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
마녀의 외출(2)
식사를 마친 유피에르 바토리는 여유롭게 차를 들고 있었다.
그녀가 찾아온 가게는 낙양에서도 유명한 차관(茶馆)이었다. 왕성근차관(王城根茶馆). 무희로 활동했던 시절부터 찾아왔던 가게다. 시간이 조금 흘러서 주인장이 바뀌지 않았을까 했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다도인(茶道人), 소연은 여전했다. 그건 실력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손이 자아내는 고급스러운 차향은 가슴을 간질였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것처럼 차관은 조용했다.
유피에르는 조성된 화단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치 모든 소란 속에서 떨어진 마녀의 산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지금이라도 밖에 나가면 자매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스윽, 하고 소연이 찻잔을 건넸다. 따뜻한 김이 올라온다. 유피에르는 두 손으로 잔을 받았다.
차를 입으로 가져가기 전에 색을 확인한다. 붉은 차는 맑은 빛깔을 하고 있었다. 사람을 매혹하는 색깔이다. 향은 어떠한가. 어디 한 점 흠잡을 곳이 없다. 방 안을 가득 채운 향은 이미 유피에르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었다.
찻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혀끝에서 녹아드는 정취는 그녀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말없이 찻잔을 비운 유피에르를 향해 소연이 입을 열었다.
“입에 맞으셨는지 모르겠군요.”
“최고의 차였어요. 가능하다면 제 집사가 주인장에게 다예(茶藝)를 배웠으면 할 정도네요.”
집사가 타준 차도 나쁘지 않지만, 역시 전문적으로 다예를 하는 사람에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유피에르의 칭찬에 소연은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다행이군요. 오랜만에 찾아오셨는데, 혹시 실망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절 기억하시는 모양이네요.”
“물론입니다. 손님같이 특이한 기운을 두른 분은 착각하지 않습니다. 분위기는 조금 바뀌신 것 같지만요. 아, 제 말은 이상해졌다는 게 아니라….”
“알고 있어요. 좋아졌다고 말하고 싶은 거죠?”
만나는 사람마다 그 말이다. 이쯤 되면 그녀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손님은 낙양으로 다시 돌아온 건가요?”
“잠시 일이 있어서 머무르고 있을 뿐이에요. 일이 끝나면 다시 돌아갈 예정이에요.”
“그런가요? 낙양도 꽤 변했으니, 모처럼 오신 김에 조금 둘러보는 건 어떠신가요?”
“변했다고요? 제 눈에는 달라진 게 없던데요.”
낙양의 거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벽 하나를 둔 채 야위어가는 약자들과 부를 누리며 살아가는 강자들. 빈부격차가 커졌으면 커졌지. 기분 나쁜 이곳은 무엇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신설교라는 신흥 종교가 나타난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죠. 쓰지 않던 별궁이 신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빈민가에도 활력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신교 말이군요. 제가 듣기로는 사교라는 풍문이 있던데. 주인장의 생각은 다르신가 보군요.”
“사교면 어떻고, 정교(正敎)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저희는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안식처가 필요할 따름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손님이 오늘 저희 차관을 찾아온 것처럼 말입니다.”
소연의 어조는 부드러웠다.
누구나 쉴 수 있는 공간은 필요했다. 동포들은 오랜 세월 고통받았다. 이신설교는 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처럼, 지친 마음에 차분히 스며들었던 모양이다.
“중요한 건 신교의 정체가 아니다. 그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다들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까요. 잠깐이라면 쉬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어요.”
유피에르는 다식(茶食)을 입으로 가져갔다. 과자는 소리 없이 그녀의 혀에서 녹아내렸다.
“선녀는 어떤 사람인가요? 소문이지만, 그녀의 성마력은 망자가 되어가는 동포를 구할 수 있다고 하던데.”
빈민가에서는 소문이 제멋대로 활개를 친다.
특히나 그것이 떠오르는 신흥 종교에 관한 이야기라면 별의별 소리가 다 있었다.
“손님께서 그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줄은 몰랐네요. 저잣거리에서 떠도는 말은 대부분 헛소문입니다. 그건 이신설교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사실 이신설교는 두 종파였다든지, 신당 아래에는 그들이 숨겨둔 궁이 있다든지. 믿을 수 없는 소문이 많죠.”
“소문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죠.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생겨나는 거예요.”
