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양양 성 전투(1)
집회장 바깥쪽으로 향할수록 비릿한 냄새는 짙어졌다.
작고 큰 상처를 입은 마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본신을 반쯤 드러낸 그들의 눈은 겁에 질려 있었다.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상처를 지혈할 엄두도 나지 않는지, 서둘러 발을 옮기는 마족들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집회장을 통과한 알베르트는 곧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싸움판이 벌어진 것으로 보이는 용하 거리는 피가 낭자한 상태였다.
고통에 괴로워하는 마족들의 신음이 가득했다. 본신을 반쯤 드러낸 마족들이 땅 위를 뒹굴고 있었다. 온전한 상태의 마족은 보이지 않는다.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본신의 가죽이 뜯겨나간 이가 있는가 하면, 얼굴 한쪽이 완전히 함몰된 이도 보였다. 한쪽 날개가 뽑혀버린 여마족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것 같은 광경이다.
아직 의식이 있는 마족들을 일으켜 세운 알베르트는 그들을 집회장 쪽으로 올려 보냈다. 뒷일은 신도들에게 맡긴다. 관병들의 손이 부족하지 않다면, 이들의 안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알베르트는 용하 거리 안쪽으로 나아갔다. 거리는 좁은 샛길로 이어져 있었다.
넓은 공간은 아니다. 외길처럼 이어지는 샛길은 잘해야 성인 남성 두 명이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한량들의 집회 장소로 사용될 것 같은 공간에는 이미 숨이 끊긴 마족의 시체가 보였다. 본신을 드러냈지만 버티지 못한 것일까. 목이 반쯤 뜯어 먹힌 이는 물론이고, 가슴이 찢겨나간 이들도 있었다.
샛길 안쪽에는 널찍한 광장이 있었다.
평소에도 싸움판이 벌어지던 장소였는지, 그곳에는 원형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건물 뒤편에는 낙서가 그려져 있고, 어떤 단체의 문양으로 보이는 주먹 마크가 곳곳에 그려져 있었다.
이곳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사상자가 가득하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지, 신음을 흘리는 이들이 있었지만. 흘러내리는 피와 상처의 깊이를 봤을 때 살아남기는 힘들어 보였다. 실제로 발작하듯이 꿈틀거리는 마족은 곧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이 참상을 만든 범인은 싸움판 위에 있었다. 희생물로 보이는 남자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범인은 마치 먹이사슬의 정점에 군림하는 포식자처럼, 남자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두 다리는 이미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버린 지 오래다. 포식자가 잡은 남자의 팔도, 덜렁거리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 뽑아버린 것일까. 민숭민숭한 머리에서는 질척질척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이 피범벅이 된 걸 보았을 때, 분명 손톱마저 전부 뽑아 버린 것 같다. 끔찍한 몰골이 된 남자는 더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포식자는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통증의 한계를 맛본 남자는 포식자의 장난에 반사적으로 몸을 떨 뿐이다. 그래도 녀석은 손을 멈추지 않는다. 그 모습은 흡사 어린아이가 흥미 위주로 벌레의 날개를 뜯고 있는 것 같은 순수한 광경이었다.
멈추지 않는다. 마물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그 포식자는, 여전히 남자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이미 망가진 장난감을, 더는 쓸 수 없게 부수고 있을 뿐이다.
더는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알베르트는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검을 들었다. 검자루로 벽면을 내려친다.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생각보다 힘이 깊게 실렸던 것인지, 벽면에는 선명한 금이 생겨났다.
그제야 포식자는 알베르트를 돌아보았다.
놈의 얼굴은 무척이나 기괴했다. 머리 위로 자라난 두 개의 뿔과 비늘과도 같은 검은 피부. 몸 전체에 떠오른 갑주는 반들반들 빛나고 있었다. 자신의 행위에 심취한 듯, 그 얼굴은 묘한 열망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알베르트는 마른 침을 삼켰다.
마족이 아니다. 눈앞의 존재는 마족이 아니었다. 그런 것과는 다르다. 녀석과 얼굴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주변 풍경을 일그러뜨릴 정도로 진한 마기를 풍겨내는 녀석은, 루미에르 교에서 이야기하는 전설 속의 악마와도 비슷했다.
“너는 뭐지?”
알베르트의 물음에 악마는 대답하지 않는다.
툭, 하고 악마는 손에 쥐고 있던 장난감을 던졌다. 지면과 충돌한 남자의 머리가 깨졌다. 뇌수가 터져 나온다. 붉은 피를 흩뿌린 남자는 몇 번 꿈틀거리더니, 이내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악마는 알베르트를 응시했다. 알베르트가 조심스럽게 검을 든 순간, 악마의 고개가 흔들렸다.
