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5화.오늘의 루드비히 저택(1) (135/200)

 # 135

오늘의 루드비히 저택(1)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귀족에게 모든 걸 빼앗기고 인생의 밑바닥으로 추락한 남자. 가족도, 돈도, 사랑하는 연인마저 잃어버린 남자는 금지된 숲으로 향했다. 숲에서 마족과 만난 남자는 자신의 영혼을 팔아넘겼고, 그 대가로 위험한 마법을 손에 넣었다.

사령술.

죽은 자를 다루는 금단의 흑마법.

네크로맨서가 된 남자는 언데드를 부리게 되었고, 저주받은 자들과 고향으로 돌아왔다.

남자는 복수에 성공했다. 방탕한 귀족은 언데드의 손에 죽었고, 영지는 불에 휩싸였다. 당초 목적과 달리 영지민을 남김없이 죽인 그는, 그렇게 손을 피로 물들였다.

“그 네크로맨서는 어떻게 되었어?”

“복수를 마친 네크로맨서는 삶의 목적을 잃었고, 마족의 의도대로 살아 있는 사람을 찾아 숲속을 헤매고 있다네요. 희생자를 언데드로 만들고, 그 영혼을 취하기 위해서 말이에요.”

으스스한 에일린의 목소리에 아리시엘은 마른침을 삼켰다.

“괘, 괜찮아! 우리 집은 사자기사단이 지키고 있잖아. 로엔 경도 있고, 아버님도 계셔!”

“어리네요, 아가씨. 검으로는 언데드를 죽일 수 없어요.”

“아, 안 죽는 거야?”

“그럼요. 언데드가 왜 살아 있는 사람들을 싫어하겠어요? 자신들은 쉬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으니까. 그 부조리함을 원망하면서 생자를 쫓는 거예요. 그러다가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실력자를 만나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욕구를 채울 수 있으니까요. 조심하세요, 아가씨. 혹시 오늘 밤 언데드가 이곳을 찾아올지도 몰라요. 날 죽여줘, 하고 말이죠.”

“안 죽는데, 죽여 달라고 찾아온다고? 무, 무슨 말이 그래?”

에일린은 좀비를 흉내 내듯이 두 손을 들었다. 아리시엘은 뒤로 물러났다.

뒷걸음질 치는 소녀의 어깨에 무언가 닿았다. 히익, 하고 아리시엘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겁에 질린 눈이 어깨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방긋 웃고 있는 실프와 운디네의 모습이 있었다.

얼굴이 빨개진 아리시엘은 앞을 보았다. 에일린이 짙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정말!”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랍니다. 재밌으셨나요?”

아리시엘은 얼굴을 돌렸다. 삐죽 입술을 내민 그녀는 대답했다.

“조금.”

“다행이네요.”

최근 공작령에서 떠도는 소문을 각색한 이야기였는데, 나름 마음에 드신 모양이다.

“혹시 숲의 마녀가 그 네크로맨서지 않을까?”

“숲의 마녀요?”

“응. 세바스찬이 그랬어. 숲 안에는 굉장한 실력의 마녀가 있다고. 있지, 그 마녀는 막 언데드를 부리고. 길 잃은 사람들에게 겁을 준다고 그랬어.”

“그렇지는 않겠죠.”

대답을 받은 것은 굵은 목소리였다.

검은 연미복을 차려입은 남자를 본 아리시엘은 에일린의 등 뒤로 숨었다.

“마녀에게 해를 입었다는 사람은 없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해를 끼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모르지. 홀로 지내다 보니까 외로움에 사무쳐서 미쳐버린 걸지도.”

그녀의 대답에 남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서 무슨 용무야, 알베르트?”

“아가씨의 간식 시간이야.”

알베르트의 손에 있는 것은 다과와 과일 음료다.

와, 하고 아리시엘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지만 그녀의 손은 여전히 에일린의 어깨를 꾹 쥐고 있었다.

“벌써 그렇게 됐어? 시간을 아주 칼같이 지키네.”

“이 정도는 기본이지.”

두 사람은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녹색 머리카락 뒤에 숨은 아리시엘은 고개만 쑥 내밀었다.

알베르트 라나. 신목 옆에 있는 묘비의 주인공이다.

불과 몇 달 전에 돌아온 남자는, 지금 아리시엘의 집사로 배정되어 있었다.

건장한 체구에 올려다 봐야 하는 키. 뒤로 묶은 머리도 꽤 길다.

