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이신설교(以神設敎)(2)
며칠 만에 방문한 신당은 어둠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종갓집처럼 아름다운 외문이 캄캄한 밤에 녹아 들어간다. 처마 밑에서 초롱불이 외로이 흔들렸다. 위태로운 불빛 아래에서 신도는 꼬박꼬박 졸고 있었다. 그 앞으로 검은 연미복을 입은 청년이 다가갔다. 선잠을 자고 있던 신도가 눈을 뜬다. 한밤중의 손님을 확인한 그는 입을 열었다.
“무슨 용무로 찾아오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것이 뭔지 알아보겠는가?”
알베르트는 신도에게 흑백이 섞인 패를 보였다.
나무패를 본 그는 잠기운이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음양패(陰陽牌)? 죄송하지만, 이 패는 어디에서 얻으셨는지……?”
“에일린 나이트워커가 줬네.”
“에일린?”
그녀의 이름을 들은 신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손님이 말하는 에일린이, 그가 알고 있는 에일린 나이트워커라면 이 일은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신도는 알베르트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한 뒤, 종을 흔들었다.
잠시 후, 한 남자가 신당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신도가 들고 있는 패를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에일린의 음양패가 확실하군. 자네가 그녀에게 받았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초상 장로님?”
“내가 안내하겠네. 자네는 다른 장로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게. 행방을 알 수 없는 에일린의 음양패가 돌아왔다고 말이네.”
“알겠습니다.”
초상 장로의 명을 받은 신도는 우측 건물로 향했다.
행방불명? 역시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 초상 장로는 알베르트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회랑(回廊)이라고 불리는 넓은 돌길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내부로 들어와서 본 누각의 크기는 알베르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컸다. 7층이 아니다. 최소 9층은 될 것 같은 높이다. 계단 끝에 자리한 누각의 입구에는 「神堂」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소개가 늦었군. 나는 본교의 장로직을 맡은 초상이라고 한다네. 자네의 이름을 물어봐도 되겠는가?”
“알베르트 라나입니다.”
“알베르트 란. 그렇군. 만나서 반갑네. 신당은 처음인 것 같으니 간단하게 말해주겠네. 이곳은 신당의 본 건물이고, 본당 좌우로 있는 건물들은 각각 일각(日閣)과 월각(月閣)이라고 한다네.”
본당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깨끗한 복도를 나아갔다. 바깥과 달리 신당 내부에는 신도들이 많았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며 지나간다. 두 손을 모은 그들의 인사는 하나같이 구호를 입에 담고 있었다.
“믿어 의심치 말지어다. 우리는 천지신명을 숭배하는 자.”
“믿어 의심치 말지어다. 우리는 천지신명을 숭배하는 자.”
복도를 닦고 있던 신도를 마지막으로 알베르트와 초상 장로는 한 방에 들어섰다. 방 안은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는 평범한 응접실이었다. 초상 장로의 안내를 따라 자리에 앉은 알베르트는 입을 열었다.
“에일린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이네. 나는 그녀가 양양에서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들었네. 자네는 에일린과 어디에서 만났고, 음양패는 어떻게 받은 것인가? 혹시 그녀가…….”
살짝 말문이 막혔던 초상 장로는, 다시 말을 이었다.
“천지신명의 곁으로 돌아간 건가? 그래서 자네에게 음양패를 남긴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신당에 오기 전, 유피는 알베르트에게 경고했다.
만약 이 사건의 주동자가 선녀가 아니라면, 신교를 통괄하는 3명의 장로가 가장 의심스럽다고. 그건 그녀가 언급한 월중 장로만이 아니다. 나머지 두 장로도 이번 일을 알고 어떤 식으로든 엮여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알베르트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을 일으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들은 장로 말고는 없다. 눈앞의 장로도 용의자 중 한 명이라 생각하는 게 맞다. 믿어도 좋을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조심스럽게 그를 살펴본 알베르트는 말을 이었다.
“저희는 지옥도가 펼쳐진 양양에서 만났습니다. 선녀님을 지키기 위해서 협조했고, 일이 마무리되고 난 뒤 에일린은 선녀님과 함께 낙양으로 향했습니다. 그때의 인연으로 그녀는 저에게 신당으로 찾아와달라면서 이 음양패를 맡겼습니다.”
“그 의심 많은 에일린이 자네에게 직접 말인가? 이해가 안 되는군.”
“의심이 많은지는 모르겠군요. 에일린은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톡톡 쏘는 그 성격은 알베르트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선녀님은 에일린과 같이 오지 않으셨네.”
“오지 않았다고요?”
“그렇다네. 안 그래도 선녀님 직속인 에일린은 훌쩍 떠나는 일이 많았지. 이번에도 그런 게 아닐까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게 된 것이 벌써 두 달째네.”
“…….”
알베르트는 초상 장로를 바라보았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알베르트는 입을 열었다.
“선녀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대답해줄 수 없네.”
“이곳에 계신 것은 맞습니까?”
“그것도 대답해줄 수 없네.”
“초상 장로님. 선녀님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내 눈에는 자네가 더 위험해 보이네.”
