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화.천일소화(千日素花)(2) (7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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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소화(千日素花)(2)

“어떠십니까?”

“어떻고 뭐고, 바로 반응이 오는 건가?”

“그렇습니다. 서리꽃은 음기를 잡아내는 약초 중에서는 으뜸이니까요.”

“음…….”

잠시 지켜보자는 라온의 말에 따른다.

5분이나 흘렀을까. 가슴에 모인 음기가 살짝 움직인 느낌이 들었다. 월기가 반응했다. 통증은 없었다. 알베르트는 시선을 들었다. 라온은 알베르트의 맥을 짚었다.

“효과는 있군요.”

“고칠 수 있는 건가?”

“서리꽃이 충분하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리꽃은 워낙 구하기 힘든 약초인지라, 이만한 월기를 완치시키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역시 그런가. 아란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몇몇 약초를 배합해서 써도 음기를 제거할 확률은 반 정도라고 했었지.

“도움이 못 되어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니네.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네.”

자리에서 일어나는 라온을 배웅한 알베르트는 테이블 위의 술잔으로 손을 옮겼다.

마실 생각이 없었지만, 한 잔 정도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잔에서는 달짝지근한 향이 올라왔다. 세실리아가 즐겨 마시던 취월주다. 알베르트가 잔을 들었을 때였다. 객잔 입구로 익숙한 의녀가 들어왔다.

알베르트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자신의 체구만한 약초통을 내려놓은 아란이 쪼르르 달려왔다.

「란이 여기는 어쩐 일인가요?」

하얀 판에 떠오른 미려한 글씨만큼이나 그녀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떠올라 있었다.

의녀를 향해 고개를 숙인 알베르트는 입을 열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얼마든지요. 혹시 불편한 곳이 생기셨나요?」

아란의 반응은 어디까지나 순수하다. 만약 알베르트가 나쁜 의도를 먹고 접근한다 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다. 그녀의 정체가 진짜로 천일소화라면 큰 목소리로 물어보는 건 실례일지도 모른다. 주변의 이목을 생각한 알베르트는 아란의 곁으로 다가갔다. 흙과 독한 약초 냄새가 났다.

“의녀님이, 천일소화 본인입니까?”

간신히 귓가에 들릴 것 같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알베르트의 물음을 들은 아란은 살짝 입을 벌렸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알베르트는 가만히 그녀를 응시했다. 아란은 머뭇거리며 판을 들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대답을 회피하는 걸까? 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아란은 깃펜을 움직였다.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꼬물꼬물 움직인 판에는 당황스러움이 깃든 글자가 떠올랐다.

「이, 이러면 곤란해요. 전 결혼해서 딸아이까지 있는 몸이에요, 란.」

“네?”

뭔가 이상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그보다 결혼이라니. 어떻게 봐도 꼬맹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결혼했다는 말인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범죄…….”

[마스터, 입 밖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으음.”

알베르트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다행히 아란은 그 말을 듣지 못했는지 판 위로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잊어주세요. 부족한 몸이지만, 그런 명호로 불리고 있긴 해요.」

판에 떠오른 미려한 글씨에서는 딱히 숨기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역시 그랬군요. 괜찮으시다면 함께 가실 수 있을까요? 황녀 전하가 의녀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생각 외로 천일소화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신 겁니까?”

선뜻 승낙하는 그녀의 모습에 역으로 알베르트가 놀랐다. 무례하다고 화를 내도 할 말이 없는 건 이쪽이다. 그런데 아란은 전후 사정조차 물어보지 않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론이에요. 그렇지만 황녀님이라고 해도 순서를 기다리셔야 해요. 오늘은 이 자리에 모인 무인분들이 우선이랍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란이 도와준다면 반나절도 안 걸릴 거예요.」

아란은 방긋 웃었다. 더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미소다.

“알겠습니다.”

그녀의 일을 돕기 전에 알베르트는 품에서 가고일 인형을 꺼냈다.

