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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전조(1) (122/200)

 # 122

전조(1)

알베르트 란은 이상한 남자다.

15살 소녀인 치우 란랑은 그렇게 생각했다. 나이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용모만 놓고 본다면 20살 정도나 되지 않을까.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 한들 25살 아래로 보인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겉모습뿐이다. 여로를 함께 다니면서 알게 된 건데, 말투는 물론이고. 행동도 묘하게 어른스러운 것이 실제로는 나이를 더 먹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그렇다.

촌장은 한밤중 마을로 찾아온 세 명의 외지인을 의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로 들이는 걸 거절하고 있다. 촌장의 대처를 원망할 수는 없다. 시간 때도 시간 때일뿐더러, 세 사람의 모습은 신용을 주기 힘들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건 포기하는 게 좋으려나.

“흠, 몸이 안 좋은 동생을 위해서라……. 기특하기는 하지만.”

“정 그러시면 따로 떨어진 빈집이라도 괜찮습니다. 광장 위쪽의 집은 불이 안 들어와 있던 것 같은데, 그쪽은 어떻습니까?”

알베르트는 넉살을 떨어가며 어르신을 설득하고 있었다.

우리를 가족이라고 소개한 것 같다. 기대하기 힘들 거로 생각했는데, 촌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잘 수 있다는 건 솔직히 기뻤다.

노숙만 하다 보니 몸의 피로도 안 풀리고,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 때문에 땀도 많이 났다. 슬슬 한계에 가까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제법이구마. 그렇지 않나, 우리 공주님?”

“그러네.”

어떤 마법을 부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도 마음에 든 느낌이고.

란랑은 조금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아랑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설마 외간남자에게 무공을 사사해줄 거로는 생각도 못 했다. 아랑은 그녀에게 호신술이라는 이름으로 겉핥기식의 무공밖에 가르쳐주지 않았다. 일반적인 사제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이 무공은 일인 전승이니까. 우리 공주님은 더 배울 필요 없다. 그렇게 단언한 주제에.

물론 그녀가 무공을 배우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야만적이고 폭력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무공은 가르쳐준다고 부탁해도 배우고 싶지 않다.

단지,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다.

“빈집을 써도 좋다는군요. 아랑 사형.”

“잘 됐구마이, 오늘은 푹 쉴 수 있겄구만.”

그렇지 않고서는 이 짜증 나는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빈집을 얻은 세 사람은 짐을 풀었다. 짐은 대부분 란랑의 것이었다.

옷가지를 비롯해 어머니가 혹시 몰라 준비해준 약이 많았다. 여로에 다친 이들이 있으면 그들을 위해 약을 아끼지 말아라. 지식을 가진 이는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의술을 베푸는 것은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어머니의 뜻이다.

란랑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에게 약자를 위해 의술을 펼쳐야 한다는 사명감은 없었다. 어머니가 슬퍼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노력할 뿐이다. 이 자리에 어머니는 없다. 따라서 그녀가 의술을 쓸 일도 없었다. 환자가 있어도 못 본 척 넘어간다. 치료는 별개로 치더라도, 그 모습을 보는 건 재밌었다.

짐을 풀자마자 수련에 들어서는 일행을 지나친 란랑은 욕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그녀는 시선을 들었다. 거미줄이 쳐진 창 밖으로는 밤하늘이 엿보였다. 으슥한 산골 자락에 있어서일까. 마치 집에서 홀로 올려다보는 하늘처럼 보였다.

그것이, 정말로 기분 나빴다.

그녀는 물속으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뜨거운 기운이 머리를 덮었다. 그러나 울적한 사고는 지워지지 않았다.

란랑은 늘 혼자였다.

어머니는 항상 마계 전역을 돌아다녔다. 뛰어난 의술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을 베푸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아직 어린 란랑을 집에 둔 채 말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에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아버지는 허구한 날 집을 비웠다.

밖을 싸돌아다니면서 싸우는 것을 낙으로 삼는 남자다. 간혹 집에 돌아와도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어머니가 없는 집에 피 냄새나 풍기면서 돌아오는 남자 따위,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좋아할 수 없는 남자다.

