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사냥꾼(4)
“아랑 선배님은 왜 이런 곳에 계신 겁니까?”
“허, 요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보게. 내가 언제 니에게 물어봐도 좋다고 말했나?”
“그런 말은 안 하셨습니다.”
“그래. 안 했제? 안 했는디 와 니 꼴리는 대로 물어보는 기냐? 네 사부가 그리 가르치디? 대선배님을 보면 싹수없게 인사도 안 하고 궁금한 것부터 물어보라고?”
“…….”
사부님을 들먹이는 사냥꾼의 말에 알베르트는 일순간 말문이 막혔다.
혹시 그가 모르는 강호의 도리라는 것이 있는 걸까? 의문은 한쪽으로 집어치워 둔다. 여기서 항의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눈앞의 괴물이 아무리 괴팍한 성격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는 강자다. 강자의 말은 곧 도리인 강호에서 약자인 알베르트가 할 말은 없었다.
비명을 지르는 몸은 다행히 의지대로 움직여 주었다.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난 알베르트는 두 손을 모았다.
“그래. 잘했다. 문딩아. 사내라믄 그리 인사부터 해야 하는 기다. 이제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라믄 이제 내가 말해줄 차례구마. 내가 왜 이곳에 있냐고 물었제? 사냥꾼이 사냥터에 있는 이유를 묻다니. 음, 니 혹시 조금 덜떨어진 놈이냐?”
“네?”
“허우대는 멀쩡해서. 마, 지금 니는 그게 물음이라고 한 기가? 사냥꾼은 항상 사냥감을 찾는 법이다. 사냥에 나서지 못하는 사냥꾼은 손질할 때를 놓친 검처럼 되는 기다. 무뎌진 검이 아무것도 베지 못하는 것처럼. 사냥꾼도 감을 놓치면 사냥하는 법을 잊어버리는 거다.”
아랑은 손바닥 안으로 주먹을 맞부딪쳤다. 두 손이 부딪치며 찰싹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이런 세상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쓸 만한 사냥감은 거의 없제. 사냥감이 없어진 사냥꾼은 뭘 할 것 같나?”
사냥감이 없는 사냥꾼.
사냥개도 잡을 것이 없어지면 주인의 배 속으로 사라진다. 사냥꾼의 운명도 다를 바 없겠지.
“사냥이 끝난 사냥꾼이라면, 사냥꾼이기를 그만두지 않겠습니까?”
“요거 봐라, 요거. 호랭이가 풀때기 처먹는 소리 하고 있구만. 사냥꾼이 사냥꾼이기를 그만둔다는 건, 목매달고 죽겠다는 거랑 똑같다 아이가.”
“하면, 사냥감을 물색하러 나간다는 겁니까?”
“니 진짜로 멍텅구리네. 그 사냥감이 없다고 내 방금 말하지 않았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머리가 우야 그리 멍청한고.”
“…….”
쯧쯧, 하고 아랑은 혀를 찼다.
“탐색은 의미가 없다. 더 잡을 사냥감은 없다. 그렇게 된 사냥꾼은 말이다.”
사냥꾼은 언데드의 시체밖에 보이지 않는 언덕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사냥감을 키우는 법이다.”
“사냥감을, 말입니까?”
“하모. 호랭이를 잡고, 호랭이 새끼는 살려두는 기다. 복수심에 불타는 아새끼가 대호(大虎)로 성장하믄 말이지. 그때 가서 휙, 목을 잘라 버리는 기다. 그럼 또 그 모습을 본 주변 사냥감들이 지 분수도 모르고 복수한다고 낼 찾아오는 게다. 그라믄 사냥은 끝나지 않지. 잡고, 잡고, 또 잡아서. 영원히 사냥을 반복하는 기다. 사냥감을 키우는 건 이래 재밌는 일이다. 그리 생각하지 않나?”
“…….”