어떤 소문이든 원류가 되는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유피에르의 지적에 소연은 찻주전자를 내려놓았다. 뭔가 짚이는 바가 있다는 듯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러네요. 손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저도 가끔 신교의 파수꾼들이 무서울 때가 있거든요.”
“무서워요? 파수꾼이?”
“네. 아무래도 저는 눈이 불편하다 보니, 다른 감각이 예민하거든요. 모든 파수꾼이 그런 건 아닙니다만, 간혹 불온한 기운을 품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
불온한 기운. 뜻밖의 말에 유피에르는 입술을 핥았다. 무언가 수상쩍은 냄새가 났다.
“손님도 알다시피, 낙양의 빈민가는 언제나 시끄럽습니다. 이름 없는 아이들이 사라지고, 건장한 성인들도 하룻밤이 지나면 주검으로 발견되는 곳이죠. 관아의 사람들은 그런 사건에 다녀온 뒤 저희 차관을 많이 찾아옵니다. 방 안에 들어선 이들은 말이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꺼림칙한 기운을 몸에 지니고 옵니다. 죽은 자의 냄새라고 생각되는 기운을 갖고 말이죠.”
“그 기운을 파수꾼들이 두르고 있다는 말인가 보네요.”
“그렇습니다. 단순히 제가 과민반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요.”
소연이 느꼈다는 건 사령일지도 모른다.
시각이 없어진 탓에 영적인 감이 생긴 걸까. 이건 후천적인 재능에 가깝다.
눈앞의 다도인에게는 주술사의 소질이 있었다.
“실례가 아니라면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어디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알려드리는 건 문제 없습니다. 다만, 장소가 빈민가인지라 무희인 손님이 찾아가기에는 위험한 장소입니다. 혹여라도 찾아가실 생각이라면 그만두셨으면 좋겠네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괜찮아요. 그냥 장소가 알고 싶을 뿐이에요.”
안 그래도 서류를 보러 돌아가기 귀찮았던 찰나다. 의외의 곳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피에르의 눈이 반짝거리는 걸 소연은 보지 못했다.
*&*
유피에르 바토리는 빈민가 곳곳에서 행해지는 무료 배식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신설교가 주관한 이 자리는 작은 규모가 아니었다. 주변을 지키는 파수꾼과 함께 신도들은 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돌리고 있다. 이곳에서 배식 활동을 하는 건 신교의 3대 장로 중 한 명이라는, 일하(日下) 장로라는 모양이다.
“천지신명은 어떤 존재라고요?”
“우리 모두를 돌봐주는 신성한 존재요!”
봉사 활동은 자연스럽게 선도 행위로 이어지고 있었다.
성인은 몰라도, 아이들은 신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말은 칭찬 일색이다. 캘러미티와의 교전으로 관병이 부족한 지금, 신교는 아무 대가 없이 도시의 치안까지 손을 뻗고 있었다. 그 영향력은 일개 사교라고 부를만한 것이 아니다. 어디 한 점 꼬투리 잡을 곳이 없는 정교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성인(聖人)의 길을 지향한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저희와 함께 이동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환자들과 함께 움직이는 파수꾼들을 보는 그녀의 눈은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종교가 있을 리 없다.
깨끗하면 깨끗할수록 더러움은 쉽게 퍼지는 법이다. 하얀 종이에 떨어뜨린 먹과 똑같다. 변질된 종교는 교리라는 이름 아래에서 무슨 짓이든 저지른다.
유피에르는 그 가르침을 어머니에게 배웠다.
“이런 시기에 어찌하여 선녀님 같은 분이 나타났을꼬.”
“선녀님의 몸이 별로 안 좋다는 모양이여. 요즘은 얼굴조차 보기 힘드니.”
“이게 다 양양에서의 일 때문이라는 구만.”
“이화 어르신이 그렇게 선녀님을 찾았는데 말이여.”
그것과는 별개로 선녀 개인의 평판은 매우 높았다.
신교는 믿을 수 없지만, 선녀는 믿을 수 있다. 집사의 말을 떠올린 유피에르는 코웃음을 쳤다. 그게 더 문제라는 걸 그는 알지 못하는 걸까.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단순히 종이가 더러워진 거라면, 더러운 부분까지 잘라내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작품을 다루는 서화가(書畵家)가 변한 거라면 문방사우(文房四友) 전체를 바꿔야만 했다.
