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양양 성 전투(6) (72/200)

 # 72

양양 성 전투(6)

은빛 고양이는 뱀을 따라 나무를 올라가고 있었다.

고양이가 타고 있는 나무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세상 전체를 감싸 안는 크기의 거목이다. 이 나무 앞에서는 어떤 존재도 작아질 수밖에 없다. 고양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무의 허락이 없다면 고양이는 이 줄기에 발을 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했으리라.

나무 밑으로 시선을 옮겨본다. 고양이가 지나온 나뭇가지의 수는 다섯 개였다. 올라가야 하는 나뭇가지는 여덟 번째까지. 아직 세 개의 나뭇가지를 더 지나가야만 했다. 기적을 완벽히 재현하고 싶다면 열 번째 나뭇가지까지 올라가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고양이는 자신의 능력을 알았다. 그 욕구를 전부 충족시켰다가는 자신이 사라진다. 집사와는 다르다. 나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아직 고양이는 그곳에 닿을 수 없었다.

여섯 번째 나뭇가지가 활성화된다. 싹이 자라는 줄기를 본 고양이는 위를 보았다.

이제 남은 나뭇가지는 두 개다. 빛나는 나뭇가지를 등진 채 나무를 오른다. 이렇게 많은 나뭇가지를 활성화한 적이 있었던가. 마녀의 산에서도 혼자서는 이런 대단위 마법을 발현한 적은 없었다. 그녀의 곁에는 까마귀가 있었으니까. 그 인도 아래에서 마법을 행사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고양이 혼자다. 그 곁에 있는 건 길을 안내하는 뱀뿐이다.

작은 불안감이 생겨났다. 정말로 자신이 이곳을 올라갈 수 있을까. 이 기적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고양이의 발에 머뭇거림이 생겨났다. 자연히 발을 옮기는 속도가 느려졌다. 뱀의 모습을 놓칠 것 같다. 뱀은 고양이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결국, 고양이는 뱀의 모습을 놓쳤다.

그와 동시에 나무의 경사가 가팔라졌다. 고양이의 몸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간신히 여섯 번째 나뭇가지까지 올라갔는데, 떨어지는 몸을 붙잡을 방법이 없다. 나뭇가지의 빛이 사라진다. 네 번째 나뭇가지를 지나친 고양이는 다급해졌다. 나무를 둘러본다. 잡을 만한 것이 없다. 발톱을 세운다. 추락하는 몸을 붙잡기 위해 고양이는 나무의 몸에 발톱을 꽂았다. 아픔이 달렸다. 고양이의 발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발톱이 뽑힌 고양이는 나무에서 떨어졌다.

세계수는 고양이를 거절했다.

지면에서는 커다란 문이 입을 열고 있었다. 문 바깥쪽으로 고양이는 추락했다.

그리고 유피에르 바토리는 눈을 떴다.

“-!”

몸이 무너져 내린다.

현실로 돌아온 유피에르는 속에 든 것을 게워냈다. 신체 내부가 뒤집힌다. 울렁거리는 속을 반영하듯이 시계가 일그러졌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 자신의 의지로 경계 속에서 돌아온 것이 아니다. 강제로 거절당했다. 마나가 역류하는 것 같다. 시야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양양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은 검은 연기와 푸른 연기뿐이다.

어깨에 무언가가 닿는다.

푸른 연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지 알고 있다. 이 인상적인 색은 그녀의 오빠인 아벨 황자다. 무언가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들리지 않는다. 들을 수 없다. 다시 문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놓고 온 것을 되찾아 와야 한다.

세피로스의 지팡이는 아직 손에 잡혀 있었다.

다시 뱀을 부른다. 뱀을 따라 나무를 올라가자. 길을 밝힌 유피에르는 문 앞에 섰다.

“우리 귀여운 유피가 어쩐 일로 이리 힘내고 있을까?”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울렁거리는 속과 달리, 유피에르는 마음속 깊이 안도했다. 고개를 든다. 연기밖에 보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 그녀만이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검은 고깔모자와 그 아래로 흘러나온 보랏빛의 머리카락.

빗자루 위에서 다리를 꼰 그녀는 즐거워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세실리아 아그리파.

산의 마녀라고 불리는 그랜드 위치가 유피에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안녕, 하고 손을 흔들었다.

“언제부터 와 있었던 거야?”

“음, 유피가 티페레트(Tiphereth)를 통과했을 때부터?”

“그럼 좀 도와주면 안 됐어?”

다섯 번째 나뭇가지다. 유피에르가 미끄러진 장소가 여섯 번째 나무였으니,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도 방관했다는 말이다.

