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화.다녀왔습니다 (134/200)

 # 134

다녀왔습니다

신전은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를 통과한 빛이 떨어졌다. 형형색색의 빛이 본당 내부를 밝혔다. 예배 시간은 아직 먼 걸까. 넓은 본당 안에는 한 사람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반짝이는 은빛이 화려하다. 다프네 여신상 앞에 무릎을 꿇은 소녀는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프랑소와 성녀님을 뵙습니다.”

경건함이 느껴지는 성녀의 뒤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모노클을 쓴 준수한 외모의 남자를 성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얼굴을 보일 수는 없었다. 이곳은 여신님에게 기도를 올리기 위한 신성한 장소. 여신님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성녀는 함부로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됐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군요, 셀렌느 후작.”

크로만 공작 가문의 이단아.

검술과 마법에 모두 능한 마검사 셀렌느 크로만 후작의 이름은, 폐쇄적인 교단 내에서도 유명한 편에 속했다. 성가대와 신전기사단. 양측에서 모두 언급될 정도로 말이다.

“아르웬 성녀님께서 남긴 유산을 보고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보고 왔다기보다는…. 하멜 신관님께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신성력을 관측만 했을 뿐. 실제로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라면 들었습니다.”

“그럼 제 대답도 알고 계실 것 같군요.”

프랑소와 성녀는 고개를 저었다.

숨길 수 없는 고결한 신성력이 새어 나온다. 별무리가 지는 것처럼 은발이 아름답게 일렁였다.

“교황 성하의 귀에 들어갈 일은 없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건 다프네 여신님의 종복들뿐이니까요.”

“…….”

셀렌느 후작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모노클을 만지작거린 그는 한숨을 쉬었다.

“성녀님의 눈은 못 속이겠군요.”

“다프네 여신님은 모든 걸 보고 계십니다.”

“아니죠. 여기에 있는 건 성녀님뿐입니다. 여신님은 누구에게도 대답해주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설령 성녀님이라고 해도 말이죠.”

“위험한 발언을 하는군요, 셀렌느 후작. 재판받기를 바라신다면 언제든지 요청해주세요. 제가 친히 그대의 죄를 판가름하겠습니다.”

“성녀님이 주최하는 이단 재판이라니. 이거 농담도 못 하겠군요.”

그 자리에 오르게 되면 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없는 죄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소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크로만 후작은 이단자로 몰려 죽고 싶지는 않았다.

“보고 왔습니다. 정말로 있더군요, 아르웬 성녀님의 피를 이은 분이 말입니다.”

“역시 그랬군요.”

예상했던 대답이다.

무언가 홀가분해진 성녀는 자연스레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정녕 여신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제가 움직일 수밖에 없겠군요.”

“성녀님이 직접 말입니까? 그런 건 교황 성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교황 성하의 허락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신님의 대리인. 제가 허락을 받을 사람은 여신님 외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다.

성녀는 다시 두 손을 모았다. 못다한 기도를 이어가는 그 모습에 셀렌느 후작은 본당을 뒤로했다. 모노클 안의 눈동자는 의미심장한 빛을 품고 있었다. 성녀가 움직인다.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루미에르 교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한다는 말이다.

이 정보는 돈으로 환원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기도를 올리는 성녀의 뒤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남자는 다프네 여신상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가느다란 은발 아래로 날카로운 인상이 드러났다. 돌아보지 않는 성녀를 그는 가만히 기다렸다. 이윽고 기도가 끝났는지, 그녀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면회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무례를 용서하시길. 크로만 공작가의 이단아를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성녀님은 모르시겠지만, 그 남자는 위험합니다. 가능하다면 멀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신전기사단이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미카엘라 단장.”

“교황 성하가 탐탁지 않게 여기십니다.”

“모든 것은 여신님의 뜻입니다. 아니면 단장도 교황 성하가 여신님의 위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찌 그런 사람들이 교단의 장로라고 할 수 있는 건지. 길 잃은 양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우자(愚者)들을, 여신님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그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불쾌함이 어려있었다.

“그런 말이 아닌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여신님의 속삭임이 들립니다. 이만 자리를 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녀의 축객령을 들은 미카엘라 단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디 아르웬 성녀를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단지, 성녀님을 잃고 싶지 않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본당에는 다시 성녀 혼자 남게 되었다. 그녀는 다프네 여신상을 올려다보았다.

성녀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간절함을 담아 기도를 올려도 여신님은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녀가 처음으로 들었던 계시도 일방적인 속삭임이었다. 아르웬 성녀가 떠난 이후로, 모든 게 무너졌다. 곁에 남은 신성력만이 여신님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큰 위안은 되지 못했다.

여신님이 우리를 저버린 게 아닐까.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성녀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 계시를 듣기 전까지는.

“걱정하지 마세요, 여신님. 이전의 실패는 반복하지 않습니다. 프랑소와는 당신의 종복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

*&*

지아는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었다.

