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북쪽이 심상치 않다 (73/200)

 # 73

북쪽이 심상치 않다

검은 연미복을 차려입은 청년은 가도를 걷고 있었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양양의 거리는 혼잡스럽기 짝이 없었다. 핏자국이 남은 벽, 지면에서 굴러다니는 본신의 파편. 무너진 누각과 반쯤 타버린 객잔. 길가 곳곳에는 건물에서 떨어진 잔해들이 가득했다. 상흔이 남은 건 거리 풍경만이 아니다. 복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주민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움직이기 편한 작업복 아래로는 하얀 붕대가 드러나 있었다. 상처를 생각한다면 안정을 취하는 게 맞다. 단순 노동을 요구하는 복구 작업은 간단한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제로 작업을 진행하면서 상처가 벌어지는 이도 있었다. 붉게 물든 붕대는 부상이 가볍지 않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걱정하는 동포들의 말을 웃음으로 넘기고, 복구 작업에 자신의 손을 보탠다. 그런 까닭에 지저분한 거리는 빠른 속도로 정리되고 있었다. 한쪽에서 간식거리를 가져온 여인들과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 점심을 들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배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식사는 곁가지에 지나지 않고, 쉬는 시간을 갖자는 말이겠지.

자재물을 옮기던 주민들의 두 손에 먹음직스러운 주먹밥이 생겼다.

특별한 찬거리는 없다. 복구 작업은 주민 전체가 참여하고 있었다.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만들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 뒤의 식사는 맛있는 법. 최고의 조미료와 함께 주먹밥을 입으로 가져가던 주민들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집사는 알지 못하는 노동요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여인들이 춤을 추고, 아이들이 두 손을 마주치며 웃는다. 재주 있는 가인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눈에 익숙한 여인들이다. 귀화루의 기녀들은 잔해 속에서 가무를 선보였다. 무너진 거리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 잠시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집사는 발걸음을 돌렸다.

양양의 주민들은 강했다.

그들의 선조가 그러했듯이, 이들이 다시 일어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거리를 빠져나온 알베르트는 귀화루에 도착했다.

기루 안에 남은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기녀 대부분은 복구 작업을 도와주러 나간 상태였고, 의녀인 아란도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출장 중이었다. 계산대를 지키고 있던 마담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루주인 청화와 함께 내성에 나가 있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아벨 황자가 영향력 있는 지주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는 모양이다.

넓은 홀에 나와 있는 건 보랏빛의 머리를 한 마녀뿐이다.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여인은 알베르트를 보고 손을 들었다.

“일찍 왔네, 집사. 어때? 본래의 몸으로 돌아온 소감은.”

“놀랍도록 가볍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실리아 님.”

알베르트는 산의 마녀, 세실리아 아그리파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가 스켈레톤이 아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발푸르기스의 자매를 이끄는 그랜드 위치, 그녀의 마도는 유피보다도 윗선에 있었다.

“아무리 냄새를 지우기 위해서라지만 말이야. 창생의 술을 그대로 써버릴 줄이야. 유피는 가끔 무모한 면이 있다니까.”

“그쪽은 문외한인지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세실리아는 술잔을 들었다. 술이라고는 여기기 힘든 달콤한 향이 콧가를 간질였다. 그녀가 마시고 있던 술은 취월주(醉月酒)다. 높은 도수와는 별개로 달달한 맛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달과 함께 취한다는 말이 있는 고급술이었다.

“그래? 너희는 좀 더 알고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저는 마법사가 아닙니다.”

“그러네. 너는 무인이니까.”

그녀는 알베르트가 인족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유피가 말할 것도 없었다.

세실리아는 알베르트와의 첫 대면에서 그 사실을 눈치챘다. 그것과 관련해서 그녀는 유피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눈 것 같긴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알베르트도 알 수 없었다.

“유피는 아직 위층에 있는 겁니까?”

“조금만 기다려. 곧 내려올 거야.”

자리에 앉아 있으라는 세실리아의 말을 따른 알베르트는 그녀의 앞에 앉았다. 꾸러미 안에서 찻주전자와 잔을 꺼내 둔다. 잠시 후, 원형 계단을 타고 유피가 내려왔다.

홀로 내려온 그녀는 알베르트가 처음 보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분홍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차분한 스타일의 옷이다. 마치 제국의 아카데미에서 지정해 둔 교복과도 비슷하다. 가만히 응시하는 알베르트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유피는 짧은 치마를 손으로 눌렀다.

“역시, 유피는 그 옷이 가장 잘 어울리는구나!”

“…….”

