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선녀강림(仙女降臨)(2)
선녀의 연설이 끝나고 알베르트는 눈물을 훔치는 기녀들을 돌아보았다.
모처럼 예쁘게 단장하고 나온 얼굴이 흐려져 있었다. 송이는 챙겨온 손수건을 언니들에게 건넸다. 눈가를 닦으라고 준 것 같은데, 손수건을 받은 가희와 호접희는 코를 풀었다. 킁, 하고 코를 닦아낸 그녀들은 송이에게 손수건을 돌려줬다.
“…….”
송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신이 쓸 손수건은 없는 모양이다.
알베르트는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우냐, 가시나야?”
“지는. 눈화장이 다 번졌거든?”
가희와 호접희가 티격태격했다. 하지만 조금 전과 같은 독기는 보이지 않았다. 둘 다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상태여서 그런지, 평소의 실랑이가 우스꽝스러운 느낌마저 들고 있었다.
“오길 잘했어요. 그렇죠, 알베르트 님?”
“그러네. 확실히 좋은 연설이었어.”
알베르트는 단상 위를 올려다보았다.
신교 측에서 준비한 선녀의 특별 행사는 끝난 상태였다. 그러나 단상 위에는 아직 선녀가 남아 있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다음 일정이 있는 낙양으로 이동해야 했지만, 그녀는 조금 더 이곳에 있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신교 측은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지만, 선녀의 의지가 확고한지라 그 뜻을 꺾지 못했다.
“설마 선녀님의 치료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소문이지만 선녀님의 치료는 망자화마저 막을 수 있다고 들었어요.”
“그거 헛소문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소문이라고 말했잖아.”
단상 위에 남은 그녀가 행한 것은 병자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한쪽 다리가 마비되거나 마기로 인해 몸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를 비롯해, 환약이나 침으로는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외상을 입은 이들도 그녀의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단상 앞에는 긴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수많은 환자를 본 선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얼굴이 완전히 무너진 소녀를 앞에 둔 그녀는 두 손을 모았다.
“성마력(聖魔力)이다.”
“선녀님이 기적을 발현하고 계신다.”
선녀가 발현하는 특유의 기운, 성마력이 소녀를 향했다. 치료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선녀의 기운과 맞닿은 소녀의 얼굴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고름과 종기가 사라지고, 검버섯이 하얀 피부로 점철된다. 새살이 자라나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에서 한꺼풀의 가죽이 떨어졌다.
“그래, 이제 괜찮단다.”
면사 아래로 드러난 선녀의 입가가 웃었다.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 소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녀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만약, 병이 도지게 된다면 그것은 마기 때문이에요. 최대한 마기를 피하시는 걸 부탁드려요. 명심하세요. 그 힘은 우리를 위한 힘이 아니에요.”
치료를 목도할 때마다 신도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선녀의 앞에 늘어선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기적에 신도가 아닌 양양의 주민들마저 집회장에 모이고 있었다. 알베르트는 그 모습을 보며 프랑소와 성녀를 떠올렸다. 성녀의 앞으로 모인 신도들은 앞다투어 면죄부를 올렸었다. 자신이 범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말이다.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루미에르 교가 행하는 치료는 이보다 더 심한 것도 많지 않았습니까?]
‘우리에게는 당연한 광경이지만, 그들에게는 기적이겠지. 생각해 보게나. 이들에게는 신성력이 통용되지 않는다네. 이런 식의 치료는 받아본 적이 없을 거야.’
인간에게는 기적의 산물인 신성력이, 마족에게는 목숨을 위협하는 강력한 무기였으니까.
재래식 의술이 발달하게 된 것은 그런 까닭일 것이다. 외상은 약초와 수술을. 내상은 환약과 침을 다룬다. 아란의 치료를 받은 알베르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 과연. 이거 선녀가 아니라 성녀님이군요. 마족의 성녀님!]
‘…….’
비아냥거리는 천칭의 말에 알베르트는 침묵했다.
