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
일섬점(一閃店)(1)
신당.
이신설교의 본부라고 칭해지는 건물은 웅장한 크기의 누각이었다. 50미터는 가뿐히 넘길 것 같다. 얼추 보이는 것만 7층. 수많은 계단 끝에 자리한 신당은 황하를 등지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신당의 입구로 향했다. 광장으로 들어가는 외문 앞에는 한 신도가 방문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현재 신당은 외부인의 방문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무슨 연유에 의해서요?”
“선녀님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왔는데,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나?”
옳소, 옳소 하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돌아갈 생각이 없는 방문객들을 보며 신도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라도 적으면 어떻게 설득이라도 해보겠는데, 방문객의 수는 스무 명이 넘어가고 있다. 무언가 말하고자 해도 잔뜩 흥분한 사람들은 신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알베르트와 유피마저 방문객 사이로 들어오자, 그는 침음성을 흘렸다.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예식(例式)이 곧 잡힐 예정이니, 그때까지만 좀 기다려주시면…….”
“곧은 무슨 곧. 그게 대체 언제요? 지난달에도 그 이야기지 않았소?”
“어이, 신도 양반. 그냥 구경만 하겠다는데, 어떻게 안 되겠소?”
“원래 평일에도 개방했던 거로 아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거요?”
“설명을 좀 해줘야 할 거 아니요? 매번 이런 식으로 축객령만 내리는 게 어딨소?”
물음이 너무 많다. 신도의 대답이 따라가지 못한다. 불평 어린 말은 토해내던 사람들은 문으로 몸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소란이 커지자 광장 안쪽에서 신도들이 나왔다. 들어가려는 사람들과 밀어내는 신도. 결국, 소란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신도는 작은 종을 흔들었다.
종소리가 울린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 남자가 파수꾼을 데리고 나타났다.
“초상(草上) 장로님을 뵙습니다.”
“괜찮네. 그보다 이게 무슨 일인가?”
“그것이…….”
신도는 방문객들을 바라보았다. 장로의 모습을 본 그들은 몸을 욱여넣는 것을 멈췄다.
“이신설교의 장로직을 맡은 초상이라고 합니다. 무슨 용무로 신당을 찾아오신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우리도 다 신도요. 신당이 문을 닫은 지 벌써 두 달째요.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고 싶소.”
“그거라면 이전에도 공지해 드렸던 것 같습니다. 현재 내부 행사가 있는지라, 행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신당을 개방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방문객들이 원했던 대답은 아닌 것 같다. 얼굴을 마주한 그들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선녀님이라도 보게 해주시오.”
“양양에서 돌아왔다는 걸 다들 알고 있소. 선녀님은 어째서 얼굴을 보이지 않는 거요?”
“선녀님이라…….”
초상 장로는 방문객들을 돌아보았다.
“죄송합니다만, 선녀님은 지금 외부인들을 만나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다음에 다시 예식이 있을 예정이니, 그때 본교를 방문해 주시면 뵐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걸 좀 어떻게 해달라는 거 아니오?”
“장로라는 사람이 왜 그렇게 앞뒤가 꽉 막힌 건가. 우리를 무슨 폭도로 생각하는 거요?”
“말이 통하질 않는구먼!”
“이렇게 억지를 부리신다면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막무가내식으로 신도들을 밀어붙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초상 장로는 파수꾼을 불렀다.
문 안쪽으로 들어오는 방문객들을 파수꾼이 밀어냈다. “어허!”“어딜 만지는 거야?”“정말 이럴 겁니까?” 항의에도 소용없다. 포기하지 않고 남아 있던 방문객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쫓겨났다. 작은 욕지거리가 울린다. 파수꾼들의 손에 밀려난 그들은 신당을 뒤로했다.
이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세 사람이다.
알베르트와 유피. 그리고 짜리몽땅한 키의 중년 남자뿐이다.
“그쪽 분은 다른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있고말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중 그는 초상 장로의 앞으로 다가갔다.
파수꾼들이 남성의 어깨를 잡았다. 독한 술 냄새가 났다. 술에 취한 남자는 어딜 손대냐는 듯 몸을 흔들었다. 초상 장로는 손을 들었다. 파수꾼들이 물러났다. 비틀거리며 초상 장로의 앞에 다가간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내밀었다. 하얀 천으로 감싼 물건이다. 물건을 받은 장로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천 안에서 나온 물건은 검이었다.