처음부터 아버지 노릇을 포기한 사람이다.

이제 와서 아버지처럼 군다고 해도 받아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은 아버지가 밉지 않았다.

물속에서 얼굴을 꺼낸 란랑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내도 멍텅구리구마, 정말.”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모르겠다니. 어딘가 망가진 게 틀림없다.

여로에 오른 지 벌써 반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놀라울 정도로 특별한 일은 없었다. 어머니는 혹여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 많았지만, 아버지가 함께 온 이상. 만에 하나라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아랑은 아버지로서 수준 미달이어도, 무공에 관해서는 압도적인 사람이었으니까.

가볍게 발을 내딛는 동작 하나하나.

혈도를 타고 움직이는 내공 하나하나.

그 모든 걸 연결하는 흐름은 이미 아름다운 춤에 가까웠다.

그걸 보고도 평범하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소감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아니, 그런 사람이니까 아버지와 결혼한 걸지도 모른다.

깨끗한 수건으로 몸을 닦고 나온 란랑은 수련에 매진하고 있는 알베르트를 볼 수 있었다.

명상을 취하듯이 눈을 감은 남자의 주변에서는 하얀 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찬물을 입으로 가져간 란랑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법과도 같은 광경이지만, 이건 마법이 아니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버지?’

『하모. 간단한 이야기데이. 극한에 달한 무공은 마법에 가깝단다.』

살며시 떠오른 기억에 란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다. 추억 같은 것도 아니다.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꽃송이가 늘어난다.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던 란랑은 손바닥을 폈다. 집중한다. 몸에 흐르는 혈도의 내공. 아버지가 가르쳐준 원리로 운용한 내공을 형상화한다.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알베르트가 피워내는 것과 비슷한 꽃이 자라났다. 하지만 색이 다르다. 난초향이 나는 하얀 꽃과는 다르다. 그녀가 피운 꽃은 금방이라도 피가 떨어질 것 같은 선혈의 꽃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공을 가라앉힌다. 꽃을 거둔 란랑은 아버지에게 말했다.

“욕실 비었어.”

“알았데이. 조금만 보고 있어 줄 수 있겠나, 우리 공주님? 꽃이 멈추면 이 지팡이로 휙 때리면 된다. 그렇다고 너무 세게 때리지는 말아라. 저 상태에서 맞으면 꽤 아프단다.”

“꽃이 지면 어떻게 할까?”

“그건 괜찮지. 꽃이 지는 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데이. 그거야말로 자연스러운 순환이니까 말이다. 꽃이 져야만, 그 끝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잔말이 많은 아버지를 쫓아낸 란랑은 자리에 앉았다.

집중하는 알베르트의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본신의 힘을 다루고 있는 걸까? 마기의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가진 내공의 특성이라는 게 맞으리라.

늘어나던 꽃이 멈췄다.

알베르트의 주변에 피어난 꽃은 열 송이다. 집중이 깨졌는가 싶어 살펴보고 있잖니, 꽃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좀 더 섬세하게 변해간다. 내공의 밀도를 높이고 있다. 여행을 나왔던 첫날에는 그저 주변에 흩뿌리기만 했을 뿐인 꽃이다. 그것도 검이 없으면 불러내는 것도 무리였는데. 지금은 아예 다르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니, 순식간에 흡수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버지가 잘 가르치는 걸까. 그렇지 않으면 이 남자의 재능이 뛰어난 걸까. 어떤 거든 상관없다. 란랑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보고만 있는 것도 재미없다.

그녀는 손바닥 위에서 꽃을 피웠다가, 지기를 반복했다.

열 송이의 꽃이 단번에 진다.

후우, 하고 숨을 내뱉은 알베르트는 눈을 떴다.

“아랑 사형은?”

“씻으러 갔어요.”

알베르트의 머리를 향해 란랑은 지팡이를 들었다.

불쾌하게도 이 남자는 지팡이의 움직임을 잃고 손을 뻗었다. 왜 때리냐는 시선에, 란랑은 볼을 부풀렸다.