탁, 하고 초상 장로는 손가락을 튕겼다.
문밖에서 대기 중이던 파수꾼이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에일린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이네. 자네 같은 낭인이 그녀의 음양패를 들고 왔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네.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선녀님에게 해를 끼칠 만한 사람일지도 모르고. 부디 이해해줬으면 좋겠군. 성찬식은 날이 밝으면 끝날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게. 자네의 말이 사실이라면 선녀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걸세.”
“초상 장로님.”
“빈방으로 안내해드리게.”
알베르트와 초상 장로의 곁으로 파수꾼이 다가왔다.
역시 무모했던 걸까. 대화는 포기하는 편이 좋겠다. 싸울 수밖에 없다. 알베르트가 허리춤의 검으로 손을 옮기는 순간,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푹, 하고 섬뜩한 소리가 났다. 방에 들어온 파수꾼이 초상 장로의 배에 검을 찌른 것이다.
“자네……. 무, 슨 짓을?”
“뱀은 모든 걸 지켜보고 있습니다.”
망설임의 대가는 컸다.
초상 장로의 몸이 넘어간다. 알베르트는 움직였다. 방 안에 들어온 파수꾼의 수는 넷. 일순간에 제압한다. 허리춤의 검을 가져가려던 파수꾼의 얼굴에 팔꿈치를 찔러넣는다. 튕겨 나간다. 디딤발을 짚는다. 몸을 돌린 알베르트는 발검했다. 충격을 받아내지 못한다. 두 파수꾼의 창이 부러지고, 뒤쪽으로 날아간다. 남은 것은 초상 장로의 몸에서 검을 뽑아내는 파수꾼. 이 녀석은 손속에 자비를 둘 이유가 없다. 검기가 번뜩였다.
“쿠엑!”
“크윽!”
날아간 세 놈의 파수꾼을 뒤로 한 채, 알베르트는 초상 장로를 찌른 파수꾼의 머리를 밟았다. 손이 날아간 녀석은 피가 떨어지는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발에 힘을 싣는다. 비명이 한층 커진다. 놈의 움직임을 봉쇄한 알베르트는 초상 장로를 보았다.
“지금 당장 의원을…….”
“고, 고맙네. 그렇지만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아니네.”
초상 장로는 복부를 손으로 눌렀다. 붉은 피가 배어 나온다. 출혈이 심상치 않다. 안색이 하얗게 질려간다. 초상 장로는 알베르트가 제압한 파수꾼을 향해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설마 월중 장로가 시킨 짓인가?”
“…….”
파수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낮은 웃음소리였다.
알베르트는 발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놈은 고개를 꿋꿋이 세웠다. 그 몸에서 꺼림칙한 기운이 꿈틀거렸다. 눈을 의심했다. 떨어져 있던 손목이 거짓말처럼 다시 붙었다. 알베르트는 반사적으로 발을 들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일으키는 파수꾼의 머리로, 발꿈치가 떨어졌다.
정수리에 꽂힌 충격에, 놈의 눈이 돌아간다. 의식을 잃은 녀석은 응접실에 쓰러졌다.
“시간이 없습니다. 초상 장로님. 정말로 선녀님의 위치를 모르시는 겁니까?”
“…….”
초상 장로는 식은땀을 흘렸다.
“구해준 건 고맙지만, 나는 아직도 자네를 믿을 수 없네.”
“우연이군요. 저도 장로님이 의심스럽습니다. 이게 자작극일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
“…….”
말없이 알베르트를 바라보던 초상 장로는 한숨을 쉬었다.
“선녀님은 현재 월궁에서 성찬식을 준비하고 계신다. 원래라면 자네 같은 외인은 물론이고, 우리 신도들도 장로를 제외하고는 접견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정결한 기운을 만들기 위해서다. 의식 도중에 불온한 기운이 침범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하네.”
“그럼 의식을 중단하면 되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인데 굳이 성찬식을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외인인 자네에게는 말할 수 없네. 성찬식은 형식뿐인 의식이 아니라네. 이번 시기를 놓치면 앞으로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르지.”
“한낱 의식이, 선녀님의 목숨보다 중요한 겁니까?”
“중요하네.”
“…….”
초상 장로의 단언에 알베르트는 말문이 막혔다.
신복의 소매를 찢은 그는 떨리는 손으로 복부를 동여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알베르트는 말없이 그 손길을 도왔다. 그래도 지혈은 되지 않는다. 붕대로 삼은 옷가지 너머로 피가 흘러내렸다. 흔들리는 알베르트의 로사리오를 본 초상 장로는 입을 열었다.
“성찬식을 포기할 수는 없네. 예식은 반드시 진행되어야 하네. 그래도 자네가 우리의 힘이 되어주겠다면, 선녀님을 지켜주게. 성찬식이 무사히 끝날 수 있게, 월중 장로가 손댈 수 없게 말이네.”
“애초에 저는 선녀님을 지키러 온 겁니다.”
