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선녀강림(仙女降臨)(1) (6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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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강림(仙女降臨)(1)

야심한 저녁. 정비되지 않은 도로를 한 마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마차의 표면에는 갈색과 검은색의 원단이 덧붙여 있었다. 투박한 디자인이다. 고급스러운 마수의 가죽을 쓴 것도 아니고, 동물의 가죽과 나무를 사용했을 뿐이다. 사치품으로 보이는 장식물은 보이지 않는다. 도시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싸구려 마차다.

저잣거리를 통과한 마차는 내성문(內城門)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앞에 둔 채 멈췄다. 병사들이 마차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마부는 문을 두 번 두들겼다. 잠시 후, 알았다는 대답과 함께 화사한 여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귀화루의 기녀인 가희와 호접희다.

아리따운 두 여인은 탁, 하고 부채로 입가를 가렸다. 그 뒤로 앳된 소녀가 시중을 받으며 내렸다. 소녀의 시중을 든 검은 연미복의 집사는 특이하게도 스켈레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언데드로밖에 보이지 않는 집사는 기녀들 사이에서 강한 존재감을 보였다.

“여기가 집회장이야?”

“집회장은 내성문 앞이에요.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한다고 들었어요.”

송이의 대답에 알베르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차를 타고 온 마족들은 하나같이 이곳에서 하차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인 마족들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혼자서 온 이가 있는가 하면, 가족 단위로 나온 이들도 보이고. 연인 사이로 보이는 남녀가 기대에 찬 얼굴로 걷고 있었다. 그들의 목에서는 십자패라 불리는 로사리오가 흔들리고 있었다.

유피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축제장 같은 분위기를 본 알베르트는 조금 아쉬워졌다.

“아벨 황자님께서 허락하신 거야?”

“네, 소문에 의하면 아벨 황자님도 참석한다는 말이 있어요.”

“참석까지…….”

생각보다 신교의 영향력은 더 강한 것 같다.

집회 도중 기회가 있으면 선녀에게 말을 붙여 볼 생각이었지만, 분위기가 이래서야 그건 힘들지도 모른다. 알베르트는 송이가 준 십자패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이건 다시 가져가.”

“십자패가 없으면 입구를 통과할 수 없어요.”

“나는 이미 있거든.”

“?”

고개를 갸웃거리는 송이를 향해 알베르트는 고이 간직해 두었던 로사리오를 꺼냈다.

이제는 광택을 잃어버린 거무튀튀한 돌이 남은 로사리오. 한때는 알베르트의 목에서, 한때는 아리시엘의 목에서 흔들렸던 목걸이는 이제 다시 그의 품으로 돌아와 있었다. 로사리오를 찬 알베르트는 송이를 바라보았다.

“하나 사신 모양이네요. 그래요. 이제 알베르트 님도 우리와 같은 신도네요!”

“늦어, 송이야!”

“안 오면 두고 갈지도 몰라요? 이 언니들은 다리가 길어서 말이야.”

앞에서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을 따라 알베르트는 집회장으로 향했다.

내성문 앞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신교의 집회를 앞둔 이곳의 풍경은 며칠 전과는 사뭇 남달랐다. 손님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객잔 앞까지 나와 있던 테이블은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신교의 신도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신교를 상징하는 하얀색과 검은색의 깃발이 들려 있었다. 도로 좌우에는 달토끼를 본뜬 조각상과 그림이 가득했다. 성문 앞의 공터에는 단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임시로 만든 단상은 야외에 준비된 무대처럼 보였다.

신도들의 시선이 단상 위로 향했다.

단상은 아직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그 위로 올라오는 사람이 누군지, 신도들은 알고 있었다.

[선녀라는 사람이 대단하긴 한가 봅니다.]

‘아무래도 그러지 않겠나? 한 교단을 상징하는 사람 그 자체니 말이네.’

알베르트는 루미에르 교의 프랑소와 성녀를 떠올렸다.

성녀가 행차할 때면 어느 귀족이든 맨발로 뛰어나오기 바빴다. 후작이든, 백작이든. 귀족의 직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만큼 성녀의 이름은 무거웠다. 제국의 숙적인 마족과 검을 맞댈 수 있는 건, 성녀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수와 신성력.

