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이신설교(以神設敎)(1)
금낙장을 나온 알베르트는 라피엘 일행과 합류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라피엘의 푸른 단발이 예쁘다. 모양새가 바른 머리 장식과 구김 한 점 없는 시녀복. 몇 달 만에 보는 그녀의 모습은 이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여전히 자기 관리에 철저한 모양이다. 모셔야 할 주인님이 곁에 없어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은, 그야말로 사용인의 귀감이라고 할 만했다.
그녀의 곁에 있는 두 남녀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남자와 갈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인. 남자는 사룡과 싸우는 알베르트를 본 탓일까, 살짝 경계하는 기색이었고. 여인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베르트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설마 이런 곳에서 라피엘의 불륜 상대와 만나게 될 줄이야.”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실례인 말은 그만두세요, 아이네르.”
“괜찮아.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친구의 비밀은 반드시 지켜줄 테니까.”
음음, 하고 아이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 이해한다는 눈빛이 어딘지 모르게 기분 나빴다.
“입 좀 다무세요, 아이네르 님. 제가 다 창피해요.”
“창피? 콜린. 너 말이 좀 지나치다.”
“아이네르 님이 꺼낸 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네요.”
라피엘은 목소리가 높아지는 두 사람을 알베르트에게 소개했다.
“제 소꿉친구인 다니엘 아이네르입니다. 이쪽은 콜린 디아트리스. 그녀의 부관입니다. 여기는 알베르트 란입니다. 유피에르 황녀님의 전속 집사십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알베르트 라나라고 합니다.”
두 남녀를 향해 알베르트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콜린은 뭔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열었다.
“유피에르 황녀님의 집사?”
“네, 그렇습니다.”
“집사인데 그렇게 강했다고? 잠깐만.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그 병약 황자님이 데리고 있는 노집사도 너처럼 강해?”
병약 황자님이라는 건 아벨 황자를 말하는 걸까?
“로버트 님이라면 당연히 강합니다.”
“알베르트 님.”
“역시 그랬나. 그 할아범, 어쩐지 수상하다 싶었어.”
“제발 가만히 좀 계세요.”
아이네르와 콜린이 티격태격 부딪힌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피곤하다는 듯 라피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쩐지 세 사람의 관계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라피엘. 시더 황자님과 함께 북부에 있던 게 아니었습니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긴 관계로 먼저 돌아왔습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데로 복귀할 생각이었습니다만…….”
“생각처럼 풀리지 않은 모양이군요.”
“부끄럽게도 그렇습니다.”
알베르트는 금낙장에서 받은 자료를 꺼냈다.
라피엘이 원했던 살인사건에 관한 서류는 꽤 두꺼웠다. 6개월 이내. 낙양에서 일어난 사건만 있는 게 아니다. 지저에서 발생한 사건까지 전부 기록된 것 같다. 자료를 받은 라피엘은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알베르트 님은 왜 그곳에 있던 건가요?”
“저도 라피엘과 마찬가지입니다. 유피에르 황녀님과 함께 한 사건을 쫓는 중이었습니다. 최근 낙양에서 일어나는 수상쩍은 실종사건을…….”
알베르트는 말꼬리를 흐렸다.
살인사건과 실종사건. 같은 걸 생각한 걸까. 집사와 시녀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혹시나 하지만, 두 사람이 쫓는 사건은 겹치는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
*&*
알베르트는 라피엘 일행을 데리고 객잔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유피는 서류와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고운 미간을 좁힌 채 서류를 보고 있던 유피는, 알베르트와 함께 들어온 일행을 보고 안경을 벗었다.
그녀를 본 라피엘은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유피에르 황녀님을 뵙습니다.”
뒤따르듯이 두 남녀가 예를 갖췄다.
“유피에르 황녀님을 뵙습니다.”
“유피에르 황녀님을 뵙습니다.”
세 사람의 인사를 받은 유피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알베르트를 보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그 눈에는 불만이 어려있었다.
“일어나도 좋아.”
황녀의 허락을 받은 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피를 보고 침착한 라피엘과 달리, 나머지 두 사람은 눈치가 이상했다. 호오, 하고 눈을 반짝이는 아이네르는 그나마 낫다. 곱슬머리의 콜린은 유피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뒤쪽의 두 사람은?”
