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일섬점(一閃店)(2)
곽부가 안내한 곳은 대장간이 가득한 거리였다. 화덕의 열기가 길거리에서도 느껴졌다.
이글거리는 불 속에서 쇠가 달아오른다. 물러진 연장을 확인한 대장장이는 받침틀로 물건을 옮겼다. 문하생은 연장을 틀 위에 고정했다. 그사이 망치를 든 대장장이는 쇠를 두들겼다. 연장과 망치가 부딪친다. 받침틀을 사정없이 내려친다. 두들기고, 내려치고. 또다시 때린다. 대장장이의 이마에 맺힌 땀이 한 방울 떨어졌다. 붉게 변한 쇠와 맞닿은 땀은 그대로 증발했다.
신기하게 바라보는 구경꾼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느 대장간이나 마찬가지다. 풀무질을 반복하는 장인들과 만들어진 틀을 확인하는 문하생들. 하얀 연기가 화덕 끝에서 피어올랐다.
곽부는 두 사람을 낡은 가게로 안내했다.
연기가 올라오지 않는 대장간의 입구에는 「일섬점」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뭐 하고 있는 거냐. 안 들어올 거냐?”
곽부의 독촉에 유피와 알베르트는 무기점 안으로 들어섰다.
텁텁한 공기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창문조차 열어놓지 않은 가게 안쪽은 어두웠다. 알베르트는 문을 닫지 않고 열어두었다. 바깥에서 빛이 들어오자 내부가 조금 밝아졌다. 여느 무기점이 그러하듯 일섬점도 병장기가 가득했다. 유피는 신기하다는 듯 가게 안쪽을 둘러보았다. 벽면에 걸려 있는 멋들어지는 검과 거치대에 걸려 있는 도. 반듯한 창과 도끼는 모양새도 각양각색이고, 날을 담아두는 검집에 이르러서는 예술품에 가깝다.
하지만 상품에 손을 올려본 그녀는 입가를 찌푸려야만 했다.
그 손에는 더러운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물건들은 관리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설마 이 검들이 마검이라는 거에요? 수준 미달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마검? 보는 눈이 없군. 거기 있는 건 내 완성작이다.”
“완성작?”
유피는 검을 보았다.
딱히 검을 보는 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여기 있는 검에서 명검의 자취는 보이지 않는다. 잘해야 이류나 될 것 같은 양산형 검이다. 유피의 시선을 느낀 알베르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들보다는 알베르트가 베어버린 천하제일도가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편이었다.
곽부는 계속해서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두꺼운 문을 열자 먼지가 일어났다. 콜록거리며 입가를 가린 그는 문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는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 창고로 사용하는 곳일까. 방 곳곳에는 수납장과 통들이 가득했다. 손수건으로 입가를 가린 유피는 통 안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바깥과 마찬가지로 검이 쌓여 있었다.
“여기가 내 실패작들이다.”
유피는 검을 잡았다. 투박한 검집에서 칼자루를 잡고 그대로 뽑아본다. 창고 안에서 눈부신 빛이 흘러나왔다. 예리한 칼끝과 아름답게 휘어진 검신을 본 유피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이게 실패작이라고요?”
“실패작이다.”
“바깥에 있는 게 실패작이겠죠.”
냉정하게 흘러나온 그녀의 목소리에 곽부는 목소리를 높였다.
“검이라는 건!”
그는 유피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누군가를 잘 죽인다고 해서 명검이 아니다. 목숨을 쉽게 빼앗는 검은 명검이 아니야. 그건 그저 마검이다. 주인을 홀리고, 더 나아가 피를 빨아들이는 괴물일 뿐이다.”
치가 떨린다는 듯 도공의 입에서 어금니 갈리는 소리가 났다.
유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알베르트를 보았다. 그들이 만드는 검은 사람을, 적대자를 죽이는 것이 목적인 검이다. 검을 만드는 도공이 왜 그것을 부인한다는 말인가.
“어르신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검은 검입니다. 어르신이 말한 건 검의 잘못이 아닙니다. 검을 쥔 주인의 잘못이죠.”
“무인인 네 놈이 그딴 소리를 하는 거냐? 더 높은 무를 볼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마저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녀석들이? 웃음밖에 안 나오는군.”
곽부는 조소를 숨기지 않았다. 걸음을 멈춘 그는 창고 안쪽을 가리켰다.