배식장을 지키는 파수꾼은 두 부대였다.
하얀 십자패를 가진 다수의 파수꾼과 검은 십자패를 지닌 소수의 파수꾼이다. 차관의 주인장이던 소연의 말이 맞다. 후자의 파수꾼들은 뭔가 기묘한 기운을 띄고 있었다. 마기지만 마기가 아닌 것 같다. 잠시 그들을 지켜보던 유피에르는 걸음을 돌렸다.
파수꾼을 조사하는 건 차후로 미루자. 지금은 현장을 조사하는 쪽이 더 중요했다.
빈민가를 걷는 그녀의 뒤를 롯이 따라온다. 먼저 갈 곳은 서류에 있던 장소다. 두 명의 성인이 죽었다는 골목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현장을 둘러보던 그녀는 소매에서 인형을 꺼냈다. 바닥에 나온 것은 총 4개의 인형이다. 병정 인형을 세운 유피에르의 발치에서 은빛 마나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마나와 맞닿은 지면에서 한 줄기의 선이 떠올랐다.
칙칙한 검은 색의 선은 거의 줄과 같다. 두꺼운 마나의 선을 띄워낸 유피에르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검은 줄에서 얇은 실을 풀어낸다. 붉은색, 파란색, 검은색, 회색. 하나하나 뽑아낸다. 굵은 줄이 점점 줄어들었다. 더는 실이 나오지 않는다. 유피에르는 남은 줄을 인형을 향해 떨궜다. 탁, 하고 줄과 인형이 부딪친다. 병정 인형이 끼륵, 하는 소리를 냈다.
인형의 색이 검은빛으로 물든다.
색이 변한 것은 두 인형. 나머지 인형을 회수한 유피에르는 양손을 들었다. 은빛 실이 움직인다. 그녀의 손 아래에서 두 인형이 연극을 시작했다.
병정 인형들은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막다른 길을 앞에 둔 채 둘은 자리에 앉았다. 두 인형은 손과 입을 움직이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감정이 격해진 것인지, 한 인형이 다른 인형을 때렸다. 처음에는 얼굴을, 다음은 가슴을. 간단한 다툼이 아니었는지. 싸움은 격해졌다. 한쪽 인형이 부서질 때까지 주먹을 휘두른 인형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골목을 나가는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자리에 쓰러진 인형은 자신이 부순 인형과 마찬가지로 곧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
유피에르는 손을 내렸다. 부서진 인형을 회수한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해가 떨어지기까지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못해도 두 세 군데 정도는 더 돌 수 있겠지. 그녀는 골목을 뒤로했다.
*&*
다른 장소에서 행한 인형극도 앞의 인형극과 다를 것이 없었다.
차이라고는 인형이 더 늘어났다는 것과 살해 방법이 잔인했다는 것 정도다. 범인은 다른 인형을 부수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사지를 잘라냈다. 이미 움직일 수 없게 된 인형을 잘게 잘게 조각낸다. 확인사살이라고는 할 수 없다. 광기에 이끌린 엽기적인 살해 방법이다. 대사를 끝마친 범인은 이번에도 현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부르르 몸을 떨더니, 인형의 머리가 박살났다.
소연이 알려준 마지막 현장을 확인한 유피에르의 입가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좀 더 재밌는 사실은, 다른 현장과 달리 이곳의 인형은 움직임이 격렬했다는 것 정도다. 마치 무인과 무인의 싸움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재밌네.”
거기에 모든 현장에서 떠오른 빛깔은 검은색이다.
더는 더러워질 수 없는 칠흑. 그것이 의미하는 건 압도적인 마기다.
매번 달라지는 범인.
하지만 살해 수단은 똑같다.
도망치지 않는 패턴까지도.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좀 더 수법이 잔인해지고, 죽이는 숫자도 늘어난다.
나오는 답은 하나다.
“강령술인가.”
그것도 금기로 칭해지는 술법, 일백이혼(一魄二魂)이다.
하나의 백(魄)에 두 개의 혼이 머무르는 금술(禁術)이다, 불러온 혼을 일시적으로 술자의 몸에 묶어 그 힘을 빌리는 강령술은, 한때는 비술(祕術)이라 부를 만큼 강력한 술법이었다. 그러나 부작용이 심한 나머지 지금은 사장되어버린 강령술이다. 이 술법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다. 다른 혼을 술자의 몸에 강림시킬 때마다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가 쌓이면 쌓일수록 백은 술자의 생령(生靈)과 다른 사령을 자신의 그릇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요컨대 두 혼은 섞이기 시작하고, 이는 술자의 인격을 붕괴에 이르게 했다.