“호법대 좌총관 다니엘 아이네르입니다.”
“부관인 콜린 디아트리스입니다.”
유피와 시선이 마주친 아이네르는 두 손을 모았다. 반면, 콜린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두 남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피는 곧 흥미를 잃었다.
알베르트는 찻주전자를 확인했다.
무게가 가볍다. 넉넉히 챙기고 갔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더 차를 찾은 모양이다. 집사가 차를 준비하는 사이 손님들은 자리를 잡았다. 서류로 가득한 책상을 빙 둘러앉는다. 각자의 앞으로 찻잔이 올라오자, 유피는 입을 열었다.
“차를 얻어먹으러 온 건 아닐 테고.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혹시 북부에서 오빠가 돌아온 거야?”
“황자님은 여전히 전선에 계십니다. 저희는 낙양에서 발생한 사건을 처리하러 내려왔습니다.”
“사건이라면?”
“최근 낙양에서는 정체불명의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쫓고 있는 실종사건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어 보여.”
알베르트는 라피엘의 말을 거들었다.
책상 위에는 알베르트가 가져온 서류가 있었다. 6개월분의 사건을 모은 서류의 양은 적지 않았다. 빠르게 내용을 확인하던 그녀는 이신설교 대목에서 손을 멈췄다.
“계속해봐.”
“저희가 첫 보고를 받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입니다. 한 골목에서 마물에게 죽은 것 같은 시체가 발견됐습니다. 피해자의 이름은 불명. 빈민가에서 살던 남자로 생각됩니다만, 신교의 신도라는 것 외에는 확인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이유는?”
“시체의 훼손 상태가 너무 심했습니다.”
첫 희생자부터 그랬다.
쪼개진 얼굴은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고. 시체는 토막 난 상태로 곳곳에 뿌려져 있었다는 모양이다. 덕분에 신고를 받고 도착한 조사원이 이를 수습하는 데 꽤 애를 먹었다는 것 같다.
“한 명인 건 확실해? 현장이 그랬다면 피해자의 수를 확인하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파편을 전부 모았습니다. 유실된 조각을 제외해도 한 사람분의 몸만 나왔습니다.”
“직업정신이 투철한 부하네. 다음에 봉급이라도 더 얹어주지그래?”
“현장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힘들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을 맡기 무섭게 사무직으로 자리를 옮겼다더군요.”
“…….”
“당시 상황을 물어보는 것도 고역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참혹한 현장의 모습이 트라우마가 된 모양이다.
“그게 첫 사건이었어? 아니면 처음으로 확인된 사건이야?”
“후자입니다.”
유피는 입가를 찡그렸다.
전자여도 골치 아픈데, 후자라면 생각할 것이 훨씬 많았다.
“저희가 범인을 쫓는 사이에도 사건은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피해자의 수는 점점 늘어났고, 시체의 훼손도 심해졌죠. 범인은 손속이 잔인한 건 물론이고, 살인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다른 피해자들에게 공포를 심기 위해 인육을 산 채로 뜯어 먹었더군요.”
“평범한 살인마는 아니네. 거기에 너희들의 추적까지 피하고 있는 거잖아? 흠, 무인들은 조사해봤어? 녀석들이 아니고서는 이런 범행은 저지를 수 없을 것 같은데.”
“현장에 무공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거야 무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지울 수 있잖아. 일반인을 상대로라면 굳이 무공을 쓸 필요도 없을 테고. 다니엘도 무인이니까, 내 말이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은데?”
“음, 그렇긴 한데 말이죠. 참, 아이네르라고 불러주세요. 전 다니엘이라는 이름은 별로거든요. 반짝이 황녀님.”
바, 반짝이 황녀? 당황한 유피가 두 눈을 깜박였다.
그녀의 반응은 아무래도 좋은 듯 아이네르는 말을 이었다.
“거기 있는 집사 정도면 모를까. 무공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싸우는 건 진짜 힘들거든요. 보통은 불가능해요. 무공이라는 건 버릇 같은 거여서, 그걸 남지 않게 일을 저지를 만한 무인은 낙양 내에서도 몇 없거든요.”
