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사냥꾼(2) (60/200)

 # 60

사냥꾼(2)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언급됐다. 무심코 알베르트는 발을 멈췄다.

“우리가 저주를 받은 이후의 이야기야. 마족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강력한 힘에 노출되면 그 존재가 사념으로 찢겨나가는 거야. 이성이 없는 사념은 생전에 집착했던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내. 사념이 몇 개로 찢어졌는지는 알 수 없어. 결과를 볼 방법은 하나. 찢겨 나간 사념을 전부 제압하면, 마지막에는 이성을 되찾은 사념이 나타난다는 거지.”

“사부님은…….”

“그래, 아저씨는 지금 그분의 마지막 남은 사념이야.”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알베르트는 머릿속을 정리했다.

사부님이 자신을 사념이라고 밝혔던 것은 그런 까닭이었나. 그렇다면 사부님이 당당하게 천마를 자칭할 수 없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찢겨나간 사념. 그중에서도 마지막으로 남은 부분이었으니까.

“사념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는 부분이 많아. 할아범의 연구 이후로 거의 진척 상황이 없어. 모든 마족이 사념이 되는 것은 아니고, 망자나 강시가 되는 존재들이 대부분이야. 아직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사부님은 천마가 남긴 사념이다. 그렇다면 리치는 누가 남긴 사념인 거지?

“이야기는 여기까지.”

유피는 알베르트의 물음을 끊었다. 그녀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녀의 뒷모습에, 알베르트는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리치는 사실 그녀의 스승님이라는 위나 바토리인 게 아닐까? 사념이라고는 하지만, 스승님과 싸워야 한다는 걸 그녀는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의문은 끝나지 않는다.

알베르트는 생전에 천마가 마왕과 겨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천마가 강한 힘에 노출되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왕의 힘은 결코 호락호락한 수준은 아니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위나 바토리는 죽음의 순간 어떤 힘에 노출되었던 걸까?

유피는 대답해 주지 않는다. 그녀는 언덕길을 묵묵히 올라가고 있었다.

발이 멈춘다. 말없이 앞서 나가던 유피는 안개로 가려진 앞을 응시했다.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스켈레톤. 본능적으로 생자를 원망하는 언데드가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났다. 알은 허리춤의 검으로 손을 옮겼다. 무진과의 비무에서 휘어진 검이 아니다. 예비분으로 챙겨 온 검을 잡았을 때는, 유피의 손에서 은빛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느다란 마나의 실은 지면을 타고 미끄러지더니, 스켈레톤의 발에 닿았다.

스켈레톤의 골격을 타고 마나가 올라간다. 덩굴줄기 같다. 순식간에 썩은 뼈를 장악한 유피는 손을 쥐었다. 스켈레톤은 서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녹슨 검이 뼈에 상처를 남긴다. 팔을 베고, 목을 베고. 동료가 움직이지 않자 녀석은 자신의 목을 잘라냈다. 데구르르, 스켈레톤의 머리가 알베르트의 발치로 굴러왔다.

“스켈레톤인데, 망설임이 없네.”

“스켈레톤이라고 다 같은 스켈레톤이 아니야. 이런 골격의 기본도 안 되는 녀석들은 대지에 서 있을 자격이 없어.”

“…….”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스켈레톤을 정리한 유피는 알베르트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낡은 꾸러미였다. 분명 복주머니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닿았는지, 본래는 화려했을 복주머니가 이곳저곳이 헤져 있었다.

“받아. 언덕을 올라가면 정상에 사당이 하나 보일 거야. 안쪽에는 물을 담는 그릇이 보일 텐데, 이걸 넣으면 몽환기가 나올 거야.”

복주머니 안에서 그녀가 꺼낸 것은 작은 병이다. 어떤 액체가 담겨 있는지, 물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유피는 같이 안 갈 거야?”

“나는…….”

유피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녀는 산산조각이 난 스켈레톤의 유해를 바라보더니,

“근원지를 만드는 사념을 보러 갈 거야.”

“동행할게.”

“필요 없어.”

알베르트의 대답에 유피는 말을 끊었다.

“이건 그분의 제자인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야.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괜찮겠어?”

“어머, 내가 진다고 생각해?”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다.

알베르트가 악몽 속에서 본 유피는 현자님을 진심으로 따르고 있었다. 사념이라고는 하지만, 한때는 가족이나 다름없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 손을 섞는다는 건 유피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온다고 해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나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 알.”

“그건 강함과 약함의 문제가 아니야.”

알베르트만 해도 그렇다. 만약 자신의 앞에 아가씨가 모종의 일로 적의를 갖고 나타난다면 그는 손을 쓸 수 있을까? 아니, 죽었으면 죽었지. 아가씨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알은 정말 신기한 인간이네. 내게 오기 전에 어떤 일을 경험했는지 진짜 궁금해.”