“무언가 착각하신 것 같군요. 저희는 검을 주문한 적이 없습니다.”
“없다고? 웃기지 말아라, 초상 장로. 나는 네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네가 우리 가게에 와서 주문했던 물건이다.”
“…….”
남자의 말에 짚이는 바가 있었는지, 초상 장로는 아아, 하고 입을 열었다.
“못 알아봐서 죄송합니다. 제가 방문했던 가게의 도공이신 모양이군요. 하지만 무기라면 이미 전부 받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희 측의 실수인 것 같군요. 장부를 확인해서 대금은 넘겨드리겠습니다.”
“대금? 돈을 받으러 온 게 아니야. 이 검은 말이다. 너희들이 데려간 도공과 바꾸기 위해 가져온 거다.”
“도공?”
“시치미 떼지 마라! 너희 교단에 온 이후로 녀석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진정하시고 말씀해 보시죠. 도공이 행방불명 된 겁니까?”
“이 자식이!”
초상 장로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남자를 파수꾼들이 붙잡았다. 두 손이 붙잡힌 남자는 바둥거렸다. 제법 힘이 괜찮은지, 파수꾼 넷이 붙고 나서야 간신히 그를 제압할 수 있었다.
“너희들의 짓이잖아! 내가 모를 것 같아? 이곳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가 모를 것 같아!?”
“일단 목소리부터 낮추시죠. 어느 도공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협조하겠습니다. 일단 관아에 신고부터 하시고…….”
“개 같은 놈들! 신을 섬긴다는 녀석들이 사람들을 납치하다니! 내 언젠가는 네 놈들을 육시랄 해버릴 거다!”
“말이 지나치시군요. 저희가 도와드리겠다고…….”
더 들을 것도 없다. 퉤, 하고 남자는 침을 뱉었다. 초상 장로의 볼에 가래 섞인 침이 찐득하게 달라붙었다. 그 모습을 본 파수꾼이 남자를 향해 손을 들었다.
“그만하게!”
파수꾼의 손이 멈췄다. 초상 장로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볼을 닦았다.
“가시는 길을 배웅해 드려라. 혹시라도 손을 대지는 말고.”
“알겠습니다, 초상 장로님.”
“놓아라, 이 더러운 놈들! 놓으란 말 안 들려, 개자식들아!”
발악하듯이 몸을 흔들던 남자는 파수꾼들의 손에 끌려나갔다.
소란이 끝나고 숨을 돌린 초상 장로는 입구에 남은 두 사람을 보았다.
“안 좋은 모습을 보여드렸군요. 죄송합니다. 그쪽 분들은 무슨 용무로 본교를 찾아오셨습니까?”
알베르트는 유피를 보았다.
그의 품 안에는 흑과 백이 섞인 패가 있었다. 지금 보이는 것이 맞을까? 시선이 마주친 유피는 고개를 저었다.
“신당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찾아왔을 뿐이에요. 예식이 준비되면 다시 방문할게요.”
알베르트의 손을 잡은 유피는 몸을 돌렸다.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초상 장로는 살짝 고개를 수그렸다.
“유피?”
“패는 다음에. 시간은 충분해. 일단 마음에 걸리는 것부터 확인해 보자.”
그녀가 향하는 방향은 조금 전 남자가 끌려나간 길이다. 돌아오는 파수꾼과 엇갈리듯이 나아간 두 사람은 가도 한복판에 주저앉은 주정뱅이를 볼 수 있었다. 검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은 멍하니 풀려 있었다.
“실례해도 될까요? 도공으로 보이시는데,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실례라는 걸 알면 말 걸지 말아라, 계집.”
“…….”
“어디서 지 이름도 밝히지 않고 어르신의 이름을 물어? 요즘 젊은것들은 기본이 안 되어 있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찬 남자는 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몸은 잘 움직여 주지 않는다. 앞뒤로 흔들리던 그는 몇 걸음 떼지 못해 바닥에 쓰러졌다.
유피는 움직이지 않는다. 알베르트는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저쪽은 연희고, 저는 알베르트 라나입니다.”
“치워라. 내 이름을 알아서 어따가 써먹을 생각이냐?”
남자는 알베르트의 부축을 거절했다. 유피는 다시 입을 열었다.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래요.”
“도오오오움? 허, 내가 아무리 갈 데까지 갔다지만, 너희들의 수작을 모를 것 같으냐? 썩 꺼지지 못해!?”
