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반짝이 황녀님(3)
단예가 가져온 식사는 생소한 요리였다.
거위고기를 불에 구운 것 같은 요리와 살짝 매콤한 냄새가 올라오는 야채 볶음. 파를 올린 생선 요리를 비롯해 새우와 고추를 넣어 만든 요리도 있었다. 요리에서 올라오는 향은 나쁘지 않다. 하나하나 맛을 본 유피는 제법 마음에 든 듯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괜찮네. 요리사를 바꿀 필요는 없겠어.”
“그렇죠? 우리 가가를 따라온 친구 중 한 분이거든요!”
유피의 입에서 합격점이 떨어지자 단예의 얼굴이 밝아졌다.
요리에 문제는 없다. 결국,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는 걸 의미했다.
식사를 어느 정도 마무리 짓자 라피엘은 작은 병을 꺼냈다.
병 안에 담겨 있는 것은 하얀색의 절편이었다. 월편. 이신설교의 성물이다. 내용물을 꺼낸 그녀는 손바닥 위로 올렸다. 흘러나온 은빛 마나가 월편을 확인했다. 재밌는 장난감을 앞에 둔 아이처럼, 유피의 눈이 반짝거렸다.
“과연……. 이건 상상 이상이네.”
“성찬식 때 만들어진 월편은 아닙니다. 그 날 만든 월편은 특별한 것이어서 보관 자체가 불가능하다더군요.”
“일반 월편이라는 거네. 특별히 만든 것도 아닌데 성마력이 절묘하게 깃들어 있어. 균형이 무너지지도 않아. 이게 망자화를 막았다는 말이지. 마기를 전부 녹여버린 건가? 그냥 마기만 녹여버리면 오히려 우리의 목숨이 위험해지지. 그렇군. 마기와 신성력의 조화. 마기를 녹이면서 동시에 신성력이 몸을 지탱한 거네. 놀라워. 이걸 선녀가 만들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유피는 라피엘을 보았다.
양 볼에 홍조가 떠오른 모습은 무심코 가슴이 설렐 정도로 아름다웠다.
“선녀의 대우를 귀빈으로 올렸으면 좋겠는데.”
“이미 황자님께 보고를 올렸습니다.”
“좋아. 흑토장과 흑토의 처우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황자님의 명이 내려올 때까지는 감금해둘 예정입니다.”
“최악의 수는 피해줬으면 좋겠어. 장기적으로 보면 동포의 도움이 될만한 자들이야.”
“캘러미티를 고려한다면 황녀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거시적으로 봐야겠죠. 감히 제가 약속해드릴 수는 없지만, 황자님의 선택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래, 오빠는 바보지만 라피엘의 말이라면 한 번 더 생각하니까.”
“황녀님.”
“칭찬한 거야.”
월편을 통 안에 넣은 유피는 복주머니 안에 챙겼다.
테이블 위에 빈 그릇이 늘어간다. 후식으로 나온 딤섬이라는 요리를 끝으로 유피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말씀만이라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차하면 알을 빌려줄 수도 있으니까.”
“그건 괜찮습니다. 황녀님의 집사를 빌려 갈 수는 없죠.”
“굳이 사양하지 않아도 되는데.”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황녀님이 꺼낸 제안이 빈말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곤란해하는 집사의 얼굴을 보는 건 재밌었지만, 그를 곤란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럼 오늘은…….”
유피는 말꼬리를 흐렸다.
손님이 없는 객잔 안쪽으로 낯익은 남녀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 어린 감정은 반가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끄러운 손님이 왔다. 딱 그런 느낌이다. 조금이라도 모습을 숨기고 싶은지, 그녀가 의자를 당겼을 때 여인이 번쩍 손을 들었다.
“아, 반짝이 황녀님!”
“…….”
“왜 또 숨고 그러신데. 다 봤어요. 여기는 어쩐 일인래요?”
“부르는데, 유피.”
“알고 있어.”
반짝이 황녀의 얼굴이 노골적으로 일그러졌다.
그 표정을 본 콜린이 상관의 무릎으로 손을 옮겼다. 아이네르의 다리가 빠진다. 유려하게 몸을 돌린 그녀는 역으로 콜린의 무릎을 때렸다. 으엑, 하고 넘어진 콜린이 테이블 앞까지 굴려 왔다.
“날 공격하려 들다니, 십 년은 더 수련하고 와.”
“아이네르 님처럼 바보인 사람도 드물 거에요.”
누가 상관이고 누가 부관인지 모르겠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유피에르 황녀님.”
“오빠에게도 저래?”
“부끄럽게도 그렇습니다.”
“이 오빠가 진짜…….”