약간의 기를 불어넣자, 가고일은 눈을 떴다.

“네 주인에게 가거라.”

날개를 편 가고일 인형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유피와의 연락책이다. 알베르트가 천일소화와 접촉했을 경우, 그녀에게 그 사실을 알리게 되어 있었다. 아마도 이 연락을 받는 즉시 그녀는 귀화루로 돌아갈 것이다.

아란의 앞으로 모이는 무인들을 보며 알베르트는 팔을 걷었다.

*&*

천하 객잔에서 무인들의 치료를 끝마친 아란과 알베르트는 귀화루로 향하고 있었다.

아란이 들고 있는 것은 하얀 판뿐이다. 약초통과 약가방은 알베르트가 등에 메고 있었다.

「가방은 제가 들어도 되는데…….」

“괜찮습니다. 초대에 응해주신 건 아란 씨니까요.”

아란이 홀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알베르트는 그녀의 호칭을 격상했다.

용모는 둘째 문제다. 배우자가 있는 건 물론이고, 한 아이의 어머니를 존중하는 건 당연했다.

「황림당의 사람들에게 들었어요.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녔다고요.」

“그럴 리가요.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거리의 소란을 잠재운 것은 무진과 황림당의 무인들이다. 혼란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집회장에서 벽을 세운 신교의 파수꾼들도 숨은 공로자였다. 그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피해는 더욱 커졌을 것이다. 유피의 마법이 발현했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사태를 만들던 지옥도를 제거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요, 란. 정말 고생이 많았어요. 제 남편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도움이 됐을 텐데, 일이 바쁘다고 자리를 비웠거든요.」

“남편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알베르트의 물음에 아란의 얼굴이 붉어졌다. 뭔가 신혼부부를 보는 반응이다. 금실이 좋은 모양이다. 꼼지락꼼지락 깃펜을 움직인 그녀는 판을 들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늘 제 곁에 있어 주려 하고, 같이 웃으면서 나아가자고 했어요. 그래서 서로의 이름을 따서 딸아이 이름도 정했답니다.」

“그렇습니까?”

이상성욕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알베르트는 따로 말하지 않았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아란 씨와 비슷한 체구를 가진 성인 남성이 있을지.

「마기를 사용하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에요.」

또 그 이야기인가. 판에 떠오른 다음 글을 본 알베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마기를 쓸 수 없는 몸입니다.”

아란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소요 거리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 거리를 돌아다니는 인기척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행인이 없는 걸 확인한 그녀는 손을 움직였다.

「그건 란이 인족이기 때문인가요?」

“…….”

발을 멈춘 아란은 지그시 알베르트를 바라보았다.

깨끗한 눈망울이다. 어렸을 때의 아가씨가 떠오른다. 그 눈을 앞에 두고 거짓말은 꺼낼 수 없었다. 침묵은 곧 긍정이다. 알베르트는 입을 다물었다. 천일소화는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란은 인족이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대답을 바라는 알베르트를 보며 아란은 판을 빼곡하게 채웠다.

「알베르트 란. 당신은 마족과 인족의 혼혈이에요. 다만, 몇 대를 거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족의 피가 엄청나게 옅은 편이에요. 다른 마족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당연해요. 당신의 상태는 인족에 가깝거든요. 그렇지만 란의 몸 안에는 마기가 각성한 흔적이 남아 있어요. 제 생각이지만, 마기가 각성하지 않았다면 란은 인족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거예요. 마기와 눌어붙은 마나를 제대로 다루기 힘들다는, 제약 같은 게 있었을 확률이 높지만요.」

“그 말씀은…….”