유피는 알베르트를 보았다. 아이네르의 의견에 동의하냐는 시선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무인들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도 몇 없다는 건 짐작 가는 무인이 있다는 말이네?”
“지저의 싸움꾼들. 특히 금낙장 최고의 무인으로 꼽히는 사룡이 의심스러웠죠.”
사룡대회의 오만한 주인.
도전자들을 철저히 유린하면서 죽이는 그 무인이라면, 무공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건 간단했으리라. 실제로 알베르트와 검을 섞던 그의 무공은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
“근데 사룡은 범인이 아니더라고요. 녀석의 검은 힘에 미쳐 있었지, 피에 굶주린 무인이 아니었어요. 그냥 힘을 너무 추구한 나머지 마인으로 나아간 불쌍한 인간이에요.”
“확신할 수 있는 거야?”
“믿어도 좋아요. 뭣하면 저보다 집사에게 물어보세요. 실제 검을 섞은 건 그 사람이니, 저보다 더 잘 알고 있을걸요?”
그게 무슨 말이냐는 유피의 시선에 라피엘이 입을 열었다.
“알베르트 님은 오늘 사룡을 쓰러뜨렸습니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온 거야?”
질렸다는 그녀의 목소리에 알베르트는 고개를 돌렸다. 어디 보자. 찻잎이 얼마나 남았더라…….
“나중에 같이 얘기 좀 해.”
“별일 아니었어.”
“알.”
“알았어, 유피.”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콜린.”
“네, 넷!? 부르셨습니까, 황녀님.”
유피의 부름에 콜린의 대답이 높게 튀어 올랐다.
바짝 긴장한 그 모습에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주술사로 보이는데, 사령술은 쓰지 않은 거야?”
“화, 확인해봤지만 범인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잘 들리고 있으니까 목소리 좀 낮춰. 이유는?”
“그게, 사령들이 다 본인을 가리키는 바람에…….”
“콜린 디아트리스.”
유피는 중얼거리듯이 말한 콜린을 풀네임으로 불렀다. 히익, 하고 놀란 콜린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녀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조심스럽게 콜린이 시선을 들었다.
“이야기할 때는 사람의 눈을 보고 말해. 지금 네가 말을 걸고 있는 상대는 사령이 아니야. 네 주군과 마찬가지로 너희들의 황녀인, 유피에르 바토리야.”
“…….”
화를 내는 게 아니다. 차분히 가라앉은 유피의 눈을 본 콜린은 두 손을 모았다.
“죄송합니다.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제가 확인한 37건의 사건 중 20건에 한해서 사령술을 행했습니다.”
“20건이라, 생각보다 좀 많네. 나머지 17건은 왜 행하지 않았지?”
“시체의 훼손이 너무 심한지라, 영을 불러올 수 없었습니다.”
“좋아. 나머지 20건에 대해서 보고해봐.”
“제 실력으로는 영을 오래 붙잡을 수 없고, 이야기를 거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해서, 범인을 지목하는 형식으로 영에게 물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시체를 가리키거나 스스로를 가리켰습니다.”
흐응, 하고 유피는 물었다.
“지금까지 죽은 이들은 얼마나 되지?”
“현장에서 흘러나온 피나 육편(肉片)으로 추측해 보았을 때, 최소 수백 명은 넘을 것 같습니다.”
“두 달에 수백……. 지저까지 합한다면 희생자는 천 명에 육박하겠는데. 그 정도라면 실험은 충분히 끝냈겠네. 일반 악마를 강림시키는 정도라면 가능하겠어.”
“악마?”
“처음으로 확인한 사건이 두 달 전. 그러나 지저까지 범위를 넓힌다면 사건의 시작은 최소 다섯 달 전. 길을 준비하기에는 충분한 피야. 시간이 많지 않겠는데.”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니다. 혼잣말을 마친 유피는 입을 열었다.
“라피엘 슈네르. 현재 기용할 수 있는 사병은 얼마나 되지?”
“많지 않습니다. 병력 대부분은 캘러미티를 막기 위해 북부 전선으로 향해 있습니다. 지금 바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잘해야 500명 안팎일 겁니다.”
