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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뱀의 꽈리(2) (7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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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꽈리(2)

「객잔이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하자. 일단 목숨이 위협받을 일은 없겠네.」

“으음……. 미안해, 유피.”

「미안해? 왜 사과하는지 모르겠네.」

“…….”

의자에서 일어난 유피는 방을 둘러보았다. 특별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 방이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가정집이다. 물건을 살펴본 그녀는 문으로 향했다.

「악몽이 바뀌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야. 약간만 지켜볼까?」

“아니, 그냥 여기서…….”

바깥에는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혹여 유피가 봐서는 안 될 이전 시대의 기억이 있을지도 모른다. 알베르트는 말렸지만, 유피는 유령처럼 유유히 문을 통과했다. 할 수 없이 알베르트도 그녀의 뒤를 따라 방 밖으로 향했다.

집안은 고소한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좁은 계단을 내려온 그는 1층 부엌으로 향했다.

식사 준비가 거의 끝나가는 걸까. 작은 식탁 위에는 벌써 접시가 준비되어 있었다. 메뉴는 간단하다. 따뜻한 수프와 빵. 치즈와 우유가 있는 아침 식사다. 가정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식단이다. 식사를 준비하는 유피에르는 하루 이틀 해본 솜씨가 아니다. 능숙하게 손을 옮기는 그녀의 모습은 역으로 낯선 느낌까지 들었다.

유피는 성장한 자신을 눈앞에서 뚫어지라 응시했다.

아무래도 유피의 모습은 유피에르에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전체적인 외양은 흡사하지만, 키도 그렇고 신체 몇몇 부분은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보고만 있지 말고, 수저랑 포크 좀 챙겨줘요.”

알베르트는 식탁 한쪽에 준비된 수저와 포크를 식기 앞에 차렸다.

식기의 수는 3개였다. 이 집에 사는 건 알베르트와 유피에르, 두 사람만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남은 한 사람은 누구일까? 의문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계단 옆의 문이 열리고 부스스한 차림의 금발 소녀가 밖으로 나왔다.

“안녕, 알. 아침부터 시끄럽네.”

아직 잠기운이 남아 있는 건지, 소녀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밤사이 흐트러진 잠옷 차림을 단정하게 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간지럽다는 듯 목을 박박 긁는 소녀는 분명, 아리시엘 루드비히였다.

“아가…… 씨?”

“아직 잠이 덜 깼나 보네. 아침 식사는 뭐야? 또 어제랑 똑같은 거야?”

당황한 알베르트는 아무래도 좋다.

식탁으로 다가온 아리시엘은 손가락을 뻗어 수프를 찍었다. 혀를 살짝 내밀은 소녀는 수프를 맛봤다. 검지를 핥는 분홍빛의 혀가 묘한 요염함을 품고 있었다. 피곤해 보였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맛 좋네. 언니가 준비한 거지?”

“칠칠맞지 못하게 그게 무슨 짓이니? 일어났으면 얼굴부터 씻고 오렴.”

“네네, 알았어요. 말하지 않아도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말과는 달리 의자에 앉은 아가씨는 빵으로 손을 뻗었다.

「아가씨? 저기, 알. 네 아가씨는 두 살짜리 아기라고 하지 않았어?」

유피는 신기하다는 듯 아리시엘을 바라보았다.

찬란한 황금빛의 머리카락, 살짝 내려간 그녀의 눈매는 강아지를 떠올리게 했다. 반짝이는 벽안에는 유피의 모습이 비치지 않았다. 연신 입을 오물거리던 아리시엘의 모습이 갑자기 녹아내렸다. 그녀만 없어지는 게 아니다. 유피에르의 모습도 사라지더니, 이내 작은 가정집마저 사라졌다.

일그러진 집을 대신해서 나타난 것은 드넓은 초원이었다.

「언니가 성공한 모양이네.」

푸른 하늘 아래로 강한 바람이 일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이 갈대처럼 흔들렸다.

그 뒤를 검은 물결이 뒤쫓았다. 늑대 무리다. 파도처럼 몰아치는 검은 늑대들은 초원을 달리고 있었다. 녀석들은 사냥에 나선 것이 아니다. 조직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수세에 몰린 쥐새끼처럼 녀석들은 도망치고 있었다.

뿌우, 하고 초원 너머에서 뿔피리 소리가 들렸다.

늑대들의 발이 더욱 빨라졌다. 사냥꾼은 벌써 근처까지 와 있었다. 늑대의 뒤를 따르듯이 붉은 말이 초원에 합류했다. 능선을 달리기 시작한 말은 엄청난 속도로 초원을 내달렸다.