선녀가 쓰는 힘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탐탁지 않은 느낌이 드는 마기와는 달랐다. 어머니에게 안기는 것처럼 따스하게 전신을 감싸 안는 감각은 나쁘지 않았다.
[잊고 있는 거 아닙니까, 마스터? 이들은 마족입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마족이라고 한들, 아픈 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오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선녀님, 부디 우리를 저버리지 말아 주세요.”
“저는 누군가를 버릴 정도로 강한 사람이 아니랍니다. 형제자매님들이 달토끼님을 믿고 계신다면, 제 마음도 항상 곁에 있을 겁니다.”
선녀는 신도 한 명, 한 명을 일일이 상대하고 있었다. 줄어드는 속도보다 줄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다. 이래서야 오늘 안에 이 행사가 끝나기는 할까. 그런 생각을 한 건 알베르트만이 아니었는지, 관계자로 보이는 한 남자가 선녀에게 다가갔다.
“이만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선녀님.”
“조금만 더 있을게요, 유화. 시간이 촉박하면 흑토(黑兎)부터 출발하셔도 괜찮아요.”
“선녀님이 여기 계시는데, 저희가 어찌……”
“그럼 기다려 주실 수 있죠?”
유화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포기하고 물러났다.
루미에르 교와는 사뭇 다르다. 프랑소와 성녀의 경우 교단의 명을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받들었다. 아무리 감정에 호소해도 그녀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확실히 다른 종교다. 적어도 이들은 선녀의 의사를 존중하고 있었다.
선녀의 치료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성마력이라 불리는 힘도 만능은 아니다. 절단된 신체 일부분을 복원하는 것은 무리인지, 한쪽 팔이 없는 남자는 선녀의 앞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혹시,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선녀님의 힘이면 가슴을 키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뭐?”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가희가 느닷없이 황당한 말을 꺼냈다.
호접희는 물론이고 화들짝 놀란 송이가 가희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작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작은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옆에 있는 호접희 때문일까, 가희의 가슴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언니.”
“어,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야! 무조건 크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힐끗, 가희는 호접희를 보았다.
특정 부분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느낀 호접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가능했으면 파수꾼들은 다 가슴이 컸을 거 아냐?”
그녀가 가리키는 건 신교의 신도 중에서 무장한 이들이다. 파수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모양이다.
“파수꾼들은 대부분 남자잖아!”
눈앞에서 기적을 보고 있기 때문일까. 가희는 평소와 달리 어딘가 조급해 보였다.
“나도 줄을 서 볼래.”
“그만둬, 이 가시나야.”
휙 나아가던 가희의 뒷목을 호접희가 잡았다. 으겍, 하고 아리따운 여인이 낸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비명이 났다. 당겨진 옷 때문에 순간적으로 숨이 막힌 가희는 기침을 토해냈다.
그녀는 원망 가득한 눈으로 호접희를 노려보았다.
“가슴이 큰 너는 이해 못 해!”
“이해하고 싶지도 않거든?”
한동안 서로를 노려보던 둘은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노인을 마지막으로 선녀의 치료는 끝났다. 포기하고 물러났던 유화가 다른 신도들과 함께 단상에 올라왔다.
“무슨 일인가요? 잠시만요. 이야기를 좀…….”
“죄송합니다. 선녀님. 저희는 무엇보다 선녀님이 무사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선녀의 곁에 모인 그들은, 내려가기 싫어하는 그녀를 억지로 단상에서 데리고 내려왔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환자 앞으로는 파수꾼이 마주했다. 고개를 깊이 숙인 그는 환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단상을 바라보던 신도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죄송합니다, 형제님들. 오늘 집회는 여기에서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용하 거리에서 싸움판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안전을 위해서 다들 해산할 때는 그쪽 거리를 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런 식으로 끝내는 게 어딨는가?”
“선녀님을 어디로 데려가는 건가?”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파수꾼을 향해 신도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설명을 해봐!”
“싸움판의 무인들 때문인가?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무진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고!”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형제님들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오늘 밤은 위험합니다.”
설명을 바라는 신도들의 외침에도 파수꾼은 대답하지 않았다. 짧게 이야기를 마친 그는 서둘러 단상에서 내려갔다.
