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귀화루(鬼花樓)(1)
소녀의 안내를 받은 유피와 알베르트는 귀화루로 들어섰다.
기루 안쪽은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발 디딜 틈이 없다.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한 소녀는 손님 사이를 지나 계산대로 향했다.
손님을 응대하고 있던 마담은 소녀와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녀를 바라보는 마담의 안색은 어두웠다. 덕지덕지 약을 바른 얼굴로 손을 뻗은 그녀는 조심스럽게 상처 부분을 살펴보았다. 재떨이에 곰방대를 턴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알았다는 듯 마담이 고개를 끄덕이자 소녀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제가 안내해도 괜찮다고 하셨으니, 절 따라오시면 돼요. 동행 분은 저희 언니가 치료실로 데려갈 거예요.”
롯의 손에 안겨 있던 에일린을 다른 기녀가 넘겨받았다. 생각보다 그녀의 체중이 더 나가는지, 에일린을 받은 기녀의 몸이 갸우뚱거렸다. 혼자서 들기에는 무리다. 그러나 손을 빌려줄 기녀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에일린의 몸은 다시 롯의 손으로 돌아왔다.
롯은 치료실이라는 1층 방 끝으로 에일린을 데려주고 난 뒤에야 유피의 아공간으로 돌아갔다.
죄송하다면서 연신 고개를 숙이는 기녀의 사과에 유피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귀화루의 내부인 1층 홀은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싸움판을 구경하던 관중들이 모두 이곳으로 들어온 걸까. 테이블은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거리가 보이는 외부석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기루는 성황리에 운영 중이었다. 주문을 나르고 있는 기녀들은 옷차림이 화려하다. 코가 막힐 것 같은 분내와 향기가 가득하다. 바깥과는 달리 노출이 심한 옷차림을 한 여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신체접촉도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기녀 대부분이 술을 접대하거나, 장기를 비롯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어느 정도 학식이 갖추어져 있는 걸까. 깃털 부채로 얼굴을 가린 여인들이 손님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홀 안쪽에서는 가무가 이어지고 있다.
이름 모를 악기의 소리가 퍼지는 무대를 지나 두 사람은 원형 계단으로 향했다.
안내를 맡은 소녀가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대협. 이렇게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저는 귀화루의 송이라고 합니다.”
알베르트는 천천히 송이를 살펴보았다.
깊이 고개를 숙이는 소녀의 단발머리는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족과 인족의 혼혈. 겉보기에는 인간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앳된 얼굴과 미성숙한 신체. 성장 중인 소녀의 몸을 덮은 얇은 옷차림은 여성의 매력을 살려주지 못하고 있었다. 잘 보면 귀엽게 생긴 것도 같지만, 눈가에 어린 짙은 피로는 소녀의 용모를 깎아 먹고 있었다.
“알베르트 라나야. 이쪽은….”
레이디가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다.
자연스럽게 유피를 소개하려던 알베르트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녀의 본명을 밝혀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유피는 현재 로브와 후드로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차림새다. 그럼에도 그런 차림을 자처했다는 건 신분을 숨기는 것이 더 득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은 마계다. 그것도 그녀의 오빠, 5황자인 아벨 워스테인이 다스리는 양양이다.
알베르트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연희(緣姬)야.”
집사가 고민하는 사이 유피가 처음 듣는 이름을 꺼냈다.
“연희? 혹시 낙양의 무희(舞姬)라는 그 연희신가요?”
송이의 대답에 알베르트는 무심코 유피를 보았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 걸까?
빤히 바라보는 소녀의 시선에 유피는 후드를 벗었다. 별무리를 닮은 은발이 흘러내렸다. 아름다운 은발을 본 송이가 감탄사를 냈다.
“귀도 밝구나. 너 같은 어린애도 내 이름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당연히 알죠! 연희라면 모르는 기녀가 없을 정도라고요!”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송이를 보며 유피는 웃었다.
의문 가득한 알베르트의 시선에 그녀는 말없이 눈짓만을 보내왔다. 긴 속눈썹이 깜박거린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는 눈치다.
“여기는 어쩐 일로 찾아오신 건가요? 혹시 다음 무대는 양양으로 정해지신 건가요?”
“단순한 관광이야.”