깔끔한 세바스찬 집사장과는 정반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리시엘은 알베르트가 무서웠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둘이 있으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전속 집사라고는 해도 아침 시간에만 붙어 있을 뿐이지. 오후가 되면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 번은 아버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아직 배울 것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사란 모름지기 몸에 익혀야 할 기술들이 많다던가. 어려운 이야기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아가씨에게 이상한 이야기는 그만둬, 에일린.”

“남자의 질투는 추하네. 아가씨를 가져갈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질투라는 말에 알베르트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곤란해하는 집사가 재밌다는 듯 에일린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어떻게 아는 사이랬지?”

“금지된 숲에서 길을 잃은 알베르트를 저희 일족이 돌봐줬어요.”

“운이 좋았습니다. 설마 숲속에서 엘프와 만날 수 있을 거로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엘프……. 있지, 에일린. 나도 언제 한 번 초대해주면 안 될까?”

아리시엘의 눈이 기대감으로 빛났다.

대륙에는 이제 몇 남지 않은 엘프다. 그들의 마을에 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경험이 될 게 틀림없다.

사교회에 데뷔하는 순간, 말 그대로 화제의 인기인이 되는 것도 꿈이 아니겠지.

“물론이죠, 아가씨. 하지만 조금 기다려주셔야 해요. 일족이 다른 터전을 찾으러 떠난지라 저도 연락이 오는 걸 기다리는 처지거든요. 그 점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하고 싶네요.”

“괜찮아. 나는 루드비히 가의 아리시엘이니까. 그 정도 아량은 있어.”

양 허리에 손을 얹은 아리시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질리도록 배운 공녀의 자세와 마음가짐이다. 반쯤 졸면서도 해낼 자신이 있었다.

“또 이상한 바람을…….”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데.”

아리시엘의 곁에서 놀고 있던 두 정령이 알베르트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운디네와 실프가 양쪽에서 집사의 볼을 찌른다. 무섭게 느껴지던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졌다. 그 모습을 보고 에일린이 웃었다. 알베르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가를 구겼지만, 그것뿐이다.

두 사람을 응시하고 있던 아리시엘이 물었다.

“저기, 혹시 두 사람은 연인 사이야?”

“네?”

알베르트와 에일린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 에일린이 배를 누르면서 웃기 시작했다. 폭소에 가까운 모습이다. 처음 보는 식객의 반응에 아리시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손이 알베르트의 등을 때린다. 꽤 힘이 들어가 있는지 찰싹거리는 소리가 났다.

“제가 이 남자랑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아가씨.”

“아가씨. 에일린은 좋은 동료입니다. 그렇지만 그것 이상의 감정은 없습니다.”

“그래도 사이가 엄청 좋잖아? 노아가 그랬어.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고.”

“노아 누님이 또 이상한 말을 했군요.”

“그런 말도 있긴 하죠. 하지만 그럴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 남자, 좋아하는 여자가 있으니까요.”

“에일린.”

“있어?”

“왜? 거짓말은 아니잖아.”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아리시엘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알려줘, 알려줘. 하고 아가씨가 집사를 바라본다.

“아가씨가 알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입니다.”

“도망쳤어.”

“비밀이 많은 남자는 별론데.”

사족이 많은 여자다. 알베르트는 얼굴을 찌푸렸다.

“따로 이야기 좀 했으면 하는데, 에일린.”

“단둘이서? 이거 무서워서 어디 가겠나. 지켜주실 거죠, 아가씨?”

“무, 물론이야. 작은 검을 이끄는 자가 여기 있어! 자, 얼마든지 덤벼!”

“…….”

에일린의 앞으로 나온 아리시엘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알베르트와 마주한 아가씨의 눈은 시종일관 흔들리고 있었다. 사자 앞의 강아지 같다. 알베르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

집무실은 고급스러운 향이 가득했다.

이제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는 라시엘 공작의 이마는 깊게 패어 있었다. 평소보다 서류의 양이 많은 탓이다. 집중력을 올려주는 향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괜히 신경질적인 기분이 된다.

그런 주인의 마음을 읽은 건지, 곁에 서 있던 집사장이 향초를 바꿔 넣었다. 차분한 향을 맡은 그 얼굴이 한결 가벼워졌다.

라시엘 공작은 천천히 보고서를 훑어보았다. 「슬럼가에 유행하는 신흥 약」, 「무엇이든 맞추는 점쟁이」, 「잦은 실종 사건」, 「검은 손의 활동 영역」 , 「은빛의 인형사」.

그 손이 한 대목에서 멈췄다.

「금지된 숲에서 발견된 언데드」.

“드물군. 마물이면 모를까 언데드라니.”