옅은 빛이 흘러나오는 거치대 위에는 쇠사슬로 묶인 붉은 검이 보였다.
“만약 네놈이 저 검을 쥘 수 있다면 내 기꺼이 이야기를 들려주마.”
쇠사슬에 묶인 검은 붉은 빛을 흘리고 있었다. 도공은 눈앞의 검을 마검이라고 불렀다. 확실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검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알베르트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저것도 어르신이?”
“내가 만들었지만, 만든 게 아니다.”
“무슨 소리인가요, 그게?”
“내 여편네가 죽었을 때의 이야기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여 달라고 기원하면서 모루를 두들겼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저 흉측한 녀석이다. 그랬으면 안 됐는데. 그랬으면 안 됐어. 분노에 몸을 맡겨 자식을 만들다니.”
“……”
마검을 향해 다가가는 알베르트를 보며 도공은 덧붙였다.
“네놈이 얼마나 대단한 무인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검을 사용하는 무인이라면, 검에 대한 욕심이 있겠지.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도전해 봐라.”
우웅, 하고 월아가 찢어지는 검명을 냈다. 기분이 나쁘다. 거슬린다. 그런 부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그것에 반응하듯이 눈앞의 마검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따닥따닥, 하고 쇠사슬이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알베르트는 연인을 달래듯이 허리춤의 월아를 쓰다듬었다. 주인의 손길이 닿자 시끄럽게 울던 월아의 소리가 잦아들었다. 검이 검을 질투한 건가. 웃기지도 않는다. 알베르트를 주인으로 인정한 월아는 누구 씨처럼 독점욕이 강한 모양이다.
마검 앞에 도달한 알베르트는 거치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달싹이던 마검의 움직임은 멈춰 있었다. 녀석을 옭아맨 쇠사슬을 풀고 투박한 검집을 든다. 미약한 열기가 느껴진다. 마검이 품은 마력인가. 그렇지 않으면 특별한 광석을 사용한 걸까.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다. 칼자루를 쥔 알베르트는 검을 뽑았다.
스릉, 하는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검은 곡도처럼 휘어져 있었다. 붉은 검신에는 용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검신이 붉게 달아오른다. 칼자루도 그에 반응하듯이 뜨거운 열기를 토해냈다. 손아귀가 달아오른다. 살갗이 붉게 변하고, 아픔이 달렸다. 하얀 물집이 잡힐 것 같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살이 익어가는 냄새가 났다.
허리춤의 월아가 부르르 떨린다. 주인의 몸 상태를 감지한 녀석의 힘인 걸까. 손안에서 느껴지던 뜨거움이 사라졌다. 두 검이 힘 싸움을 벌이듯이 한기와 열기가 부딪쳤다. 알베르트는 왼손으로 허리춤의 월아를 풀었다. 그러지 말라는 듯 울리는 검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치대 위에 월아를 올렸다.
남은 건 스스로 불타오르는 마검뿐.
자신과 힘을 겨루던 월아가 사라지자 녀석은 알베르트의 손을 불태웠다.
[마스터.]
‘걱정하지 말게나. 이건 녀석과 나의 싸움이네.’
월아의 힘을 빌려서는 안 된다. 이 녀석을 길들이는 것은 자신이어야 했다. 만약, 녀석이 알베르트를 거절한다면 그것뿐인 이야기다. 손에서 시작되던 불길은 이제 알베르트의 오른팔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렇지만 뜨거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일렁거리는 불길을 보며 알베르트는 입을 열었다.
“이 검의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이름 따위 없다.”
“거짓말이군요. 자식에게 이름을 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원하지 않은 자식일지라도 자식은 자식이다.
도공 곽부의 손에서 만들어진 마검이다. 깊은 한숨 소리가 났다.
“화룡검(火龍劍)이다. 일찍이 무림의 신기였다는 화룡도와 견줄 검이 되기를 바라며 지은 이름이다. 하지만 녀석은 내 기대를 배신했어. 그건 주인을 홀리는 마검이다. 그 힘에 취한 주인은 하나도 남김없이 변사체가 되었다. 그건 명검이 아니다. 주인을 죽이는 마검일 뿐이다.”
“주인을 죽이는 마검이라.”
뜨겁지 않을 뿐이지, 불길은 계속해서 타오른다. 화룡검이 알베르트를 시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것에 응해줄 필요가 있겠지. 알베르트는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검은 주인을 알아보는 법입니다. 주인 또한 자신의 검을 알아보는 법이죠.”
