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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이신설교(以神設敎)(4)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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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설교(以神設敎)(4)

콜린은 신당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주변을 오가는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품 안에서 부적을 꺼낸 그는 담과 맞은편의 나무에 붙였다. “급급여율령.” 작게 중얼거린 그 목소리에 맞춰 부적이 타올랐다. 담 위를 밝히던 초롱불이 빛을 잃었다. 어둠이 내려앉는다. 탁, 하고 적막을 뚫는 소리가 울렸다. 콜린을 잡은 여인은 신당의 담을 넘었다.

“어땠어, 콜린?”

“어떻긴요, 아픕니다.”

칭찬을 바라는 건 아니겠지. 반짝거리는 아이네르의 시선에 콜린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의 손에서 내려온 콜린은 배를 매만졌다. 모르긴 몰라도 붉은 손자국이 남아 있을 것이다. 어차피 부적으로 담 너머의 사람들도 몰아냈는데, 왜 이렇게 요란스러운 방법으로 담을 넘어야 하는 걸까. 불만 가득한 부관의 시선에 아이네르는 주먹을 쥐었다.

말아쥔 주먹이 곱슬머리 위로 떨어졌다.

“누가 그걸 물어봤어?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었잖아.”

“황녀님이 말씀하신 걸 그 새 잊어먹으신 겁니까?”

“아니, 기억하고 있어. 월각에 잠입하라고 하셨지.”

“알고 있으면서 왜 물어본 거예요?”

“음, 혹시 네가 잊어먹었을까 봐?”

“월각은 우측 건물입니다, 아이네르 님.”

자신 있게 앞에서 걸음을 옮기는 상관에게 콜린은 말했다.

아이네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방향을 틀었다. 정말 이 사람을 믿고 따라가도 되는 걸까. 대도서관이 그리워진 콜린은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살다 살다 월담까지 다 하는군요.”

“뭐, 이것도 다 경험이라고 생각해.”

“이런 경험은 하고 싶지 않은데요.”

“지난번에도 내가 말했지만, 불만이 있으면 직접 가서 말해. 이번에는 시더 황자님도 아니고 반짝이 황녀님이니, 더 말하기 편하겠네. 안 그래?”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아이네르의 얼굴을 본 콜린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아이네르 님도 봤잖아요. 황녀님은 황자님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고요. 무슨 그게 반쪽짜리 황녀님입니까. 소문은 진짜 믿을 게 못 됩니다.”

“그러게 평소에 내 말 좀 듣지 그랬어. 자신 있게 말하고, 남자답게 행동했으면 그런 말을 들었겠어?”

“그건……. 그러네요. 어쩐 일로 맞는 말을 다 하시네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하는 말은 항상 틀렸다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신당 앞의 광장을 지나친 두 사람은 월각으로 향했다.

창고처럼 작은 저택은, 신당의 부속 건물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문 앞의 패에는 「月閣」이라는 명패가 달려 있었다. 확실하다. 월각을 확인한 아이네르는 문에 귀를 붙였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없다. 어깨로 문을 밀어낸다. 틈 사이로 작은 빛이 삐져나온다. 콜린은 얼굴을 밀어 넣었다. 문 안쪽으로는 좁은 복도가 보였다. 돌아다니는 신도는 보이지 않는다. 부관이 고개를 든다. 문을 마저 연 두 사람은 월각 안쪽으로 들어섰다.

“탐색할 수 있겠어?”

“여기서는 제한적이에요. 일단 중심부로 향하죠.”

“가는 도중에 만나는 녀석들은 어떡할까?”

“만나면 안 되죠. 다 피해가야죠.”

유피에르 황녀님은 파수꾼들을 피할 수 없다면 도망치라고 했다.

어떤 수를 쓰는지는 알 수 없어도, 그들은 제한적인 불사를 누리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물론 아이네르가 그 말을 따를 리 없다. 적을 앞에 두고 도망가라니. 같이 죽었으면 죽었지. 자신의 상관은 적에게 등을 보이는 여자가 아니었다.

“정말로 불사의 괴물과 싸울 생각이에요?”

“두근두근하지?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전 위험해지면 도망칠 거에요.”

“그럼 난 콜린 앞에서 뛰어갈게.”

“아이네르 님은 싸우셔야죠.”

“나 혼자서 싸우는 건 재미없는걸.”

“…….”

장난기 가득한 아이네르의 표정에 콜린은 입가를 찌푸렸다.

“일단 탐색하면서 들어가 보게요. 먼저 들어간 알베르트 님 때문인지는 몰라도, 신도는 거의 안 보이니까요.”

부적이 타오른다.