“그대에게 음양패를 맡긴 에일린을 믿어보겠네. 알베르트 란. 월중 장로가 정말로 이 일의 뒤에 있다면, 흑토 부대 전원이 포섭되었을 가능성이 크네. 자네의 말대로 선녀님이 위험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도 아무 준비 없이 그들과 싸울 수는 없네. 나는 이 길로 일하 장로와 접촉하겠네. 백토 부대를 동원해서 내려가지. 그때까지 선녀님을 부탁하네.”
알베르트는 대답 대신 두 손을 모았다. 초상 장로는 품에서 패를 꺼냈다.
피가 묻은 음양패는 에일린의 것과 다르게 양쪽의 색이 선명했다.
“이걸 가지고 본당 지하로 향하게나. 이 음양패를 보이면 신도 대부분은 길을 열어줄 거네. 그렇게 최하층에 이르면 지하로 들어가는 길이 보일 걸세. 사태가 정말로 위급하다면 그곳을 지키고 있는 흑토들과 싸울 수밖에 없을 걸세. 하지만 그들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네. 가능하다면 의식을 빼앗게.”
“알겠습니다. 그럼 지하에는 월궁이 있는 겁니까?”
“아니, 버려진 감옥이 있네.”
“감옥?”
알베르트의 반문에 그는 말을 이었다.
“만약 자네의 말대로 에일린이 이곳에 돌아왔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는 거라면. 그녀는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네. 월궁으로 가는 길은 그녀에게 물어보게.”
“이해할 수가 없군요. 왜 이곳에 감옥이 있는 겁니까?”
“나는 대답해 줄 수 없네. 하지만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네.”
물음에 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답해줄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는 걸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가 알려주지 않겠다면 두 눈으로 보고 직접 판단할 뿐이다.
“초상 장로님의 말대로 저는 외인입니다.”
“알고 있네.”
복부를 부여잡은 채 초상 장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알베르트를 보고 입을 열었다.
“가게나, 알베르트 란. 선녀님을 부탁하겠네.”
알베르트는 응접실을 뒤로했다.
*&*
신도들은 알베르트의 물음에 착실하게 대답했다.
덕분에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로 내려오고 난 뒤에야 알베르트는 깨달았다. 지하는 초상 장로가 말한 최하층이 아니었다. 토굴(土窟)로밖에 보이지 않는 길목이 앞에 있었다. 이 안쪽이야말로 그가 말한 최하층이겠지.
토굴을 지키듯이 선 파수꾼이 알베르트에게 물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군요. 외인으로 보이는데, 이 앞으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을 알아보겠나?”
초상 장로가 준 패를 보인다. 음양패를 본 파수꾼의 눈에 경계의 빛이 섞였다.
“누구시길래 초상 장로님의 패를 가진 겁니까?”
“초상 장로님의 명이네. 아래로 내려가야겠네.”
“…….”
두 파수꾼의 시선이 교차했다. 창끝이 알베르트를 향했다. 꺼림칙한 기운이 눈앞의 파수꾼에게서 느껴졌다.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 점차 커지는 기운을 느낀 알베르트는 앞으로 나아갔다. 파고든다. 창이 반응하기 전에 그 가슴을 강타한다. 날아간 놈이 토굴을 막고 있던 나무문과 부딪쳤다. 문이 부서진다. 날아가는 동료를 본 놈은 창을 손에서 놓았다.
창을 놓아?
검은 마기가 녀석의 몸을 뒤덮는다. 그러나 늦었다. 알베르트의 손이 그 목을 노렸다. 손끝이 목젖을 찌른다. 쿨럭, 하고 파수꾼의 몸이 꺾였다. 팔꿈치로 가격한다.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 놈은 쓰러졌다.
[이상하군요, 마스터. 이들이 끌어내는 마기는 통상적인 마족의 마기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알고 있네. 그것도 아주 기분 나쁜 마기네. 마치 악마의 그것처럼 말이네.’
의식을 잃은 두 파수꾼을 지난 알베르트는 토굴 안쪽으로 향했다.
길목 중간마다 자리한 횃불은 통로를 밝히고 있었다. 지하는 수상한 장식물이 가득했다. 신교의 종교의식을 위한 것인지, 돌과 해골로 만들어진 탑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조악한 석탑이었다. 안쪽의 야명주가 빛나는 탑은 내려갈수록 변화를 거듭했다. 석탑이 뼈로 바뀌고, 어린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이 탑 끌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토굴 곳곳에 남은 검은 자국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베르트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끔찍한 곳입니다. 여기서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겁니까, 마족들은?]
‘…….’
통로가 비좁아졌다. 답답하던 공기에 악취가 섞이고, 잔향처럼 어려있던 안개가 짙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던 천장도 살짝 내려온 기분이 들었다. 길이 막힌다. 앞에는 나무로 된 장치가 있었다. 확인해보니, 지하로 내려가는 이동 수단인 것 같다. 알베르트는 장치를 조작하니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음이 나며 나무판은 지하로 내려갔다.
‘최하층으로 향하는 것 같군.’
[불길합니다, 마스터. 무엇이 나타날지 알 수 없습니다.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천칭의 경고에 알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판 아래로 보이는 지하는 어둠에 둘러싸여 있었다. 명백히 이질적인 장소다. 몸 안의 마기가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알베르트는 마른 침을 삼켰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