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양양(襄陽)(2)
뛰쳐나온 사내의 팔꿈치가 알베르트의 목을 노렸다.
단단한 비늘을 띄운 팔꿈치를 그는 손등으로 가볍게 밀었다. 어긋난 주로(肘路)는 빈 곳을 향해 나아갔다. 틈을 놓치지 않는다. 품 안에 들어온 가슴으로 주먹이 떨어졌다. 껄끄러운 소리가 울렸다. 뼈와 부딪친 것은 물렁물렁한 살점이 아니다. 검은 비늘이었다
“어이, 스켈레톤 형씨. 그거로는 무리라고! 마틴의 외공(外功)은 강철보다 단단해!”
“황림당(黃琳堂)의 일원은 그렇게 약하지 않아! 그래, 쓰러뜨리고 싶으면 권기(券氣) 정도는 팍팍 써보라고!”
“그게 안 되면 늑골이라도 뽑아서 써보는 게 어때?”
“그거 좋은 생각이구먼!”
관중들 사이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야유는 길지 않았다.
가슴을 지켜주던 검은 비늘에 균열이 생겨났다. 쩌저적, 하는 소리가 뒤를 잇더니. 마틴이라 불렸던 마족은 가슴을 감싸 안으며 쓰러졌다.
“그렇군. 강철보다는 단단하군.”
“…….”
순간 좌중이 조용해졌다. 돈을 걷던 노름꾼들도 이상함을 느끼고 싸움판을 돌아보았다. 스켈레톤은 멀쩡히 서 있다. 자리에 쓰러져 있는 건 황림당의 마틴이다. 멀뚱멀뚱 두 눈을 깜박이던 마족들은 잠시 후, 약속한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뭐야, 당신! 강하잖아!”
“이거 재밌는 녀석이 들어왔는데!?”
“그냥 낭인(浪人)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소식이 묘연해졌다는 낭파권(狼破拳) 대협 아닌가?”
“어이, 저 스켈레톤 앞으로 10냥! 배당은 얼마야?”
싸움판은 곧 광기와도 같은 열기에 둘러싸였다.
“어이, 관아의 개들아. 조금만 기다려라. 이 녀석부터 해치우고 상대해주지.”
얕볼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황림당의 일원들은 알베르트를 포위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앙상한 그의 몸을 살펴본다. 휑한 뼈 위에 걸친 옷은 사용인을 뜻하는 연미복이다. 홍등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다. 표정, 읽을 수 없다. 애초에 얼굴이 없다. 무기. 허리춤에 두 검이 있지만, 뽑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 검은 혼란을 주기 위한 무기일지도 모른다. 방금 전 한 수를 보았을 때, 녀석의 주 장기는 권일지도 모른다.
“마틴이 당했다. 여간내기가 아니다. 조심해라, 다들.”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 사내들을 향해 알베르트는 한숨을 쉬었다.
“무인이 모였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겁쟁이만 모인 곳이었나?”
“이 녀석이!”
가벼운 도발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시작을 끊은 건 민머리의 마족이었다. 권기를 만든 주먹이 알베르트의 얼굴을 노리고 떨어졌다. 본신의 힘을 드러내고 있는 건지, 그의 몸은 붉은 갑각이 떠올라 있었다. 빠직, 하고 그 얼굴 위로 알베르트의 주먹이 떨어졌다. 갑각에 덮인 코뼈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크억!”
무너지는 녀석의 뒤를 잇듯이 다른 마족이 알베르트의 다리를 노렸다. 순간 생겨난 알베르트의 사각지대를 놓치지 않고 기습한 수다. 그러나 알베르트는 이미 다음 동작에 들어가 있었다. 빙글, 몸을 돌린 그의 팔꿈치가 마족의 복부를 가격했다. 얼굴이 내려앉는다. 꺾인 얼굴을 쳐올리고 그대로 어깨를 내리쳤다.
강철보다 단단한 푸른 비늘이 깨져나간다.
깨진 비늘에 짓눌린 피부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사내는 알베르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저 주먹이 흘러가는 대로 흔들거렸다. 신형을 가눈다는 건 사치다. 지면에서 붕 떠오른 몸은 관중 사이에 처박힐 때까지 난타당했다.
작은 비명이 울렸다. 웃음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녀석의 몸은 지면을 부수고 들어가 있었다. 치명상을 입은 건 아니지만, 역량의 차이를 느낀 그 눈은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순식간에 쓰러진 두 명의 형제를 보며 황림당의 마족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정한다. 그 움직임을 보고 움직이지 못했다. 자신들과는 수준이 다른 상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체가 뭐냐, 너?”