“그거 아쉽네요. 한번 보고 싶었는데.”
원형 계단으로 안내하는 송이를 따라 둘은 걸음을 옮겼다.
두세 명씩 무리를 지어 올라가는 기녀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송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얼굴은 괜찮은 거야? 흉이 지면 어떡하지. 아란씨를 한 번 더 찾아가 봐. 송이는 알베르트와 유피의 눈치를 살피며 언니들에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피가 말했다.
“혼혈이 많은 기루를 보는 것도 처음이지만, 아가씨들끼리 이렇게 친한 기루를 보는 것도 처음이네. 보니까 가게 안에서는 말썽을 부리는 손님들도 보이지 않던데, 평소에도 이런 분위기야?”
“원래는 이렇지 않았어요. 제갈세가가 도와주긴 했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상황이 좋아진 건 아벨 황자님께서 여러 방면으로 힘써주신 이후의 일이예요.”
“아벨 황자님이?”
“네. 저희 큰언니랑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 같더라고요. 덕분에 잡종 취급당하는 저희가 이렇게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어요.”
“내 앞에서 잡종이라는 말은 쓰지 마.”
“네? 죄, 죄송합니다.”
신이 나서 이야기하던 송이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조심스레 시선을 올린 그녀는 유피의 눈치를 살폈다. 굳게 다문 입술과 찡그려진 눈썹. 볼 부분이 살짝 파여 들어간 것이 유피의 기분을 대변하고 있었다.
“큰언니라는 분은 어디에 계셔?”
“아, 4층에 계셔요. 잠시만요.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알베르트는 거북해진 분위기를 풀어냈다. 앞에서 걸음을 옮긴 송이는 4층 끝에 있는 방으로 둘을 안내했다. 문에 노크를 넣기 전에, 송이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큰언니?”
허락이 떨어진 것일까, 송이는 문고리를 잡았다.
“어서 오세요, 대협.”
방의 주인은 아리따운 목소리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방의 중앙에 앉아 있는 여인은 아래층의 기녀들과 달리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다른 창기들과는 다르다. 바깥으로 드러난 살의 면적은 보이지 않고, 기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차분한 분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고혹적이었다. 도톰한 붉은 입술과 살짝 치켜 올라간 눈썹. 검은 두 눈에 흔들림은 보이지 않는다. 당당한 그녀의 자태는 일개 기녀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쪽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키가 큰 여인이었다.
신발 굽 높이를 빼더라도 유피나 알베르트보다 키가 클 것 같다. 나이는 몇 살 정도일까. 얼굴을 치장한 화장은 옅은 것 같으면서도 짙다. 자신의 나이를 속이기 위해서일까. 혹은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여인의 욕심 때문일까. 정확한 의중은 알 수 없다. 나이는 많다면 30대 후반, 그렇지 않다면 30대 중반일 것 같다. 젊은 여인은 아니다. 사교회에서 수많은 귀부인을 보아온 알베르트의 안목은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알베르트와 유피는 그녀의 앞에 앉았다.
쪼르르 걸음을 옮긴 송이는 방 한편에 있는 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저는 귀화루의 루주(樓主)인 청화(靑花)라고 합니다. 오늘은 저희 아가씨들을 구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야.”
청화는 치마 끝자락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어색한 느낌이 전혀 없다. 신분이 높은 분들을 자주 상대해 본 것 같다. 그녀의 몸가짐은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아무래도 제국의 창기들과 이곳의 기녀들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아뇨. 황림당의 무인을 상대로 손을 뻗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용살자 공자님이 계셨다고 해도 자리를 피하셨겠죠. 대협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며칠 동안 문을 닫아야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말로 감사해요, 대협.”
탁상 위로 술잔을 올린 송이는 작은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라는 듯, 그녀는 문을 닫고 바깥으로 나갔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알베르트 라나야. 이쪽은 연희라고 불러주면 돼.”
“연희?”
알베르트를 응시하던 청화의 시선이 유피를 향했다. 두 여인의 시선이 교차했다.
“제가 알고 있는 낙양의 그 연희가 맞으신지요? 인연을 잇는 전설적인 무희라는.”
“맞아요. 아무래도 제 생각보다 저는 유명인이었던 모양이네요.”
