락부락한 근육에 힘이 담긴다. 알베르트를 옥죈 녀석이 다른 조직원을 부르려 할 때였다. 두 팔이 거짓말처럼 벌려지고 있었다. 시야가 넘어간다. 빙글 돌아간 세상에는 알베르트의 모습이 거꾸로 보였다. 머리부터 떨어진 녀석은 의식은 잃었다.
세 덩치를 쓰러뜨린 알베르트는 의자를 주웠다.
등받이가 박살 난 의자를 방 안으로 가져온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알베르트는 말하지 않았다.
정보상도 말하지 않는다.
소란을 듣고 도둑 길드의 장정들이 뛰어왔다. 쓰러진 동료를 확인한 그들은 경계 어린 시선으로 알베르트를 노려보았다. 제법 날이 날카로운 날붙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한 번 더 손을 쓰는 편이 좋을까.
그러나 판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차분했다.
“검의 비호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했지.”
일어나는 알베르트를 잡듯이 판 아래로 한 뭉치의 서류 더미가 넘어왔다.
서류 위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검 문양, 루드비히 가의 상징과 그림자가 붙은 땅 모양의 문양이 있었다.
“검을 이끄는 분에게 잘 말씀해주시게, 알베르트 라나. 도둑 길드는 검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현명한 판단입니다, 길드장.”
알베르트는 도둑 길드의 상징을 품에 챙겨 넣었다.
“안쪽에 보고해라.”
집사가 길드를 나가고 난 뒤, 방 안쪽에서 나온 남자는 말했다.
“검이 냄새를 맡았다고.”
*&*
저택으로 돌아온 알베르트는 등잔불에 의지해 서류를 확인하고 있었다.
도둑 길드에서 얻어온 정보는 네크로맨서에 관한 서류만이 아니다. 마계에서 돌아온 이후로 알베르트가 촉각을 기울이고 있는 정보. 적에 대한 소문이다.
갑자기 행적이 사라지는 사람들. 중독성이 강한 마약.
슬럼가를 기점으로 돌기 시작한 이상한 이야기.
뚜렷한 내용이 적힌 건 아니지만, 도둑 길드가 포착할 정도의 내용이라면 어느 정도 형체가 있다는 이야기다. 즉, 헛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서류에 실린 문양을 본 알베르트는 입안이 마르는 걸 느꼈다.
뱀을 닮은 검은 형태의 그림.
그 모습은 캘러미티가 숭배하는 신과 닮아 있었다.
녀석들이, 드디어 꼬리를 드러낸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국 내에도 이미 뿌리가 뻗어 있는 모양이군요.]
‘북부라면 모를까. 루드비히 공작령은 제국 최남단에 있네. 이런 곳까지 그들이 침투했다는 말인가?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건 알 수 없죠. 하지만 양양에서의 일도 있지 않습니까? 캘러미티는 독자적인 루트를 가진 건지도 모르죠.]
‘…….’
[주의하시기를 마스터. 저는 이 정보를 파는 도둑 길드도 신용할 수 없습니다.]
‘알고 있네.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되겠지.’
서류를 더 뒤져보았지만, 뚜렷한 정보는 없다.
이제 막 형체가 일렁이는 수준의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캘러미티를 보류한 알베르트는 네크로맨서에 관한 이야기가 실린 서류를 확인했다.
앞쪽 내용은 별로 특별한 것이 없다.
도둑 길드 내에서도 숲의 마녀와 지금 나타난 네크로맨서를 구분하지 못하는 건지, 두 정보가 혼재해 있었다.
숲속에서는 마녀가 언데드를 부리고 있다.
최근 사람들의 행적이 묘연한 건, 언데드로 쓰기 위해 마녀가 손을 쓴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숲의 마녀. 별무리 지는 은발이 알베르트의 머릿속을 스쳤다.
[유피에르는 어떻게 만날 생각입니까?]
‘때가 되면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네.’