붉은 불길이 하얗게 변하더니, 이내 다섯 마리의 개로 변했다. 벽과 천장에 붙은 녀석들은 주인의 지시에 따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다행인 건 월각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다. 몇 분 되지 않아 개들은 돌아왔다. 하나의 개로 변한 녀석들은 콜린을 바라보았다.

“중앙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는군요.”

“역시 실력 하나는 확실하다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다음부터는 절 데려오지 마세요.”

“이렇게 도움이 되는데?”

아이네르의 반문에 콜린은 얼굴을 찌푸렸다.

“라피엘과 마찬가지로 전 비전투원이니까요.”

“그건 근성으로 극복하면 된다니까.”

“아, 그래요?”

이렇게 말해도 소용없다. 다음번에도 데리고 나올 것이 뻔하다.

사실은 황자님의 명이 아니라, 이 사람이 자신을 지목한 게 아닐까?

개의 안내를 따라 움직인다. 복도는 단순해 보이면서도, 갈라지는 길이 많았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넓게 느껴진다. 신도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어서, 몇 번이나 같은 길을 다시 돌아가야 했다. 주술로 몸을 숨긴 콜린은 신도가 지나간 후 모습을 드러냈다.

상관은 어디 갔나 확인해보니, 천장 위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벽면을 타고 내려온 그녀는 작은 목소리를 냈다.

“얼마나 더 가야 해?”

“거의 다 왔어요.”

복도 끝에 있는 방으로 두 사람을 안내한 개는 부적으로 돌아갔다.

면사로 얼굴을 가린 두 여인이 지키고 있는 방이다. 비전투원으로 보이지만, 입고 있는 옷이 신도들과 다르다. 아마도 파수꾼들이 차려입는 신복이다. 아이네르는 시선을 보냈다. 혹시 무슨 수가 있냐고 묻는 것 같다. 콜린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길은 없다. 제압하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다. 그 대답에 아이네르는 주먹을 쥐었다. 아, 말릴 틈도 없었다. 벽면을 타고 천장을 달리기 시작한다. 다가오는 소리에 고개를 든 두 여인은 떨어지는 주먹을 볼 수 있었다.

제압까지 걸린 수는 하나.

의식을 잃은 두 여인을 뒤에 둔 채 아이네르가 씩 웃었다.

“가자, 애기야.”

“네, 네, 알겠습니다요. 아기인 제가 뭐라 하겠습니까.”

성격은 둘째치고, 든든한 상관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

방 안쪽은 텅 비어 있었다. 식재료 창고로 쓰는 방이었는지, 말린 고기를 비롯해 곡식이 가득했다. 뭔가 특이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저것 뒤져보던 아이네르는 금방 흥미를 잃고 곡식 자루 위에 앉았다.

“배고프지 않아?”

“먹을 거면 혼자 먹어요.”

이 상황에 잘도 먹을 게 들어가나 보다. 그녀는 입으로 말린 고기를 옮겼다.

바닥에 손을 올린 콜린은 천천히 마나를 끌어 올렸다.

이 건물을 분석한다. 유피에르 황녀님의 말이 맞다면 실종된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 있지는 않을 거다. 아마도 월각 내에서도 비밀리에 만든 공간에 감금되어 있을 확률이 높겠지. 월각의 구조가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눈 아래에서 펼쳐지는 구조를 읽어낸 콜린은 아이네르를 보았다.

“찾았어?”

“아이네르 님 아래입니다.”

“아래?”

거기에는 곡식과 말린 고기를 모아놓은 자루밖에 없다.

콜린은 그 아래를 가리켰다. 아하, 그런 소리인가. 아이네르는 자루를 치웠다. 바닥에는 살짝 드러난 균열이 있었다. 문고리를 찾은 그는 그대로 바닥을 당겼다.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로 드러나는 입구가 드러났다.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맡네. 은퇴하면 관아에서 보는 거 아니야? 옥에서 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 그 있잖아. 매번 놀러 오는 꼬맹이 아가씨가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그것도 농담이라고 한 겁니까?”

“칭찬이다, 바보야.”

콜린의 곱슬머리를 마구 엉클어놓은 아이네르는 지하로 내려갔다.

*&*

으슥한 토굴이었다.

축축한 습기가 느껴지는 것이 굴을 판 곳은, 낙양이 아니라 늪지 쪽인 것 같다. 불빛에 의지해 앞을 나아가는 아이네르와 달리, 콜린은 토굴 벽면 곳곳에 있는 그림에 주목했다. 어떤 동물을 연상시키는 그림이다. 검은빛의 파충류.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쁜 느낌을 주는 그건 뱀이었다.

“신교는 달토끼를 모신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요. 달토끼를 모신다고 했죠.”

“근데 저건 토끼가 아니잖아?”

“뱀이네요.”