“어머, 동생의 성장을 지켜보는 건 언니의 의무란다? 처음부터 남의 도움을 바라는 건 몹시 나쁜 버릇이야.”

문을 앞에 둔 채 세실리아는 유피에르의 발을 보았다.

“여전히 맨발이구나. 아직도 세계수로 가는 길이 불안한 거니? 언니가 말했잖니. 세계수는 이해하고자 하는 마녀들에게만 답해준다고. 이해하기를 포기하면 세계수는 대답하지 않는단다.”

“잔소리는 일단 이 상황부터 해결하고 하면 안 될까? 한시가 급한 상황이야.”

“하지만 넌 잔소리를 하면 도망가잖니. 이렇게 얼굴을 보는 게 대체 몇 년 만이니?”

“세실리아는 잔소리를 시작하면 1시간은 걸리잖아.”

짧게 하면 유피에르도 들을 용무가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마녀는 한번 시동이 걸리기 시작하면 스스로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의 항변에 세실리아의 입가가 찡그려졌다.

“그러니까 유피는 지금 그게 내 잘못이라는 거니?”

“세실리아.”

지금은 말다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유피에르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마녀는 팔짱을 꼈다. 풍만한 가슴이 살짝 흔들렸다.

“난 네 친구가 아니란다, 유피.”

유피에르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뭘 바라는지 알아차린 탓이다.

자존심은 접어둔다. 지금은 자존심을 챙길 상황이 아니었다.

“도와줘, 언니.”

“포옹은?”

“해줄게.”

“볼에 입맞춤은?”

“언니.”

“안 해준다면 별수 없네. 얼굴도 봤으니까, 이만 가볼까?”

이래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유피에르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해줄게. 해주면 되잖아.”

“이미 늦었어. 내가 가져온 옷도 입어줘야 해.”

“알았다니까!”

“좋아. 귀여운 동생의 부탁이라면 어쩔 수 없네.”

한쪽 뺨에 손을 얹은 세실리아는 오른손을 튕겼다.

그 단순한 동작 하나에, 세계수로 가는 문이 열렸다.

유피에르는 은빛 고양이가 되었다. 고개를 든다. 눈앞에는 세계수의 뿌리가 보였다. 다시 처음부터 올라가야 한다. 거목을 올라가는 뱀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다.

고양이 옆으로 보랏빛의 까마귀가 내려왔다.

까마귀는 부리를 딱딱 두들기더니, 양발로 고양이의 목을 잡았다.

보랏빛 날개가 날갯짓을 시작한다.

고양이를 잡은 채 까마귀는 세계수를 올려다보았다.

통과해야 하는 세상은 여덟 개.

까마귀와 고양이는 순식간에 세계수 위로 날아올랐다.

*&*

유피에르는 문을 열고 나왔다.

연기로 보이던 양양 성의 모습이 천천히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받아들이는 세계와 투영되는 기운이 공존한다. 푸른 연기와 겹쳐 보이는 아벨의 모습을 본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위에는 빗자루를 타고 올라가는 세실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밤하늘을 나는 마녀의 뒤를 따르듯이 커다란 나무가 움직이고 있었다.

마녀의 밤에 그녀가 늦어서는 안 되겠지.

발치를 가볍게 밟은 유피에르는 두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몸이 가볍다. 자신을 옥죄던 굴레에서 벗어난 것 같다.

불필요한 사고도, 한시도 떨어지지 않던 고민도 지금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녀의 산에서 마도를 연구하던 일이 생각난다.

그녀를 따스한 눈으로 지켜봐 주던 언니가, 지금 자신의 곁에 있었다.

“위치크래프트(Witchcraft)는 기억하고 있니?”

“아무리 그래도 그걸 잊어먹지는 않아.”

“훈육(訓育)은 필요 없겠구나.”

세실리아는 입꼬리를 올렸다.

들뜬 그녀의 마음에 답하듯이, 빗자루는 쏜살같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그럼 언니가 먼저 시작할게.”

그녀는 품에서 작은 나무 지팡이를 꺼냈다.

연주회를 시작하듯이 세실리아의 손이 지휘를 시작했다.

「자, 오려무나. 까마귀들아. 무엇보다 높은 지고한 왕국이 너희를 인도할지어니.」

빗자루를 탄 세실리아가 크게 호를 그렸다. 그녀의 아래에 떠 있던 마법진이 반응했다.

