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금낙장(金落莊)(2)
알베르트는 해가 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노을빛이 예뻤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다. 막 여섯 번째 장소를 확인한 참이다. 여기도 아니다. 아이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싸움판과 노름판은 별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도박꾼들이 몰린 공터에서 나온 알베르트는 길가에 쪼그려 앉은 지아를 볼 수 있었다. 피로가 밀려오는지, 소녀는 알베르트가 다가올 때까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오늘은 이만해야겠구나.”
“네, 네?! 아, 죄송해요. 뭐라고 하셨어요?”
“여기가 마지막이라고 했다.”
“마지막이요? 아직 돌아봐야 할 장소가 더 많은데.”
생각 외로 이 아이는 많은 후보지를 알고 있었다.
따로 길잡이를 더 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금낙장을 못 찾아도 상관없다. 그와 비슷한 장소를 들쑤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괜찮다면 내일 아침,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 보자.”
“내일이요?”
지아의 반문에 알베르트는 대답했다.
“따로 해야 할 일이 있니?”
“아, 아뇨아뇨아뇨. 없어요. 없어. 내일도 오시는 건가요?”
“너만 괜찮다면 계속 안내를 부탁하마.”
“그럼 보수도?”
“똑같이 주마.”
소녀의 두 눈이 반짝였다. 이만한 돈을 계속 벌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 같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할게요.”
[너무 좋아하는군요.]
‘어느 정도 이해는 하네.’
빈민가의 아이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은 한정적일 테니까.
또한, 이 아이는 혼혈이라고 했다. 혼혈인 마족 아이를 써주는 가게는 찾아보기 힘들다. 귀화루의 송이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린 알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특별했다. 기루에 팔려갈 정도의 아이라면 반반한 얼굴은 물론이고, 그걸 뒷받침할 재주가 필요했다.
반면, 이 지아라는 아이는 그런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서 머리나 성품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점을 깊게 봐준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혹은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막말로 빈민가에는 널린 게 아이들이었으니까. 지척에 널린 돌멩이들을 하나하나 다 확인할 수는 없다. 처음부터 하자가 있는 돌(혼혈)은 더더욱 그럴 것이고. 그녀가 빛을 보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겠지.
지아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진 알베르트는 몇 냥의 돈을 그 손에 쥐여줬다.
“들어가기 전에 뭐 좀 챙겨 먹고 쉬어라. 안내역이 체력이 없으면 더 돌 수 없을 테니까.”
“아, 나가는 길은….”
“그건 괜찮다.”
안내는 필요하지 않았다. 담벼락을 밟은 알베르트는 빈민가의 위로 뛰어올랐다.
미로와 같은 빈민가의 판자촌이 눈에 들어왔다. 지붕을 발판 삼은 알베르트는 멀리 보이는 거리 쪽으로 달려갔다.
“우와….”
홀로 남은 소녀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객잔으로 돌아온 알베르트는 산더미 같은 서류를 볼 수 있었다.
책상 앞에는 안경을 쓴 유피가 두 눈을 찌푸린 채 자료를 읽고 있었다. 알베르트가 돌아온 소리도 듣지 못한 것 같다. 그녀가 집중하는 모습을 본 알베르트는 소리 없이 방에서 나갔다. 보고는 씻고 온 뒤에 해도 충분할 것 같다. 깨끗하게 씻은 알베르트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얼굴 위에 있던 안경은 보이지 않았다.
찻주전자를 꺼낸 알베르트는 그녀의 잔을 채웠다.
이제는 익숙해진 홍차의 향을 맡으며 유피는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사건이 큰 것 같아. 이번 사태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사건이 몇 개나 있어.”
“도공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거네?”
“그래. 신교가 흉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료는 얼핏 보기에도 며칠에 끝날 양이 아니다.
한 서류의 이름을 확인해보니, 「낙양 실종 사건」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주영풍이라는 도공은 건강이 별로 안 좋았던 모양이야.”
“건강이 안 좋았다고?”
“마기에 몸이 먹혀들어 가는 거야. 우리 마족이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
망자화를 말하는 것 같다. 알베르트의 표정을 읽은 유피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마기를 제어하는 법을 연마하는 건데, 사람 일이라는 게 그리 쉽게 흘러가지는 않잖아. 알면서도 쓰게 되는 게 마기고. 이윽고 마기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대부분은 죽음을 선택해. 망자로 떨어지는 일을 피하고자 말이야.”
“주영풍이 곽부 어르신을 떠난 이유가 망자화 때문이라는 거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야. 그보다 그쪽은 어땠어? 금낙장은 찾았어?”