이해할 수 없다. 음, 하고 아이네르는 얼굴을 찌푸렸다.

“근데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데?”

“우연이네요. 저도 그런데.”

잠시 지켜보던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쳤다.

“이거 캘러미티가 모시던 신이지 않았어?”

“맞아요. 조금 모양새가 다르긴 하지만요.”

“근데 그게 왜 여기 있어?”

“…….”

“근데 그게 왜 여기 있어?”

“저기 말입니다.”

반복되는 상관의 물음에 콜린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좀 스스로 생각해보면 안 됩니까?”

“뭔 소리야.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지.”

“아니, 그러니까…….”

목소리가 높아지던 찰나 아이네르가 손을 들었다.

수화를 본 콜린은 입을 닫았다. 벽 건너편을 확인해보라는 듯 아이네르가 턱짓을 보낸다. 부적을 꺼내 다시 개를 만들어낸다. 이번에는 꽤나 크기가 작다.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간 개는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갔다.

개와 시선을 공유한 콜린은 벽 너머에 한 남자가 서 있는 걸 봤다.

나무로 만든 벽을 등지고 있는 파수꾼은 스윽 고개를 들었다. 개와 시선이 마주친다. 자연스럽게 그 손이 움직였다. 무언가 날아온다. 콜린은 개와 링크를 끊었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부적으로 향하던 마나가 끊겼다.

“한 명입니다. 부디 무운을.”

콜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네르는 도를 뽑았다.

처음부터 전력이다. 이글거리는 강기가 통로를 열기로 채운다. 콜린은 입가를 가렸다. 아이네르의 투기에 반응한 파수꾼의 손이 검은 낫으로 변했다. 본신? 아니, 무언가 다르다. 녀석의 마기는 생각보다 더 짙었다. 얕잡아볼 상대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콜린은 걱정하지 않았다.

철혈명도라고 불리는 상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도를 뽑은 이상 교전은 금방 끝나리라.

하지만 수합이 오가고 난 뒤에야 파수꾼이 평범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그는 깨달았다.

“쳇. 콜린!”

아이네르는 부관을 불렀다.

생각보다 저항이 거센 걸까. 도와 맞닿은 낫이 그녀의 얼굴을 노리고 있었다. 움직임이 바뀐다. 일대를 베어내듯이 도가 크게 휘둘러졌다. 파수꾼의 몸에 긴 자상이 남았다. 그러나 녀석의 낫은 느려지지 않는다. 마치 살과 피를 주는 것이 전제로 깔린 움직임이다. 베인 상처가 다시 회복되는 걸 본 그녀는 혀를 찼다.

“기회가 보이면 안쪽으로 들어가. 난 이 녀석을 부수마!”

“차라리 제가 거드는 편이…….”

“한 방에 끝내는데, 너는 방해다!”

“알겠습니다.”

모처럼 사람이 걱정해주고 있는데. 교전을 이어가는 두 사람을 본 콜린은, 태연히 그가 지키는 안쪽으로 향했다. 그걸 지켜볼 파수꾼이 아니다.

낫이 꺾인다. 그 끝이 노리는 곳은 콜린의 목이다.

따라붙듯이 아이네르의 도가 움직인다. 낫을 노리는 게 아니다, 녀석의 손목을 노린다. 낫 끝이 흔들린다. 목 아래, 쇄골을 노리고 낫이 쇄도한다. 하지만 낫은 콜린의 몸에 닿지 않았다. 부적에서 만들어진 하얀 막이 낫을 막고 있었다. 일순간 파수꾼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아이네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철명도법(鐵冥刀法)

유귀중겁(幽鬼重劫)

도와 부딪친 낫이 박살 났다.

강기의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낫을 베어낸 그 자세 그대로 놈의 몸을 노리고 들어간다. 아이네르는 파수꾼의 수급을 취했다. 떨어지는 녀석의 얼굴이 몸을 본다. 그 두 눈은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파수꾼은 당황하지 않았다. 세상을 시야에 담은 녀석은 재차 움직임을 취하려 했다.

그러나 아직 아이네르의 도는 변화하고 있었다.

불길과 같은 강기가 달렸다.

목을 잃은 육신이 춤추는 강기 속에서 흩어졌다. 고기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도륙한다. 몇 점 안 되는 살 조각이 땅에 떨어지자, 콜린의 부적이 그 뒤를 이었다. 파편에 붙은 부적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것은 떨어진 목도 다를 것이 없었다. 부들부들 떨던 파수꾼은 그것으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왜 바로 들어온 거야?!”

“화내지 마요.”

“콜린.”

“아이네르 님을 믿었으니까 움직였을 뿐입니다.”

“그럼 다리는 왜 떠는 건데?”

“이건 어쩔 수 없어요.”