아랑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몸은 흔들면서 웃는 그 모습에 알베르트는 얼굴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생각보다 눈앞의 사냥꾼은 더 정신이 나가 있었다. 웃음이 뚝 끊겼다. 아연실색한 알베르트를 보며 그는 말했다.
“니, 안 웃나?”
“아, 그게…….”
“치아라. 제법 싹수가 보이는가 싶었더니,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사냥꾼이 되긴 글렀다. 사냥꾼이 될 수 없으면 니가 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지. 사냥감이 되는 것뿐이다.”
기도가 바뀐다. 알베르트는 아랑의 기세를 느끼고 두 손을 들었다.
검은 쓸 수 없다. 부러진 검은 눈앞의 괴물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몇 수나 버틸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발악은 가능할 터다.
역량의 차이는 압도적이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자신은 무인이다. 녹림왕과의 일전에서 알베르트는 이미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 손은 뭐꼬? 지금 내랑 해보자는 기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랑은 알베르트의 무공을 보지 못했다.
전력을 다한다면 틈을 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배님의 뜻이 그렇다고 한들, 그냥 죽지는 않겠습니다.”
“아새끼 눈깔 보소. 쓸데없이 깨끗한 것이, 다른 건 몰라도 심 하나는 쓸 만하구마. 네 사부가 뭘 보고 널 선택했는지 좀 알 것 같다. 됐다. 아직 자라지도 않은 녀석을 괴롭히는 취미는 없다.”
팽팽했던 기운이 풀려나간다. 아랑은 두 발로 땅을 문질렀다.
“니는 아직 평범한 개새끼다. 그 검을 다룰 수 있게 되면 내를 찾아와라. 그때도 개새끼라면 모가지를 확 분질러 버리겠지만, 혹 늑대 새끼가 되어 있다면 특별히 사냥꾼으로 키워주마.”
“아니, 저는 사냥꾼이….”
“나는 네 의사를 물은 게 아니다. 하늘 같은 대선배가 말했으면, 그냥 까는 기다. 알겠나?”
“…….”
“아새끼가. 퍼뜩퍼뜩 대답 안 하나?”
“아, 알겠습니다.”
알베르트의 대답에 만족했다는 듯 아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믄 됐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으마, 사제.”
사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아랑은 발을 떼었다.
한 걸음 떼었을 뿐인데, 그 모습이 순식간에 능선 너머로 사라졌다. 마치 그가 걷는 곳만 땅이 좁아졌다가 펴지는 것 같다. 사냥꾼의 모습이 점이 되어서 사라지기까지는, 채 수 초가 걸리지 않았다.
알베르트는 숨을 토해냈다.
땀이 흐르지 않는 몸일 텐데, 손바닥 안쪽이 흥건히 젖은 것 같았다.
[살아 있습니까, 마스터?]
‘어찌어찌 살아 있는 것 같구먼.’
[뭡니까, 저 괴물은. 마족 안에는 저런 괴물들이 득실거렸던 겁니까?]
‘나보다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알베르트와 천칭은 동시대를 살아왔지만, 서로 보아온 것에는 차이가 있을 터다.
3차 대전쟁 당시 아가씨의 곁에 있었던 천칭이다. 전장을 오갔던 천칭은 어떤 마족이 있었고, 마족의 힘은 어떠했는지 그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아리시엘 루드비히는 마법사입니다, 마스터. 마법사가 전열에 서 있다면 그건 이미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건 기사의 역할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네. 아무리 거리가 있다고 한들 국지전의 양상을 지켜봤을 것 아닌가?’
[전장에 나온 마족은 대부분 소모품이었습니다. 간혹 무인들의 모습도 보이긴 했지만, 저렇게 특출난 괴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제국에는 신성력이라는 힘이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마기가 강한 마족은 신성력에 취약했기 때문에 전 마스터가 향하는 전장에 나오는 일은 드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 아가씨는 프랑소와 성녀님과 함께 움직였던 건가?’
알베르트는 몇 안 되는 아가씨의 친우를 떠올렸다.