“--!?”
끔찍한 소리가, 났다.
악마의 발이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마족의 손이 알베르트의 얼굴을 향해 다가왔다. 피한다. 볼 끝에 아픔이 달렸다. 피하지 못했다. 손이 아니다. 그 끝에서는 날카로운 손톱이 자라나 있었다.
악마의 손톱이 춤을 춘다. 풍도신보를 따라 발을 옮기는 알베르트를 따라잡는다. 놈은 연이어서 이 격, 삼 격을 가해왔다. 악마가 손을 뻗는 방향을 보고 몸을 젖힌다. 손톱이 가슴 위를 스친다. 옆구리, 줄 수 없다. 검과 손톱이 맞닿는다. 캉, 하는 소리와 함께 검신이 부러졌다.
끊어진 검을 버린다. 단번에 몸을 꺾은 알베르트는 다른 검을 주웠다. 검기를 두른다. 악마의 손톱과 알베르트의 검이 교차했다. 검기가 흔들린다. 버티지 못한다. 알베르트는 내공을 좀 더 끌어올렸다. 검 위로 떠오른 검사는 악마의 손톱과 부딪쳤다. 꺾이지 않는다. 강도는 비슷한가. 검사라면 최소한의 합을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
악마도 그 사실을 깨달은 거겠지. 합을 나누던 놈은 일순간 몸을 물렀다.
‘이 괴물은 뭔가, 천칭?’
알베르트는 숨을 돌리면서 물었다.
[이미 정체를 알고 있지 않습니까, 마스터. 괴물입니다.]
‘자네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농담을 던지고 싶은가?’
[농담한 적 없습니다, 마스터. 놈은 괴물입니다.]
‘…….’
악마의 등에서 피막과도 같은 날개가 솟아났다. 피와도 비슷한 검은 액체가 반짝였다.
두 날개를 움직여 본 녀석은 입을 벌렸다. 그 안에서 한 무리의 파리가 쏟아져 나왔다. 알베르트의 칼끝이 흔들렸다. 검붉은 검사와 맞닿은 파리는 재로 변해 떨어졌다. 잿더미에서는 지독한 독기가 올라왔다. 소매로 입가를 가린 알베르트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제법이구나, 죄인.」
쇠판을 긁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것이 눈앞의 악마가 낸 말이라는 걸 알아차린 알베르트는 대답했다.
“요즘 괴물은 말도 할 줄 아는군.”
「…….」
놈의 손이 움직였다.
검은 불꽃이 손바닥 안에서 떠올랐다. 작은 구슬로 변한 불꽃은 알베르트를 향해 쏘아졌다. 빠른 속도는 아니다. 맞받아친다. 알베르트가 검을 든 순간이었다.
[받아치면 안 됩니다, 마스터!]
“……!”
천칭의 경고에 알베르트는 자세를 무너뜨렸다. 검을 던진다. 구슬의 궤도와 부딪친 검은 폭발하지 않았다. 구슬 안에서 작은 공간이 드러나더니, 붉은 혀가 튀어나왔다. 끈적거리는 혀는 검에 달라붙더니, 그대로 공간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알베르트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천칭이 만류하지 않았더라면, 저 공간으로 사라지는 건 자신이 되었을 것이다.
그사이 악마는 하늘로 떠올랐다.
비상한 그는 알베르트를 내려다보더니, 집회장의 바깥쪽으로 날아갔다.
어디로 향한 걸까? 모르겠다. 일단은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알베르트는 악마가 떠난 광장을 둘러보았다.
마족들의 시체를 확인한다. 숨이 끊긴 마족들은 본신을 반쯤 드러낸 모습이었다.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 마족 대다수는 본신을 드러내고 싸움에 임했던 것 같다. 이곳을 떠난 악마가 남긴 상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처도 더러 보였다. 혹 그들끼리도 사투를 벌인 걸까?
‘솔직하게 말하게, 천칭. 저게 뭔가? 자네는 알고 있지 않나?’
천칭은 녀석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경고의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는 놈이 사용하는 수를 알고 있었다.
[여기는 마계입니다, 마스터. 그럼 마족 외에 또 다른 게 있겠습니까? 저것이 마족의 본모습이라는 겁니다.]
‘아닐세. 저건 마족이 아니야.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네. 대답해 주게. 저건 뭔가?’