부정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아란의 말은 짚이는 바가 있었다. 이전 시대의 그는 마나를 각성하지 못했다. 수련을 게을리한 탓이 아니다. 자신을 범인이라고 여긴 알베르트가 할 수 있는 건 노력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 끝에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아가씨도 말했다. 이상하다고. 알은 수련 강도라면 마나를 각성하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가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는 일평생 마나를 다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째서 그러했는가. 그 진실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란이라는 성은 말이에요. 마계에서는 아주아주 오래된 혈통을 가리키는 가문이에요. 지금은 기억하는 이들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황가의 문헌에는 남아 있을 거예요. 사군자의 성을 갖는 가문에 대해서 말이죠.」

“무언가 알고 있다면, 더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라나 가문.

제국은 라나라고 발음하는 가문의 이름을, 마족들은 란 가문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제국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발음이었기 때문이었던 걸까?

「남편에게 들은 말이어서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다만, 사군자라는 성을 가진 가문이 있었고. 그들은 천마와 연관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가. 모든 게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다루던 내공. 그중에서도 날카로운 기운을 갖던 내공의 정체는 마기였다. 처음에는 몸 전체를 뒤집고, 이후에는 자신에게 절대적인 힘을 빌려줬던 기운. 머리카락이 작열했던 것은 사부님의 무공 때문이 아니었다. 모두 마기가 활성화되면서 불안정한 본신을 불러왔다는 건가?

‘천칭, 자네는…….’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가, 라는 물음을 알베르트는 꺼내지 않았다. 무덤에서 있었던 그의 혼잣말을 생각해보면 천칭도 몰랐을 가능성이 컸다. 그 모든 것이 연기가 아닌 이상은 말이다.

그렇다.

연기가 아닌 이상은 말이다.

[그랬군요, 마스터. 이제 좀 알 것 같습니다. 천마의 사념이 어째서 마스터를 제자로 받아들였는지 말이죠.]

‘사부님은 알고 있었던 거네.’

생각해 면 사부님은 알베르트를 그렇게 불렀다.

란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

그 사람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알베르트가 누구고, 그의 혈통이 어떤지 말이다.

「괜찮으신가요, 란?」

“괜찮습니다.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아란의 시선에 알베르트는 손으로 두 눈을 눌렀다.

차가운 손끝이 닿자 두통이 조금 완화된 기분이 들었다.

“거의 다 왔군요. 황녀님은 안에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귀화루는 두 사람의 앞에 있었다.

*&*

알베르트는 벽에 기댄 채 서 있었다. 옆으로 보이는 문 안쪽에는 유피와 아란이 있었다. 세실리아는 이 자리에 있지 않았다. 필요한 촉매제가 있다고 말한 그녀는 아직 용하 거리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아란과는 따로 둘이서 이야기를 나눌 생각 같았다.

복도 맞은편을 바라보는 알베르트의 눈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뿌리를 알아버렸구먼.’

[그렇군요, 마스터의 몸에 마족의 피가 흐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돌아가신 어머니는 뿌리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이미 기울어 버린 가문에는 혈통도, 자료도, 무언가 증명해 줄 수 있는 물건도 없었다. 유일하게 남은 물건이라고는 지금 알베르트가 목에 걸고 있는 로사리오뿐이었다.

[그러니까 재밌는 거 아니겠습니까?]

재밌다, 인가. 천칭의 물음에 알베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알베르트가 걸어온 길은 경사가 있는 것처럼, 올라가기 힘든 오르막길이 있었는가 하면. 내려가기 쉬운 내리막길이 있기도 했다. 완급조절을 하듯이 섞인 두 길을 걸어온 것이 자신의 인생이다. 그럼 자신의 앞에 있는 지금 이 길은 어떤 길일까.

“들어와도 좋아.”

치료실 안쪽에서 유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베르트는 들어가기 전에 노크를 넣었다. 숫자를 5까지 헤아린 후 그는 치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쪽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유피와 살짝 지쳐 보이는 아란이 있었다.

“고생했어, 천일소화. 당신을 만나서 다행이야.”

「고생은 황녀님이 하셨죠.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이지만, 절대로 무리하시면 안 돼요. 황녀님은 특별하신 분이니까요.」

“그 특별함이 없었으면 오히려 행복했을 것 같아.”