유피처럼 은빛의 머리카락이 아름답던 루미에르 교의 성녀다. 전대 성녀였던 아르웬 성녀와는 달리 이름 있는 행사에는 참석하셨던 분이다. 알베르트도 그녀와는 자주 얼굴을 마주했었다.
[그렇습니다. 성격은 둘째 치더라도, 그 여자의 신성력은 대단했으니까요.]
‘자네. 성녀님에게 그 여자라니, 그게 무슨 말버릇인가.’
[그런 성격 파탄자가 성녀라는 것이 웃길 따름입니다.]
‘…….’
알베르트는 천칭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프랑소와 성녀는 겉과 속이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 점 때문에 아가씨와 더 돈독한 사이가 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냥꾼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알베르트는 걸음을 옮겼다.
뼈 마디마디가 통증을 호소했으나, 언덕을 올라가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능선을 오른 알베르트는, 곧 사당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알베르트는 언덕 위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곳에는 압도적인 무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언데드의 시체가 가득하다. 스켈레톤이나 시귀 같은 하위 언데드는 보이지도 않는다. 최소가 용아병. 완전무장한 데스 나이트를 비롯해 그 상위급이라고 말해지는 어비스 나이트(Abyss Knight)도 종종 눈에 들어왔다.
언덕에 남은 상흔을 살펴본 알베르트는, 이 엄청난 수의 언데드를 사냥꾼 혼자서 처리한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스켈레톤 나이트와 춤을 춘 알베르트와 마찬가지다. 언데드의 몸에 남은 상흔은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 수에 하나. 최소한의 동작으로 최고의 결과를 가져온다. 사냥꾼 아랑은 상처 하나 없이 이 언덕을 제압했다.
‘진짜 괴물이군.’
[마스터의 사부님만 하겠습니까?]
사부님을 떠올리자 알베르트는 조금 숨통이 트인 기분이 들었다.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느리지만 알베르트는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다. 아직 두 사람의 발끝에조차 닿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과 나란히 서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 어느 순간에는…….
언데드의 시체를 지나 알베르트는 사당 안으로 들어섰다.
사당 내부는 크지 않았다. 야명주 아래로는 몇 안 되는 장식품들이 보였다. 사당 안쪽의 위패(位牌)를 본 알베르트는 안쪽까지 걸음을 옮겼다. 위나 바토리. 위패의 이름을 확인한 알베르트는 유피가 준 병을 꺼냈다. 위패 아래의 그릇으로 병 안에 담긴 내용물을 흘렸다.
비릿한 혈향이 났다. 병 안에서 나온 것은 붉은 피였다.
그릇이 반응한다. 피를 머금은 그릇은 우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내부를 드러낸 칸 아래로는 텅 빈 공간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다. 손을 넣어서 안을 확인해 보았으나, 잡히는 것은 없다. 무언가 있었을 것 같은 수납공간에는 먼지만이 가득했다.
‘설마 사냥꾼이 몽환기를 가져간 것인가?’
[무슨 수로 말입니까?]
‘그건…….’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몽환기가 이곳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단 유피와 합류하자.
사당에서 나온 알베르트는 언덕 아래를 살펴보았다. 안개는 거의 걷혀 있는 상태였다. 유피가 사념과 싸우고 있다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은 조용했다.
잠시 언덕 아래를 둘러보던 알베르트는 사당으로 올라오는 유피를 볼 수 있었다. 언덕을 올라온 유피의 안색은 어두웠다. 그녀는 다짜고짜 알베르트에게 물었다.
“네가 처리한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왜 그녀의 기분이 나쁜지 모르겠다. 알베르트의 반응에 유피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알이 아니구나. 누군가 선수를 쳤어.”
“사념을 이야기하는 거야?”
유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몽환기는 회수했어?”
“그것 때문에 지금 유피를 만나러 가던 참이야.”
“없었다고?”
몽환기를 확인하러 유피는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곧 그녀는 알베르트와 마찬가지로 빈손으로 나왔다.