“지나가던 무인이다.”
황림당의 사내들은 서로 바라보았다.
하나씩 가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녀석은 강자다. 내려놓았던 병장기를 든다. 그들은 알베르트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알베르트는 검을 뽑지 않는다. 그는 지루하다는 듯 손을 말아쥐었다가 폈다. 강자만이 보일 수 있는 여유. 대범한 그 모습에 남자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누런 바람이 달렸다.
전력을 다한 남자의 찌르기를 알베르트는 손바닥으로 쳐냈다.
신형이 흔들리는 녀석의 다리에 발을 건다. 넘어가는 녀석의 뒤통수를 향해 알베르트는 팔꿈치를 먹였다. 머릿속을 뒤흔드는 충격에 남자는 의식을 잃었다. 형제가 쓰러지는 걸 확인한 남자들은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었다.
6개의 창이 닥쳐온다.
검을 뽑을 필요가 있는가. 아니, 아직 검을 보일 만한 상대는 아니다. 무인이라고는 해도 한량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들이다. 이런 이들을 상대로 검을 들었다가는, 사부님을 뵐 면목이 없었다.
『상대는 다수. 그에 대적하는 자는 너 혼자. 그러나 일 대 다수의 싸움이라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수가 많다고 한들, 너와 동시에 검을 견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정해져 있는 법이다. 하지만 네 수준으로는 그들을 일일이 상대할 수 없겠지.』
‘그럼 어떻게 타개하는 것이 좋습니까?’
『고민할 필요가 있느냐? 무릇 이 땅에 살아가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지면에 발을 붙이고 있는 법이다. 그리고 디딜 곳을 잃은 상대만큼 상대하기 쉬운 것도 없지.』
사부님의 가르침을 떠올린 알베르트는 발을 들었다.
내공을 담아 체중을 이용해 땅을 울린다.
진각(震脚)
알베르트가 밟은 지면이 움푹 패였다.
지면을 울리는 충격이 다가오던 남자들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균형을 잃고 흔들리는 놈들의 안으로 파고든 알베르트의 손이 번뜩였다.
좌익에서 선두에서 달려오던 녀석. 흔들리는 지면을 따라 두 손을 높게 들고 있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가슴. 팔꿈치가 들어간다. 커억, 하고 복부를 가격당한 녀석의 몸이 꺾였다. 본신의 힘으로 나타난 갑피로는 가슴을 지킬 수 없다. 숙여진 얼굴로 주먹을 먹인 알베르트는 그대로 녀석을 후려쳤다.
“쿠엑!”
끔찍한 소리와 함께 사내가 대로로 날아갔다.
관중들 앞으로 떨어진 놈은 의식을 잃은 듯 눈이 돌아가 있었다.
알베르트는 멈추지 않는다.
눈앞에서 날아가는 형제를 본 남자들은 재빨리 창을 쥔 손을 내렸지만, 느리다. 너무나도 느렸다. 창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각이 머리를 짓눌렀다. 갑각이 깨져나가고, 땅바닥에 처박힌 사내의 입으로 흙이 튀어 올랐다.
좌익의 마지막 사내는 동료의 벽이 무너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창을 찔렀다. 날 끝이 예리하다. 언제든지 싸울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던 걸까. 그 자세는 나쁘지 않다. 칭찬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알베르트의 두 손가락 사이로, 창 날이 잡혔다.
“······.”
녀석과 알베르트의 시선이 맞물렸다.
불신. 눈에 깃든 감정을 읽어낸 알베르트는 창을 당겼다. 남자의 몸이 딸려오고, 그 복부로 알베르트의 발이 들어갔다. 날아간 녀석의 신형은 우익의 진형을 무너뜨렸다.
순식간에 여섯 명의 남자를 제압한 알베르트는 손가락 사이의 창날을 끊어냈다.
관중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일었다.
자리에 서 있는 황림당의 남자는 한 명뿐이다. 설마 난입한 스켈레톤이 이런 광경을 만들 거로는 생각도 하지 못한 이들은 흥분의 도가니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저 싸움을 보는 게 즐거운 걸까. 이것도 마족이 갖는 매력일지도 모른다.
“자네는 안 오는 건가?”
으드득, 하고 어금니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사내는 허리춤의 검으로 손을 옮겼다. 승산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이곳에서 물러난다면 쓰러진 형제들을 볼 면목이 없다. 사내는 검을 뽑았다. 남자의 전의를 확인한 알베르트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러나 사내의 검은 알베르트를 향하지 않았다.
그 검은 자신의 오른팔로 향했다.