유피와 알베르트는 서로 마주 보았다.
남자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아무래도 대화를 나누려면 조금 진정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유피의 손이 움직였다. 그녀의 손가락에서 은빛 실이 새어 나왔다. 실은 남자의 몸에 닿더니 한 줄기의 물방울을 뽑아냈다. 뚝, 하고 땅에 떨어진 하얀 액체는 독한 냄새가 났다.
“젠장. 젠장. 빌어먹을. 미안하다. 너희들 잘못이 아니지. 그래. 너희는 신도가 아니잖아.”
그것으로 술기운이 조금 떨어졌는지, 남자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그는 후드로 얼굴을 가린 유피를 보고, 연미복 차림의 알베르트를 보았다. 특이한 옷차림이다. 이상하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던 남자는 알베르트의 가슴팍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거기에는 십자패와 꼭 닮은 로사리오가 흔들리고 있었다.
“네놈도 신교냐!”
땅에 떨어져 있던 검을 뽑은 남자는 알베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얀 검신을 본 순간, 알베르트는 반사적으로 발검했다. 신속의 발도술. 언제 뽑혔는지조차 알 수 없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월아가 검집으로 수납되었다. 남자가 들고 있던 검은 깔끔하게 두 동강 났다.
끊어진 검을 본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검을 뽑았을 터인데, 하얀 칼날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손에 쥔 검의 상태는 어떤가. 날카로운 것에 잘린 것처럼 그 크기가 반 토막 나 있다. 떨어진 칼날과 반절 크기의 검. 이윽고 남자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내 천하제일도가아아아아!!”
“천하제일도(天下第一刀)?”
유피는 입가를 찌푸렸다. 그가 들고 있는 건 도가 아니다. 어느 누가 봐도 검이다.
“꼬박 일주일을 바친 내 걸작이. 네놈! 이걸 어떻게 물어낼 거냐!”
끊어진 검날을 부여잡은 도공이 울먹였다.
“사과가 먼저지 않습니까, 어르신? 제가 조금만 늦었더라도 어르신이 살인범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살인범? 누가 누굴 죽인다고? 나 같은 늙은이가 무슨 힘이 있다고!”
“…….”
힘이 없다고? 장정 네 명이 붙들고서야 간신히 말릴 수 있었는데?
“그냥 가는 건 어때?”
알베르트의 물음에 유피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마지막이라는 듯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도공과 눈높이를 맞춘 유피는 물었다.
“좋아요. 솔직하게 말할게요. 저희는 신교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어르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만약 힘이 닿는다면 도움을 드리고 싶고요. 어때요?”
“진짜냐?”
“뭐가 아쉬워서 어르신에게 거짓말을 하겠어요?”
“50냥이다.”
“50냥이요?”
“저 무인이 죽인 내 천하제일도 말이다. 일단 값부터 치러라.”
“…….”
돈부터 내놓으라는 듯 도공은 유피에게 손바닥을 보였다.
싼값이 아니다. 여윳돈이 있긴 하지만, 괜한 지출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사기 치지 마세요. 저딴 검이 어떻게 50냥이에요?”
“바, 방금 뭐라고 했나? 내 자식새끼를 보고 저딴!?”
“그래요. 천하제일도는 무슨. 이름만 거창하네. 검을 만들어놓고 도라고 우기다니…….”
“…….”
목소리를 높이던 도공은 갑자기 입을 닫았다. 두 동강 난 검은 어느 모로 봐도 도가 아니다. 칼자루를 쥔 손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손에서 떨어진 천하제일도는 지면과 부딪쳐 맑은 소리를 냈다.
“그래. 그래. 이것도 검이지. 검이야. 내 주제에 무슨 도를 만든다고. 이게 다 내 잘못이야. 내가 그 마검만 만들지 않았어도. 그 친구는…….”
“마검?”
월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알베르트는 도공의 혼잣말에 무심코 반문했다. 도공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알베르트의 허리춤에 있는 낡은 검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무인이 도공을 찾아오는 이유는 하나지. 그래. 너도 검이 얻고 싶은 거냐. 좋다. 내 도움이 되고 싶다면 그 마검을 들어봐라. 그렇다면 이야기를 들려주지.”
두 동강 난 천하제일도를 수습한 도공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흔들거리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하얀 천으로 검을 감싼 그는 입을 열었다.
“나는 도공 곽부다. 따라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