양손으로 볼을 감싼 세실리아의 눈이 빛났다. 뜨거운 그녀의 시선을 받으며 유피는 혀를 찼다.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짜증 나, 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옷은?”

“마녀의 산에서 수습 마녀들이 입는 옷이란다. 유피는 나이 때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좋아하니까 말이야. 속옷도 그렇고, 왜 그렇게 어른스러운 옷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니까.”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지 이 언니는 정말 걱정이란다, 하고 세실리아는 덧붙였다.

“시끄러워. 오늘 하루만 입는 거니까.”

“응응, 알고 있어. 자, 일로 오렴.”

세실리아는 자신의 옆자리를 두들겼다. 그녀가 챙겨 놓은 의자 위에는 부드러운 방석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휙 둘러본 유피는 알베르트의 곁으로 갔다. 알베르트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뒤로 가서 선다. 유피는 알베르트가 앉아 있던 자리에 엉덩이를 내렸다.

“…….”

“…….”

정적.

“뭐야?”

“…….”

세실리아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

“…….”

유피는 미간을 손으로 매만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세실리아가 준비한 의자에 앉았다. 유피가 곁에 오자 세실리아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내가 언니 때문에 못 살아.”

“사랑해, 유피!”

얼굴을 문대는 세실리아를 유피는 손으로 밀어냈다.

그러나 소용없다. 세실리아는 유피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얼굴을 부비부비 문지르는 그녀의 행동에 저항하던 유피는, 이윽고 포기했는지 몸에서 힘을 뺐다.

“소하 언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알베르트는 입을 열었다.

마음 같아서는 곤란해하는 유피를 좀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이래서야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저는 악마를 봤습니다.”

알베르트는 어젯밤 자신이 겪었던 일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소하 언덕에서 악마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괴물을 만난 것에 대해. 녀석이 자신의 이름을 마몬이라고 밝힌 것까지.

“악마라…… 세실리아.”

이야기를 들은 유피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녀의 목소리에 세실리아는 볼에 손을 얹었다.

“조만간 움직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랐구나.”

“알고 있었던 거야?”

“북부가 시끄럽던 건 알고 있었잖니?”

“북부?”

유피의 반문에 세실리아는 손을 내렸다. 산의 마녀는 술잔을 한쪽으로 치웠다.

“유피에르 황녀님은 좀 더 주변 동세에 신경 쓸 필요가 있어요. 황녀라는 신분에 걸맞은 역할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특수한 위치에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동포를 지키는 건 황족의 의무예요. 최소한의 책무는 지켜주세요.”

“그 말대로네요. 제가 소홀했습니다, 산의 마녀.”

순순히 이야기를 받아들인 유피에르 황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성하는 황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산의 마녀는 술잔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양이 많지는 않다. 잔을 받은 유피는 술을 입으로 가져갔다. 독한 알코올 기운 때문일까,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집사는 북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니?”

“북부의 야만인들을 말하는 거라면 조금 알고 있습니다.”

세실리아의 물음에 알베르트는 기억을 더듬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교를 믿으며 성전을 울부짖는 북부의 야만인들. 식량이 궁해지는 겨울이 다가오면, 그들은 챈드리 변방백이 지키는 세인트 월(Saint Wall)까지 내려오곤 했다.

“그 야만인들의 왕이라는 것이 최근에 나타났거든.”

“왕이요? 분명 녀석들은 부족 단위로 움직일 텐데요?”

“우리의 시간이 흘러가듯이, 녀석들의 시대도 변했다는 거겠지. 수백 개로 갈라진 부족을 규합시킨 녀석이 아드레이 대산에서 대관식을 치렀다는 모양이야.”

아드레이 대산은 북부 끝에 있는 세상의 지붕이었다.

루미에르 교에서는 성역으로 전승되어 오는 산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야왕(野王)이라고 칭한 녀석이 국교를 정했다는데, 이 사교가 신봉하는 것이 악마를 닮은 뱀이라는 소문이 있어.”

“확실한 건가요, 산의 마녀?”

“믿을 수 있는 정보에요. 그렇지 않다면 1황자 전하가 북부로 올라가실 이유가 없거든요.”

“시더 오빠가…….”

북부에 볼일이 있다고 한 건 그런 이유였나, 유피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말없이 잔을 바라보던 그녀는 중얼거렸다.

“야만인들은 우리가 했던 과오를 반복하겠다는 거야? 제정신이야?”

“야만인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구나, 유피. 녀석들은 우리가 받은 저주를 축복이라고 불러.”

“믿을 수가 없네.”