부하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 골치 아프다는 듯 유피는 미간을 매만졌다.
“유피에르 황녀 전하를 뵙습니다.”
“안녕, 반짝이 황녀님. 오늘도 반짝거리네?”
“너희도 마찬가지잖아, 그건.”
라피엘과 달리 두 사람의 차림은 나들이라도 나가는 것처럼 화려했다.
“둘 다 사후 처리로 바쁜 게 아니었어?”
“오늘은 휴가를 받았어요. 힘쓰는 일은 일단락이 되었잖아요?”
“라피엘, 너는?”
“제가 휴가를 낼 수는 없습니다.”
“지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네.”
라피엘도 고생이다. 아이네르는 허락을 받지도 않고 자리에 앉았다.
싱글벙글한 미소가 유피를 향했다. 왠지 대하기 힘든 상대다.
“좀 웃어봐요, 황녀님. 모처럼 반짝이는데 아깝잖아요.”
“저번에도 묻고 싶었는데, 그 반짝거린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황녀님의 머리카락이요. 은빛으로 반짝거리잖아요?”
“…….”
반짝거리는 머리니까 반짝이 황녀. 다른 뜻은 없다.
“너는 예의라는 걸 배워야 할 것 같아.”
“사사로운 걸 신경 쓰시네. 우리 황자님은 이래도 넘어가 주신다고요.”
“사사로워?”
유피의 볼이 씰룩였다.
“아이네르.”
“라피엘도 너무하네. 오늘 반짝이 황녀님이랑 만날 거면 이야기해주지 그랬어. 내가 좋은 곳으로 데려갔을 텐데.”
시야 한쪽에서 콜린이 전력을 다해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절대 아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부관의 강한 어필에 라피엘은 눈가를 찌푸렸다.
주문을 받으러 나온 단예에게 아이네르는 말했다.
“딤섬이랑 팔보채로 2인분만 갖다 줘.”
“아, 전 오리구이로 부탁드릴게요.”
“난 합석을 허락한 적 없는데.”
“또 그러신다, 이것도 인연이에요.”
“…….”
“그런데 세 사람은 뭘 하고 있었나요? 아, 제가 맞춰보죠. 남자 하나에 여자가 둘이라. 우리 집사님은 능력이 출중하시군요.”
“제발 그만 하세요, 아이네르 님.”
아이네르는 콜린의 옆구리를 찔렸다.
악의를 갖고 그러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 솔직함이 그녀의 매력이리라. 오빠가 왜 아이네르를 곁에 두고 있는 건지 알 것 같다. 유피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오빠랑은 어떤 의미로 잘 통할지도 모르겠네.”
순수한 것과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니까.
잠시 후 추가로 나온 주문을 받은 두 사람은 식사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어딜 다녀오신 건가요?”
“외곽 지역에 말이야. 무지막지 강한 무인이 있다고 들었거든. 그걸 좀 보러 갔었어.”
“무인이요?”
알베르트의 물음에 아이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집사는 관심 있을 줄 알았어. 근데 우리도 만나지는 못했어. 소문에 의하면 어느 정도 경지를 이룬 무인만 만나준다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내 실력으로는 무리인가 봐.”
“애초에 무인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약방에 무인이 있겠어요.”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면서, 입안에 있는 요리를 삼킨 콜린이 덧붙였다.
“참, 황녀님이 부탁하셨던 아이 말인데요. 의국에서도 차도가 없다네요. 어떻게 할까요?”
“그러지 않을까 했어. 그래, 의식은?”
“아직이에요. 뭘 먹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몸의 균형이 망가지고 있다네요. 의원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미안해하던데요.”
“주웠으면 책임을 져야겠지. 알았어. 조만간 내가 데리고 갈게. 어차피 천일소화를 보러 갈 참이었거든.”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딤섬으로 유피의 손이 향했다.
알베르트의 젓가락이 유피의 젓가락을 막았다. 시선이 마주쳤다. 탁탁, 하고 유피는 알베르트의 젓가락을 쳐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이네르의 젓가락이 그녀의 젓가락을 막았다.
“황녀님이 사실 건가요?”
“내가 살게.”
“알았어요.”
젓가락이 떨어진다.
딤섬을 입으로 가져간 그녀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여기 백주 네 병만 갖다 줘.”
“…….”
백주를 가져온 단예는 신이 난 얼굴이다.
반면, 유피의 얼굴은 사정없이 구겨지고 있었다. 오빠가 즐겨 마시는 이 술이 얼마나 비싼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잘못하면 가져온 돈을 전부 써야 할지도 모른다.