“무슨 일이래? 이런 식으로 집회가 끝난 적은 없었는데.”
“선녀님을 억지로 데리고 나갔어. 후폭풍이 심할 텐데?”
웅성거리는 신도들의 목소리에는 가희와 호접희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얼굴을 마주 보는 그녀들의 얼굴에도 의문이 가득했다.
[마스터.]
‘알고 있네.’
무언가 이상했다.
알베르트는 신도들 너머, 집회장의 바깥쪽을 바라보았다. 관계자가 말한 용하 거리가 어디인지, 그는 알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꺼림칙한 기운을 느껴보는 건 이전 시대 이후로 처음이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다. 집회장 너머, 그곳에서는 강렬한 마기가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송이야. 언니들을 챙겨서 빠져나가렴.”
“네?”
“그게 아니죠. 알베르트 님. 여기서는 송이를 내보내고 저희랑 같이 빠져나가셔야죠.”
아직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한 가희와 호접희는 키득거렸다.
“어때요? 오늘이라면 특별히 싼 가격에 해드릴 수 있는데.”
“넌 또 그 타령이야?”
“…….”
두 기녀의 이야기에 알베르트는 말하지 않았다. 차분히 그녀들의 기분이 진정되기를 기다린다. 가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이상한 분위기를 읽어냈는지, 호접희도 조심스럽게 알베르트의 눈치를 살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났어.”
“안 좋은 일이라면?”
“구체적인 것까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좋지 않은 것만큼은 확실해.”
알베르트는 자꾸 그날 밤의 일이 생각나고 있었다. 루드비히 저택을 아비규환으로 몰고 갔던 참사의 밤이. 머릿속에 떨어지지 않는다. 수를 헤아릴 수 없던 마족과 마물이 학살을 벌였던 그날 밤에도, 이와 같은 불온한 기운이 느껴졌었다.
“귀화루로 돌아가. 오늘 밤은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게 좋겠어. 만약 황녀님이 방에 계시면 내가 찾는다고 전해줘.”
“…….”
유피가 귀화루에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녀라면 이미 이 이변을 깨달았을 확률이 높았다. 아마도 방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알베르트가 걱정하는 것은 하나였다. 서로 연락이 안 되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합류해야 할까다.
“알겠습니다.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다치지 말고 돌아오세요.”
“가자, 송이야.”
“알베르트 님은요?”
두 언니의 손에 팔이 잡힌 송이는 알베르트를 올려다보았다.
“같이 가시면 안 되는 거예요?”
“이 소란을 막으려면 손이 필요할 거야.”
송이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지만, 알베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신도들 사이에 섞인 세 기녀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그는 단상으로 뛰어올랐다.
용하 거리는 보이지 않는다.
거리 한쪽이 시끄러워진 것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이곳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주변 신도들의 웅성거림에 귀를 기울여본다.
“용하 거리에서 일어난 싸움판이 꽤 큰 모양이야.”
“관병들은 뭘 하는 거야? 이대로라면 선녀님이 떠나 버리시잖아!”
거리에서 내려오는 신도들은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집회장이 혼란에 빠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피해 도망치는 신도들과 주변 경계를 맡고 있던 관병들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빠져나가는 신도들 사이를 알베르트는 거꾸로 올라갔다.
싸움판.
내기판처럼 벌어지는 싸움이 용하 거리에서 벌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평소의 싸움판이라면 집회가 해산될 이유는 없었다. 알베르트가 경험한 싸움판은, 주먹이 오간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적정선에서 멈추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그러면 이 혼란은 무엇일까.
기분 나쁜 위화감에 가슴이 술렁였다. 마치 몸 안의 내공이 날카로운 힘으로 변해가는 느낌이 들었다. 알베르트는 몸 안의 기운이 날뛰는 느낌에 내공을 끌어 올렸다. 날붙이로 변해가던 기운이 가라앉자 가슴의 술렁거림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가슴이 서늘해진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무언가 기분 나쁜 것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