보랏빛의 까마귀가 모습을 드러낸다. 밤하늘에 떠오른 사역마들은 마법진을 따라 날아들었다. 까마귀의 깃털이 닿자 보랏빛의 선이 나타났다. 떠오른 원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한 개의 원이, 두 개의 원이. 세실리아의 마나를 따라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피에르도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무엇보다 높은 지고한 왕관이 고한다.」

그녀는 세실리아만큼 능숙하지 않다. 마법진을 밟은 그녀는 유려한 춤사위를 밟기 시작했다. 하얀 발과 맞닿은 마법진에서 은빛의 선이 달렸다. 동작은 언제나 크게. 좀 더 많은 마법진을 밟고, 선을 따라가는 마나를 강화한다. 하나의 원을 활성화한 유피에르는 다음 마법진으로 향했다.

선을 그리고, 원을 밟고, 부족한 마나는 나비를 보낸다. 나비와 맞닿은 마법진은 은빛의 선이 생겨났다. 그러나 원을 활성화하기에는 마나가 부족하다. 춤사위가 커진다. 유피에르의 윤무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그녀가 맡은 원이 은빛으로 물들었다.

세실리아가 맡은 반대쪽의 원은 이미 활성화되어 있다.

유피에르가 맡은 다섯 개의 원도 전부 활성화되었다.

빗자루에 앉아 있는 세실리아를 향해 유피에르는 떠올랐다.

「지고한 왕국은 이곳에」

「지고한 왕관은 이곳에」

두 목소리가 맞물렸다.

경계선을 지키듯이 서로 힘싸움을 벌이고 있던 마법진이 겹쳐졌다. 은빛과 보랏빛이 어우러지면서 열 개의 원에 강한 빛이 달렸다.

「「세계수의 지혜를 청한다.」」

두 마녀가 청한 지식에 세계수는 기꺼이 응답했다.

암흑 속에 빠져 있던 양양 성 위에 세계수를 모방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은보랏빛이 하늘을 수놓는다.

하지만 세계수의 빛은 갑자기 사라졌다.

마법이 실패한 걸까?

아니, 다르다. 이제 세계수의 지혜를 청하는 시작 단계를 밟았을 뿐이다.

마녀의 발이 첫 번째 원을 밟았다.

은보랏빛의 마나가 그녀의 발치에서 달렸다.

원 안에서 선을 그리기 시작한 마나는 톱니바퀴처럼 돌기 시작했다. 복잡한 수식과 문자가 떠오른다. 빛이 튀어 오른다. 강대한 마나의 흐름은 그릇을 거부하듯이 날뛰었다. 숲의 마녀는 원 밖으로 벗어나는 마나를 마법진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녀가 나아가는 발을 따라 수식과 문자가 다시 배열한다. 원 안에 완벽한 그릇을 만든 숲의 마녀는 제자리에서 세피로스의 지팡이를 들었다.

첫 번째 원에서 떠오른 은보랏빛의 마나가 마법진 바깥의 선을 타고 달렸다.

숲의 마녀가 앞서 밟았던 선이다.

그녀가 만든 링크를 따라 나아간 빛은 두 번째 원에 닿았다. 마법진은 바깥쪽부터 빛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빛에 둘러싸인 두 번째 원은, 첫 번째 원과 마찬가지로 내부를 채우기 시작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내부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다. 흘러나온 마나는 동시에 다른 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나아간 마나는 세 번째 원과 네 번째 원에 닿았다.

은보랏빛의 마나는 이전의 원이 그러했듯이. 내부의 그릇을 채워나갔다.

빗자루에 앉은 산의 마녀는 마법진이 완성되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숲의 마녀가 그리는 마법진을 확인한 그녀는 작은 지팡이를 흔들었다. 보랏빛의 까마귀가 날아든다. 은보랏빛의 선과 맞닿은 까마귀의 몸에서 은빛이 흘렀다.

「왕국은 세계수의 잎에. 왕국은 세계수의 가지에. 왕국은 나의 앞에.」

순식간에 세 개의 공정이 끝난다. 숲의 마녀가 행사하는 마법과는 속도를 비교할 수 없다.

세계수로 치솟은 까마귀들은 마법진에 빛을 가져왔다. 마법진의 중심을 완성한 그녀는 이제 마지막 세 개의 원을 향해 날아갔다.

「왕국을 짊어진 이가, 지고한 왕관을 지금 이곳으로 인도할 지어니.」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작은 지팡이가 은보랏빛의 선과 함께 마법진을 거닌다.

숲의 마녀는 아직 닿기 힘든 마지막 문을 산의 마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열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로 나아가는 길이 눈앞에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을 잃고 그 안에 빠져들 것 같다. 황홀경에 빠진 산의 마녀는 위대한 스승이 남긴 말을 떠올렸다.

만약 진짜 마녀가 있다면, 그녀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수의 지혜.

세상의 모든 것에 도달할 수 있다면 인간이라는 그릇은 걸림돌밖에 되지 않았다.

「지고한 왕관이 왕국의 부름에 응답하니.」

산의 마녀는 눈을 떴다.