“실체가 잡히기 시작한 것은 최근입니다. 거리에서는 언데드를 부리는 네크로맨서가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최근 사람들이 사라지는 건 네크로맨서가 언데드를 부리기 위한 사체가 필요하기 위해서라는 거죠.”

금지된 숲에서 마물이 발견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사자기사단의 순찰로는 안전이 확보되어 있었지만, 안쪽은 인외마경에 가까웠다. 하지만 언데드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아무리 금지된 숲이라도 언데드가 나타나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뒤에서 마족이 개입했을지도 모르겠어.”

“요 10년간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아예 안 보인 것은 아니지. 사실 여부는 둘째 치더라도, 이런 서신도 보내오지 않았나?”

“화친 말씀이시군요. 수도에서는 헛소리로 치부했다고 들었습니다만.”

“검을 맞대고 있는 우리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앞뒤 꽉 막힌 수도의 귀족들이 믿을 수 있을 리 없지. 뭐, 사신을 보낸다고는 하는데.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알 수 없군.”

마족이 보내온 화친의 서신.

스스로를 연(連) 제국으로 칭한 마족이, 북부 캘러미티의 움직임이 불온하니 협정을 맺자는 것이다. 마족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다. 일단 호뮈르 황제 폐하는 이야기라도 들어보자고 말씀하셨지만, 정계의 귀족들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루미에르 교는 침묵했다.

비오 교황과 프랑소와 성녀. 두 세력으로 나뉜 교단은 내부 알력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곧 판가름이 날 시기가 되었다고는 생각하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래도 덕분에 알베르트가 무사했다고 생각한다.”

“시기가 좋았죠. 정말 다행입니다.”

알베르트가 사라진 지 올해로 10년.

설마 죽었다고 생각한 남자가 무덤 앞으로 돌아올 거로는 생각도 못 했다.

청년이 되어서 돌아온 소년을 떠올린 라시엘 공작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남자다. 집사 시험을 치르는 와중 행방불명이 되어버린 견습 집사. 불상사에 대비해서 준 스크롤도 쓰지 않고 사라진 알베르트를 다들 죽었다고 여겼다.

사자기사단을 풀어서 몇 달 동안 금지된 숲을 수색했지만, 결국 시체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소중한 가신을 잃은 라시엘 공작은, 그를 기리며 신목 옆에 빈 무덤을 만들어줬다.

그 아이는 모르겠지.

라나 가문은 예로부터 루드비히 가에 충성을 바쳐온 집안이었다. 빈말로도 출중한 능력을 갖춘 건 아니다. 잘 가르치기만 한다면 라나 가문보다 더 뛰어난 사용인들을 고용하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루드비히 가는 라나 가문의 사람을 사용했다.

이유는 딱 하나다.

충신.

돈과 여자를 멀리하고 오직 루드비히 가에 충성을 바친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목숨을 이용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비정상적으로 느껴지는 그 충심이 있었기에, 라나 가문은 오랜 세월 루드비히 가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 혈통이 끊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설마 사랑하는 아내가 이미 끊겼다고 생각한 핏줄을 찾아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확인은 필요하겠지. 자네 생각은 어떤가?”

“엘프의 거처에서 지냈다고 하지만, 마기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신변을 맡아줬던 건 에일린의 일족이라고 들었다. 엘프들이 돌봐줬다면 마기에 노출된 시간은 생각보다 적었을 거로 생각한다.”

라시엘 공작은 흠, 하고 턱에 손을 얹었다.

가신을 의심하는 건 별로 탐탁지 않지만. 필요한 절차다.

“알베르트가 숨기고 있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힘. 엘프에게 배웠다고는 하지만…….”

“자기 한 몸 챙기기에는 너무 과분한 힘이죠. 하지만 알베르트가 스스로 쟁취한 것이라고 한다면, 저는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녀석 나름대로, 숲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아등바등 노력한 것이겠죠.”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다고 한들 정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나? 닭 잡는 칼이 소 잡는 칼이 되어버린 것 같이 말이야.”

“알베르트는 루드비히 가의 식솔입니다. 그 힘이 주인님을 향해 겨눠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지. 나도 알고 있다네.”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사안은 그 이야기가 아니었다.

알베르트가 말한 것. 라시엘 공작은 입에 담기도 부정한 그것을 떠올렸다.

“악마를 봤다고 했지. 그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

“당치도 않은 이야기죠. 하지만 알베르트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습니다. 악마가 아니라면, 악마와 비슷한 무언가를 봤다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악마라, 악마……. 마족이 우리에게 서신을 보내온 건 정말 악마 때문일까? 루미에르 교에서 말하는 신화 속의 괴물이 존재한다는 건가. 믿기 힘든 이야기군.”

