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유곽에 피는 꽃(2)
알베르트는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간밤의 공연을 마친 무대에는 진한 얼룩이 남아 있었다. 먼지를 쓸어내고, 그 위로 물기를 짜낸 걸레가 지나간다. 먼지와 더러움이 닦여나간 무대는 반짝이는 빛을 되찾았다. 기녀들이 나설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다. 서너 번은 반복해야 겨우 끝이 나는 무대 청소를, 알베르트는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마무리 지었다.
“대단해요, 알베르트 님. 저희 기루에서 일하실 생각은 없나요? 요즘 일손이 부족한데요.”
“혹시 무공이라는 게 청소와도 연관이 있었던 건가요?”
똘망똘망 바라보는 기녀들의 눈빛이 부담스럽다.
저택에 막 들어와서 그의 몸가짐을 관찰하던 어린 사용인들을 보는 것 같다. 아직 저택의 사용인으로 쓰기에는 서툰 점이 많았던 아이들. 사용인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알베르트로서는 그녀들의 반응이 낯설지 않았다.
“숙달되면 이 정도는 간단하게 할 수 있어.”
“숙달이라고요?”
“저희도 나름 숙달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알베르트 님의 청소는 그런 수준이 아닌데요?”
자신들이 담당한 구역을 본 기녀들은 한숨을 쉬었다.
알베르트가 청소한 무대와는 반대로 그녀들이 쓸어낸 구역은 여전히 지저분했다. 알베르트가 청소한 구역과 그녀들이 청소한 구역. 누가 보더라도 차이는 확연했다. 막 붙기 시작한 자신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알베르트는 청소가 끝나가는 홀을 바라보았다.
안정할 필요가 있다는 아란의 말에 따라, 알베르트는 요 며칠간 귀화루의 일을 거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협의 힘을 빌릴 수 없다고 한사코 거절하던 기녀들이었지만, 알베르트의 확고한 의사를 확인한 지금은 부담 없이 손을 빌리고 있었다. 덕분에 알베르트의 마음도 조금 편안해졌다. 알베르트와 유피는 숙박비는 물론이고, 식비도 내고 있지 않았으니까.
루주인 청화의 배려라고는 하지만. 돈 한 푼 내지 않고 신세만 지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이곳에 있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귀화루의 홀이라고 할 수 있는 1층에서는, 기녀들에게 직접 손을 대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아가씨를 지명해서 오는 손님. 혹은 술을 마시던 도중 그럴 의사가 생겨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손님들도 있긴 했지만. 그 수는 매우 적었다. 그것도 몸을 사는 게 아니다. 엄청난 대금을 치르고 올라간 손님들은 기녀와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제국의 창기와는 다르다. 주로 몸을 파는 일반적인 환락가와는 달랐다.
또 귀화루의 주 수입은 술과 무대에서 행해지는 공연이었다. 손님들 대부분이 공연을 보러 온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공연의 평판이 매우 좋았다.
무대에 오르는 기녀 중에서도 호접희와 가희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였다.
호접희의 춤과 가희의 노래가 어우러지면, 기루를 찾은 손님들이 술을 마시는 것조차 잊고 그 모습을 바라볼 정도였다.
“받아랏!”
물론 화려한 가무를 보이는 선보이는 두 사람이, 지금은 어린애처럼 빗자루로 칼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말이다.
“꺄악!”
가희의 빗자루가 호접희의 가슴을 찔렀다. 귀여운 얼굴과는 달리 볼륨이 꽤 있다. 빗자루에 찔린 가슴의 모양이 부드럽게 변했다. 그 모습을 본 가희의 볼이 씰룩였다. 청소 중인 바닥에 쓰러진 호접희는 눈을 감았다. 그녀는 빗자루에 찔린 가슴에 손을 올렸다. 다른 한 손을 가희를 향해 뻗은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아아, 안타까운 사람. 그래도 당신의 손에 죽는 거라면 저는…….”
“…….”
푹푹.
“그래요. 이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거겠죠. 우리 유곽의 꽃은 이렇게…….”
“…….”
푹푹.
“그만 찔러, 이 가시나야!”
“네가 안 죽으니까 계속 찌르는 거 아니야!”
벌떡 일어난 호접희는 가희의 볼을 잡았다. 빗자루를 놓은 가희도 그녀의 볼로 손을 옮겼다. 서로의 볼을 잡은 두 사람은 어린애처럼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기부으으나쁘아아아!”
“아프, 아프아아아!”
“…….”
일단은 이 귀화루의 얼굴마담인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을 칭하는 이름이 유곽의 꽃이니 말이다.
기녀들은 두 사람의 다툼을 말리지 않는다.
평소와 다름없는 광경이라는 듯 그녀들은 묵묵히 청소에 임하고 있었다. 화장이 번지든, 옷매무새가 흐트러지든, 머리를 쥐어뜯든,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다.
“너희들 언제까지 장난칠 거니? 정리 안 할 거야?”
결국, 곰방대를 문 마담 소민이 오고 나서야 둘의 다툼은 끝이 났다.