이치에서 벗어난 일이다. 한 사람의 몸에는 하나의 혼만 머물러야 한다.
천기를 거스른 결과가 이것이다. 들어온 사령을 견디지 못한 백은 붕괴를 일으켰고, 이내 목숨이 다하게 되었다. 유피에르는 고개를 들었다. 확인해본 현장은 이곳까지 다섯 군데. 다른 곳을 더 둘러볼 필요는 없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얻었다.
범인의 표본을 확보하면 끝나는 문제다. 때로는 시체가 생자보다 많은 걸 말하는 법이니까.
이미 장례가 끝났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거야 파내면 될 뿐이다. 그녀가 직접 움직일 필요는 없다. 밖에 나간 집사가 돌아오면….
유피에르는 사고를 중단했다.
반대쪽 골목에서 무언가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기다. 그것도 악마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유피에르는 손가락을 튕겼다. 뒤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롯이 벽 위로 뛰어올랐다. 판자촌의 지붕을 밟은 롯은 골목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살육의 현장이었다.
검은 마기를 뿜어내는 한 남자가 빈민가의 한량들을 향해 손을 휘두르고 있었다. 단순한 주먹이 아니다. 맞닿은 머리가 터지고, 살이 덩어리째 날아간다.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다. 부순다는 말이 맞다. 본신을 드러낸 저항도 의미가 없다. 순식간에 그들을 전부 죽인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번들거리는 붉은 두 눈이 롯을 보았다. 롯과 시선을 공유하고 있던 유피에르는 혀를 찼다. 자리에서 뛰어오른 놈이 롯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롯도 늦지 않게 반응했다. 나아간 붉은 주먹이 남자의 주먹과 맞물렸다.
일격.
롯의 손이 박살 났다.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래팔, 팔목, 위팔. 일순간 오른쪽 어깨가 무너졌다. 다가온 놈의 연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슴. 쇄골과 맞닿은 주먹은 롯의 몸을 완벽히 끝장냈다. 롯을 조종하던 링크가 끊긴 걸 확인한 유피에르는 침음성을 흘렸다.
아무리 준비를 안 했다고는 하지만, 너무 쉽게 롯을 내줬다.
골목 위쪽에서 남자의 포효소리가 들렸다.
불길한 기운이 멀어진다. 유피에르는 롯을 아공간으로 돌려보냈다. 복구는 객잔으로 돌아간 이후에 하자. 일단은 녀석이 있던 장소를 확인하자. 뒷골목을 빙 돌아서 남자가 있던 곳에 도착한 유피에르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코와 입가를 덮은 그녀는 발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무너진 판잣집은 붉은 시체로 가득했다. 조금 전까지 재현하고 있던 인형이 사람으로 변하면 이런 느낌이겠지.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무너진 판잣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작은 아이가 몸을 웅크린 채 떨고 있었다.
“살아 있으면 말 좀 물어도 될까?”
“…….”
유피에르의 물음에 아이는 답하지 않았다.
두 손으로 엿보이는 아이의 두 눈은 겁에 질려있었다. 몸 곳곳에도 상처와 멍이 가득했다. 그 남자가 입힌 상처는 아니다. 아이의 손톱에는 자신의 살점과 피가 가득했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할퀴고 때린 것 같다. 단순히 충격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유피에르는 아이를 살펴보았다.
코끝을 자극하는 냄새는 혼혈 마족의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마기는 무언가 이상했다. 순혈 마족보다 마기의 양이 많은 건 물론이고, 폭주하는 것처럼 들끓고 있었다.
“흐응.”
무언가 일어날 것 같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가만히 지켜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곧 신고가 들어갈 것이고, 관아의 사람들이 이곳에 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무엇보다 괴로워하는 아이를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은 물어봐야겠네. 살고 싶니?”
“…….”
움찔, 하고 아이의 두 손이 반응했다.
“선택은 네 몫이야. 살고 싶으면 날 따라와.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남아. 죽는 것도 너의 선택이겠지. 물론 네가 날 따라온다고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살아남을 가능성은 있겠지. 자, 어떡할래?”
마녀의 물음에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본능적으로, 아이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걸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