청화도 유피의 가명을 알고 있다는 눈치다.
하지만 무희라니, 알베르트의 기억이 맞다면 지금까지 그는 유피가 춤을 추는 광경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사교회에 참석해도 항상 뒤쪽에서 무도회를 바라보던 그녀다. 사실은 춤을 추지 못하는 거라고 아가씨는 하루가 멀다하고 놀려댔지만, 그래도 유피는 춤을 추지 않았다.
“그러면 13황녀인 유피에르 바토리님의 이름 또한 인연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걸 알고 계신지요?”
“물론이에요. 황녀님의 이름과 뜻이 비슷해서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그게 우연일까요?”
알베르트가 생각에 잠긴 사이, 방 안의 분위기가 이상한 기류로 흘러가고 있었다.
“섞이지 말아야 할 피가 섞인 황녀. 어머니의 성이 없어, 최후의 현자님이 남긴 성을 이은 마지막 제자. 발푸르기스의 자매. 금지된 숲에서 은둔 중인 숲의 마녀. 소하 언덕에서 불온한 소문이 흘러나오고 있는 지금, 그분과 이름이 비슷한 무희가 양양을 찾아온 건 정말 우연일까요?”
“반대로 묻고 싶네요. 그걸 저한테 물어보는 이유가 뭔가요?”
그녀의 정체를 알아내고 싶은 루주의 눈과 태연한 유피의 눈.
무언가 읽어낸 것일까. 청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녀는 책상 위의 부채로 손을 옮겼다.
“저는 일개 기녀지만, 바보는 아니에요.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은 확실하거든요.”
“흐응, 그럼 루주의 눈에는 제가 황녀로 보인다는 거예요?”
붉은 부채가 펴졌다. 청화는 용의 모습이 그려진 부채의 몸통으로 입가를 가렸다.
“적어도 평범한 무희로는 보이지 않는군요.”
그녀의 대답에 유피는 방긋 웃었다.
“낙양을 떠난 하오문(下午門)의 문주가 양양에 있다고 들었는데. 만약 내가 유피에르 황녀님이라면 하오문의 거점을 바깥에 드러내고 싶을지도 몰라.”
“…….”
알베르트는 허리춤으로 손을 옮겼다. 이 자리에서 피를 보는 것이 유피의 의사는 아니다. 그러나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 행동은 청화에게 압박감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분에 넘치는 호기심은 사람을 죽인다. 알베르트는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잠시 유피의 얼굴을 바라보던 청화는 부채를 접었다.
그 아래에서 드러난 입가는 더는 웃고 있지 않았다.
“들은 말과는 다르게 재밌으신 분이군요. 알겠습니다, 연희. 양양에 계시는 동안 최대한 협조해 드리겠습니다.”
“어머, 일개 손님한테 그래도 되는 거야? 난 황녀님이 아니라니까.”
“당신의 정체가 황녀님이시든, 무희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전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하다고 자부합니다. 제 앞에 있는 당신이라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 것뿐입니다.”
청화를 바라보던 유피의 눈이 가늘어졌다.
더는 기 싸움을 할 이유가 없었다. 방 안에서 흐르던 기류는 유피에게 넘어왔다. 분위기를 감지한 알베르트는 칼자루에서 손을 뗐다.
“좋아, 마음대로 해. 하지만 난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않을 거야.”
허락은 얻었다. 청화는 유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늘 밤 머무르실 곳을 정하시지 않았다면, 저희 기루에서 지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변변찮지만, 보답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녀의 제안을 들은 알베르트는 유피를 보았다. 이미 자정을 넘어가는 시간이다. 거리에 나가서 다른 여관을 찾느니, 이곳에서 신세를 지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루주의 제안을 받아들일게요. 단, 방은 한 개여도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빈 방 중에서 가장 좋은 방으로 내드리겠습니다.”
유피의 대답에 루주는 두 손을 마주쳤다.
짝짝, 소리가 울리고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송이가 들어왔다.
“그런데 방은 두 개로 하지 않아도 되겠어?”
“같이 있는 게 좋아. 여차할 때 대처할 수 있으니까.”
“한 방에, 단둘이라···.”
“흐응, 뭐야. 나랑 같이 있는 게 긴장돼?”