*&*
마침내 홀의 청소가 끝나고 기녀들이 하나둘 올라가기 시작했다.
낮과 밤이 바뀐 그녀들에게는 지금이 쉬는 시간이다. 부족한 잠을 청하러 방으로 가는 기녀들과 홀에 남아서 술을 홀짝이는 기녀들. 알베르트는 그런 기녀들 사이에서 술을 받고 있었다.
“사치네요. 우리에게 술 시중을 받는 사람은 몇 안 된다고요, 알베르트 님?”
“아침부터 술은 좀 그런데.”
“또, 또. 좋으면서 뭘 부끄러워하는 걸까요? 저 알베르트 님이라면 해드릴 수 있다고요?”
호접희가 가슴섶을 살짝 열었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하얀 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
“마음에도 없는 말은 꺼내지마.”
알베르트는 그녀의 유혹을 단칼에 거절했다.
호접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장난스레 꺼낸 말이긴 했지만, 단번에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승부욕이 생긴 걸까, 그녀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좋아요. 지금이라도 제 방으로 같이 올라가실래요?”
“네, 네. 거기까지 하시죠, 꽃뱀. 알베르트 님이 곤란해하시잖아요.”
“뭐? 누가 꽃뱀이라는 거야, 이 가시나가! 아얏!”
가희는 호접희의 귀를 잡았다.
알베르트에게 찰싹 달라붙은 그녀를 떼어낸 가희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죄송해요, 알베르트 님. 저희 언니들이지만 도가 지나칠 때가 있거든요.”
“괜찮아. 썩 나쁜 기분도 아니었고.”
“봐, 좋아하셨잖아!”
“너는 예의상 해주는 말도 있다는 걸 모르는 거야?”
가희와 호접희는 여전히 으르렁거리고 있다. 서로를 노려보던 둘은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몇 분이 채 흐르지 않아 완전히 풀린 두 사람은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다. 살짝 술에 취한 두 기녀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우리는 유곽에 피는 꽃.”
“우리는 꺾이지 않아요. 따실 수 없어요.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아름다운 꽃이랍니다.”
정말 사이좋은 두 사람이다. 기분 전환이 빠른 두 사람의 모습은 활기가 넘쳤다.
“알베르트 님은 황녀님과 무슨 관계예요?”
“황녀님?”
송이의 물음에 알베르트가 반문했다.
연희가 유피라는 사실은 귀화루 내에 이미 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입막음이 문제가 아니다. 연회에 있던 기녀들은 대부분 귀화루 출신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곳의 기녀들은 전부 알고 있겠지.
“아실지 모르겠지만, 유피에르 황녀님이라고 하면 엄청 유명하신 분이라고요.”
“수수께끼의 황녀님. 현자님의 하나뿐인 제자.”
“혼혈이라는 출신은 신경 쓸 필요 없다. 마녀의 산에서 숲의 마녀라는 이명을 얻은 황녀님!”
“아직도 황비님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아서 말도 많지만요. 최소한 성이라도 떠돌면 짐작이라도 할 텐데. 황녀님은 현자님의 성을 따르고 있으니까요.”
말을 꺼낸 것은 송이였지만, 수군거리는 목소리는 호접희와 가희다.
무슨 좋은 이야기라도 되는 듯, 이리저리 구설수에 오를 말을 꺼내는 호접희의 뒤통수를 향해 가희는 손을 들었다. 아얏! 하고 새된 비명을 지른 가희는 호접희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머리를 맞은 답례로 가희의 볼을 꼬집었다.
“일단은 유피의 집사를 맡고 있어.”
“집사요? 몸 시중을 드는 시종 말인가요?”
서로 엉키기 시작한 두 아가씨는 그 대답에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럼 무공은 취미로 배운 거예요? 막이래.”
“취미로 배운 건데 그렇게 강한 건가요? 대단하네요, 알베르트 님은.”
놀리는 어투가 아니다. 두 사람은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좀 이른 말이긴 한데. 집사면 은퇴하고 난 후의 일도 생각하고 있나요?”
“뭐야, 우리 송이. 벌써 은퇴까지 생각하고 있는 거야?”
“아, 그게. 그냥…… 언니들이 가끔 말하니까.”
“그렇지. 우리도 은퇴가 가까우니까 말이야.”
“내가 그랬지? 그냥 아벨 황자님을 확 휘어잡으라니까. 그럼 그 뒤의 일은 생각하지 않아도 돼.”
“얼씨구나. 진짜 머리가 꽃밭이네, 이 가시나는. 생각해 봐. 만약 휘어잡는다고 해도, 유곽 출신의 후궁을 누가 좋아할 것 같아? 나이 먹는 순간 끝이라고, 끝.”
“송이는 은퇴하고 난 후의 일을 생각해 둔 거야?”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두 기녀를 내버려 둔 채 알베르트는 물었다.