둘 모두 으뜸으로 꼽히는 성녀는 그 이름만으로도 모든 신민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프랑소와 성녀는 역대 성녀 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행보를 한 성녀였다. 그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성녀는 외부로 거의 드러난 적이 없었다. 교단 내에서만 활동하며, 소수의 인물만이 교류를 가질 수 있었던 신비로운 존재.

그렇기에 여러 말도 많았다.

사실은 엄청난 추녀다. 성녀라는 여인은 없다. 가상의 인물이다. 추문에 시달리면서도 루미에르 교는 성녀를 바깥에 드러내지 않았다. 무슨 까닭인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이 고집하던 신비주의가 깨지게 된 것은, 전대 성녀와 얽힌 불온한 소문 때문이었다.

성녀 아르웬.

그녀는 역대 성녀 중에서도 소문이 가장 많았던 성녀였다. 루미에르 교의 눈 밖에 나서 숙청당했다. 더는 여신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서 쫓겨났다는 말도 있었으며, 사실은 교단 내의 사제와 눈이 맞아서 도망쳤다는 말도 있었다.

물론 그 정도 소문으로 흔들릴 루미에르 교가 아니다. 하지만 성녀가 악마와 결탁했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퍼지면서 사태는 심각해졌다. 실제로 아르웬 성녀는 어느 순간부터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소문을 달랠 길이 없어진 것이다.

아르웬 성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정말로 루미에르 교에서 죽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악마의 유혹에 빠져 그들과 결탁한 것인가. 끝끝내 그녀의 행방은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차기 성녀에 오른 프랑소와 성녀는 아르웬 성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듯 적극적으로 교단 바깥을 돌아다녔다.

단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마족들이 보였다. 그들은 양손을 모은 채, 단상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귀를 기울여보면 선녀님, 선녀님. 하는 기도 소리가 들렸다.

“오늘 집회의 이름은 무려 선녀강림(仙女降臨)이에요!”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알베르트 님. 선녀님은 무척이나 미인이라는 소문이 있더라고요.”

“어머. 누가 들으면 알베르트 님이 얼굴만 보는 줄 알겠다.”

“이 가시나가. 가슴 크기로 싸우는 남자는 봤어도, 얼굴 싫어하는 남자는 본 적 없거든요?”

서로의 가슴과 얼굴을 본 가희와 호접희는 입꼬리를 올렸다.

“호오, 그 시선은 뭘까? 가슴 좀 크다고 아주 든든한가 봐?”

“이 계집애가. 얼굴 좀 반반하다고 뵈는 게 없지?”

입가를 부채로 가린 두 여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메마른 웃음이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다.

그녀들의 뒤에서 불길과도 같은 형상이 일렁였다.

“죄송해요. 저희 언니들이 밖에서도 주책이네요.”

“아니야. 보기 좋은데 뭘.”

쏘아 붙는 말과는 달리 두 기녀의 사이는 돈독했으니까.

“선녀님이 들어오십니다.”

사회자의 목소리에 웅성거리던 신도들이 조용해졌다.

약속한 것처럼 신도들의 시선이 단상으로 향했다. 곱게 깔린 붉은 융단으로 족적이 생겨났다. 하얀 발의 주인공은 흑백이 섞인 옷차림의 소녀였다. 투명한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은 사뿐한 발걸음으로 단상을 걷고 있었다.

“오오…….”

“선녀님이시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다. 신도들은 그 자리에서 선녀를 향해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건 알베르트의 주변에 있던 기녀들도 다를 바가 없었다. 세 기녀는 두 손을 마주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단상에 오른 선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도 대부분은 그녀와 얼굴을 마주할 용기도 내지 못했다. 집회장에 모인 신도들을 둘러본 그녀는 입을 열었다.

“다들 고개를 드세요.”

부드러운 음색이었다. 면사로 가려지지 않은 선녀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선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관중들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몸을 수그린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이 마치 불경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은 단상을 향해 내린 머리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일어나세요.”

한 번 더 선녀의 말이 떨어졌다. 미동도 하지 않던 이들이 억지로 들려지는 것처럼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 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알베르트는 시선을 가늘게 떴다.

선녀가 일으킨 힘은 관중들을 일으켜 세웠다.

[마스터.]

‘자네도 느꼈는가?’

마나는 아니다. 내공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굳이 비슷한 기운을 예로 든다면 신성력이 가장 흡사하지 않을까.

