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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용의 무덤(2) (12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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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무덤(2)

드래곤의 발이 움직인다. 개미를 짓누르는 것처럼 가벼운 움직임.

그 아래에 있는 란랑은 반응하지 못한다. 사룡초를 든 그녀는 다가오는 드래곤의 발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다가오는 발.

멈춰버린 란랑.

소녀의 몸이 짓눌러지는 광경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알베르트의 몸이 튕겨지듯이 나아갔다.

란랑의 안전을 확보한다. 그녀를 뒤로 던진 알베르트는 지팡이 검을 뽑았다.

발검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 검기가 검사로 변하고, 검사가 검강을 갖춘다. 검붉은 강기는 드래곤의 발톱과 맞닿았다. 톡, 하고 살며시 부딪쳤을 뿐인데. 알베르트는 통로 뒤쪽으로 날아갔다.

“-!?”

“란!”

볼썽사납게 땅바닥을 구른다.

한 번, 두 번. 손과 땅이 맞닿는다. 바닥에 긴 상흔이 남는다. 간신히 충격을 줄인 알베르트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지팡이 검은 아직 그의 손에 잡혀 있다. 그러나 검신은 보이지 않았다. 발톱과 부딪친 것만으로도 검신이 부러진 건가. 드래곤은 두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살짝 구부린 발톱 앞에서 이글거리는 화염구가 나타났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사룡초는 회수했다. 목적은 달성했다.

란랑을 데리고 이 자리에서 도망친다.

몸을 구부린 알베르트보다 한발 먼저, 앞으로 뛰어나간 사람이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움직이는 것은 발이 아니다. 대지가 좁혀진다. 자신의 의사 대로 땅을 줄였다가 핀 그는 앞으로 나아갔다.

화염구를 지나치고, 순식간에 드래곤의 얼굴 앞에 도착한다.

황금빛 눈에 이채가 떠오르기도 전에, 남자의 주먹이 머리에 박혔다.

두 번의 굉음이 울렸다.

강기가 폭발하는 소리.

그것을 막은 장벽이 깨져나가는 소리.

폭발의 충격을 이용한 아랑은 몸이 떠올랐다. 알베르트처럼 자세가 무너진 것이 아니다.

일순간 그 발이 공중을 내디딘다. 분명 디딜 것이 없는 허공에서, 그는 무언가를 밟았다. 화염구가 아랑을 스치고 지나간다. 공중을 밟은 그는 재차 드래곤의 머리로 떨어졌다. 검은 발톱이 드리워진다.

아랑의 주먹과 드래곤의 발톱이 닿았다.

쩌적!

검은 발톱이 끊어졌다. 공중에서 제비를 돈 아랑은 지면에 떨어졌다. 충격을 줄인다. 한 번, 두 번. 발로 제동을 건 그는 한 손에 란랑을 잡았다. 알베르트의 근처까지 물러난 그는 쳇, 하고 혀를 찼다.

“진짜 용종이다! 물러나라, 사제. 저건 이길 수 있는 게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 시간을…….”

“시간은 무슨!? 용종은 자연이나 다를 게 없다. 니는 자연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저건 순환대로 흘러갈 뿐인 존재다. 뒤도 보지 말고 토껴라!”

아랑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섞여 있었다.

아무리 그라도 드래곤을 상대로는 이길 수 없다. 이곳에서 벗어난다. 퇴로는 들어온 정원밖에 없다. 드래곤은 세 사람을 관망하지 않는다. 부서진 발톱을 보고 있는 황금빛 눈에 불쾌함이 어렸다. 뿔 위로 전기가 튀어 오른다. 파지직, 하고 전격이 내달렸다. 알베르트는 반응할 수 없었다.

어느새 그 앞으로 튀어나온 아랑의 발이 땅을 내리쳤다.

지면이 그의 의지에 답한다. 토사물이 거꾸로 솟아난다. 겹겹이 솟아난 벽은 전격의 앞에 방패를 만들었다. 그 수는 총 열 개. 검은 전격과 대지의 방패가 충돌했다.

대지가 만든 열 겹의 벽은 순식간에 돌파당했다.

생각할 것도 없다. 란랑을 손에서 놓은 아랑의 주먹이 강기로 물들었다.

심혼권 오의

파쇄(破碎)

벽을 꿰뚫은 검은 전격과 아랑의 주먹이 경합한다.