아직 그곳으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세실리아가 돌봐야 하는 작은 마녀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지고한 왕국이 왕관을 받아들이니.」

두 마녀의 술식의 끝이 맺었다.

「「우리는 이 앞에, 세계수의 기적을 간청하나이다.」」

은보랏빛의 세계수가 양양 성의 하늘에서 피어났다.

한 줄기의 바람이 불었다.

거리를 지휘하던 아벨 황자는 하늘을 보았다. 두 마녀가 자아낸 세계수가 양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변화는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났다. 본신을 드러냈던 주민들의 모습이 천천히 본모습을 찾아간다. 붉은 광기가 엿보이던 얼굴에 이성이 돌아오고, 서로를 향해 검을 들었던 이들이 손을 내렸다. 외성문에서 벽을 넘어오던 마물도 마찬가지다. 마기에 노출되어 변형을 거듭한 마물들은 바람과 맞닿은 순간 작은 곤충이 되어버렸다.

봄에 부는 바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온기가 볼을 스친다. 흐르던 피가 멎고, 들끓던 마기가 가라앉았다. 갑자기 일어난 상식 밖의 일에 병사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둠을 불러오던 지옥도는 사라졌다.

세계수가 피워낸 온기는, 양양 성을 따스하게 감싸 안았다.

*&*

그것은 양양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언덕에서 느껴지던 그릇이 부서졌다. 지옥도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릇을 맡고 있던 동족의 기운이 사라진 걸 보았을 때, 이 혼란을 더 이어갈 방법이 없었다. 바보 같은 놈이다. 분명 이번에도 여유를 부리다가 당한 것이겠지. 무엇보다도 자신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마몬답다.

흘러가던 그것은 길목에 있는 한 죄인을 볼 수 있었다.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작은 체구의 소년이다. 몸 상태를 확인한다. 잘됐다. 세계수의 뿌리는 그에게 큰 상처를 남긴 터다. 죄인의 생기는 맛있다. 그것도 나이가 어린 죄인은 그 맛이 특별했다.

그것은 형체를 갖췄다.

죄인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찾는다. 검은 피부와 두 개의 뿔. 몸 아래로 드러난 4개의 다리가 지면을 짓밟는다. 반수반인이 된 그것은 손에 쥔 삼지창으로 소년의 목을 꿰뚫었다.

「?」

그랬을 터인데.

그것의 눈에 비친 것은 거꾸로 돌아간 소년의 모습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소년을 날려 보냈던 걸까? 다르다. 어느새 나무 위로 옮겨간 소년은 그것을 거꾸로 들고 있었다.

“약하구만, 니.”

「…….」

개로 보이는 가면을 쓴 소년은 그것을 응시했다. 그것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죄인이 어떤 수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얼굴을 가까이 가져온 것은 실수다. 놈의 눈을 홀린다. 마안(魔眼)의 힘으로 녀석을 지배한다. 소년은 손을 들었다. 주먹을 만들고, 그대로 그것의 얼굴을 가격했다.

퍽.

그것의 얼굴이 깨졌다. 떨어진 주먹 위로 검은 피가 묻어나왔다.

퍽.

형체를 가졌던 코가 무너지고, 광대뼈가 나간다. 단 두 번의 주먹으로 그것의 얼굴을 부순 소년은 입을 열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하지 않나? 그냥 보내줄 생각이었는데, 왜 손을 쓰게 만드누? 혹시 니도 머리가 좀 얼빠진 놈이냐?”

「감히, 죄인…….」

“죄인?”

완벽히 망가진 그것의 얼굴을 소년은 짓밟았다.

발아래에서 뼈가 부서지고, 뇌수가 터졌다. 흥건히 흘러나온 검은 피를 대지는 빨아들였다. 움직이지 않게 된 그것의 머리를 부순 소년의 가면으로 피가 튀었다.

“그딴 소리를 한 번만 더 내뱉으면, 그 때는 정말로 죽여 버릴 기다.”

움직이지 않게 된 그것을 잘근잘근 짓밟으며 소년은 말을 이었다.

“내가 널 살려 보내는 건 말이다. 니놈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다. 너 같은 잡병에게는 관심 없다. 알아들었냐?”

「…….」

그것의 시체가 지면으로 녹아들었다.

검은 파편과 핏자국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가면에 묻었던 검은 피조차 사라졌다. 길을 따라 도망치는 그것을 보며 소년은 중얼거렸다.

“그래, 가거라. 가서 조금 더 성장해라. 그래야 사제도 조금은 만족할 수 있지 않겠나?”

소년은 가면을 벗었다. 그 아래로 드러난 입가는 잔악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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