“한 잔 받으세요, 반짝이 황녀님. 제가 올리는 잔은 맛있다는 평이 자자해요.”
“술은 안 마셔.”
투명한 백주로 찬 잔을 유피는 거절했다.
“반짝이 황녀님은 술도 못 하시나요? 그렇다면 실망인데요. 우리 황자님은 잘만 마시던데.”
“그 오빠랑 비교하지 마. 바보 오빠는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약처럼 여기는 거야.”
투덜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알베르트가 말했다.
“그래도 술을 즐길 줄 아시는 분이죠. 덕분에 술에는 좋은 추억을 갖게 됐습니다.”
“어라, 집사는 황자님이랑 술을 마셔본 거야?”
“물론입니다.”
“다음에는 나도 불러줘. 황자님과 마시는 술은 재밌거든.”
알베르트는 라피엘이 건네는 잔을 거절하지 않았다.
한 잔 정도라면 괜찮다. 혀끝에서 백주가 녹는다. 목 끝이 타들어 갔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확실히 도수가 높은 술이다.
“…….”
술을 마시는 집사의 모습이 생소한 걸까.
유피는 알베르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좋아. 나도 마실게.”
“유피는 안 마시는 게 좋지 않겠어?”
“알도 날 무시하는 거야?”
그녀는 보란 듯이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한 번에 잔을 비운 그녀는 독한 술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기침을 토해냈다.
“반짝이 황녀님은 생각보다 괜찮은 분이네요. 소문으로는 사람과 교우 관계도 좁고 틀어박혀서 안 나오기로 유명한 분이었는데.”
“소문은 언제나 와전되기 마련이야.”
“그렇죠? 역시 사람은 직접 보기 전까지는 모르나 봐요.”
아이네르는 유피의 빈 잔을 채웠다.
안주로는 손이 가지도 않는다. 누가 많이 마시는가 경쟁을 벌이듯이 두 사람은 잔을 비웠다.
“유피. 너무 많이 마셨어.”
“시끄러워. 나도 오빠만큼 마실 수 있거든?”
“…….”
안 좋은 예감이 든다.
유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반면, 아이네르는 술을 시작하기 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잔을 드는 유피의 손이 느려진다. 이윽고 고개를 수그린 그녀는 잔을 놓쳤다. 데구르르, 하고 테이블 위에서 백주가 흘러내렸다.
뭔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아이네르가 조심스레 물었다.
“더 마셔도 되겠어요, 황녀님?”
유피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든 그녀는 알베르트를 보았다.
“있지, 알.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알베르트는 움찔, 몸을 떨었다. 유피답지 않게 낮은 어조였다.
“솔직히 말해보자. 네 아가씨는 나야, 아니면 그 두 살 먹은 애기야?”
“두 살 먹은 애기?”
라피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두 살 먹은 아이가 누구인지 모른다.
당연하다. 아리시엘 아가씨에 관한 이야기는 유피가 아니고서는 모른다. 루드비히 가문에 대해서 언급할 수는 없다. 알베르트는 말을 골랐다.
“내 아가씨는 그분뿐이야.”
“그럼 난?”
“유피는 유피야.”
“그게 뭐야.”
기분이 나빠졌다는 듯, 유피의 몸에서 은빛 마나가 살랑였다.
“알은 내 집사잖아. 그럼 내가 주인이야. 달라?”
“나는 언제까지고 유피의 집사일 수는 없어. 처음부터 그런 약속이었잖아.”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미안해, 유피.”
붉은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눈가에서 그 물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알베르트는 가슴이 철렁했다. 황녀님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아이네르와 콜린이 도망치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오늘 즐거웠어요, 반짝이 황녀님.”
“아이네르 님? 아, 정말……. 죄송해요, 다음에 다시 뵐게요.”
알베르트는 두 사람을 잡지 못했다.
유피의 눈물을 본 그에게 그런 여유는 없었다. 유피와 알베르트를 넌지시 바라보던 라피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앞에 있는 잔은 비어 있었다.
“저도 자리를 피해드리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계산은 제가 하고 가겠습니다.”
“아니, 라피엘 잠시만…….”
도움을 바라는 알베르트의 목소리도 소용없다.
고개를 숙인 라피엘은 계산을 마치고 객잔을 뒤로했다. 남은 건 눈물을 닦고 있는 유피와 굳어버린 알베르트뿐이다. 계산대에서 이쪽을 넌지시 바라보는 단예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녀라도 도와주면 조금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알베르트를 본 그녀는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무운을 빈다는 듯 하얀 치아를 드러낸 그녀는 주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거 알아? 내가 수정구를 보여준 건 알뿐이야.”
“지난번에 말했잖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은 알아?”