“아니,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그러네. 불법으로 운영되는 싸움판은 쉽게 찾을 수 없을 거야. 차라리 내 쪽에서 알아볼까?”
“괜찮을 것 같아. 쓸만한 안내인을 만났거든.”
“안내인?”
“응. 꼬마애인데, 생각보다 당찬 애야.”
알베르트는 빈민가에서 만났던 지아의 이야기를 꺼냈다.
빈민가 내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여자인 아이가 남자인 척 힘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생각보다 빈민가 안쪽의 노름판과 싸움판이 크다는 것.
이야기를 들은 유피는 흐응, 하고 콧소리를 울렸다.
“빈민가의 꼬맹이를 너무 믿는 거 아니야?”
“빈민가의 꼬맹이여서 믿을 수 있는 거야.”
알베르트는 책상 위의 자료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확인한 서류와 확인하지 않은 자료가 따로 분류되어 있었다. 양쪽 다 만만치 않은 양이다. 아무리 끝내도 줄지 않던 저택의 일이 떠올랐다. 유피의 안색이 나쁜 걸 알베르트는 이해할 수 있었다.
“조사하는 건 좋은데, 너무 앉아만 있지 말고 바람이라도 쐬고 오는 건 어때?”
“바람?”
“응. 기분 전환도 좀 할 겸. 밖에 나가서 사람도 보고 먹을 것도 좀 사 먹고. 안에만 있으면 될 일도 안 되기 마련이잖아.”
“…….”
유피는 별로 탐탁지 않은 표정이다. 좋은 대답을 기대하는 건 힘들 것 같다. 예전에도 그랬다. 아가씨가 억지로 데려가지 않는 한, 그녀는 저택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예전부터 묻고 싶었던 건데 말이야. 혹시 알은 내가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한다고 생각해?”
“아니야?”
“아니야!”
당연하다는 알베르트의 반문에 유피는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면 내가 이렇게 양양이랑 낙양을 돌아다니고 있겠어?”
“…….”
“그 못 미더운 시선은 뭐야?”
“그럼 그런 거로 해둘까.”
“알은 나랑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마녀의 얼굴이 구겨지는 걸 본 알베르트는 시선을 피했다.
*&*
다음 날, 알베르트는 지아와 만났던 빈민가로 향했다.
그녀가 지내는 판자촌은 북쪽 거리에서 가까웠다. 골목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알베르트는 소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쓰레기통 위에서 두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골목으로 들어온 알베르트를 본 소녀는 바닥에 내려왔다.
“안녕하세요, 형.”
“좋은 아침이구나.”
“정말로 오실 줄은 몰랐어요.”
“내가 거짓말이나 하는 사람으로 보였니?”
“아뇨. 하지만 절 상대로는 손해 보실 게 없잖아요.”
소녀는 스스럼없이 자신을 낮췄다.
딱히 신경 쓰는 기색도 없다. 지아는 알베르트의 앞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오전은 오후랑은 달라요. 모이는 장소가 변해요. 좀 많이 걸어야 할 거예요.”
안내를 시작한 소녀를 향해 알베르트는 물었다.
“밥은 챙겨 먹었니?”
“대충 먹었어요.”
“대충?”
어제 알베르트가 준 돈이라면 아이의 배를 채우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허기가 눌러앉아 있었다.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않은 모양이다.
“언제 이런 돈이 또 들어올 것 같아요? 아껴 쓰지 않으면 안 돼요. 안 그러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고요.”
“정말로 여기를 떠날 생각인가 보구나.”
“반드시 떠날 거예요. 이렇게 살다 죽기는 싫어요.”
“갈 곳은 있고?”
“소문으로 들었어요. 양양이라는 도시는 혼혈에 대한 차별이 없다고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성을 다스리는 높은 분이 신경 써준다고요.”
말과는 달리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힘은 약했다. 정말로 그런 곳이 있을까? 풍문으로 들은 말이어서 그런지,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양양이라…. 그러네. 거기는 낙양과는 조금 다르지.”
“형은 양양에서 오신 건가요?”
휙, 하고 지아는 알베르트를 돌아보았다.
“잠시 일이 있어서 양양에 들렸었다.”
“그, 그러면 말이에요. 정말로 양양은 혼혈에 대한 차별이 없는 곳인가요?”
소녀의 눈은 기대감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대답을 바라지만, 듣고 싶지 않다. 혹시라도 희망이 무너질까 봐. 조마조마한 아이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알베르트를 가만히 바라보던 지아는, 이내 자신의 행동이 실례라는 걸 알아차리고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못 들은 거로 해주세요.”