“아버지가 그랬어요. 멈추면 때리라고.”

“오늘 할당 몫은 끝났는데.”

“그건 제가 알 바 아니에요.”

란랑은 손목을 틀었다. 지팡이의 움직임이 변화한다.

돌아간 지팡이의 끝이 알베르트의 관자놀이를 노렸다. 알베르트는 가만히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팡이의 끝을 잡고 역으로 손에 넣으려 한다. 란랑은 손을 놓지 않았다. 휙, 하고 가벼운 란랑의 몸이 알베르트에게 날아갔다. 균형을 잡을 수가 없다. 무너지는 그녀의 몸을 알베르트가 잡았다.

“…….”

난초 향이 났다.

수련으로 단련된 몸이 느껴졌다. 란랑은 알베르트의 품에 안겨있었다.

“괜찮아?”

그 물음에 란랑은 손을 들었다. 딱, 하고 그 머리 위로 지팡이가 떨어졌다.

*&*

늦은 저녁을 든다.

식사를 준비한 것은 알베르트였다. 황녀님의 집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남자의 요리는 맛있었다. 오늘도 그렇다. 낙양에서는 보지도 못했던 요리다. 이국적인 풍미가 느껴지는 야채 요리는 버블 뭐시기 라는 모양이다. 분하지만 맛있다. 정말로.

“입맛에 맞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그냥 먹을만한 정도네요.”

란랑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좀 더 강하게 부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먹을 걸 가지고 거짓말을 하는 것만큼 나쁜 건 없다. 식사에 그리 집착하지 않는 아버지도 알베르트의 요리를 먹을 때면 말이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식사를 할 때는 대화가 오가지를 않았다. 조용한 식사는 싫다. 항상 혼자서 밥을 먹던 일이 생각나서, 기분이 울적해졌다.

내키지는 않지만, 란랑은 알베르트를 향해 물었다.

“알베르트는 언제부터 황녀님과 지낸 거예요?”

“유피랑?”

그 호칭은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이 남자는 건방지게도 황녀님을 애칭으로 불렀다.

황녀님도 알베르트를 친근하게 부르고 있었는데, 둘의 사이는 주종관계라고 보기에는 너무 가까웠다. 무엇보다 황녀님을 사랑한다고 말한 남자다. 제정신인 걸까? 이 남자가 누굴 좋아하는 건 아무래도 좋다. 다만, 그 대상이 황녀님이라는 건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러네. 정말 오래 지냈지. 벌써 2년 정도 된 것 같아.”

“겨우 2년이요?”

“2년이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은 30년 정도야”

“…….”

뭐가 30년이라는 거야. 진짜로 미친 거 아니야?

웃음을 머금은 알베르트의 얼굴은 쑥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이걸 이야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물어봐 주면 대답하지 못할 것도 없는데. 황녀님 이야기만 하면 표정 관리를 못 하는 남자다. 란랑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진심을 담아 그 얼빠진 볼을 때려줄까 하다가, 손을 내렸다.

“정말로 황녀님이 좋은가 보네요, 알베르트는.”

“말했잖아.”

“전 이해할 수가 없네요.”

“너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알게 될 거야.”

“해도 모를 것 같아요.”

사랑에 빠진다고 해도, 이 남자처럼 일직선으로 달려갈 자신이 없었다.

분명 자신은 이해할 수 없겠지. 만약 그런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그건 누군가 자신을 애타게 바랄 경우지 않을까. 란랑은 그렇게 생각했다.

“걱정하지 말그라, 우리 공주님. 이 아부지를 닮은 괜찮은 남자가 올 기다.”

“아버지랑 닮아? 끔찍하네.”

“끄, 끔찍?”

“차라리 혼자 살고 싶을 정도야.”

“…….”

풀이 죽은 아버지는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란랑은 인심 한 번 쓰기로 했다.

“그래도 역사학자면 좋겠네. 집에 자주 있을 거 아냐.”

“그런가? 역시 우리 공주님이구만!”

