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7화. 삼자대면(三者對面) (117/200)

 # 117

삼자대면(三者對面)

화려한 의자에 유피는 몸을 맡기고 있었다.

야명주로 빛나는 방 안은 그녀가 앉은 것처럼 두 개의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원형 탁자를 앞에 둔 그녀는 라피엘이 준비해 둔 서류를 확인했다. 「이신설교」, 「슬럼가 피해 상황」, 「망자화」. 이번 낙양 사건과 관련된 내용이다. 라피엘이 힘내서 정리해둔 서류는 유피가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모두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빈자리는 두 자리. 탁자 위로 익숙한 찻잔이 올라왔다.

홍차를 준비한 알베르트는 그녀의 뒤로 물러났다. 그 옆에는 라피엘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굳게 입을 다문 그녀는 살짝 긴장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찻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입술을 적시는 달달한 향이 기분 좋다.

머릿속이 조금 가벼워진 유피는 잔을 내렸다. 아무도 보이지 않던 두 자리에 익숙한 모습이 투영되고 있었다.

좌측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푸른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아름다운 귀공자, 5황자 아벨 워스테인이다.

우측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붉은 머리카락을 산발처럼 풀어헤친 야성미 가득한 남자, 1황자 시더 아르테니아다.

“안녕, 오빠들. 모두 착실하네. 시간에 맞춰서 들어오고.”

유피의 인사에 두 황자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반가운 얼굴이 보고 싶어서 연락에 응한 거였다만. 왜 저 얼굴을 여기서 봐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

「어쩐 일로 네가 연락을 했다 싶었더니……. 기대한 내가 바보로구나.」

「기대? 웃기지도 않는 소리군. 네가 이 자리에 나왔다는 건 이미 계산이 끝났다는 거겠지. 매번 그렇게 계산적으로 행동하니까 아랫사람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는 거다.」

「앞만 보고 돌진하는 형님이 할 말은 아닙니다. 뒤를 한 번 돌아보시지 그럽니까? 얼마나 많은 가신이 당신의 등만 보다가 떨어져 나갔는지. 그 희생자들을 보고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바보라지만, 그 정도 사리는 구분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형제는 탁자 너머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제법 말이 거칠어졌구나, 아우야.」

「또 주먹부터 나올 생각인가요, 형님?」

만나자마자 싸우고 있다. 사이 좋은 형제의 모습에 유피는 얼굴을 찌푸렸다.

“서로 싸울 거면 이만 끊을게. 잘 있어.”

「조금만 기다려라. 망할 동생아.」

「교섭할 여지는 있지. 네가 여기에 있다면.」

“좋아. 그럼 화해부터 해.”

「흠, 알았다. 약아빠진 녀석이지만, 먼저 사과한다면 특별히 받아주마.」

「형님이 사과한다면 이 아우가 그 모습을 보고 배워보죠. 다음에는 제가 사과하겠습니다.」

「내가 먼저 하라는 거냐?」

「대수로운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형님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남자다움에 비교하면.」

“이야기 끝나면 불러줘. 다과 좀 먹고 올게.”

「「자리에 앉아라, 유피.」」

의자에서 일어나던 유피는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나 죽이 잘 맞는 사람들이 왜 얼굴만 보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언제까지 애들처럼 그럴 거야? 부외자가 보고 있는데 부끄럽지도 않아? 철 좀 들어, 좀.”

「너한테 듣고 싶은 말은 아니다.」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구나.」

“…….”

유피의 볼이 씰룩였다.

사실 두 사람은 누구보다 사이가 좋은 게 아닐까?

「이제 보니 안색이 어두워 보이는군.」

「혹시 무리한 건 아니냐?」

“별로. 천일소화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정리됐으면 이야기 좀 진행하자.”

유피는 원형 탁자 위로 손을 올렸다. 그녀가 잡은 서류는 「이신설교」였다.

“다들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하지만, 이번에 낙양에서 일어난 사태의 범인은 이신설교야. 이하 신교로 통칭할게. 신교 내에서도 무장 집단인 흑토와 백토가 있는데. 그들을 통솔하는 월중 장로와 흑토장이 이번 사건의 주동자야.”

「라피엘에게 들었다. 월편이라는 걸 이용해 악마를 불러왔다지? 제법이지 않나. 몽환기도 없이 악마를 불러오다니 말이다.」

「웃을 일이 아니구나. 피해 상황은?」

“양양의 지옥도 사태에 비하면 적은 편이야. 드러난 피해만 놓고 봤을 때는.”