주인의 의지에 내공이 답했다. 몸 안을 달리던 내공이 화룡검으로 모였다. 곡도를 닮은 검신에서 검붉은 검기가 피어올랐다. 불길이 뜨거워진다. 알베르트의 어깨를 먹어치운 녀석은 화룡의 모습을 취했다. 작열하는 화룡과 시선이 마주친다. 마치 포기하라는 것처럼 자신을 노려보는 화룡의 두 눈에, 알베르트는 내공으로 답했다.
검 위에 맺힌 검기가, 검사의 형태를 취했다. 검사는 이내, 찬란한 검강의 형태를 취했다.
“저건…….”
용의 크기가 줄어든다. 검강을 견딜 수 없다는 듯 몸을 꼬던 녀석은 검신으로 내려갔다.
화룡과 검강이 싸운다. 하지만 소용없다. 형체를 갖추기 시작한 검강은 화룡을 먹어치우고 자신의 힘으로 삼았다.
불길이 잦아들었다.
알베르트의 손과. 팔과. 어깨를 태우던 불은 검신으로 빨려 들어갔다. 화룡을 제압한 알베르트는 입을 열었다.
“그래. 나와 함께 가자꾸나. 화룡검.”
그 말에 대답하듯 붉은 검은 부드러운 검명을 냈다.
“화룡이 주인을 찾다니…….”
“저희가 이긴 것 같네요. 대금은 얼마나 치러드릴까요, 어르신?”
유피가 흐흥, 하고 만족스러운 콧소리를 냈다.
건방진 그 모습에 화를 낼만도 하건만, 곽부는 불만 하나 없이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네. 못난 자식을 데려가 준다면 내가 고마워해야지. 밖으로 나와라. 너희들이 그토록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마.”
*&*
대장간 안쪽에는 작은 방이 있었다. 숙식을 이곳에서 해결하는지, 한쪽에 있던 옷가지를 치운 곽부는 책상을 꺼내왔다. 따로 차를 준비해둔 것이 없는 걸까. 컵과 찬물이 담긴 그릇이 전부다. 알베르트는 찻주전자와 잔을 꺼냈다.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곽부의 시선을 받아넘긴다. 우아하게 찻잔을 든 유피는 후우, 하고 숨을 토해냈다.
“어르신은 술이 아니어도 괜찮겠습니까?”
“괜찮네. 술을 마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순 없지.”
뜨거운 찻잔을 입으로 가져간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거 홍차인가?”
“홍차가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보네요.”
“이건 차가 아니네. 애들이나 좋아하는 음료지.”
“미안하게 됐네요. 홍차를 좋아해서.”
어린애 취급을 당한 유피가 볼멘 목소리를 냈다. 찻잔을 내려놓은 도공은 찬물로 손을 뻗었다.
“근데 그 후드는 안 벗을 건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얼굴을 보고 싶다만.”
“중요한 건 얼굴이 아니라 내용이죠.”
“혹시 자네가 모시는 이 아가씨는 얼굴에 상처라도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 너무 예뻐서 그렇습니다.”
“뭐?”
“알.”
조금 무리수였나 보다. 후드 아래로 보이는 유피의 입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못마땅하다는 듯 그녀는 후드를 벗었다. 별무리를 닮은 은발이 흘러내린다. 그녀의 용모를 본 곽부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허, 그것참. 죽어버린 내 여편네를 쏙 닮았구먼.”
“실례인 말을 하시는군요.”
알베르트는 무심코 대꾸했다. 은근슬쩍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농담한 거네. 뭘 그렇게 정색하고 그러는가.”
“할 농담이 있고, 아닌 게 있지 않습니까.”
“…….”
무엇보다 유피에게 실례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군. 그래, 내가 그 검을 만든 건 말이지. 내 아내가…….”
“그건 됐어요. 저희가 듣고 싶은 건 사라진 도공에 관한 이야기에요.”
“이 아가씨가……. 이런 건 사전 이야기부터 다 들어야 이해하기 편한 법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 있는 이야기인가요?”
“음, 관련이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겠지.”
“없다는 말이군요. 됐어요. 사라진 도공에 대해서나 말씀해 주세요.”
