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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이신설교(以神設敎)(3)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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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설교(以神設敎)(3)

끈적끈적한 공기가 무겁기 짝이 없다. 악취 사이로는 비릿한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최하층에 도착한 알베르트는 나무판에서 내렸다. 비좁은 통로를 따라 나아간다. 인적 하나 느껴지지 않는 길을 따라 나아가니, 큰 공동(空洞)이 알베르트를 맞이했다.

공동 안쪽은 은은한 불빛으로 차 있었다. 공동을 이루고 있는 검은 광석에서 쏟아지는 불빛이다. 벽면에는 철장이 가득했다. 거리가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안쪽에는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초상 장로가 말한 최하층의 감옥은 여기를 말하는 것 같다. 알베르트는 빛 아래로 걸어 나갔다.

공동 중앙에는 낫과 같이 드리워진 자신의 손을 다듬는 파수꾼이 있었다.

“손님은 오랜만이군.”

알베르트는 허리춤의 화룡검을 쥐었다가, 월아로 손을 옮겼다.

유피의 충고를 따른다. 사용해야 할 검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파수꾼은 이전에 보았던 신도들과 다르다. 만전의 준비가 끝난 건지, 마기에 둘러싸인 그 모습은 흡사 악마에 가까웠다. 차라리 금낙장에서 부딪친 사룡이 훨씬 양호하다. 그래도 그는 인간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눈앞의 파수꾼처럼, 이질적인 존재로 탈바꿈하지는 않았다.

“믿어 의심치 말지어다. 우리는 천지신명을 숭배하는 자.”

파수꾼의 입이 이신설교의 구호를 자아냈다.

놈이 거리를 좁힌다. 지면에 긴 상흔을 남기며 쇄도한 낫이 알베르트의 팔을 노렸다. 공동 아래에서 월아의 빛이 달렸다. 낫과 월아가 맞물린다. 서걱, 하고 낫의 날이 월아에 베였다. 손이나 다름없는 녀석의 낫이 잘렸다. 파수꾼의 눈에 당혹감이 떠오르기도 전에, 월아는 그 목을 베어냈다.

“…….”

통, 하고 파수꾼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알베르트는 한 수로 파수꾼의 숨통을 완벽하게 끊어냈다. 하지만 녀석의 몸은 멈추지 않는다. 목을 잃은 파수꾼은 움직임을 이어갔다. 반쯤 잘려나간 낫이 휘둘러진다. 그 안에 담긴 힘은 가볍지 않다. 알베르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낫으로 변한 놈의 오른팔을 잘라낸다. 이쪽은 희생양이었던 걸까. 왼쪽 팔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위협적인 속도는 아니다. 알베르트의 손에 한층 더 속도가 붙었다.

이미 잘려나간 우측 팔에 이어 좌측 팔. 우측 다리. 좌측 다리.

알베르트는 파수꾼의 사지를 토막 냈다. 붉은 피가 지면에 흩뿌려지고 난 뒤에야, 녀석은 비로소 움직임을 멈췄다.

“이건…….”

아니, 멈추지 않았다. 토막 난 육편이 꾸역꾸역 움직인다. 흘러내린 피가 용기에 담기듯이 거꾸로 돌아간다. 고기 조각이 이어 붙고, 내용물을 회복한 놈은 떨어진 자신의 머리를 집었다. 월아의 한기로 얼어붙어 있던 절단면이, 거짓말처럼 녹아내리며 원위치를 되찾았다.

초상 장로를 상처입혔던 파수꾼과 마찬가지로, 녀석의 몸은 회복되고 있었다.

알베르트는 유피가 언급했던 불사라는 말을 이해했다. 과연, 죽지 않는 신도인가. 어떻게 보면 이 모습은 사람을 초월한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천지신명의 종복. 천지신명을 따르지 않는 이교도의 검에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사도(邪道)군. 사람이기를 포기한 건가?”

“어리석은 소리를. 우리는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했다. 천지신명의 종복이 되어 이 몸과 마음을 바치지 않는다면, 동포들은 내세에서도 구원받지 못한다.”

눈앞의 남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파수꾼도 더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 같다. 그는 재생된 낫을 알베르트에게 겨누었다. 검은 광택이 도는 낫은 조금 전과 다르다. 훨씬 단단하고, 예리하고, 무엇보다 마기가 더욱 짙어져 있다. 월아와 낫이 다시 부딪친다. 이번에는 교전이 성립한다. 월아와 부딪친 낫은 베어지지 않았다. 짙은 한기가 눌어붙지만, 놈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월아의 위로 검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검신 위에 맺히는 것은 검기가 아니었다.