남장을 위해 더부룩하게 쳐두었던 머리는 불과 며칠 사이에 어깨선까지 닿고 있었다. 특색 없던 검은빛의 머리카락이, 지금은 하얀색과 검은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지만, 아직 당신의 몸은 불안정해요. 몸이 안정화되기 전까지는 약방에서 나가는 걸 허락하지 않겠어요.」

지아는 의녀의 말을 잠자코 따르기로 했다.

애초에 이곳을 떠나면 갈 곳도 없다. 슬럼가에 있던 집은 무너져버렸고, 같이 지내던 친구들도 목숨을 달리했다. 지금 와서 돌아간다고 해도 죽을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아는 그녀를 훔쳐보고 있었다.

매료될 것 같은 은빛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생각이니?”

은빛이 한숨을 쉬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몸을 숨기려던 지아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해요, 선녀님.”

“누가 선녀라는 거야.”

“그야….”

눈앞의 여인이다.

지아는 기억하고 있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선녀님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다는 걸. 그 따스한 감각은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정체가 사실 선녀님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지아에게만큼은 눈앞의 여인이 선녀님이었으니까.

“괜히 화풀이하지 마세요. 화풀이는 그 아이가 아니라 그 남자에게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언제 내가 화풀이를 했다는 거야?”

“자각이 없는 건 황녀님뿐이에요.”

“…….”

지아와 비슷한 또래의 여아가 선녀님의 곁으로 다가갔다. 한쪽 머리를 위로 땋아 올린 소녀는 분명 란랑이라는 이름이었다. 그녀를 돌봐주던 의녀의 따님분이다.

“마녀의 산으로 가신다고 했죠?”

“그래, 이번에는 내가 언니를 만나러 가야 할 차례야.”

“마녀의 산까지는 꽤 거리가 있어요. 사룡초를 드시긴 했지만, 아직 움직이는 건 추천해드릴 수 없어요. 못해도 몇 년은 더 요양하셔야 해요.”

“그건 너무 과장한 것 같은데.”

“환자마냥 계속 탕약을 입에 달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세요.”

얼굴을 찌푸리는 유피에르 황녀를 보며 란랑은 한숨을 쉬었다.

“별수 없네요. 마녀의 산으로 떠날 때는 말씀하세요. 황녀님의 몸은 제가 챙겨드릴게요.”

“무슨 말이야?”

“란에게 부탁받았어요. 황녀님의 몸에 아무 일 없게 해달라고.”

“부탁….”

무심코 그녀는 목걸이로 손을 옮겼다. 월편으로 만들어진 반지가 반짝거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지아는 입을 열었다.

“저기, 여행을 떠나시는 거면…. 저도 데려가 주면 안 될까요?”

“뭐?”

“시, 시녀라도 좋아요. 선녀님이 살려주셨으니까, 선녀님을 위해서 무언가 하고 싶어요.”

유피에르는 란랑을 보았다. 란랑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떠올랐다.

“잘됐네요. 집사도 없으니, 시녀라도 한 명 쓰는 건 어때요? 란도 좋아할 것 같은데.”

“너 말이야.”

무언가 생각하지 못한 쪽으로 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

이제는 움직이지 않는 친우의 위에 스켈레톤은 앉아 있었다.

골드 드래곤 카이넬리안. 이 친구와 함께 이곳에 갇힌 지 벌써 몇백 년이 흘렀는가.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떠날 거로 생각했던 친우는, 마지막 순간에서야 그 의무를 다할 수 있었다. 그 몸에 핀 사룡초는 보이지 않는다. 계승자가 모두 회수해 간 탓이다.

스켈레톤은 고개를 들었다.

공동은 참혹한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마법이 행사된 것처럼 구덩이가 파인 곳은 물론이고, 이곳저곳이 파괴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광경을 만들어낸 것은 마법이 아니다.

공동 곳곳에 남은 검격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것을 만든 것은 사람의 무공이다.

『흥, 애송이가.』

귀환이 늦어지더라도 무를 쫓고 싶다는 그 욕심.

녀석은 이미 집사가 아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그 자각이 있을련지는 모르겠지만.

공동 가운데에 박힌 지팡이 검을 보며 스켈레톤은 눈을 감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미련은 없었다.

『본의 아니게 같은 제자를 키운 셈이 되어버렸군.』

이것도 운명이라는 건가.

뒷일은 후세에게 맡긴다.

검성의 몸은 부드러운 모래로 변해 흩날렸다.

*&*

루드비히 가문의 영애인 아리시엘의 아침은 빠르다.

이제 11살이 된 소녀는 동이 떠오르는 것과 함께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에서 멍하니 두 눈을 깜박이고 있다 보면 전속 시녀인 노아가 방으로 들어왔다. 따뜻한 물을 준비해 온 그녀의 수발을 받은 아리시엘은 세면을 마쳤다.

단장이 시작된다.

노아는 단발인 아가씨의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리본을 장식했다. 머리 위의 머리카락. 마치 층이 생긴 것처럼 살짝 핏 포인트를 준 머리 모양은, 아가씨의 귀여운 면모를 강조하고 있었다. 어떠세요, 하고 묻는 노아의 물음에 아리시엘은 아직도 잠기운이 남아있는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이 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아리시엘은 밖으로 나왔다.