저택으로 돌아온 알베르트가 가장 먼저 향했던 곳은 유피의 성이었다.
금지된 숲 안쪽에 있는 결계에 둘러싸인 성. 하지만 알베르트는 성에 도착할 수 없었다. 갑자기 떠난 알베르트에게 실망한 그녀가 길을 열어주지 않는 걸까. 혹은 위나 바토리의 로브가 없어서 통로를 열 수 없는 걸까.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다.
결국, 용의 무덤에서 돌아온 알베르트는 유피에르 바토리를 만날 수 없었다.
[그녀에게 드리웠던 암운은 사라졌으니, 급할 필요는 없겠죠.]
‘그러네. 지금 중요한 건 아가씨네.’
기억 한편으로 유피의 모습을 밀어낸 알베르트는 서류에 집중했다.
네크로맨서에 관한 소문은 금지된 숲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숲 안을 탐색하는 모험가들이 발견했다는 모양이다. 마족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접근하지 않고 그곳에서 벗어났다는데, 녀석의 주변에 언데드가 있었다는 것 같다.
숲에서 가까운 라베린 도시에서도 몇 번이나 봤다는 말이 나왔다. 스켈레톤과 같은 하급 언데드는 물론이고 데스 나이트로 보이는 언데드도 부리고 있었다고 한다.
데스 나이트라면 상급 언데드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오러를 다루는 기사가 아니라면 대처하기 힘들다. 성수의 힘에 의지한다면 일반 기사들도 타격을 입힐 수는 있겠지만, 얼마나 많은 성수가 필요할지 짐작하기 힘들다. 거기에 주변을 지키고 있는 하급 언데드도 문제다.
자료에는 아직 확실한 사안은 아니라고 표시되어 있었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이야기가 실려있었다. 문제가 되기 전에 해결하는 게 좋겠지. 알베르트는 다 읽은 자료를 벽난로 안에 던졌다. 장작과 함께 서류가 타올랐다.
방에서 나온 그는 에일린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노크를 넣은 지 몇 초 되지 않아 반응이 돌아왔다.
방 안에서 나온 에일린은 쉬고 있었던 건지, 얇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문가에 기댄 그녀가 물었다.
“이 야밤에 무슨 일이야?”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괜찮다면 안쪽에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물끄러미 알베르트를 바라보던 에일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일린의 방은 상쾌한 향이 가득했다. 라시엘 공작의 서재와는 또 다르다. 숲속에 있는 것처럼 자연의 향취가 느껴졌다. 에일린이 꺼내준 의자에 알베르트는 앉았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녀는 이야기해보라는 듯 손짓을 해왔다.
“공작령에서 도는 소문의 네크로맨서를 알아보고 싶어.”
“무슨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그 헛소문 말이야? 너도 알고 있잖아. 아마 유피에르 황녀님에 관한 이야기가 곡해되어서 퍼진 거겠지.”
“헛소문이 아니야. 도둑 길드에 문의해봤는데, 아무래도 유피와는 다른 네크로맨서가 있는 것 같아.”
“사령술사가 실제로 있다. 흠, 그럼 나보고 알아달라는 거야?”
“그건 아니야.”
아니야? 에일린의 반문에 알베르트는 말을 이었다.
“내가 직접 움직일 거야.”
“아가씨는 어떡하고? 예전이면 모를까. 지금의 넌 아가씨의 전속 집사잖아. 자리를 비우는 게 힘들 텐데. 자유 시간이라고 해봐야 저택 내에서밖에 못 움직일 테고.”
“그래서 에일린의 도움이 필요한 거야. 나 대신 제안을 해줬으면 해.”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듯 그녀의 표정이 바꿨다.
“대외적으로 일을 해결하는 건 내가 되고, 실제로 움직이는 건 네가 한다는 거네.”
“맞아.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아가씨를 부탁할게.”
“그 정도야 문제없지. 알았어. 너한테는 빚이 있으니까.”
에일린은 알베르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실프와 운디네는, 책상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