곽부는 머리를 긁었다. 하얀 비듬이 툭툭 떨어졌다. 찻잔으로 떨어지는 비듬을 본 유피는 얼굴을 찌푸렸다. 알베르트는 말없이 그녀의 찻잔을 바꿨다.
“똑 부러지는 소리 나는 아가씨구먼. 누가 데려갈지 벌써 궁금해.”
“어르신이 걱정할 문제는 아니네요.”
“그렇지. 내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야. 누구와 살지는 모르겠지만, 그 남자는 참 축복받은 사람일 거야.”
“…….”
유피는 알베르트를 보았다. 그녀의 입가가 살짝 씰룩이고 있었다.
그 얼굴은 마치 내가 이 정도 되는 여자야, 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이 보였다.
“사라진 도공은 내 동업자다. 주영풍. 도가장에서 함께 도공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문하생이었지. 녀석은 도를. 나는 검을 만들었다. 밥 먹고 이 짓거리밖에 하지 않은 탓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하는 공방은 그럭저럭 이름이 높아졌다. 어딜 가도 굶어 죽지 않을 정도는 되었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신교의 장로라는 인간이 이 거리를 찾아왔다.”
초상 장로.
신당 앞에서 사람들을 맞이했던 남자를 알베르트는 떠올렸다.
“녀석들이 원한 건 무기였다. 파수꾼이 무장할 무기를 원하는 것 같았지. 수는 물론이고, 종류도 다양했다. 검을 만드는 공방에는 명검을. 도를 두들기는 공방에는 명도를. 창을 깎는 공방에는 명창을. 대금은 우리가 모두 만족하고도 남을 양이었기에, 거리의 장인들은 대부분 신교의 의뢰를 받아들였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물건을 가져다준 도공과 문하생 몇 명이 거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실종되었다는 말인가요? 다른 공방의 사람들도?”
“전부는 아니다. 모습을 감춘 건 반절 정도다.”
“하지만 다른 공방은 평화로워 보이던데요? 사람이 사라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어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설명을 요구하는 유피의 시선에 곽부는 말을 이었다.
“우리 장인들은 말이다. 이상한 버릇을 갖고 있다. 그건 직업병이나 마찬가지야.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올 때까지 방에 틀어박혀서 일을 계속하는, 고질병 같은 게 있지. 길게는 반년. 짧게는 한 달 정도 잠적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다들 그들이 어딘가에서 작업을 하는 게 아니냐고, 그렇게 여기고 있다.”
알베르트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유피도 마찬가지다. 몇 날 며칠을 공방에 있던 그녀도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야. 녀석이 갈 만한 곳은 전부 돌아봤지만,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어. 다른 공방의 장인들도 슬슬 느끼기 시작할 시간이다. 돌아올 시기가 지나고 있다는 걸 말이다.”
“정리하자면 무기를 만들어 달라는 신교의 의뢰를 받았고, 그 물건을 배달하러 간 이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거네요?”
“그렇다.”
흠, 하고 유피는 대답했다.
“근데 왜 범인이 신교라는 거죠?”
“내 이야기는 귓구멍으로 들은 건가?”
“어르신. 친구를 잃고 분개하는 마음은 저도 알겠어요. 하지만 어르신의 말씀은 의심일 뿐이에요. 신교에서 무언가를 했다는 정황은 전혀 보이지 않아요. 막말로 신교가 아니라 중간에서 도공들을 납치한 3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요. 구체적인 증거는 없는 건가요?”
“증거라면 있지.”
책상 위로 곽부는 낡은 패를 올렸다. 묘한 마나가 느껴졌다.
“한 쌍을 이루는 마도구네요. 다른 한쪽은 어디에 있나요?”
“모른다. 하지만 신당 근처에만 가면 그 패는 미친 듯이 빛난다. 신당에 짝이 있다는 것을 말하듯이 말이다.”
“단순히 물건을 가져다주다가 떨어뜨렸을 확률은 없나요? 떨어뜨리고 회수하는 걸 잊어먹은 거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주영풍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반드시 회수했을 것이다. 위치를 모른다면 내 도움을 받으면서 말이다.”
“확신할 수 있나요? 친구분께서 그럴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니까.”
“…….”
패를 바라보던 유피는 고개를 들었다. 곽부를 바라보며 그녀는 입을 열었다.
“좋아요. 조금만 더 들어볼까요?”
생각보다 이야기는 길어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