“어떤 의미가 있는데?”
“그걸 지금 나보고 말하라는 거야?”
“…….”
은빛 마나가 알베르트의 머리를 때렸다. 의외로 아팠다.
“그 작던 꼬맹이가. 왜 이렇게 성장한 거야. 너희 인족은 다 그런 거야? 몇 년 흐르지도 않았는데 어른이 되어버려서는.”
“아무래도 너희와는 다르겠지.”
마족의 수명은 인족보다 길다.
큰 차이는 아니다. 자연사하는 나이를 본다면 인족보다는 10살 정도는 더 살 수 있다고 들었다. 물론 마족들 대부분은 그 전에 망자가 된다는 결말에 도달했다.
“많이 취했어. 유피. 이만하고 가자.”
“누가 취했다는 거야. 난 멀쩡해.”
술에 약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심한 줄은 몰랐다. 차라리 잠드는 쪽이 상대하기 편한데. 이렇게 된 이상 억지로라도 데리고 가는 게 좋겠다. 알베르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
도로 앉았다.
[사냥꾼 앞의 사냥감이군요.]
‘자네는 조용히 하게.’
도움이라고는 하나도 되지 않는 천칭의 목소리에 알베르트는 대꾸했다.
“그래. 한 번 물어볼게. 알은 내 어디가 좋은 거야?”
“내가 말하면 후회할지도 모르는데.”
흐응, 하고 유피는 입술을 혀로 핥았다.
새하얀 손이 살그머니 테이블을 쓰다듬었다. 그 몸짓이 어딘지 모르게 요염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술에 취한 그녀는 묘한 색기를 흘리고 있었다.
“막상 말하려고 보니 부끄러운 거야?”
할 수 있다면 해보라는 듯, 유피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감히 만질 수 없는 과실이 눈앞에 있는 것 같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인데도, 그 간격을 좁히는 일은 허락하지 않겠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렇게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아서, 알베르트는 빤히 보이는 주정뱅이의 도발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나는 말이지. 유피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신이 나서 말하는 모습도 귀엽고. 곤란한 제안을 받으면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사랑스럽고.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일이 있으면 눈매가 올라가는 모습도 예쁘고. 실망스러운 일이 있을 때는 입꼬리가 내려가는 것도 매력적이야.”
“그리고?”
“부끄러울 때면 귀가 붉어지는 모습도 귀엽고. 별무리가 지는 것처럼 반짝이는 머리는 한 번쯤 만져보고 싶어. 또…….”
“또?”
“주변 사람들에게 무심하면서도 눈에 안 보이면 걱정하는 모습도 눈부시고. 의외로 취향이 소녀에 가까워서 귀여운 걸 좋아한다든가. 맛있는 건 마지막까지 아껴 놓는 점이나. 지인에게 받은 물건은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것 또한…….”
“그만. 알았으니까, 그만해.”
백기를 든 건 유피였다.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말이지. 유피는 충분히 매력적이니까, 자신을 가졌으면 좋겠어.”
“누, 누가 자신이 없다는 거야.”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지, 귀까지 빨개진 그녀는 알베르트의 눈을 피했다.
무심코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었다. 잔 위로 올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그녀는 물었다.
“그럼 말이야. 알도 나랑 그런 거나, 이런 것도 하고 싶어?”
“당연한 걸 물어보네.”
사랑하는 이와 닿고 싶고, 마음을 통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알베르트의 긍정에 유피는 테이블을 짚고 일어섰다.
“좋아. 그럼 노력하는 알을 위해서 상을 줄까?”
“뭐?”
볼 위로 은빛의 머리카락이 드리워졌다. 달콤한 방향이 세상을 채웠다.
“…….”
“…….”
부드러운 감촉이 입에 닿았다.
눈앞에는 술에 취한 유피의 얼굴이 보였다. 발그레하게 물든 볼이 보기 좋다. 속눈썹이 긴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멀어졌다. 하지만 입에 맞닿은 부드러운 감촉은 떨어지지 않았다. 알베르트의 입에 닿아 있는 것은 유피의 손이었다.
배시시, 하고 유피의 얼굴에서 천진난만한 웃음이 피어났다.
“정말로 할 줄 알았어? 꼬맹이가 밝히기는.”
킥킥대며 귀엽지 못한 웃음소리를 낸 유피는 테이블 위에 쓰러졌다.
언젠가 봤던 모습이다. 고개를 든 알베르트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모르긴 몰라도 자신의 얼굴도 붉게 달아올라 있을 것이다. 화끈거리는 것은 단순히 술기운 때문이 아니었다. 손을 든 알베르트는 입가를 가렸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