“저건…….”

「사냥꾼?」

말고삐를 쥐고 있는 것은 젊은 여성이었다.

늑대를 추적하는 사냥꾼은 등에 메고 있던 활을 손에 쥐었다. 말의 속도가 느려지는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불안정한 말 위에서 활을 쏠 생각이다. 무모하다. 기마술에 능숙한 기사들도 소화하기 힘든 고급 기술이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사냥꾼의 얼굴에는 조급함이 보이지 않았다. 늑대 무리를 넓은 초원의 평야로 몬 그녀는 등자에서 발을 떼더니, 안장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말 위에서 일어난 사냥꾼은 활시위를 먹였다.

거의 묘기에 가까운 승마술이다. 말과 하나 되어 움직이는 그녀의 시선은 사냥감을 쫓고 있었다. 숨을 들이쉬고, 뱉는다. 천천히, 조금 더 얕게. 뱉어내고, 다시 숨을 들이쉰다. 호흡이 멎는다. 조준은 끝났다.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를 그녀는 놓았다.

쐐액, 하고 날아간 화살촉이 늑대의 목을 꿰뚫었다.

화살에 실린 힘을 이기지 못한 늑대는 초원을 뒹굴었다. 확인할 필요도 없다. 사냥감의 숨통은 끊겼다. 그러나 사냥꾼은 한 마리로 만족하지 않았다. 뿔뿔이 흩어지는 늑대 무리를 여인은 뒤쫓았다.

초원이 석양빛으로 물든다. 붉은빛과 맞닿은 풍경이 천천히 녹아내렸다.

이번에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의문은 길지 않았다. 초원 다음에 나타난 광경은 기억에 있는 장소였다.

세련된 객잔은 홍등으로 빛나고 있었다.

테이블을 가득 채운 산해진미는 그녀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객잔 안쪽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가도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두 눈에는 숨길 수 없는 따분함이 깃들어 있었다.

“곤란합니다. 2층은 선객이 계셔서…….”

“단체 손님도 아닌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건가?”

조용했던 그녀의 공간에 한 손님이 올라왔다.

“빈자리도 많지 않은가.”

“아이구, 이것도 다 손님을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요. 지난주에만 해도 여섯 명이나 산송장으로 실려 나갔다고요.”

“산송장이라…. 그거 재밌군.”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다급히 손님을 말리는 점소이의 목소리를 보았을 때, 아마도 어련히 내려갈 것이다. 하지만 손님은 점소이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툭, 하고 무거운 짐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됐네.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여기서 제일 잘하는 요리나 1인분 챙겨 와라.”

“진짜 위험하다니까요, 손님. 저 여성분이 위험한 무림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요.”

“그만. 저 여자가 뱀이든, 용이든. 이 몸과는 관계없다.”

“…….”

손님의 태도는 완강했다. 결국, 설득을 포기한 점소이는 1층으로 내려갔다.

여인은 키가 작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직 삿갓을 풀지 않은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어깨 위로 흘러내리는 머리가 붉은색인 걸 보았을 때, 서역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색하지 않은 억양은 그가 중원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오는 답은 하나다.

“보아하니, 무림인 같으신데. 다른 곳으로 가주시지 않을래요?”

“전세를 낸 것도 아니라던데. 한 자리 정도는 문제없지 않나?”

“소란스러운 건 좋아하지 않아요.”

“강호의 도리도 없나 보군.”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놈의 무림,

그놈의 강호.

허울밖에 남지 않은 껍데기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점소이가 왜 당신을 말렸다고 생각하시나요?”

“흠, 자네를 걱정해서?”

무심코 실소를 튀어나왔다.

젊은 목소리로 보았을 때, 아직 무림을 잘 알지 못하는 무인 같다. 잘해야 무림 초출이지 않을까?

“정말로 눈치가 없는 분이군요.”

“진짜로 눈치가 없는 건 이 몸이 아니라 자네 같군. 이렇게까지 말해줘도 모르겠나?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 거기서 쥐죽은 듯 밥이나 먹게.”

“…….”

여인의 아름다운 미간이 꿈틀거렸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뭣도 모르는 녀석을 적당히 타일러서 돌려보낼 생각이었는데, 이 후배는 그런 대접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이런 미친놈이 본녀가 누군 줄 알고……!”

그녀는 다리에 두르고 있던 하얀 연검을 쥐었다.

뱀과 같이 흘러가는 연검에 강기가 맺혔다. 가져올 것은 왼팔. 오른팔은 용서해 준다. 그럴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고수를 알아보지 못한 쓰디쓴 경험이 될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여인은 연검을 남자에게 쏘아 보냈다. 붉은 피가 튀어 올랐다. 테이블 위로 떨어진 피는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을 더럽혔다. 여인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연검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는 찢겨진 손아귀가 있었다. 흘러내리는 피는 자신의 것이었다.