“충분해. 그 병력으로 신당을 포위해줘. 주의해야 할 점은 신교는 물론이고, 주민들도 그들이 관병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야 해.”
“신교와 전면전을 벌이실 생각입니까?”
라피엘이 고개를 들었다. 드물게도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져 있었다.
“반대합니다. 신교를 믿고 따르는 주민은 어림잡아도 4할이 넘어갑니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신당을 공격했다가는 수습할 방법이 없습니다. 선녀의 존재도 문제입니다.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은 비단 신도들만이 아닙니다.”
“걱정할 필요 없어. 진입하는 건 병사들이 아니야. 좀도둑이 담을 넘을 뿐이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바보 오빠에게 피해는 없을 거라는 말이야.”
이해하지 못하는 세 사람에게 유피는 설명하지 않는다.
혼자서 무언가를 이해하고, 혼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알베르트는 양양 성의 일을 떠올렸다. 그 성벽 위에서도 그랬다. 자신이 이해한 것을 굳이 남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녀의 사고방식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라피엘은 지금 즉시 병사를 동원해줘. 잊지 말고 북부 항구까지 봉쇄해줘야 해.”
“유피에르 황녀님.”
“작전 설명은 병력을 동원한 뒤에. 오빠한테 지휘권은 받았을 거 아냐? 지금은 날 믿고 따라와 줘.”
“…….”
한동안 유피와 시선을 마주하던 시녀는 아이네르를 돌아보았다.
군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은 이 여성이 갖고 있었던 건지, 대답은 아이네르가 받았다.
“철혈명도(鐵血冥刀) 다니엘 아이네르, 유피에르 황녀님의 명을 받듭니다.”
세 사람이 방에서 나가자, 유피는 숨을 크게 뱉어냈다.
푹신한 의자에 몸을 맡긴 그녀의 얼굴이 홀가분해졌다.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쭉 빠진 것 같다. 피곤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알베르트는 다시 차를 탔다.
“알. 단독행동을 부탁해도 될까?”
“문제없어. 유피는 바깥의 상황을 지휘할 거야?”
“아니, 그쪽은 라피엘에게 위임할 거야. 긴급 상황이라고 해도 나한테 지휘권은 없어.”
향긋한 홍차 향이 방 안에 차올랐다. 알베르트는 그녀에게 찻잔을 건넸다.
“알이 가져온 정보로 확신이 생겼어. 나는 월궁으로 갈 거야.”
“위치를 파악한 모양이네.”
찻잔을 입으로 가져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예상이 맞다면 선녀는 이 상황을 모르거나 감금 중일 확률이 높아. 그곳이 신당일지, 월궁일지는 나도 확신이 안 서. 그녀가 어느 쪽에 있든 행방을 아는 이는 몇 되지 않을 거야. 알이 해줘야 하는 일은 선녀의 행방을 확인하고, 그곳에서 그녀를 빼 와줘.”
“알았어. 선녀는 나에게 맡겨.”
“그녀가 주동자가 아닐 경우의 이야기야.”
“유피.”
선녀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알베르트는 자신의 눈으로 본 선녀를 믿고 있었다. 연설 당시 그녀가 흘린 눈물은 거짓이 아니다. 그녀의 행동거지는 성녀님과 닮아 있었다.
“사적인 감정은 치워둬. 선녀가 주동자라면 이야기는 간단히 끝나지 않을 거야. 만약 그녀가 적이라면 신당에서 빠져나와. 합류 지역은 북부 항구. 신당의 북쪽이야.”
“선녀가 말려들었을 뿐이라면?”
“당초의 목적대로 그녀를 되찾아. 선녀를 구할 수만 있다면 주도권은 우리에게 넘어올 거야. 선녀가 꼭두각시가 아니라면 불순세력을 솎아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신교 내부에서 일어난 알력다툼은 선녀가 해결하는 게 최선이야. 우리가 나서는 건 그 이후의 이야기야.”
자정작용이 불가능할 경우, 신교의 일에 간섭한다는 말인가.
이해했다는 알베르트를 향해 유피는 서류를 내밀었다.