마족에 관한 소문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의 귀에 들어온다.

그중에는 그들의 정체가 악마라는 풍문도 있었다. 그러나 악마와 마족이 다른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또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라시엘 공작은 사고를 털어냈다.

“검은 손은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지. 아직 물증이 없으니까. 녀석들도 경거망동하게 움직이지는 않을 거야. 우리와 척을 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을 테니.”

“알겠습니다. 그럼 예의 두 사람에게 계속 일을 맡기겠습니다.”

“그렇게 해주게나. 네크로맨서 건에 관해서는 금지된 숲 주변의 경계를 높이게. 가능하면 라베린 도시의 협조를 얻었으면 좋겠군. 보상은……. 그래. 언데드 별로 차등을 주기로 할까.”

“괜찮으시겠습니까? 네크로맨서에 관한 소문이 블러드 로열에 들어가게 되면…….”

“루미에르 교단이 움직이겠지. 누가 우리 영지로 내려올지 궁금하지 않나? 교단 내부의 상황이 좋지 않으니 아마 우리가 예상하는 아이가 내려오지 않을까 싶군.”

책상 위에 손을 얹은 라시엘 공작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서류에 실린 남자의 이름은 이안이었다.

*&*

아리시엘은 알베르트가 챙겨온 과자를 먹고 있었다.

오늘 처음 올라온 간식은 붉은빛으로 물든 쿠키였다. 딸기 맛이 나는 달콤한 쿠키는 자꾸 손이 갔다. 다람쥐마냥 볼이 빵빵해진다. 입안에 든 것을 넘기기 위해 그녀는 과일 음료로 손을 뻗었다. 잔이 비어 있다. 어떡하지, 하고 고개를 드는 것과 동시에 집사가 잔을 채웠다. 쿠키를 목 안으로 넘긴 아리시엘은 입을 열었다.

“이거 새로 들어온 쿠키야? 돼지 영감이 한 게 아닌 것 같은데.”

돼지 영감이라는 건 슈바인 요리장님을 말하는 걸까.

알베르트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입맛에 맞으십니까?”

“응. 맛있어.”

아리시엘의 취향에 딱 맞는다.

좀 더 달아도 괜찮았겠지만, 그러면 과일 음료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다. 쿠키를 만든 사람이 그것까지 고려한 거라면 정말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지 않을까?

반면, 에일린은 별로 마음에 드는 표정이 아니었다.

“너무 달달한 것 같은데. 다음부터 내건 좀 덜 달게 만들어줘.”

“선처할게.”

알베르트의 대답을 들은 아리시엘이 물었다.

“네가 만든 거야?”

“로날드에게 말해서 주방을 잠시 빌렸습니다.”

로날드라는 건 슈바인 요리장의 수제자다.

슈바인 요리장이 은퇴하고 나면 아마 그 남자가 저택의 요리장 자리를 맡게 되리라. 영감과는 달리 그럭저럭 이야기가 통하는 남자라서, 아리시엘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남들 모르게 쿠키를 몇 개씩 더 챙겨주기도 하고.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아리시엘은 쿠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몇 개 안 남은 쿠키 중에서 가장 큰 걸 골랐다. 그녀는 알베르트를 향해 쿠키를 내밀었다.

“자.”

“저한테 말씀입니까?”

“응. 먹어.”

“감사합니다, 아가씨.”

쿠키를 받은 알베르트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먹는 게 아니다. 쿠키를 손수건으로 감싼 그는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

“먹으라고 준 건데?”

“일하는 중인데 먹을 수는 없죠. 방에 가서 혼자 먹겠습니다.”

아리시엘은 무심코 에일린을 보았다. 아가씨의 시선을 느낀 그녀는 웃었다.

“원래 그런 남자예요. 아가씨가 좀 더 강하게 말하면 여기서 먹을지도 모르겠네요.”

“에일린.”

“그래? 그럼 여기서 먹어도 좋아.”

“…….”

알베르트는 쿠키를 꺼냈다.

아리시엘이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본다. 반짝거리는 아가씨의 눈을 앞에 둔 그는 소리 없이 쿠키를 먹었다. 쿠키가 집사의 입속으로 다 사라지자 그제야 아리시엘은 미소를 지었다.

“맛있어?”

“네, 맛있습니다.”

입안에서 부서지는 쿠키는 달콤했다.

특별한 것 없는 루드비히 저택의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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