“양양에는 귀화루라는 기루가 있다.”
“기루요?”
“거기는 혼혈 출신의 아가씨들만이 일하고 있다.”
“…….”
지아는 두 눈을 깜박였다. 그 얼굴이 밝아지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휙 돌렸다.
“말도 안 돼요. 아무리 제가 애라지만, 그런 가게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봐요.”
“믿는 건 네 마음이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구나.”
“어떤 마족이 혼혈로만 이루어진 가게를 내버려 두겠어요?”
귀화루의 기녀들을 처음 봤을 때, 유피도 이상하다는 듯 이야기했었다.
황녀인 유피가 보아도 이상한 가게다. 온갖 멸시를 당하고 살아온 아이가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벨 황자가 힘을 쓰지 않았다면, 귀화루라는 가게는 분명 그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놀림 받았다고 생각한 지아의 발걸음은 거칠어져 있었다.
알베르트는 하루종일 골목을 돌아다녔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제법 그럴싸해 보이는 장소는 몇 번인가 발견했지만, 그곳에서도 같은 대답이 돌아왔을 뿐이다. 금낙장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눈치다. 노름판을 지키는 거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 남자가 알베르트에게 다가왔다.
“왜 그런 걸 묻고 다니는 거냐?”
입가를 붉은 천으로 가린 남자였다.
“금낙장을 알고 있는가?”
“어느 정도는.”
남자는 알베르트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상처 자국이 가득한 손 위로 알베르트는 동화를 떨궜다. 그 안에 떨어진 동전은 두 개. 남자는 손을 치우지 않는다. 알베르트는 그 위로 두 냥을 더 떨궜다.
“소문을 들었지. 이름 있는 무인과 싸움꾼들이 모이는 싸움판이라고. 하지만 꽤 위험한 곳으로 알고 있다. 거기서는 여러 대회가 열리는데, 사람을 죽여도 되는 대회와 죽이면 안 되는 대회. 두 가지가 있다고 들었다.”
“자세히 아는군. 혹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나?”
남자는 다시 손을 내밀었다. 알베르트는 마지못해 동화를 더 털어냈다.
“그 전에 하나만 물어보지. 자네 같은 사용인이 찾아갈 장소는 아니야. 혹 주인을 데리고 방문할 생각인가?”
“자네에게 알려줄 이유는 없군.”
잠시 알베르트를 바라보던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저(地底)로 가라. 여기에는 금낙장을 아는 인간이 없을 거다. 그곳이라면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
“자네도 위치까지는 모르는 건가?”
“금낙장은 초대받은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 나 같은 삼류 정보꾼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알베르트로부터 받은 돈을 주머니 속에 챙긴 남자는 노름판으로 돌아갔다.
소리가 높아지는 걸 봤을 때, 도박판에 참여한 모양이다. 알베르트는 노름판을 뒤로했다. 빈손으로 나오는 알베르트를 본 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럴 거라는 걸 알았다는 눈치다.
“또 허탕인가 보네요.”
“그렇지도 않다. 혹시 지저에 대해서 알고 있니?”
“지저요? 지저로 들어가는 입구는 여기서 정반대에 있어요.”
“알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지금 가면 얼마나 걸릴 것 같니?”
“도착하면 해가 떨어질 거에요. 그래도 가보실래요?”
지아의 말에 알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어디에 있는지 확인이나 해보자.”
“알겠어요. 따라오세요.”
지아는 알베르트를 한 판잣집으로 안내했다.
지아 왈. 하층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빈민가 군데군데 있는데, 자신이 아는 입구는 이곳밖에 없다는 모양이다. 좁은 길목을 알베르트는 몸을 수그린 채 들어갔다. 아이들이 다니기에 알맞은 장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통로가 길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 알베르트는 지저로 나올 수 있었다.
그곳에는 낙양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커다란 도시가 있었다.
“여기가 지저에요.”
“…….”
알베르트는 눈앞의 풍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빈민가 지하에 만들어진 커다란 뒷세계. 낙양의 어둠을 대변하는 도시가 그곳에 있었다. 말문이 막힌 알베르트를 보고 지아는 말했다.
“정말로 돌아보실 생각인가요? 여기는 진짜 위험한 곳이에요. 우리도 알고만 있을 뿐이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는 않아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거든요.”
“여기는 얼마나 큰 거니?”
“몰라요.”
“몰라?”
“아마 낙양이랑 비슷할걸요? 낙양 아래에 있는 도시니까요.”