객잔의 벽에는 그녀의 연검이 꽂혀 있었다.

내공이 빠져 축 늘어진 검신의 중앙에는 나무젓가락이 박혀 있었다.

“무지는 죄가 아니지. 하지만 두 번째는 없다.”

“네놈…….”

여인의 안색이 바뀌었다.

남자의 손에는 몇 개의 나무젓가락이 잡혀 있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자신이 이런 실수를 할 줄이야. 남자는 무림초출을 나온 까마득한 후배 같은 게 아니었다. 고수. 그것도 자신의 눈으로도 경지를 예측하기 힘든 고수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낭패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냘픈 신형이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여인의 모습이 두 명으로 늘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신형과 남자의 앞에 나타난 신형. 남자의 목을 노리고 수도(手刀)가 들어갔다. 강기를 두른 여인의 손을 남자는 젓가락으로 막았다.

“이 몸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마.”

대답은 돌려주지 않는다. 그대로 몸을 돌린 사희는 남자의 등으로 돌아갔다. 뱀처럼 흐르듯이 움직인 그녀는 두 손으로 남자의 목을 잡고 있었다. 윗목과 턱을 잡은 그녀는 그대로 남자의 목을 비틀었다.

“!”

사희의 손은 남자의 목을 잡지 못했다.

그 손바닥을 막고 있는 것은 젓가락이다. 단 두 개의 젓가락이 사희의 양손이 들어오는 걸 막고 있었다. 움직임이 한 번 더 변화한다. 목젖을 노린 손날치기, 막혔다. 예상했다. 남자의 젓가락은 손날 앞에 있다. 그사이 사희의 발이 움직였다. 뱀의 꼬리가 고개를 든다. 꼬리 끝에 있는 치명적인 독이 그를 향해 쏘아졌다.

각은 남자의 가슴과 목을 가격했다. 맞지 않았다. 사희는 실망하지 않았다. 살짝 고개를 숙인 남자의 뒤로 그녀는 다리를 들었다. 붉은 단화의 아래에서 얇은 검이 튀어나왔다. 떨어진다. 강기가 떠오른 검은 남자의 머리를 노렸다.

칼은 한 치 차이로 삿갓을 꿰뚫지 못했다. 젓가락에 잡힌 검은 맥없이 끊어졌다.

사희는 물러났다. 몸을 무른 그녀는 연검을 회수했다. 휘릭, 하고 채찍처럼 휘어진 연검이 부르르 떨렸다. 강기를 버티지 못하는 것 같다. 균열이 생겨난 연검은 사복검처럼 쪼개지기 시작했다. 흩어지는 검 조각. 일순간 사희의 주변으로 떠오른 검날에는 검강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폭풍과도 같은 검우가 몰아쳤다. 남자는 손을 들었다. 테이블 한쪽에 있던 통에서 젓가락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쏟아지는 검날과 날아오른 젓가락이 충돌했다. 두 물건이 낸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굉음이 객잔을 울렸다. 끊어진 젓가락과 목표를 잃은 검날이 객잔 바닥에 떨어진다.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검우 속에서 여인의 신형이 나타났다.

사천비각(蛇天飛脚) 오의

사화(蛇花).

삿갓이 날아갔다.

붉은 머리카락이 남자의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여인의 발이 부르르 떨렸다. 이번에는 젓가락이 아니다. 언제 출수한 건지, 여인의 각을 새하얀 검이 막고 있었다. 단화를 타고 한기가 전해진다. 그대로 한 바퀴 뛰어오른 여인은 바닥에 착지했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검날이 다시 그녀의 손으로 모였다. 돌아온 연검을 그녀는 크게 털었다. 착, 하는 소리와 함께 연검은 객잔 바닥을 긁었다.

“당신, 누구야?”

입술이 메말라 붙는다.

비장의 절기를 썼음에도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

어디서 이런 고수가 나타난 걸까.

흑도에서 한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가 바로 그녀다. 그녀보다 윗배에 있는 고수라고 하면 몇 되지 않는다. 십만 마교도의 위에 군림한다는 천마신교의 교주. 정파의 양대 산맥이라는 검황과 도황. 마지막으로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으로 불리는 무림맹의 맹주 정도다.

경계하는 여인의 시선에도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떨어진 삿갓을 주웠다.

삿갓에 묻은 먼지를 턴 남자는 입을 열었다.

“이 몸은 천마(天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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