「수면 아래에서 예상되는 피해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 안심할 수 있는 수치면 좋겠다만.」

“최소 천 명 단위의 동포가 휘말려 들거나 피해를 보았어.”

「천 명……. 적은 수는 아니군.」

“슬럼가에서 이야기를 끊었을 때야. 그 아래, 지저까지 살펴본다면 끝이 없어.”

「…….」

지저의 상황은 파악하기도 힘들다.

사건을 주도하던 월중 장로는 사망했고, 최측근이던 흑토장도 그가 어디까지 손을 댔는지 짐작만 하는 상황이다. 거기에 대외적으로 지저는 없는 도시다. 낙왕이라는 인물의 협조도 얻지 못했다.

이쪽의 정식 요청을 「관은 지저의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서신 하나로 넘겨버린 세력이다.

「지저는 내버려 둬라. 내가 그 자리에 있으면 모를까, 네가 어떻게 손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라피엘. 지저와의 연락책은 살아 있겠지?」

“살아는 있습니다만……. 여전히 그쪽에서 필요할 때만 요청이 오는 식입니다. 가장 최근에 들어온 연락도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입니다. 내용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식량 원조였습니다.”

「알았다. 아마도 이번 건과 관련해서 따로 연락이 올 확률이 높다. 북부에서의 일이 정리되면 내가 처리하마.」

“존명.”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시더는 선을 그었다.

지저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아벨이 입을 열었다.

「선녀는 어떻지? 월편이라는 비정상적인 물건을 그녀가 만든다고 들었는데.」

“그녀가 다루는 성마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영약(靈藥)에 가까워. 견본을 하나 구해서 마녀의 산에 보내놓았어. 분석이 끝나면 답장이 돌아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일단 내가 알아본 바로는 신성력과 마기가 혼재한 영약이야. 원리만 놓고 본다면 성마력이 마기를 죽이고, 우리 몸이 무너지지 않게 다시금 마기를 활성화하는 것 같아.”

「인위적으로 그런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건가.」

“기적의 산물에 가깝다고 생각해. 망자화를 막을 수 있는 약은 처음 봤어.”

「네가 행하는 의식과는 다른 건가?」

“나는 비틀린 순환을 바로 잡을 뿐이야. 원래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인도하는 거지. 증세를 완화할 수는 없어.”

그것도 할아범이 안배해놓은 신비를 재현하고 있는 것뿐이다.

망자화를 막는 월편과는 개념이 달랐다.

「저주를 끊어낼 비밀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속단은 이르죠. 월편을 복용한 동포들이 부작용에 시달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몇 년은 가만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런 차가운 말을 꺼낼 필요가 있느냐? 좀 더 솔직하게 기뻐해 봐라.」

「전 형님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단순? 약아빠진 것보다야 백배는 낫다. 앞뒤가 다른 놈들은 구린내가 진동하니까.」

「바보가 앞에 있으면 따르는 사람들이 고생하는 법이죠. 이제 알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가신을 희생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을련지 모르겠군요.」

「아벨. 북부에서의 일이 끝나고 한 번 보면 좋겠구나.」

「우연이군요. 저도 형님을 직접 만나고 싶던 찰나입니다.」

「그래, 목 씻고 기다려라. 그 재수 없는 낯짝을 불태워주마.」

「타오를 수 있을 때 타오르시죠. 절 만나면 다 얼어붙을 테니.」

“…….”

애꿎은 주먹을 부수는 시더와 손바닥에서 얼음 결정을 띄우는 아벨.

어린애 둘이서 누구 힘이 더 세다고 허세를 부리는 것만 같다.

유피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정말로 남자들이란…….

하하호호 하는 분위기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정도가 지나쳤다.

“그만 좀 하면 안 돼? 내가 보고 있는데 꼭 그런 식으로 얼굴을 붉혀야겠어?”

「네 탓이다, 아벨.」

「형님 탓이겠죠.」

“시끄러워. 둘 다 똑같아. 누가 누굴 탓하는 거야?”

도토리 키재기다.

유피의 손가락이 탁상을 두들겼다. 눈썹이 치켜 올라간 그녀는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그 뒤에서 알베르트가 다가왔다. 빈 찻잔에 홍차가 차오른다. 달콤한 향기를 맡은 유피는 한숨을 쉬었다.