“일단 이곳에서 나가자, 알. 우리 말고 누군가 움직이고 있어.”
“그거 말인데, 유피.”
“?”
“사냥꾼과 만났어.”
유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알베르트가 말하는 사냥꾼이 평범한 뜻이 아니라는 걸 이해한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좋아. 아는 대로 말해봐, 알.”
알베르트는 설명을 시작했다.
사부님에게 들었던 무의 기본 주체인 체와 기, 심부터 시작해서. 심을 버리면 업이 쌓이고, 그 업을 짊어진 자들이 사냥꾼이라는 것을. 이곳에서 만난 사냥꾼의 이름은 아랑이고, 이 언덕에서 벌어진 일은 그 자가 행한 것 같다는 예상까지. 이야기를 들은 유피는 입을 열었다.
“사냥꾼이라. 그러네. 구시대의 무인들. 지킴이를 말하는 것 같은데.”
“지킴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무인들을 말하는 거야. 무의 정수를 지키기 위해서 은거를 택한 무인들. 무엇보다 무의 끝을 보는 것만이 목적인 무공 외골수들이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현재 마계에 남은 무인들은 실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야. 알도 직접 상대했으니까 알고 있을 텐데?”
“확실히…….”
황림당의 일원이나 양양 성의 검수, 수비대장인 무진까지도 고수라고는 말할 수 없는 실력이었다. 알베르트가 본 실력을 드러낼 필요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무인들의 사고방식은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해는 하고 있다고 생각해. 녀석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어. 무림이라는 건 자신들의 무공이 대를 이어가면서 형성되는 세계라고. 그렇기에 사부와 제자의 관계는 혈연보다 짙고, 사형과 사제는 서로를 존중해. 무인들은 말이지. 저주를 받고 난 뒤로 무공의 맥이 끊기는 걸 가장 두려워했어.”
“맥이 끊기는걸? 무공을 배우는 무인들이 줄어들었다는 거야?”
“저주는 우리에게 절망만 준 게 아니야. 본신이라는 힘을 주었으니까.”
알베르트는 유피의 대답에 이해했다.
“굳이 무공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는 거구나.”
“그래. 시간과 노력, 더 나아가 목숨까지 저울질해야 하는 힘을 배우니, 본신의 힘을 다루는 쪽이 훨씬 편했거든. 무엇보다 마기는 확실한 힘이니까. 그래서 지킴이들이 무공을 지키기 위해서 선택한 것은, 바깥세계와 단절되는 방법이었어.”
“…….”
“결과만 놓고 보면 그들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해. 무인의 수는 줄어들었지만, 지킴이가 가진 무공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지가 되었으니까.”
그렇게 태어난 것이 사냥꾼이라는 말인가.
사부님은 그들이 심이 아닌 업을 짊어진 자들이라고 했다. 무인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자들.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무인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리를 저버린 자들이다.
아랑을 눈앞에서 대면한 알베르트는 사부님의 말에 동의했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사냥꾼의 변덕 때문이었다. 더 큰 사냥감이 되어달라는 바람. 아랑은 자신을 같은 무인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지킴이와 만났는데, 용케도 살아 있구나.”
“죽을 거로 생각했어?”
살짝 객기를 부리는 알베르트의 물음에 유피는 차분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알.”
“…….”
유피의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어려 있었다.
그녀의 걱정을 느낀 알베르트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가씨를 두고 집사가 혼자 죽을 수는 없잖아. 나이를 먹어서 이별하는 거면 모를까.”
“말은 잘한다니까.”
피식, 실소를 흘린 그녀는 말을 이었다.
“뭐, 좌절하고 있는 것보다 낫기는 한데. 너도 제정신은 아니구나.”
“본인을 앞에 두고 그런 말은 조금 그렇지 않을까.”
“어머, 불만이야?”
“당연한 거 아냐?”
여유를 되찾은 알베르트의 아래턱이 기분 좋게 움직였다.
몸은 안 쑤시는 곳이 없었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