작은 입가가 호를 그렸다. 고양이 같은 목소리에 알베르트는 긍정했다.
“자는 얼굴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
“역시 방은 두 개가 좋겠어.”
말하지 말 걸 그랬다.
*&*
다음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알베르트는 몸 상태를 확인했다.
생각 외로 몸 상태는 괜찮았다. 가슴에 남은 음기는 여전히 몸을 갉아 먹고 있었으나, 반대로 그 음기를 자극하지 않는 선까지 끌어내는 내공은 문제가 없었다.
운기조식을 끝마친 알베르트는 1층으로 내려가 간단한 아침 식사를 챙겼다. 빠오즈와 전병이라는 특이한 요리를 받은 그는 유피의 방으로 향했다. 문에 노크를 넣자,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산발한 은빛 실타래. 잠기운에 겨운 흐리멍덩한 붉은 눈.
얇은 네글리제 차림의 유피는 알베르트를 보고 몸을 돌렸다. 그녀의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간다. 작은 탁상 위에 식기를 올리고 찻잔을 채웠다. 유피는···. 당연한 것처럼 침대에 누워있었다.
“유피.”
“좀 더 잘 거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는 편이었잖아?”
“성이라면 모를까,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단 말이야.”
목까지 이불을 끌어당긴 유피는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내버려 둬, 건들지 마. 귀찮아. 기분 나쁘다는 분위기를 뿌리는 그녀를 지나간 알베르트는 커튼을 걷었다. 창문을 여니 차가운 봄바람이 반 안으로 들어왔다. 짙은 안개 때문에 상쾌한 공기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밤사이 탁해진 방 안의 공기보다는 깨끗했다.
“닫아.”
“환기는 필요해.”
“알베르트.”
“식사부터 하자, 유피.”
강경한 알베르트의 태도에 유피는 손을 휘저었다. 발현된 마나가 창문을 닫고 다시 커튼을 친다. 알베르트가 손을 뻗어 창문을 잡았지만, 마나로 봉인된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유피가 무슨 어린애야?”
“지금은 어린애여도 상관없어.”
투정 부리는 유피를 보고 있잖니, 아가씨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가씨는 유난히도 아침에 약했다.
매번 밤을 새우면서 공부한 탓도 있었지만, 단순히 잠에서 일어나는 걸 힘들어했다. 그건 체질 탓이라고 해야 할까. 이불을 갑옷처럼 말아 입었던 그녀는 무슨 짓을 해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는 어떻게 했더라. 아침마다 벌어졌던 신경전은 분명···.
“알베르트 란. 사랑하는 유피를 위해서 한 곡 부르겠습니다.”
“?”
사랑하는 님을 위한 세레나데.
제국 내에서는 매우 유명한 연가 중 하나다. 알베르트는 천천히 목을 울렸다.
매일 밤, 꿈을 꿔요.
애타게 그리는 당신을 보고, 당신을 만지고. 이윽고 나는 꿈에서···.
[마스터!]
“알!”
천칭과 유피의 목소리가 맞물렸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제 좀 일어날 생각이···.”
“일어날 테니까, 다시는 부르지 마.”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
알베르트의 노래는 저택 내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었다.
그가 노래를 부를 때면 사용인들 사이에서 비명과도 같은 환호성이 나왔었다.
“농담할 기분 아니야. 다시는 부르지 마.”
“음, 그러니까···.”
“부르지 마라면 부르지 마.”
“알았어.”
반박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모양인지, 유피는 스톨을 네글리제 위에 걸쳤다. 아직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식기 앞에 앉은 그녀는 식사를 시작했다.
‘조금 아쉽구먼. 내가 노래를 부르면 아가씨도 즐거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셨는데.’
[엄청난 착각을 하는 것 같군요, 마스터.]
‘뭘 말인가? 자네도 내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다시는 부르지 마시죠.]
‘자네까지 농담하는 건가?’
[부탁합니다. 다시는 부르지 말아 주세요.]
‘······.’
사정하는 천칭의 목소리에 알베르트는 할 말을 잃었다.
진심이 담긴 부탁이다. 장난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알베르트가 둔하더라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알베르트 란.
그는 루드비히 저택 내에서도 알아주는 최악의 음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