란랑은 비꼬는 의도로 한 말이었는데, 아버지는 기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란랑은 어머니가 왜 아버지와 결혼했는지, 아주 약간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외인들에게는 무정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차가운 남자지만, 가족에게만 보여주는 얼굴은 종종 귀엽게 느껴졌다.

귀여워? 말도 안 돼. 누가? 문득 떠오른 감상에 란랑은 고개를 털었다.

“역사하니까 기억난 건데. 알베르트는 란 가문이라고 했지? 아버지. 지난번에 사군자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지? 그냥 이름이 같은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그 이야기 좀 들려주면 안 돼?”

“응? 무슨 말인지 아부지는 잘 모르겠구만.”

아랑의 표정이 이상하다.

알베르트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란랑은 알아차렸다. 거짓말할 때의 표정이다. 뭔가 이 남자가 듣기 곤란한 이야기가 있는 걸까. 아니면 맨입으로는 알려주기 싫은 걸까.

“뭘 몰라. 분명 사군자에 관한 책이 집에 있던 걸 기억하는데.”

“누구 딸 아니랄까 봐 기억력도 좋구만. 그랴, 좀 더 떠올릴 수 있다면, 내 특별히 말해줄 수도 있데이.”

별로 알베르트를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좋은 음식을 먹은 답례는 해주는 게 좋으리라. 빚을 지고 싶지는 않다.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란랑은 천천히 기억을 되짚었다.

“사군자라고 하면 매란국죽이겠지. 국과 죽은 죽었다고 들었어. 천마의 곁에 있었다고 했지. 무슨 호법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음……. 매는 암독제랑 활동했다고 들었어.”

“그랴그랴. 한 번밖에 안 말했는데 잘 알고 있네. 그러면 란은 어떻게 되었나?”

“으음…….”

분명 뭐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난다.

“모르면 대답은 못 해주겄구만.”

“아버지는 진짜 못됐어. 사실은 기억 안 나는 거 아냐?”

“마, 약속은 약속인기라.”

“조금만이라고 했잖아. 난 이미 셋이나 말했어. 그럼 과반수잖아.”

“…….”

아랑은 란랑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다. 딸내미를 이기는 아버지는 없다. 란랑의 눈치를 살피던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사군자(四君子)라는 가문은 말이데이. 일찍이 천마가 거둔 가문이다.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따로 안 말해도 되겠지. 매란국죽(梅蘭菊竹). 그 곁을 지키고 있던 좌호법과 우호법이 국과 죽. 그의 사후에 암독제가 남긴 비밀금고에 검을 숨겼다는 매가 있고, 마지막으로 남은 란은 서쪽으로 향했다고 하지.”

“서쪽에는 제국이 있잖아.”

“하모. 천마의 밀명으로 란 가문은 제국에 갔다는데. 그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밀정으로 보냈다는 말도 있고. 화친을 맺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지. 뭐, 이 아부지의 생각은 다르다만.”

궁금해하는 두 청취자의 눈빛에 아랑은 으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당시 제국에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기사가 있었다. 알고 있나?”

“블라드 루드비히 말씀이군요.”

“그랴. 전설이 맞다면 그 남자는 천마와 검을 겨뤘다는 기사다. 그리고 천마와 검을 맞대고도 살아남은 유일한 기사지. 천마는 그 무가 마음에 들어 검성이라는 별호를 지어줬다고 한다. 그런 검성을 위해서 천마가 선물 하나 정도는 줬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럴 이유가 어디 있어. 검성은 천마의 적인데.”

당치도 않다는 딸아이의 말에 아버지는 웃음을 머금었다.

“마, 같은 무를 향해 달려가는 무인에게 적이 어디 있나. 오히려 자신과 비슷한 성취를 이룬 남자가 있다면 친구가 되는 것이 무인이다. 검성과 천마는 둘도 없는 친구였을 게야.”

“…….”

뜬구름 잡는 소리다.

이건 가도 너무 갔다. 란랑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알베르트는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그는 손으로 턱을 쓰다듬고 있었다. 생각에 잠긴 그 모습은 이상하게도 란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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