“유피.”

“그렇게 걱정이면 몽환기를 회수해서 내게 합류해. 나랑 사념이 싸우기 시작하면 언덕 어디에서도 그 모습이 보일 테니까 말이야.”

“약속한 거야?”

“알이 제때에 온다면.”

확답을 얻은 알베르트는 신체의 내공을 활성화했다. 귀화루의 의녀라는 아란의 치료 덕분일까, 몸 안의 내공은 음기를 자극하는 일 없이 그의 의지에 답했다.

“좋아, 다녀올게.”

“천천히 갔다 와.”

마음 놓고 다녀오라는 듯 유피는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알베르트는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

안개 속을 나아갈수록 언데드의 수가 많아졌다.

기분 탓이 아니라면 녀석들의 중심부로 들어가고 있었다. 바깥쪽에는 스켈레톤과 시귀가 주를 이루었지만, 안쪽은 이야기가 달랐다. 제법 무장을 갖춘 스켈레톤 나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다급한 알베르트의 마음과는 달리 그의 다리는 자연히 속도가 느려졌다.

[차라리 몽환기를 뒤로 미루는 게 어떻습니까?]

‘그녀가 그걸 바랄 것 같은가? 뺨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겠구먼.’

천칭의 제안을 거절한 알베르트는 시선을 들었다. 노리는 것은 순찰을 돌고 있는 스켈레톤 나이트다. 녀석들은 하나의 군대라도 되는 것처럼 진형을 짜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중심부에는 이 부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듀라한과 무장한 시귀와 비슷한 레버넌트의 모습이 있었다.

내공을 끌어 올린다. 순간적으로 얻은 추진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뛰쳐나갔다. 한 발짝 늦게 반응하는 스켈레톤 나이트의 목에 검을 쑤셔 넣고, 그대로 비틀어 버린다. 빠각, 하고 투구 아래로 보이는 해골 머리가 지면에 떨어졌다. 손속에 자비를 둘 필요는 없다. 검은 다른 언데드를 노리고 쏘아졌다.

생자의 모습을 확인한 언데드들은 무기를 들었다.

거리를 좁혀오는 녀석들은 대부분이 스켈레톤 나이트다.

보잘것없지만 약간의 무장을 갖춘 놈들이다. 스켈레톤과 달리 노려야 하는 곳이 한정되어 있다. 녹슨 창을 꼬아 든 놈들은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알베르트가 다루는 검보다 리치가 길기 때문이다. 검집으로 거리를 재도, 순간적으로 길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창을 쥔 스켈레톤 나이트들은 앞뒤 재지 않고 뛰어온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생각한 알베르트였지만, 이내 그 생각을 고쳐먹었다. 언데드 개개인의 무력이 약하다고 얕볼 상대가 아니었다.

놈들은 이미 죽은 존재다.

마물과는 다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알지 못한다. 앞에서 몇 명이나 되는 동료 언데드가 죽어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역으로 쓰러지는 언데드를 무기로 이용한다. 스켈레톤 나이트의 늑골 사이로 튀어나온 창을 보며 알베르트는 혀를 찼다.

‘기상천외한 놈들이구먼.’

[일반 언데드와는 다르군요. 분명 통솔하는 개체가 있을 겁니다.]

창을 피한 알베르트는 그 몸에 검집을 내리쳤다.

창을 쥐고 있던 스켈레톤 나이트의 몸이 무너졌다. 녀석의 안면으로 검을 쑤셔 넣는다. 마무리한 녀석을 확인할 여유는 없다. 다가오는 두 개의 창을 본 알베르트는 몸을 움직였다.

단창은 목을. 장창은 가슴을.

내미는 것은 검집이다. 두 창은 동시에 들어오지 않는다. 먼저 장창을 튕겨낸다. 검집과 맞닿은 창은 키릿, 하고 불꽃이 튀어 올랐다. 얼굴 옆으로 창로(槍路)를 바꾼 알베르트는 단창의 몸을 검으로 잘라냈다. 창을 잃은 놈들은 손을 들었다. 그러나 그 행동은 오답이다.

알베르트의 발이 지면에서 떨어진다. 녀석의 헐거운 갑옷을 밟고 공중을 돈다. 내공으로 강화된 발이 스켈레톤 나이트의 턱을 가격했다. 퍽, 하고 목뼈가 부러진다. 날아간 두개골은 다가오던 듀라한의 머리와 충돌했다.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듀라한의 눈이 뜨였다.

한 손에 자신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녀석의 입이 열렸다.