쓴웃음에 가까운 미소가 유피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여겼는지, 아란은 다급히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펜은 움직이지 않았다. 유피가 아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사과할 필요 없어. 난 딱히 지금 생활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니까.”

유피는 알베르트를 불렀다. 그녀는 옷을 거의 입은 상태였다. 남은 마무리는 간단한 옷 시중이다. 처음부터 옷 시중을 들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유피는 그걸 바라지 않았다. 역시 손을 들어줄 수 있는 시녀가 한 명 정도는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알?”

“?”

유피의 부름에 고개를 든다.

그녀가 멍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된 걸까? 알베르트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유피의 옷매무새를 방금 고쳤는데, 자신이 다시 그 리본을 풀고 있었다. 마치 알베르트가 유피의 옷을 벗기는 꺼림칙한 모습이다. 다시 리본을 묶은 알베르트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미안. 조금 피곤한 모양이네.”

“괜찮은 거야?”

집사의 실례를 보고도 그녀는 화내지 않았다.

알베르트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지, 슬며시 그 얼굴을 살펴보고 있었다.

“정말로 괜찮아.”

알베르트의 대답에 유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낙양에 갈 일이 있다면 한번 찾아갈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황녀님.」

고개를 숙이는 아란을 뒤로 한 채 두 사람은 치료실 밖으로 나왔다.

알베르트가 문을 닫자, 유피는 후우, 하고 깊게 숨을 토해냈다.

“잘 해결된 거야?”

“그럭저럭. 확실히 신의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의녀였어.”

유피의 표정이 밝다.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은빛 마나가 휘몰아쳤다. 서로 엮이면서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은빛이 가속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의 몸 상태가 좋아진 건 확실했다.

“유피.”

“응?”

유피는 고개를 들었다. 집중이 끊겼기 때문일까, 손바닥 안에서 돌던 은빛 마나가 사라졌다.

“만약 내가 마족이었다면 우리 관계도 조금은 변했을까?”

“……?”

갑작스러운 물음에 유피에르는 알베르트를 응시했다.

조용히 대답을 기다리는 알베르트를 향해 유피에르는 입을 열었다.

“달라지는 건 없어.”

“그런가.”

“알은 알이잖아. 마족이든, 인족이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

그 말은, 알베르트가 유피에게 들려줬던 말이다.

망설이지 말라는 듯, 알베르트의 등을 유피가 밀어주고 있었다.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길을 앞에 두고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오르막길이든, 내리막길이든. 지금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이전과는 다르다. 유피에르는 알베르트의 곁에 있었다.

알베르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집사의 웃음을 본 유피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뭐야?”

“아니, 새삼스럽지만 역시 내가 반한 여자다 싶어서.”

뒤숭숭한 마음이 단번에 해결되었다.

흔들림 없는 그녀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알베르트는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혹시 유피는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의 몸에 마족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아니, 그럴 리는 없는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알베르트는 부정했다.

“또 그 소리야?”

질렸다는 듯 유피는 한숨 섞인 대답을 돌려주었다.

“정말 한결같네. 그렇지만 내 대답은…….”

“10년이라고 했지? 이제 8년 남았네.”

“…….”

능청스러운 알베르트의 목소리에 유피는 얼굴을 돌렸다.

복도를 나아가는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간다. 홀에서는 시끌벅적한 기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복 작업에 나갔었던 인원들이 돌아온 모양이다.

“용하 거리는 어땠어? 뭔가 재미난 일은 없었어?”

“재미난 일? 특별한 일은 없었어. 다들 작업이 바쁜지라 먹을 것도 없었고.”

“먹을 것이라…… 그러고 보니 천하 객잔에서 만두가 나왔어. 꽤 크더라고.”

“천하 객잔의 왕만두? 설마 치사하게 혼자 먹고 온 거야?”

“다음에는 같이 먹으러 가자.”

유피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변한 걸 본 알베르트는 자연스럽게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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