선녀가 흘린 기운은 약한 편도 아니었다. 단상 주변에 있던 신도 중에서 엎드려 있던 이들은 못해도 수십 명에 이르렀다. 그 모두를 강제로 일어나게 했다.

“안녕하세요, 이신설교의 선녀 한소망(漢所望)입니다. 다들 평안하게 지내셨는지 모르겠네요. 달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 양양을 방문하게 돼 기쁩니다. 시작에 앞서 이 도시와 이곳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달토끼님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선녀, 한소망은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는 오랜 세월 저주와 박해의 시간을 거쳐 왔습니다. 기나긴 시련 속에서 누군가는 목숨을 잃고, 누군가는 소중한 것을 빼앗겼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폭력과 전쟁은 아무것도 낳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검을 들어야겠죠. 시대가 변했으니까요. 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우리는 이를 배웠습니다.”

잡소리가 사라진다. 신도들은 선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힘없는 주장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입니다.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힘이 생기면 이는 또 다른 힘을 불러옵니다. 지금보다 더 큰 위기가 다가올지도 모르죠. 그렇습니다. 일찍이 선조님들께서 불러온 재앙처럼 말입니다.”

선녀의 미성은 차분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좌중을 휘어잡는 호소력도, 화려한 말재주도 없다. 소녀는 그저 담담하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속삭이고 있었다.

“재앙과 맞선 천마님은 패배했습니다. 우리는 저주받았고, 살아가야 할 터전을 잃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덕담을 나누던 친구가. 함께 아침을 들던 가족의 행방을 더는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누구라고 말할 것도 없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바로 당신의 곁에 있는 동포들도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그 재앙은. 우리의 가슴에, 혼에. 지워지지 않는 흉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선녀의 연설에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알베르트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있었다.

“찬란했던 중원(中原)은 이제 더는 없습니다. 안식의 땅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땅은 천천히 파멸을 향해 달려갈 뿐입니다. 마계. 그렇습니다. 지옥과 하나 되어버린 우리의 대지는 후손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무너지고, 부서져서 세상의 끝처럼 마물밖에 살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리겠죠.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저주입니다.”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자신은 마족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경험했는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고 있었다.

“혹자들은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중원이 짊어져야 하는 대가라고. 더 많은 힘을 갈구하고, 그 힘으로 인간이 닿아서는 안 될 경지를 추구한 대가라고. 신벌. 우리는 지금 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대들에게 묻겠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벌을 받는 걸까요? 신이 내린 철퇴는 아직도 우리의 등을 짓누르고 있는 건가요? 그렇다면 그 벌은 언제가 되어야 끝나는 걸까요?”

훌쩍거리는 소리가 났다.

신도 중에서 눈을 훔치는 이들이 생겨났다.

“강해지고 싶다는 욕심. 더 높은 무를 보고 싶다는 욕구. 무공밖에 몰랐던 우리 선조가 받은 벌은 정말로 정당했던 걸까요? 문답은 의미가 없겠죠. 우리는 이미 벌을 받았으니까요. 오만함의 대가. 저주는 우리의 터전을 갉아먹고 선조들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흘렀습니다. 선조의 유지를 잇는 자들은 몸을 숨겼고, 이제는 몇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의 노여움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모두 죽을 때까지, 이 벌은 끝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죄 없는 우리의 후손들마저도, 이 차가운 대지에서 죽어가야만 하겠죠.”

얼마 남지 않은 안식의 땅. 그 땅마저도 마기에 의해 침식당하고 있었다.

식량을 얻기 위한 땅도. 식수를 먹기 위한 수원지도. 살아가기 위한 터전조차 언젠가는 남지 않게 되리라.

“그대들에게 묻겠습니다. 우리는 죄를 범한 죄인입니까? 선조의 죄를 짊어진 우리가 이곳에서 죽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선녀의 물음에 신도들은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가 없습니다.”

“후손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는 겁니까?”

신도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소리를 지르는 이들은 하나같이 죄가 없다고 외치고 있었다. 밑 빠진 독이 터져 나오는 것처럼 감정의 파도가 쏟아졌다.

“우리에게 무슨 죄가 있다는 거예요?”

“죄를 범한 건 선조입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좋지 않다. 알베르트는 신도들의 감정이 격해지는 모습에 긴장했다.