전격이 깨져나갔다. 주먹을 타고 올라오는 짜릿한 느낌에 아랑은 몸을 떨었다. 호신강기(護身罡氣)를 두르고 있음에도 충격을 전부 줄이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은 벌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딸아이를 옆구리에 낀 아랑은 유적지의 천장으로 뛰어올랐다. 알베르트는 그 뒤를 따랐다. 두꺼운 천장은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휘몰아치는 강기가 출구를 만들었다.

바깥 공기가 유적지 안쪽으로 떨어진다.

유적지 바깥으로 나온 세 사람은 그제야 웅크리고 있던 드래곤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유적지는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들이 눈에 담았던 유적지는 정면만 무사했을 뿐이다. 드래곤이 웅크리고 있는 유적지의 뒷부분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세상의 끝에 반쯤 삼켜진 상태다. 검은 안개 속에서 드래곤의 날개가 움직였다. 유적지의 반쪽을 차지하고 있던 드래곤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두 눈에 담을 수도 없는 엄청난 크기의 드래곤이다.

고룡.

눈앞의 드래곤은 모든 성장을 마친 에이션트 드래곤(Ancient Dragon)이었다.

세상의 끝에 몸을 담근 드래곤은 너무나도 작은 세 존재를 바라보았다.

『그런가. 드디어 계승자가 온 것인가. 이제야 이 몸도 쉴 수 있겠군.』

머릿속에서 울리는 드래곤의 의사를, 세 사람은 들었다.

『오너라, 계승자여. 그대를 기다리는 자가 있다.』

계승자?

분명 제갈윤 공자가 언급했던 이야기다. 유적지의 안쪽을 지키고 있는 고룡은 계승자가 아니면 안쪽으로 들어가는 걸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무슨 귀신 씨 나라 까먹는 소리를 하는 긴가. 가제이, 사제. 목적은 달성했네.”

당초 목적으로 했던 사룡초는 란랑이 들고 있다.

유적지의 안쪽에 무엇이 있든, 그들과는 상관없다. 만약 드래곤이 세 사람을 추적한다면 모를까.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아랑과 란랑은 뒤로 살며시 물러났다. 그러나 알베르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세상의 끝.

드래곤의 섬.

눈에 익숙한 유적지의 방.

이곳이 전환점이라는 걸, 알베르트는 간신히 깨달았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랑 사형.”

“사제?”

“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두 부녀의 시선을 받으며, 그는 드래곤에게 물었다.

“위대한 존재여. 계승자라는 건 절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계승자여. 이 몸과 함께 가주었으면 하는군.』

드래곤의 대답에 알베르트는 확신했다.

진작 알아차렸어야 했다.

아무도 못 알아본다고 해도, 알베르트만큼은. 루드비히 가문에서 평생을 지내온 알베르트 란만큼은 바로 알아차렸어야 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방.

어디서 본 것 같은 후원.

루드비히 저택에서는 결코 내려갈 일이 없는 초대 가주의 초상화.

기억을 깨우듯이 준비되어 있던 모형은 전부 그를 위해 준비되어 있던 물건이었다.

혹여라도 도착한 그가 길을 잃지 말라고.

혹여라도 외면하고 떠나지 말라고.

그가 두고 왔던 추억의 편린이 이곳에 있었다.

“제가 받은 마지막 명을 완수할 때인 것 같습니다.”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찬란한 금빛이 지금 당장이라도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내는 지금 사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겄구마.”

“제가 설명한다 한들 믿지 않으실 겁니다.”

두 사람의 이해를 바랄 수는 없다.

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건 알베르트뿐이다.

“니는 바보구만.”

“죄송합니다, 아랑 사형.”

마음을 굳힌 사제의 눈을 본 아랑은 한숨을 쉬었다.

“란랑, 하나만 부탁할게. 유피에게. 나는 이만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해줘.”

“그게 무슨 소리예요? 갑자기 왜 그래요?”

“언젠가, 내가 다시 그 성으로 찾아간다고. 그 말만 전해줄 수 있겠어?”

“…….”

알베르트가 꺼낸 그 말은, 마지막 인사였다.

드래곤을 따라간다면 세상의 끝에 들어가는 걸 피할 수 없다. 유적지의 중심부는 이미 잠식당한 상태였으니까. 시공간이 비틀린 장소. 세상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공간. 그러나 알베르트는 가야만 했다.

그분이, 자신을 찾고 있었다.

“죽으러 갈 생각이에요?”