[저는 천칭입니다, 마스터.]
‘그놈의 천칭 타령을 또 시작하는 건가?’
하지만 천칭의 대답으로 확실해졌다.
저것이 마족이라면 그는 아는 대로 대답해 줬으리라. 그러나 그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조금 전의 괴물은 마족이 아니다.
저것의 기원은 악이다.
알베르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으…….”
사고를 끊는다. 알베르트는 아직 살아남은 마족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본신을 드러낸 마족들은 거의 숨이 끊긴 상태였으나, 그렇지 않은 이들은 간신히 숨이 붙어 있었다. 급한 대로 그들의 상처를 지혈한 알베르트는 이곳으로 들어오는 관병들을 볼 수 있었다.
긴장된 기색으로 샛길을 통과한 병사들은 알베르트를 경계하며 진형을 짰다.
이 소란을 만든 범인이 알베르트라고 생각하는 걸까? 오해를 풀기 위해 알베르트가 입을 열려는 찰나, 병사들 안쪽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만, 그 남자는 적이 아니다.”
“무진.”
“알베르트, 자네가 여기는 어쩐 일인가?”
주변을 둘러본 무진은 얼굴을 굳혔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그는 알베르트를 보았다가, 이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차린 듯 두 손을 모았다.
“감사를 표하네. 자네가 해결한 모양이군.”
“내가 왔을 때는 이미 상황이 끝난 뒤였네.”
살아남은 이들은 몇 되지 않는다.
아직 숨은 붙어 있지만, 상처를 봤을 때 숨이 끊어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도 되겠는가?”
“주민들의 상태가 이상하네. 이곳만 그런 게 아니야. 양양 내의 모든 주민이 본신을 드러낸 채 싸우고 있네.”
“이런 싸움판이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말인가? 믿을 수가 없군.”
“우리가 확인한 바로는 그렇다네. 아무래도 마기가 제어되지 않는 것 같네.”
끔찍한 상황이다. 본신을 드러낸 마족의 무력은 약하지 않았다. 제국의 신민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 힘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고 있다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수의 마족들이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
“이 기분 나쁜 기류. 누군가 마기를 자극하고 있네. 우리 같이 무를 단련한 이들은 괜찮겠지만, 일반 주민들은 저항하기 힘들 걸세. 그대로 마기에 먹혀 버리겠지.”
“하지만 변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네.”
“그들은 혼혈이네. 혼혈 마족들은 마기도 그렇고, 완벽한 본신화가 불가능하니. 이 영향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것 같네.”
변하지 않은 게 아니라, 변할 수 없었던 건가.
알베르트는 혼혈 마족을 부축하는 관병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벨 황자님도 이곳에 와있다고 들었네. 경호는 괜찮은 건가?”
“황자님에게는 로한이 붙어 있다네.”
무진은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알베르트의 생각은 달랐다.
“이 혼란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는가?”
무차별 테러라는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 혼란이 용하 거리에서 국한된 것이 아니라면, 양양 전체가 혼란에 빠져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감당할 수 없는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겠지. 알베르트는 무심코 주먹을 쥐었다. 이해관계를 떠나서 민간인이 전부 휘말려 들었다. 북부의 야만인들이나 저지를 법한 미친 짓이다. 대륙에 있는 어떤 국가도 민간인을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그것이 최소한의 도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도리조차 지키지 않은 작금의 상황은, 이 혼란을 일으킨 세력이 무언가 큰 것을 노리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자네의 말은, 이 공격이 지금 아벨 황자님을 노렸다는 건가.”
“그럴 확률이 높지 않겠나?”
물론 확신은 가질 수 없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다. 양양에서 최고 책임자라고 하면 아벨 황자 말고는 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이신설교의 선녀를 노린 걸까?
“나는 자리를 비울 수 없네. 황자님이 주민의 경호를 명하셨네. 자네가 가줄 수는 없겠나?”
“아니, 자네의 부관을 믿겠네. 나는…… 선녀님을 확인하러 가지.”
“선녀님을?”
알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양양에 있는 귀인은 아벨 황자만이 아니다.
이신설교의 선녀를 보기 위해 모인 양양의 주민들을 보지 않았는가? 선녀가 가진 파급력은 결코 가볍게 볼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군. 그럴 가능성도 있겠어. 선녀님을 부탁하네. 그녀의 안위에 무슨 일이 생기면 황자님의 입지가 난처해지실 거야.”
“알겠네. 좀 이따가 다시 보게나.”
무진과 헤어진 알베르트는 샛길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