알베르트가 가진 내공의 색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건지, 월아의 위로는 눈부신 빛이 떠올랐다. 소하 언덕에서 봤던 바로 그 빛이다. 유피가 말했던 것이 사실이라면, 놈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이 빛을 다룰 수밖에 없다. 문제는 월아가 먹어치우는 내공이 상상 이상이었다. 빛을 띄우는 것만으로도 탈력감이 엄청나다. 아직 여유는 있지만, 오래 다룰 수는 없을 것 같다.

속전속결.

이번에야말로 끝을 맺는다. 빛을 머금은 월아는 파수꾼의 오른팔을 잘라냈다. 낫이 치솟았다. 그것이 지면에 떨어지기 전에 월아는 놈의 심장을 꿰뚫었다.

“소용없는 짓을.”

알베르트의 등을 노리는 좌측 팔. 닿지 않는다. 어느새 뽑은 건지, 월아의 빛이 파수꾼의 손목을 잘라냈다. 녀석과 알베르트의 역량 차이는 압도적이다. 그러나 파수꾼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다른 이교도들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자신이다.

어리석게도 이교도는 검을 회수하고 있다.

심장을 노리면 무언가 달라질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떨어진 팔이 다시 돌아오고, 심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재생하겠지. 그것이 흑토 부대. 월궁을 지키는 최강의 방패다. 파수꾼은 지면에 떨어진 자신의 신체를 보았다. 수복을 위해 몸으로 딸려와야 할 팔이, 은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다.

고개를 돌려보니 불꽃은 자신의 가슴에도 남아 있다. 보란 듯이 재생되어야 할 몸이 거짓말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통증은 없었다. 생살이 타오르는데도 불구하고,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감옥으로 다가가는 이교도의 모습을 보며 파수꾼은 한 줌의 재로 변해 쓰러졌다.

파수꾼을 쓰러뜨린 알베르트는 인기척이 느껴지는 철창으로 다가갔다. 철창에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은 익숙한 녹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

“에일린.”

그녀를 깨운다. 멍하니 졸고 있던 에일린은 천천히 눈을 떴다. 무언가 이상한 걸 봤다는 듯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가, 이내 그게 현실이라는 걸 깨닫고 소리쳤다.

“알베르트 란!?”

“무사해서 다행이군.”

“기다려 봐. 왜 네가 여기에……?”

“신당으로 초대한 건 너였잖아.”

“아니, 확실히 그 말이 맞긴 한데.”

횡설수설하는 에일린의 모습에 알베르트는 안심했다. 생각한 것보다 상태가 괜찮다.

감옥 안에 갇혀 있었을 뿐이지, 뭔가 해코지를 당한 것 같지는 않다. 안색이 어두운 걸 제외하면 상처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를 이곳에 가둔 이는 나름대로 예우를 차려준 모양이다.

“잠깐만. 선녀님! 선녀님은 어디에 계셔?!”

“그건 내가 물어보고 싶은 말이야.”

“시간이 없어. 성찬식을 치르기 전에 당장 선녀님을 찾아야…….”

“진정해, 에일린.”

급하게 말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알베르트는 차분하게 물었다.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설명부터 부탁해도 될까?”

“그럴 시간이 없어! 성찬식은? 월중 장로님은? 내가 이곳에 갇히고 며칠이나 지난 거야?”

“양양 성의 사태가 끝나고 두 달이 흘렀어. 다른 장로는 모르겠어. 내가 본 건 초상 장로뿐이야. 그는 월중 장로를 막기 위해 일하 장로와 백토 부대를 동원하러 갔어.”

“선녀님은?”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묻고 싶어. 이 사태를 만든 건 선녀님이야? 아니면 월중 장로야? 널 여기에 가둔 건 누구야?”

“…….”

침착한 알베르트의 목소리에 머릿속이 조금 정리가 되었는지, 에일린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월중 장로야. 나는 선녀님의 명을 받고 흑토장의 뒤를 캐고 있었는데, 보다시피 발각돼서 역으로 잡히고 말았어. 녀석들은 말이지. 동포들을 잡아다가 월편을 먹이고 있어. 월편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그런가. 역시 월중 장로가 이번 사건의 배후인 모양이구나.”

유피의 짐작이 맞았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면 곧 성찬식이 시작될 거야. 예식이 진행되기 전에 선녀님을 구해야 해, 알베르트. 그 월편을 신도들이 먹어선 안 돼.”

“초상 장로가 그랬어. 월궁으로 가는 길을 네가 안내할 거라고.”

에일린을 뒤로 무르게 한 알베르트는 화룡검을 뽑았다.