“아직 안 읽었지? 대충 알아두면 좋을 것 같은 내용을 모아놓았어. 특히 다른 건 몰라도 성찬식에 대해서는 꼭 읽어둬.”
“성찬식?”
“월편을 통한 불로장생. 누가 만든 건지는 몰라도 일찍이 시황제(始皇帝)가 추구했다는 불로초에서 비롯된 전승으로 보여.”
알베르트는 서류를 살펴보았다.
이신설교에 관해서.
특이하게도 교주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를 통괄하는 것은 3명의 장로. 신당의 일을 관리하는 초상 장로와 내부에서 나오지 않는 월중(月中) 장로. 외부의 일을 맡아 처리하는 일하 장로다. 마지막으로 해와 달을 상징하는 선녀가 있었다. 현재 달의 선녀는 부재중이지만, 해의 선녀는 한소망으로 마계 전역을 돌아다니며 선교에 힘쓰고 있었다.
신교의 파수꾼은 크게 두 부대로 나누어져 있으며, 백토와 흑토로 불린다. 백토 부대는 대외적으로 드러난 신교의 힘이다. 반면, 흑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신당 내에서만 활동하는 부대로 보이지만, 가끔 장로들의 호위로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성찬식. 신교에서 행하는 성사(聖事). 예식의 한 갈래로 보인다. 일반 신도가 참가하는 성찬식과 달리, 내부에서 행해지는 진짜 성찬식은 따로 있는 거로 보인다. 성찬식에서 말하기를, 달토끼가 내린 월편을 받아들인 자는 불로장생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한다.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지만, 선녀는 달토끼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식을 치르는 것 같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유피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잔 안의 내용물은 깔끔하게 비어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창가로 다가갔다. 따뜻한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양 볼 옆으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유피는 귀 너머로 쓸어넘겼다.
“무언가 알아낸 거야?”
“너무 알아내서 문제지.”
유피는 알베르트를 돌아보았다. 창을 통해 들어온 바람에 그녀의 머리가 흩날렸다. 별무리가 지는 것 같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알베르트는 무심코 시선을 빼앗겼다.
“알의 말대로 바람이나 쐬러 나갔더니, 재밌는 걸 주웠거든. 거기에 이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보이는 흉수와도 접촉했고.”
“…….”
“너무 화내지 마. 직접 맞닥뜨린 것 롯이지, 내가 아니니까. 봐, 상처 하나 없잖아?”
표정 관리가 안 됐던 모양이다. 양팔을 크게 펼친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창가에 기댄 그녀는 말을 이었다.
“범인은 신교가 확실해. 신도 전체가 적이라는 건 아니야. 의심스러운 세력은 월중 장로야. 나머지 두 장로도 엮여있을 확률이 높다고 보지만, 어떨지는 모르겠어.”
“장로가 더 배신했을 가능성도 고려해둘게.”
“그래. 거기에 흑토라는 파수꾼들도 꺼림칙해. 녀석들의 기운은 뭔가 묘해. 정말로 녀석들이 말하는 불로장생을 누리고 있을지도 몰라.”
“불로장생…….”
그 말이 의미하는 건 불사(不死)다.
도시 전설 같은 거로 치부하고 있었는데, 설마 유피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다행인 건 월아가 알의 손에 있다는 거야. 녀석들의 불사가 마기로부터 비롯된 거라면 역으로 월아의 힘이 빛날 수 있어. 파사현정의 힘은 이럴 때를 위해 준비된 거니까.”
알베르트는 천마의 유산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눈의 착각이 아니라면 월아에서 반짝이는 빛이 보인 것 같았다.
“믿어 의심치 말지어다. 우리는 천지신명을 숭배하는 자. 그래, 이신설교는 생각 이상으로 재밌는 종교야. 어디를 봐도 신흥종교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저기, 알은 궁금하지 않아? 대체 이런 집단이 어디에서 나타난 걸까?”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들었어. 신교는 갑자기 떨어진 종교가 아니잖아.”
“하지만 두각을 드러낸 것은 최근이야.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퍼지고 있어. 그럼 신교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 걸까?”
“그게 무슨 소리야?”
“그거야 뻔한 거 아니겠어?”
알베르트의 반문에 유피는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