“그렇다고는 해도 양양까지 들어와서 이 난리를 만들 줄은 몰랐는데. 정말로 한번 해볼 생각인 걸까?”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 어조와는 달리 사안은 가볍지 않았다.

“유피랑 쉴 생각으로 나온 건데, 이래서야 바로 산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네.”

“마녀의 산으로? 언제 돌아갈 생각인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는 듯, 유피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세실리아가 아니다. 그녀의 볼이 살짝 떨렸다.

“왜 그리 좋아하는 거니? 얼굴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난 좋아한 적 없어. 언니는 바쁜 사람이니까 채비라도 도와줄까 해서 물어본 거야.”

“그래? 유피가 곁에 있으면 별로 안 바쁠 것 같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언니랑 같이 산으로 돌아갈까? 자매들은 언제나 널 환영한단다.”

“그 끔찍한 산으로 돌아가니, 낙양을 가고 말겠어.”

“낙양이라…….”

그것도 괜찮겠네, 하고 세실리아는 말을 이었다.

“유피랑 같이 하는 여행은 오랜만이네. 이 언니, 기대해도 되지?”

“누가 데리고 간대?”

“정말, 부끄럼이 많다니까 우리 유피는.”

“…….”

세실리아의 손가락이 유피의 볼을 찔렀다. 부드러운 볼살이 움푹 들어갔다. 유피는 알베르트를 보았다. 질렸다는 듯 그녀의 두 눈은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거리를 돌아보면서 느낀 건데, 복구 작업이 생각보다 빠르더군요. 이 속도라면 한 달도 안 돼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잃어버린 만큼 강해지는 법이야. 한 번 쓰러졌던 사람은 다시 일어나는 법도 알고 있으니까.”

“그렇습니까?”

알베르트의 말에 대답하면서도 세실리아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몇 가지 화제를 더 나누었지만, 세실리아의 손이 거두어질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유피가 직접 그녀의 손을 떼어놓았다.

“몽환기는 챙겨 왔어?”

“그걸 직접 들고 올 수는 없었어. 서신에 긴급 상황이라는 표식까지 붙어 있었지 않니. 대신에 대체할 걸 챙겨 왔으니 걱정하지 마렴.”

“대체재로 가능할까? 내가 치르려는 의식은 월아의 악몽인데.”

“지금 누구한테 물어보고 있는 거니?”

자신만만한 그녀의 모습에 유피는 살짝 웃었다.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세실리아가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이상 의식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리라. 앞에서 멍청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집사를 향해 유피는 말했다.

“몸 상태는 좀 어때?”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해.”

그럴 리가 있나.

유피는 자신의 앞에서는 죽어도 약한 소리를 꺼내지 않는 알베르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집사의 몸이 원상태로 회복되려면 적어도 한 달은 잡아야 할 것이다. 유피도 썩 몸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8개의 나뭇가지를 올라간 반동은 지금도 몸에 남아 있었다. 며칠 동안은 마나를 다루는 것도 힘들겠지. 세실리아의 도움이 있다고 해도, 마법을 펼치는 주체는 유피였다. 몸이 회복된 이후에나 악몽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당분간은 양양에 머무르자. 나도 알아볼 일이 좀 있으니까.”

“알았어, 유피.”

기루의 입구가 소란스러워진다.

복구 작업을 나갔던 기녀들이 돌아온 모양이다. 홀이 시끄러워지기 전에 빠져나가자. 유피는 기녀들이 껄끄러웠다. 무엇보다 낙양에서 무희로 활동했던 적이 있는지라, 그녀들과 있으면 항상 그 이야기가 나왔다. 황녀님이 유명한 무희와 동일인물이라니. 그녀들로서는 이만한 이야깃거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피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시선을 내려다보자 한쪽 팔을 꼭 잡은 찰거머리 같은 언니가 있다.

“어딜 가는 거니?”

“언니도 알고 있잖아. 나도 좀 쉬어야지.”

“그 모습도 안 보여주고?”

“…….”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무심코 유피는 알베르트를 보았다. 아직 기녀들은 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남자라면 자신을 도와줄 수 있다. 도움을 청하는 그녀의 시선에 알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면 충분해. 다 같이 마실 수 있을 거야.”

“이 삼류 집사가……!”

왜 이럴 때만 눈치가 없는 건데!?

뜻밖의 욕을 들었기 때문일까, 알베르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과도 준비해 뒀어. 말했잖아, 나는 일류 집사라고.”

“…….”

분명 알면서도 그러는 거야. 홀 안쪽으로 들어오는 기녀들의 모습에 유피는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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