군중심리는 들불과도 같았다. 살짝 바람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주변 일대를 태워 버린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폭동이었다. 내성 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가는 수습할 방법이 없다.

단상의 선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감정이 복받쳐 오른 신도들을 차분히 둘러보고 있었다.

선녀가 일깨운 감정은 마족들이 짊어지고 있던 짐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 등에 짊어져야 했던 죄의 무게. 누구 하나 원하지 않았지만, 선조가 범했던 죄 때문에 억지로 끌어안아야 했던 마족의 죄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 중에는 울부짖는 신도들도 보였다.

그들이 자아내는 이야기는 각자의 인생을 반영하듯이, 전부 다른 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누구 하나 다를 것 없었다.

억울함.

그 누구에게도 쏟아낼 수 없었던 감정. 그저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죄.

호소할 길도 없다. 그들이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니까. 이 죄는 선조들이 범한 것.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었던 그들에게는 속죄할 방법이 없었다.

어느 순간, 목소리를 높이던 신도들이 하나둘씩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하는 시선은 단 한 사람.

이 신도들을 한 자리로 불러 모은 선녀다.

불공평한 시작점을 직시한 신도들은 선녀에게서 해답을 바라고 있었다.

자신들은 답을 낼 수 없다.

그렇다면 의지할 수 있는 존재를 찾는다.

그 모습을 본 알베르트는 가슴 한편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선녀를 같은 인간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사람은 기댈 곳이 없으면 한 존재를 믿으며 기도한다. 자신의 바람을 들어주길. 자신의 소망에 대답해 주기를 바라면서.

신도들은, 선녀를 신으로 보고 있었다.

“그대들에게 묻겠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까? 아뇨, 우리는 죄인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우리를 죄인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고요? 신이 우리를 향해 벌을 내리고 있다고요? 아뇨. 신은 누구에게도 벌을 내리지 않습니다. 신은 누구에게도 대답해 주지 않습니다. 죄인이라는 낙인은 신이 내리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찍은 낙인입니다.”

“…….”

선녀의 등에서 날개가 피어올랐다.

왼쪽에서 피어오른 날개는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오른쪽에서 피어오른 날개는 하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신성함과 사악함을 동시에 나타낸 날개는 이신설교를 상징하는 두 색을 갖고 있었다.

“고개를 드세요, 동포들이여. 그대들은 죄인이 아닙니다. 자긍심을 갖고 주변을 둘러보세요. 그대들의 곁에는 지금 누가 있습니까? 그대들의 눈에 비친 동포들이 죄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대들이 보기에도, 우리가 죄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일순간 선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듣기 좋았던 작은 미성이, 올라오는 감정 때문인지 격해져 있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선녀가 입을 닫자 집회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면사로 가려진 그녀의 양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쿵.

선녀의 눈물을 본 한 신도가 발을 굴렀다.

지면에 마물의 발과 같은 발자국이 남았다. 그 위로 신도는 다시 한번 발을 굴렀다.

쿵. 쿵.

이번에 울린 소리는 한 개가 아니었다. 신도의 발과 겹치듯이 두 개의 발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지면을 울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한 신도가 굴린 발을 따라 집회장의 신도들이 차례대로 발을 굴리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다섯 명, 열 명……. 발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전쟁터로 나가는 병사들이 내는 기합 소리처럼, 단상을 둘러싼 신도들이 하나 되어 발을 구르고 있었다.

선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죄인입니까?”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그대들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를 짊어지고 있다고요. 그렇지 않다는 건가요?”

“우리는 죄인이 아닙니다!”

선녀는 양손을 모았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마지막으로 그대들에게 묻겠습니다. 죄인이 아니라면, 그대들은 누구인가요?”

“중원의 의지를 잇는 고귀한 후예입니다!”

신도들의 목소리에, 선녀의 날개가 화답했다.

색이 다른 두 날개가 집회장을 감싸듯이 펼쳐졌다. 화려한 광경을 만들어낸 날개는 신도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두 날개가 움직였다. 바람은 일지 않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선녀의 정체 모를 힘이다. 신도들과 맞닿은 기운은 고조된 감정을 달래듯이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선녀는 면사 안으로 손가락을 넣었다. 작은 검지에는 한 방울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부디 그 마음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양양의 동포들이여.”

연설을 마친 선녀는 단상 위에서 허리 숙여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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