생각 외로 무서웠던 걸 어떡하란 말인가.

못 미더운 부관의 모습에 아이네르는 입꼬리를 올렸다.

“다음에 맛있는 거라도 같이 먹으러 갈래?”

“도서관으로 가는 거라면 환영할게요.”

정말 멋없는 남자라니까. 아이네르는 웃음을 터뜨렸다.

얼굴이 붉어진 콜린은 토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걷는 속도가 평상시보다 빠르다. 기분이 그대로 드러나는 걸음걸이를 보며 아이네르는 콜린의 뒤를 따라갔다.

파수꾼이 지키고 있던 굴 안쪽에는 이상한 그림이 가득했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였다. 뱀과 토끼를 모시는 신도. 그 아래에서 두 명의 여인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신설교는 선녀가 원래 둘이라고 했죠?”

“그랬던가?”

“그랬어요. 지금 있는 선녀는 해의 선녀라고 했죠. 달의 선녀가 부재중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흠…….”

아이네르는 전혀 관심 없다는 느낌이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콜린은 다시 벽면을 보았다. 이제 그림 속에 있던 두 여인은 서로를 향해 손을 들고 있었다. 자연스레 그녀들이 모시고 있던 뱀과 토끼도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툼이 벌어진 걸까.

다음 그림에서는 뱀을 따르던 여인과 신도가 쫓겨나고, 커다란 궁 안에는 토끼를 따르던 이들이 남았다. 아이네르는 그림에 관심이 없다. 아무래도 황녀님이나 라피엘과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림을 외운 콜린은 문 앞에서 귀를 기울이는 아이네르를 보았다.

“적은 없는 것 같아.”

“인기척은 느껴지는데요?”

아이네르는 부적을 꺼내는 콜린의 손을 막았다. 그녀는 문을 열었다. 문 안쪽은 긴 통로가 이어지고 있었다. 좌우를 장식한 수많은 철창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건…….”

“실종된 사람들은 물론이고, 무인들도 있는 것 같은데.”

콜린은 사람들을 확인했다.

죽은 건 아니다. 간신히 숨이 붙어 있지만, 의식이 없는 건 물론이고 상태도 좋지 않았다. 대부분 망자가 되기 직전의 동포들이다. 어느 감옥도 마찬가지다. 간신히 고개를 드는 이들이나, 이성이 없어 보이는 시선. 이 정도면 거의 시체 안치실에 가까웠다.

“대체 무슨 목적인 걸까요?”

“진짜로 마왕 부활이라도 꾀하고 있는 거 아니야? 이거 무서워서 살겠나.”

“이 사람들은 그런 정기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다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자들입니다.”

“음……. 잘 생각해봐. 넌 주술사잖아? 뭔가 좀 찾아봐.”

그러나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되기 전에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들은 그 선을 넘어서 있었다.

“선녀님이신가요?”

“저희는 괜찮습니다. 곧 성찬식이니, 좀 더 기다릴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아이네르를 선녀님으로 착각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아이네르의 표정은 여태껏 콜린이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이 사람에게 의지하는 건 무리다.

“어떻게 할까요? 대기 중인 병사들에게 진입을 명할까요?”

“아니, 반짝이 황녀님이 대기하라고 했어. 그쪽은 라피엘에게 위임했다고.”

“대기요? 연락책은 있나요?”

“그런 건 안 주셨는데.”

정말 대책 없는 상관이다.

“여기서 무작정 기다리라고요? 잊으신 것 같은데, 여기는 지금 본거지 한복판이에요.”

“뭐, 그렇겠지? 그래도 그건 그것대로 재밌지 않겠어? 고난을 극복하면서 사람은 강해지는 거니까.”

아이네르는 자리에 앉았다.

뭔가 화내는 것도 바보같이 느껴진 콜린은 한숨을 쉬었다.

콜린은 아이네르의 옆에 앉았다.

아무래도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은 시간이 한참 흐른 후일 것 같다. 부적에 불이 붙는다. 한 마리의 개로 변한 녀석은 토굴을 타고 빠져나갔다. 일단 라피엘에게 이 상황을 알려두자. 황녀님에게 따로 명을 받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전 위험해지면 도망칠 거에요.”

“퇴로확보는 중요하지.”

“말해두지만, 일인용이니까요.”

“정말. 콜린은 날 너무 좋아한다니까. 걱정하지 마. 꼭 구하러 올게.”

“…….”

콜린은 얼굴을 찌푸렸다. 말하기도 귀찮다. 알면서도 이러는 게 뻔하다.

“그래서 우리 황녀 전하는 어디로 가신 거예요?”

“음, 달도 예쁘니까 배를 타러 간다고 하셨어.”

이건 또 무슨 소리래. 콜린은 멍하니 아이네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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