“저요? 음, 저는 그냥 지금처럼 이곳에서 언니들이랑 있고 싶어요. 여기는 그렇잖아요. 일이 힘들기는 해도 다 같이 있을 수 있고. 차별도 없으니까요.”
“…….”
서로 싸우기 시작하던 호접희와 가희가 손을 멈췄다. 두 사람의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어머, 우리 송이는 정말 말하는 것도 예쁘다니까.”
“이 앙큼한 게 진짜, 나중에 우리 딸로 들어오지 않을래?”
“아, 뽀뽀하지 말아요. 술 냄새나잖아요. 꺅! 가슴은 왜 만지는 거예요!?”
“은퇴라…….”
눈앞에서 달라붙는 기녀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알베르트는 머리 한편에 묻어둔 기억을 떠올렸다. 아가씨에게 해고 통보를 받고 고향으로 내려갔던 시절의 일이다. 즐거운 기억은 없었다. 당시의 알베르트는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지인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뿔뿔이 흩어졌고, 유피도 그 곁에는 없었다.
그 시절의 기억은 색이 바랜 풍경과도 같았다. 마족에게 빼앗긴 고향은 적막감으로 가득했다. 마물이 거리를 거닐고, 사람들의 불안은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다. 그들이 목숨을 빼앗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야밤에 몰래 도주하는 사람들은 누구 하나 살아남지 못했다.
깨지 않는 악몽.
희망 하나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는 가슴 한편에 묻어두자.
“은퇴 설계라고 할 것도 없어. 모든 게 끝나면 나는 유피랑 같이 지내고 싶어.”
“…….”
그건 작은 바람이다.
아가씨를 구하고 난 뒤의 이야기. 알베르트는 자신이 죽는 날까지 아리시엘 루드비히의 행보를 지켜보고 싶었다. 만약 그 곁에 유피가 있어 주기만 한다면, 알베르트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좌중이 조용했다.
가희와 호접희, 송이만 보고 있는 게 아니다. 주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기녀들도 알베르트가 있는 테이블을 뚫어지라 응시하고 있었다.
“음, 그러니까…….”
갑자기 왜 그러는 걸까? 어렵게 말문을 뗀 순간 새된 목소리가 울렸다.
“사랑 고백이 뜨겁네요!”
“황녀님을 사랑하는 집사라니, 무슨 연애 소설도 아니고. 로맨틱하네요, 알베르트 님.”
방금 전 그 말 어디에서 기녀들의 심금을 울린 건지 알베르트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그런 풋내 나는 사랑은 이제 할 수 없는데.”
“무슨 소리야. 제 몸은 가져가세요. 하지만 제 마음을 가져가는 일은 할 수 없을 거예요. 같은 말만 하면서.”
“얘,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래!”
“일주일도 안 됐거든요. 제갈윤 공자님의 시중을 들면서 하는 말을 내가 다 들었는데. 사실은 좋으면서 뭘 그리 튕기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다들 알고 있으니까, 다른 손님에게 추파 던지는 것 좀 그만해. 정작 지명 당하면 꽁무니를 빼는 주제에. 정말, 공자님도 이런 여자의 어디가 좋다는 건지.”
“왜 남이 일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 건데!”
이것 참. 웃음이 그치지 않는 기녀들을 보는 알베르트의 아래턱은 자연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보는 것은 간만의 일이었다.
루드비히 저택에 있던 시절이 떠올랐다.
이들은 가족과 같던 그들이 아니다. 심지어 인간도 아니다. 언젠가는 쓰러뜨려야 할 마족이다. 그럼에도 마음을 간질이는 온기가 느껴졌다.
“알, 여기 있지? 미안한데 잠이 깨서 차를 좀…….”
홀이 생각보다 시끄러웠던 걸까. 원형 계단을 내려온 유피가 홀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주인공이 등장하셨네요!”
기녀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본의 아니게 이목을 끈 유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야?”
이른 아침부터 왜 이렇게 기분들이 좋은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다.
그녀의 눈썹은 살짝 치켜 올라가 있었다.
“사실인가요, 우리 알베르트 님은 황녀님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데.”
“오늘 한정으로 싼값에 드릴 수 있어요. 어떠신가요, 황녀님?”
“요즘 이런 남자 없다고요. 이 누님들의 유혹도 무시하는 순정남이라고요.”
언제 유피의 곁으로 다가간 걸까. 호접희는 팔꿈치로 그녀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 무슨 무례한…… 유피는 피곤하다는 듯 눈가를 찌푸렸다.
“싫으면 우리한테 주실래요, 황녀님?”
그 얼굴에 능글맞은 웃음이 떠올랐다.
“…….”
유피는 알베르트를 보았다. 붉은 두 눈에서 숨길 수 없는 노기가 엿보였다.
말해두겠지만, 이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알베르트는 두 눈으로 호소했으나 유피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알은 꽤 비싼데. 좋아. 경매나 한번 붙여 볼까?”
“역시 황녀님이라서 그런지 화끈하시네요! 좋아요. 애들아, 모여! 오늘 한번 달려보자!”
평소보다 시끄러운 기루의 아침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