“…….”
어디서부터 수색을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냥 둘러보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혹시 이곳도 지아가 안내해 줄 수 있을까? 알베르트의 물음에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지저는 잘 몰라요. 죽고 싶지 않거든요.”
아무래도 생각을 달리하는 게 좋겠다.
만약, 금낙장이 이 지저에 있다면 제대로 된 안내인 없이는 찾아갈 수 없다. 최대한 그쪽에서 접촉해주기를 바라고 들쑤시고 있었던 건데, 이래서야 늙은 쥐를 다시 찾아가는 쪽이 빠를지도 모른다. 알베르트는 한숨을 쉬었다. 생각보다 일이 커지고 있었다.
*&*
“지저?”
“응, 지저.”
유피는 알베르트의 이야기에 미간을 찌푸렸다. 낙양의 지하를 집어삼킨 커다란 뒷세계. 알베르트가 보고 온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다. 범죄의 온상이라는 블러드 로열의 뒷세계도 그만한 크기는 갖고 있지 못했다.
“들어본 기억이 있어. 분명 라피엘이 지저 출신이라고 했지. 낙양 아래의 또 다른 세상이라고 했는데, 설마 규모가 그리 클 줄은 몰랐네.”
“거의 낙양과 맞먹는 크기였어. 시더 황자는 이 사실을 알고도 내버려 둔 거야?”
“오빠의 잘못이 아니야. 지저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낙양이 자리를 잡았을 때부터 같이 만들어진 곳이라는 걸까.
그렇다면 그 크기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금낙장은 지저에 있는 것 같아?”
“그럴 가능성이 커 보여.”
“접촉은?”
“아직이야.”
금낙장을 수소문한 지 이제 이틀째다. 아무리 끄나풀이 주변 곳곳에 흩어져 있다고 해도, 녀석들의 귀에 들어가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일단 알은 지금처럼 빈민가를 더 둘러봐. 굳이 지저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늦든, 빠르든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그쪽에서 접촉하러 올 거야. 검을 쥐고 있는 건 우리지, 그쪽이 아니잖아?”
알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피의 말이 맞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금낙장에 대한 이야기가 빈민가에서 흘러나온다면, 관계자들은 그 출처를 알기 위해 스스로 찾아올 것이다. 지저라는 예상외의 도시를 보고 놀랐지만, 알베르트가 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유피는 어때? 뭔가 좀 찾은 게 있어?”
“찾은 거라…. 그러네. 실종된 사람들은 아이도 있고, 어른도 있고,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고, 노인도 있네.”
“무슨 연관점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 없으니까 문제지.”
유피는 책상 위의 안경으로 손을 옮겼다.
콧잔등 위에 안경을 걸친 그녀의 모습은 살짝 이지적인 느낌이 났다.
“무엇보다도 선녀의 움직임 없는 게 마음에 걸려. 양양을 떠난 그녀가 낙양에 온 건 맞는데, 지금까지 바깥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어.”
“선녀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바쁘다고 낙양으로 바로 간 사람이 말이야.”
“…….”
재밌다는 듯 그녀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이 신교라는 종교는 말이야. 알면 알수록 재밌는 이야기가 많아.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이제야 두각을 드러낸 것이라든지. 전통 행사로 이어지고 있는 성찬식(聖餐式). 해와 달을 상징하는 두 명의 선녀. 망자까지 치료한다는 선녀의 성마력. 천지신명을 숭배하고, 달토끼라는 신을 모시고 있는 것. 비밀리에 숨겨진 월궁의 위치가 어딘지도 궁금해.”
“조사가 힘들다면 그냥 신당에 진입하는 건 어떨까?”
“아직은 때가 아니야. 만약 그곳에 들어가게 된다면, 어느 정도 진상을 알아낸 후야.”
유피는 책상 위의 서류를 확인했다. 다시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와 전쟁을 치를 시간이었다.
“위대한 신이 남긴 살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여 그와 동일한 경지에 오른다. 성찬식의 월편을 먹은 신도들은 비로소 천지신명의 종복이 된다는 모양이야. 그게 과연 사전적인 의미일까.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초월한 다른 존재가 된다는 걸까?”
“진짜 신이라도 있다는 말이야?”
“그보다 더 질이 나빠. 신이라고 부를만한 힘을 가진 존재를 불러온다는 말이 되니까.”
“…….”
신이 아니다.
그러나 신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힘을 지닌 존재가 온다. 그건 혹시 악마를 말하는 건 아닐까? 알베르트의 의문에 유피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가로 시선을 돌린 그녀는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