“좋아. 북부는 상황이 어때? 전선만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조만간 녀석들이 활동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의 끝이 영역을 넓혀가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날씨가 풀려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움직임이 많은 편은 아니다. 역으로 문제는 캘러미티가 아니라 제국이다. 순찰대가 녀석들의 것으로 보이는 깃발을 확인했다.」

“제국의 깃발을? 녀석들이 참전했다는 이야기야?”

「그것까지는 알 수 없다. 세인트 월로 정찰을 보내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그쪽도 단순히 척후병을 보냈을 확률이 높다고 본다. 희망 사항이긴 하지만, 캘러미티의 배후를 노리는 건지도 모르지.」

「제국이 캘러미티의 뒤를 친다고요? 너무 얕은 생각입니다, 형님. 제가 제국이라면 녀석들과 손을 잡겠습니다. 우리를 끝장낼 좋은 기회니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숲을 넘어 침략하는 것은 힘드니, 북부를 통한 길을 만들고 있을 수도 있지. 그 경우에는 캘러미티와 거래가 오갔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만약 제국이 캘러미티의 편을 들었다면 승산은 어느 정도라고 봐?”

「장성(長城)을 포기하는 편이 좋다. 우리로서는 마도 병단의 포격을 막을 길이 없다. 차라리 국지전으로 이끌어가는 쪽이 전황에 도움이 되겠지.」

「루미에르 교의 성가대도 문제입니다. 신성력을 다루는 그들과 신전기사단이 함께 들어오면 어떻게 대처할 생각입니까?」

“죄송합니다만, 발언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고민하는 세 사람의 사이로 알베르트 란이 들어왔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집사의 모습에 시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벨은 상관없다는 듯 두 손을 모았고, 유피는 말해 봐. 하고 입을 열었다.

“제국이 캘러미티의 편에 서는 일은 없습니다.”

「자네가 제국 출신의 인족이라는 건 유피에르 황녀에게 들었다. 하지만 무슨 근거로 확신하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두 세력이 손을 잡지 않는 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루미에르 교는 절대 이교도와 손을 잡지 않습니다. 설령 제국이 마족에 의해 멸망의 길에 들어서더라도,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습니다.”

「원수인 우리를 쓰러뜨리는 것보다 교리 쪽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그런 나라입니다, 델리아 신성 제국은.”

「…….」

“제국 내에 팽배한 이교도의 소문은 마족보다도 끔찍합니다.”

흠, 하고 아벨은 턱에 손을 괴었다. 생각에 잠긴 그를 뒤로 한 채 시더는 한 그림을 들었다.

「우리 순찰대가 확인한 문양이다. 혹 어느 가문의 것인지 알 수 있겠느냐?」

“그런 문양을 가진 가문은 없습니다만…….”

알베르트는 눈에 힘을 주었다.

시더가 보인 그림은 마치 지렁이가 기어가는 느낌의 괴상망측한 문양이었다. 혹시 자신만 못 알아보는가 싶어 다른 사람을 돌아본다. 아벨은 코웃음을 치고 있다. 대답을 바라는 건 힘들 것 같다. 유피를 보니,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작은 목소리로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니까, 정말.” 하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위에서부터 황금 사자. 푸른 늑대. 이빨. 은빛 창입니다. 알베르트 님.”

방 안에서 시더의 그림을 알아본 유일한 사람은 라피엘이었다.

그녀의 설명에 알베르트는 기억을 되짚었다. 다행히 그가 아는 가문이었다.

“차례대로 라이언하트 가, 베른 가, 챈드리 가, 성 미뉴에트 가군요. 북부의 유력가문들입니다. 그들의 깃발을 봤다면 제국이 움직이고 있다는 건 사실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도 캘러미티의 동태가 심상치 않은 걸 보고 확인하러 나선 것 같습니다.”

「즉, 우리를 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캘러미티의 배후를 치기 위해 움직인다는 말이군. 그렇군. 자네의 말대로라면 루미에르 교를 믿지 않는 이교도는 제국도 꺼리는 외적일 테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시더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군, 하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그는 말했다.

[적의 적은 친구다. 이번에 한해서는 제국의 힘을 빌릴 수 있겠군.]

[딱히 원했던 상황은 아니지만, 써먹을 수 있는 수는 전부 써먹는 편이 좋겠죠.]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걸 본 알베르트는 뒤로 물러났다.

사교를 신봉하는 캘러미티와 제국이 손을 잡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동족을 산제물로 바치는 야만인들과 손을 잡으니, 필사의 항전을 외치는 것이 제국이다.

“마녀의 산으로부터 온 소식은 없어? 자매들에게 이야기해놓았는데.”