한데, 검의 상태는 무언가 이상했다. 무뎌지고 날이 나간 곳이 곳곳에 보인다. 그것이 사룡과 싸우면서 남긴 격전의 흔적이라는 걸 알베르트는 깨달았다. 실전에서 쓰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일단 철창을 잘라낸다. 바깥과 안을 잇는 우리가 사라졌다.

“흑토는 따돌린 거야?”

바깥으로 나온 에일린은 공동을 둘러보았다. 이곳을 지키고 있던 파수꾼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차린 알베르트는 말했다.

“너희들 식으로 말하면 천지신명의 품으로 돌아갔어.”

“…….”

죽었다는 말을 돌려서 표현하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이 땅에서는 그들을 쓰러뜨릴 수 없어.”

“설명할 시간이 없어. 월궁은 어떻게 가야 해?”

“내 친구들이 길을 안내할 거야. 안쪽에는 월궁으로 가는 비밀 통로가 있어. 그곳을 통과하면 선녀님의 방으로 향할 수 있을 거야.”

“열쇠 같은 건 따로 필요하지 않나 보네.”

“열쇠가 내 친구들이야.”

“정령이?”

에일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에서 두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실프와 운디네. 에일린을 향해 고개를 숙인 두 정령은 날개를 펼쳤다.

“본래대로라면 외인이 월궁에 들어가는 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야. 거기에 지금 이용하는 통로는 선녀님의 방으로 연결되는 곳이야. 우리에게는 중대한 사안이야. 알베르트. 안에서 무엇을 보고, 듣더라도 그걸 밖에서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너무 제멋대로지 않아?”

“여기까지 왔다는 건 너도 암묵적으로 동의한 거 아니야? 그렇지 않고서는 초상 장로님이 널 이곳으로 내려보내지 않았을 거야.”

“…….”

알베르트는 공동을 둘러보았다.

안쪽을 가든 채운 철창은, 하나 같이 감옥이다.

공동 안쪽을 가득 채운 철창. 감옥의 수는 한눈에 담기도 힘들 정도로 많다.

인기척이 느껴지는 감옥은 없지만, 그 안에 있는 무언가가 사람의 사체라는 건 알베르트도 느낄 수 있었다. 지면에 눌어붙은 검은 흔적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핏자국이다. 상상하기도 힘든 끔찍한 일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몇 개월 정도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몇 년, 혹은 몇십 년. 그보다 더 오랫동안 신교는 이곳에서 무언가를 실험했다.

“에일린.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선녀님의 허락이 없다면 나는 대답해 줄 수 없어. 묵언의 맹세를 했으니까.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어.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은 동포들을 위해서였어.”

초상 장로와 마찬가지다. 에일린도 명확한 대답을 돌려주지 않는다.

그녀를 추궁하는 건 의미가 없겠지. 그럴 시간도 없을뿐더러, 대답을 얻고 싶다면 선녀를 찾아가는 게 맞았다.

“신당으로 돌아가 있어. 나는 선녀님을 데리고 돌아가겠어.”

“더 묻지 않는 거야?”

“물으면 대답해줄 것도 아니잖아? 이야기는 선녀님을 구하고 난 뒤에 해도 충분해.”

에일린은 조금 놀랐다는 듯 알베르트를 바라보았다.

그가 가만히 물러날 거로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고마워, 알베르트. 내 친구들이 길을 안내할 거야.”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신이 월궁까지 간다고 해도 짐이 될 확률이 높았다. 여기서는 신당으로 올라가 초상 장로와 합류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실프와 운디네가 알베르트의 어깨에 앉았다.

“명심해. 월궁에는 흑토 부대가 가득해. 혹여라도 마주치게 되면 도망쳐. 궁 내에서 그들은 절대로 쓰러지지 않으니까. 선녀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널 제거하러 들 거야. 내 친구들의 안내를 놓치지 마. 그 아이들이 널 선녀님에게 인도할 거야.”

집사의 어깨에 앉은 두 정령은 다리를 흔들었다. 마치 유피가 다루는 인형 같다.

순진무구한 얼굴에는 한 점의 근심도 보이지 않았다. 썩 믿음이 가는 안내인은 아니다.

알베르트는 발걸음을 옮겼다. 에일린은 멀어지는 등을 마지막으로 붙잡았다.

“알베르트 란!”

“?”

집사가 돌아본다.

양양에서는 해주지 못했던 말. 그때와 비슷한 데자뷔를 느끼며 그녀는 두 손을 모았다.

“부디 무운을.”

“에일린도.”

이 남자라면, 믿을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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