“아니,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알베르트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다는 란랑을 뒤로한 채 아랑이 말했다.

“가봐라. 황녀에게는 내가 잘 말해놓으마. 하지만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마, 니가 덜컥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내도 황녀에게 할 말이 없다.”

“아빠까지 왜 그래요?”

“사제가 정한 거다. 우리가 간섭할 일이 아니데이.”

란랑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이제 막 정이 들기 시작했는데, 이런 식으로 헤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것 같다.

“감사합니다, 아랑 사형. 그리고 하나만 말하고 싶습니다.”

“치아라. 재수 없게 떠날 때 말하지 말아라. 그런 건 돌아와서 이야기해라.”

“아뇨.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형은 조금만 더 솔직해져도 란랑에게 사랑받으실 겁니다.”

“…….”

떠나는 순간 꺼낼만한 말은 아니었다.

아랑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더니,

“니 정말로 죽고 잡나?”

부드러운 웃음을 그 얼굴에 띄웠다.

란랑은 알베르트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시선이다. 란랑의 손에는 사룡초와 하얀 모자가 쥐어져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아가씨를 닮은 이 아이는 이제 헤매지 않을 것이다. 알베르트는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손을 든다. 악수하고 싶었지만, 란랑은 반응하지 않았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입을 열었다.

“유피를 부탁할게.”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무언가 호소하는 소녀의 시선을 뒤로한 알베르트는 유적지 안쪽으로 뛰어내렸다.

드래곤은 내려오는 그를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렸다.

세상의 끝과 맞닿은 유적지 안쪽으로, 알베르트와 드래곤은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아랑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소매를 누군가가 당긴다. 사랑스러운 딸아이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아빠.”

“안 된다. 가자.”

“아빠.”

“란랑.”

“아빠…….”

울먹이는 딸아이의 머리에 아랑은 손을 올렸다.

“사내가 정한 일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사제가 어디 가서 죽을 실력은 아니니까.”

“…….”

끝내 란랑은 울음을 터뜨렸다.

소녀의 발치에는 사룡초와 하얀 모자가 떨어져 있었다.

*&*

알베르트는 드래곤과 함께 유적지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세상의 끝을 유지하는 검은 안개를 지나쳐 안쪽으로, 점차 안쪽으로 들어간다. 지척에는 드래곤의 모습이 있다. 바깥에서는 몰랐지만, 이렇게 가까워서 보니 드래곤의 모습이 온전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피막과도 같은 날개는 곳곳이 찢겨 있고, 어떤 광물보다 단단하다는 드래곤의 비늘은 상처 자국이 가득했다. 늠름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 터인 뿔도, 뭉툭하게 부러져 있다. 그것도 모자라 남은 뿔도 금이 가득했다.

『계승자여, 이 몸은 아주 오랫동안 자네를 기다려왔네. 이제 이 어긋난 순환이 끝날 때가 왔으니, 이 몸도 편히 쉴 수 있겠군.』

“위대한 존재여. 당신이 마지막으로 남은 드래곤입니까?”

『아니, 이 세상에 남은 동족은 없다. 나 또한 잔류하고 있을 사념일 뿐.』

“사념? 당신도 이미 죽은 존재라는 말입니까?”

『순환은 언제까지고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 틀에서 벗어난 순환은 세상을 망가뜨릴 뿐이다. 조정자인 이 몸이 지금까지 목숨을 연명해온 것도 우스운 일이지.』

명쾌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드래곤이 안내해준 곳은 커다란 문이 있는 유적지의 안쪽이었다. 그 앞에는 검 문양이 박힌 깃발이 있었다. 색이 바랜 깃발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낡아 있었다.

『가거라. 그리고 그대를 기다린 자를 만나거라, 계승자여.』

“위대한 존재여. 혹 그대의 이름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알베르트의 물음에도 드래곤은 대답하지 않았다.

두 눈을 감은 그는 천천히 몸을 대지에 붙였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

조언을 얻기 위해 알베르트는 천칭을 찾았다. 그러나 그 또한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 몸 안에서 느껴지는 그의 존재가 흐려져 있었다. 마치 악몽 속에 몸을 담근 것 같다. 세상의 끝.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 도움을 바라는 건 힘들 것 같다.

알베르트는 깊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이 앞에 무엇이 있다고 한들 놀랄 필요는 없다. 각오를 마친 그는 두 문을 밀었다.