[아, 호수의 마녀가 근시일 내로 도착할 예정이다.]

“에르체베트가?”

[잘 아는 사이인가?]

“조금.”

에르체베트 로젠. 익숙한 자매의 명호를 들은 유피는 찻잔으로 시선을 내렸다.

말해두는 편이 좋을까? 생각보다 그녀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실수가 많은 아이야. 장난기도 있는 편인데, 괴팍하다는 말이 어울리니까. 조심하는 게 좋아. 그 아이는 하나에 매진하면 주변을 못 보는 편이거든.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를 때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가능하면 주변에 있지 마, 오빠.”

[농담이 지나치군. 발푸르기스의 자매 중에 그런 마녀가 어디 있나?]

“난 충고했어. 나중에 딴말하지 마.”

[알았다. 고려해두마.]

중요한 안건은 모두 끝났다는 듯 두 손을 모은 유피는 기지개를 켰다.

아벨의 옆에서 나타난 로버트 집사는 무언가 서류를 건네고 있었고, 시더는 처음 보는 마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유피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들은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 급한 이야기는 끝났다. 뭔가 더 나눌 이야기는 없겠지. 찻잔을 비운 유피가 회의를 마무리 지으려는 순간이었다.

[아, 이야기하는 걸 깜빡했군. 궁에 온 김에 세피로스의 나무를 받아가거라. 라피엘이 안내해줄 거다.]

“그러네, 참. 나도 잊어먹고 있었어.”

[잊어먹고 있었다고? 그건 무슨 농담이냐.]

“나도 사람이야. 당연히 잊어먹기도 해. 오빠는 날 뭐로 생각하는 거야?”

[그야 음침한 마녀지.]

“누가 음침하다는 거야.”

망설임 없는 즉답에 유피의 입가가 떨렸다.

그 사이 아벨도 로버트와 이야기가 끝난 건지, 유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유피. 네가 요청한 기녀가 오늘 낙양에 도착할 예정이다.]

“어머, 생각보다 빠르네? 며칠 더 걸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네 부탁이어서 특별히 들어준 거다. 특히 가희라는 기녀는 낙적 비용이 꽤 비쌌다. 기루의 간판 아가씨를 빼달라니. 다음부터는 이런 억지는 부리지 말았으면 한다.]

“우는소리 하지 마. 오빠가 밥 먹듯이 하는 연회만 줄여도 충분하잖아?”

[누가 음침한 마녀 아니랄까 봐. 생각하는 게 왜 그 모양인지 모르겠군.]

“솔직히 말해 봐. 둘이 짜고 말하는 거지?”

똑같은 대답을 받은 유피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시더와 아벨이 서로를 바라본다. 두 사람은 화가 난 유피를 보고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막내가 저 모양이니 우리라도 잘해야지.]

[어쩐 일로 의견이 같군요, 형님.]

“뭐라는 거야, 이 바보 오빠들이. 좋아. 나도 이 기회에 말해야겠어. 시더 오빠는 말이야. 일단 주변 사람들을 좀 더 챙길 필요가 있어. 알아? 라피엘이 이번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내가 오빠라면 이런 식으로 가신을 굴리지는 않아. 아벨 오빠는 또 어딜 가는 거야? 로버트 할아범이 고생하는 것도 안 보여? 이제 은퇴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대리 참석이나 시키고 있고. 그런 식으로 구니까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거야. 생각해 봐. 다 오빠처럼 머리가 잘 굴러가는 건 아니라고.”

[때아닌 험담이냐? 나도 할 말은 많다만. 남자는 입으로 떠드는 게 아니지.]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형님은 가만히 듣고 계시죠. 저도 이 기회에 말 좀 해야겠습니다. 그놈의 약아빠졌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누가 먼저 시작한 거죠? 분명 형님이지 않습니까?]

[아벨…….]

마무리되어가던 이야기에 다시 불이 붙는다.

평소 쌓인 것이 많았다는 듯, 세 가족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알베르트는 라피엘을 돌아보았다. 원형 탁자 위의 서류를 챙긴 그녀는 소리 없이 문을 열고 있었다. 문을 닫지 않고 나간 것은 그녀의 배려다. 오랜만에 회포를 푸는 가족의 모습을 뒤로한 알베르트는 라피엘의 집무실로 향했다.

주인은 주인들만의 시간을.

사용인은 사용인들만의 시간을 가질 차례인 모양이다.

그렇게 낙양의 밤은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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