시끄러운 잔소리꾼인 노아는 그 곁에 없었다. 저택 내에서는 말괄량이로 유명한 아가씨다. 목 놓아 자신을 찾고 있을 불쌍한 노아는 아무래도 좋은지, 그녀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정원을 돌아보고 있었다.

정원을 관리하는 필립과는 마주칠 일이 없다.

저택의 정원사인 그는 멀대같이 큰 키 때문에 정원 어디를 가나 단번에 그 모습이 들어왔다. 필립이 향하는 곳을 피해 아리시엘은 정원을 오갔다. 어떨 때는 몸을 잔뜩 수그린 채 네발로 겨가거나,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채 시녀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비싼 원피스가 더러워지는 건 신경 쓰지 않는다. 흙과 풀이 묻어도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마치 이야기 속의 미궁을 탐사하는 기분이다.

멋진 용사처럼 위험한 몬스터를 피해 보물이 있는 장소로 향한다. 동료는 없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돌봐준 시녀는 입만 열면 잔소리밖에 하지 않았다. 완전 계모나 다름없는 그녀를 아리시엘은 귀찮기 짝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숨이 목 밑까지 차오른다. 활발한 성격과는 달리, 그녀의 체력은 아이의 것이었다.

몸을 쓰는 일에 능숙하지 못한 아리시엘의 체력은 쉽사리 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긴 정원길의 끝이 보인다.

수풀 아래로 드러난 굵은 뿌리를 본 아리시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드비히 가문의 수호수라고 불리는 신목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는 굳건한 가지를 뻗고 있었다. 가지에서 피어난 푸른 잎은 수를 헤아릴 수도 없다. 흩날리는 바람에 따라 쏠리는 소리를 내는 신목은 마치, 자연이 합창을 부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리시엘은 신목이 좋았다.

가문의 수호수라 칭해지는 이 나무 아래에 있을 때면. 노아의 잔소리도, 가문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아빠의 근엄한 목소리도, 영애가 지켜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엄마의 말도 잊을 수 있었다. 오늘도 신목 아래에서 쉴 생각에 부풀어 있던 아리시엘은, 화병에서 챙겨온 하얀 꽃을 꺼냈다.

신목 옆에는 집사 시험에 도전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한 시종을 기리는 묘가 있었다. 아리시엘이 찬 목걸이를 준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애석하게도 그녀는 그 사람의 얼굴조차 몰랐다.

그런데 그 묘 앞에, 오늘은 선객이 와 있었다.

검은 연미복을 입은 남자였다.

저택 내에서 집사를 상징하는 저 차림을 한 사람은 아버님을 보좌하는 세바스찬 집사장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아니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집사장이라고 보기에는 남자의 체구는 듬직한 편이었다. 키도 상당히 크다. 세바스찬의 말이 떠오른다. 집사에게 큰 키라는 건 당연히 요구되는 사항 중 하나라고.

새로 들어온 사용인일지도 모른다. 아리시엘은 헛기침을 터뜨렸다.

남자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생각보다 인상이 무서운 남자다. 괜히 인기척을 냈나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아리시엘은 나약해지는 자신을 다잡았다.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이 저택 내에서 그녀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용인은 없다. 비록 그녀의 차림이 흙과 나뭇가지로 더럽혀졌다고 해도 말이다.

아리시엘은 다급히 옷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넌 누구야?”

소녀의 나이에 어울리는 혀 짧은 목소리가 났다.

긴장한 나머지 말이 짧아졌지만, 이해하는 데 문제는 없겠지. 남자는 당돌한 아리시엘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이내 그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타인의 이름을 묻기 전에는 자신의 이름부터 밝히는 게 순서랍니다, 아가씨.”

“…….”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물론 그녀의 면전에서 말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하지만 아가씨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이름을 밝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죠. 다음부터는 꼭 사용인과 함께 다니시길 간청하는 바입니다, 아리시엘 아가씨.”

“노, 노아라면 화장실에 갔어!”

“화장실이요? 이상하군요. 대부분 일을 마치고 전담에 들어갈 텐데 말입니다.”

“큰 거! 큰 거를 보러 가서 시간이 좀 걸릴 뿐이야!”

“…….”

남자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지만, 아리시엘은 신경 쓰지 않았다.

평소에는 쓸데없는 시녀니까, 이럴 때라도 도움이 되라고! 한쪽에서 아가씨!? 하고 절규하는 노아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분명 환청이리라.

“대체자를 구하지 못하고 자리를 비운 모양이군요. 누님이 그런 실수를 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그보다 내 물음에 먼저 답해, 넌 누구야?”

화제를 전환하자.

이야기가 계속되면 거짓말을 한 게 들통날지도 모른다. 당황한 아리시엘의 물음에 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치 기사의 예를 보는 것 같다. 정중하게 예식을 차린 그는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리시엘 아가씨. 알베르트 라나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알베르트?”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이름이었다.

그 이름이 묘비의 주인공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알베르트 란.

그는 그리운 루드비히 저택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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