문 안쪽에서 드러난 방은 적막감에 가라앉아 있었다.

듬성듬성 빛이 들어오는 홀이었다. 이곳까지 해수가 들어왔던 것인지, 해초와 이끼가 예식용 검 위에 자라나 있었다. 예술적 가치를 중시했을 초상화가 벽면에 걸려있다. 녹슬어버린 풀 플레이트 메일이 홀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알베르트의 기억에 있는 어느 저택과 똑같은 모습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안쪽에 준비된 무대가 보이지 않는다.

무대가 자리했던 그곳에는 왕좌가 있었다. 낡은 왕좌에 앉아 있는 것은 싸늘하게 식은 백골이다. 왕좌의 뒤로는 계단이 보였다. 이 저택의 주인을 칭송하며 만든 조각상이 있어야 할 그곳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낡은 그릇이 떠 있었다.

어쩐지 눈에 익은 물건이다.

분명 양양 성에서 봤던 몽환기다. 왜 저 물건이 여기에 있는 걸까? 몽환기는 두 개다. 한 개는 양양에서 부서졌을 테고, 남은 한 개는 세실리아가 갖고 있을 터. 왜 한 개가 더 있는 걸까? 확인을 위해 알베르트가 방 안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왕좌에 앉아 있던 해골이 고개를 들었다.

“늦었군, 친구. 정말로 늦었어.”

낮게 읊조리듯이 흘러나온 말은 제국의 언어였다.

낡은 의복을 입은 해골의 손끝에서 불길이 타올랐다. 그 안에서 한 자루의 검이 나타났다.

찬란하게 빛나는 붉은 보검.

화려한 장식은 이미 빛이 바래졌지만, 알베르트는 해골이 쥔 검을 알아보았다.

잘못 볼 수가 없다.

루드비히의 사용인들은 절대 착각할 수 없는 검이다.

루드비히 가문의 신물.

해골이 쥔 검은 제국 4대 명검 중 하나인 유그피르의 검이었다.

“그래. 이제야 다시 검을 겨룰 수 있겠군. 그런데 이거 어떡하나. 나도 예전 같지가 않네. 정말로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어. 이런 곳이 아니면 이렇게 몸을 유지할 수도 없다니. 우스운 일이지. 진작 순환을 따라 사라졌어야 할 내가 이렇게 생을 고집하고 있다니. 그래도 말이야. 후회는 없구만. 나는 자네가 찾아올 거라고 믿고 있었네. 그렇지 않은가? 우리의 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알베르트는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둘째치고, 평범한 해골이 아니다. 손바닥이 축축하다. 눈앞에서 느껴지는 기도는 지금까지 봐온 어떤 상대와도 비교할 것이 못 된다. 몸 전체를 짓누르는 기운. 눈을 감는 순간, 목숨을 빼앗길 것 같은 위압감. 알베르트의 목숨은 해골이 쥔 검 끝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 압도적인 기운은, 그의 사부님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던 기도였다.

“검을 들게, 천마.”

천마.

해골은 그 별호를 입에 담았다.

왕좌에서 일어난 해골은 유그피르의 검을 알베르트에게 겨누었다.

온다.

사고(思考)보다 먼저, 알베르트의 손은 월아를 쥐고 있었다.

기적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단 한 번의 부딪침. 쾅, 하는 충격과 함께 알베르트의 몸은 균형이 무너졌다. 아픔. 반전하는 시야. 사고를 수습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순간 답을 찾은 사고가 몸에 명령을 내린다. 무덤의 벽을 밟은 알베르트는 지면에 착지했다.

검을 들 필요는 없었다.

후속타는 오지 않는다. 유그피르의 검을 뽑은 해골의 몸이 재생하고 있었다.

마치 무덤 수호자를 보는 것 같다.

시간이 거꾸로 돌아간 그의 의복은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것이었다. 눈에 너무나도 익숙한 의복이다. 루드비히 저택에서 항상 보았던 초상화의 주인공.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완전히 재생된 그 옷자락에는 부정할 수 없는 가문의 상징이 떠올라있었다.

날카로운 검 문양.

알베르트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던 가문의 문장이 그 남자의 옷에 새겨져 있었다.

“내 일검을 받아낼 수 있던 건 자네뿐이었지. 각오하게나, 천마. 이 검성의 검을 받아보게.”

검성 블라드 루드비히.

제국의 전설적인 영웅이 알베르트의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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