「-----!」

끔찍한 소리가 울렸다.

듀라한의 목소리는 공세를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알베르트를 위협적인 존재로 받아들인 것 같다. 주변을 경계하던 순찰병들이 순찰로에서 이탈했다.

좋은 상황은 아니다.

알베르트는 얼굴을 찌푸렸다. 끝이 없다. 안개 속에서는 계속해서 언데드가 쏟아져 나온다. 이런 식으로 싸우다가는 지치기 마련이다. 일단은 활로를 뚫고 도망치는 것이 좋을까? 아니, 물러설 이유가 없다. 벌집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알베르트가 한 번 들쑤셔놓은 진형이다. 녀석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경계가 삼엄해질 것이다.

그럼 누구를 노려야 할까.

앞에서 이 녀석들을 제어하는 듀라한을 먼저 제거하는 것이 좋겠지.

알베르트는 검은색의 갑주로 몸을 감싼 듀라한을 확인했다.

듀라한을 제압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녀석이 들고 있는 머리를 부수면 끝난다. 강도가 상당한 것은 별개로 치더라도 말이다. 실제로 조금 전 녀석의 머리와 부딪친 스켈레톤 나이트의 두개골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검기를 다루지 않고서는 베어 낼 수 없겠지.

하지만 이놈들을 지휘하고 있는 것이 듀라한이 맞을까?

분명 듀라한은 중급 언데드다. 스켈레톤 같은 하급 언데드를 제어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래도 이 수는 조금 이상하다. 스켈레톤도 아니고 스켈레톤 나이트다. 녀석의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레버넌트까지 있다.

아니다. 이것들을 지휘하고 있는 개체는 듀라한이 아니다.

직감적으로, 그보다 더 대단한 녀석이 여기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알베르트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듀라한의 지시에 따라 레버넌트가 이쪽으로 뛰어왔다. 뛰어오는 수는 넷. 스켈레톤 나이트에 비하면 수는 적다. 그 강함은 반대를 달리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내공을 확인한다. 신체를 강화하는 데만 다룬 탓일까. 소모된 내공은 거의 없었다. 검기를 다루는 것 정도는 괜찮다. 가슴 안에 남은 음기도 검기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베르트는 검기를 뽑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건 사부님과 시더 황자의 말이었다.

실전 경험과 체.

기를 다루는 것은 위급한 상황에서다. 이 위기를 수련의 장으로 이용하자.

검집을 앞으로 내민다. 다가오는 놈들과 거리를 잰 알베르트는 검을 들었다.

창천검법 2장

공절

검기를 두르지 않은 초식이 알베르트의 몸에서 재현된다.

본래라면 다가오는 레버넌트를 베어냈을 검이, 놈의 몸에 상처를 남기는 선에서 멈췄다. 녀석은 쓰러지지 않는다. 가슴에 긴 상흔이 남은 녀석이 주춤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레버넌트의 갑옷 사이로 알베르트의 검이 들어갔다.

“일단은 하나.”

검을 뽑아내자 레버넌트의 피가 쏟아졌다.

녀석의 신형이 고꾸라진다. 그 등을 밟고 알베르트는 다가오는 놈들의 앞에 떨어졌다. 올라가는 놈들의 검보다 먼저, 알베르트의 검이 흔들렸다.

창천검법 5장

쇄천

한 놈, 갑옷째로 잘려나간다. 검을 든 녀석, 몸이 반쯤 잘렸다.

초식은 거기에서 멈췄다. 힘만으로는 베어낼 수 없다. 검을 회수한다. 늦는다. 마지막 남은 녀석의 검은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당황할 필요 없다. 판단을 마친 알베르트는 발을 옮겼다.

사부님이 알려주신 보법의 이름은 풍도신보(風道身步)였다.

바람의 길을 읽어내는 이 보법의 기본은 회(回)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모든 움직임이 시작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뒤로 물러나는 것도. 피하는 도중에 공격하는 방법까지도.

검로를 읽은 알베르트는 땅을 밟았다.

검이 검을 스친다. 녀석의 검로를 튕겨낸 알베르트는 몸을 돌렸다. 잡아야 하는 곳은 녀석의 등. 일순간 놈의 시야에서 벗어난다. 사각지대로 들어간 알베르트는 뒤로 검을 찔렀다.

손끝에 무거운 감각이 닿았다. 축, 하고 레버넌트는 무릎을 꿇었다.

남은 건 이 모든 걸 지켜보는 듀라한뿐이다.

부관이 전부 쓰러진 걸 확인한 녀석은 주변을 오가는 스켈레톤 나이트를 불렀다. 마치 놈의 방패를 자처하듯이 모이는 언데드를 보며 알베르트는 지면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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