“대협을 알아보지 못한 죄, 사과드립니다. 염치없는 말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형제들의 목숨을 살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대가로 제 오른팔을 드리겠습니다. 부디 용서를.”
캉!
검기가 둘린 검이 사내의 어깨에 닿으려는 순간, 알베르트의 검이 발도했다. 목표를 잃은 검이 관중들의 발치로 떠내려갔다. 그 검신에는 선명한 균열이 남아있었다.
“네 오른팔을 받아서 어디에 쓰라는 말이냐? 그 팔이 남아있는 지금, 네 형제를 수습해서 물러가라.”
“대가 없이 저희를 용서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대가라면 이미 받았다.”
알베르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황림당과 격돌한 싸움판 때문인지, 혼혈 마족을 향하던 멸시의 눈길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 자리에서 상황은 정리되었다.
사내는 천천히 손을 모았다. 그는 알베르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하나는 끝났고. 형제들을 수습하는 남자를 뒤로한 채, 알베르트는 시선을 돌렸다.
관아의 옷을 입은 검수(劍手)는 알베르트를 향해 두 손을 모았다.
“보아하니 고명하신 분으로 보이는데, 이쯤에서 손을 거두시는 건 어떻습니까?”
알베르트는 유피를 보았다. 그녀의 주변에서 불안하게 요동치던 마나는 진정되어 있었다. 당초의 목적은 이미 이루었다. 여기서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알베르트가 칼자루에서 손을 떼었을 때, 객잔 안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누구 마음대로 그만둔다는 거냐, 로한. 그딴 수치를 당하고 그냥 물러나겠다고?”
무식한 체구를 가진 남자였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리춤의 호리병이 흔들렸다. 큰 손의 끝에는 독한 향이 올라오는 술병이 있었다. 잔은 필요하지 않은 걸까, 나발 채로 술병을 입에 머금은 그의 목을 타고 술이 흘러내렸다.
“무진 대장.”
“보는 눈이 많다. 싸워라. 그리고 당연한 것처럼 이겨라. 그래야 우리도 할 말이 있는 거다.”
로한이라 불린 검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내기판이 되어버린 싸움판은 수많은 마족이 모여있었다.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열망은 간단했다. 더 멋진 싸움을 보고 싶다. 이 비무가 여기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 감정은 광기와도 비슷하다. 여기서 판을 접었다가는 다른 곳으로 열기가 새어나갈지도 모른다.
두 검수와 시선을 마주친 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런가.”
이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무진의 명에 따라 검수들은 전투태세에 들어섰다. 관아의 사람들에게도 사정이라는 게 있겠지.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상황이다. 이렇게 된 것, 자신의 무가 어디까지 통용되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알베르트는 칼자루 위로 손을 얹었다.
더 나눌 말은 없다. 검을 들어라.
대화할 의사가 없다는 걸 확인한 검수들도 허리춤의 검으로 손을 옮겼다.
그 검에 은은한 검기가 어렸다.
그러나 알베르트는 칼자루에 얹었던 손을 내렸다.
검을 드는 건 좀 더 상황을 추이하고 난 뒤다.
[이번에는 조금 쓸만한 녀석들이군요.]
‘무인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네.’
등 뒤로 검을 돌린 검수 셋은, 알베르트의 정면과 좌우로 걸음을 옮겼다.
기도가 달라진 것도 없을 텐데,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검수의 발을 보고 있던 알베르트는 이것이 진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분명 삼재진(三才陣)이었던 것 같은데.’
[맞습니다, 마스터. 천(天), 지(地), 인(人)을 의미하는 가장 기본적인 진법이었습니다. 어느 한쪽을 뚫고자 하면 나머지 둘이 지키고, 한 명이 공격에 들어서면 둘이 그 공격을 돕는 진법이었죠.]
‘파훼법은?’
[사부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생문(生門)을 뚫어야죠.]
알베르트는 검수를 돌아보았다.
어디가 생문이고, 어디가 사문(死門)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시험 삼아 한 발자국 앞으로 옮겨보니, 검수 셋이 하나의 몸인 것처럼 단숨에 거리를 벌렸다.
[꽤 숙달되어 있군요. 하루 이틀로는 이런 검진을 유지할 실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도 강자와 상대하는 것이 익숙한 모양입니다.]
천칭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알베르트가 한쪽을 뚫을 생각으로 몸을 옮기자, 물러나는 녀석과는 반대로 다른 두 녀석은 알베르트의 등을 노렸다. 생각 이상으로 귀찮다. 잡으려고 하면 도망가고, 주먹을 맞대고자 하면 순식간에 물러난다. 거기에 검기까지 두른 검수의 검은 무시할 게 못 됐다.
그렇게 5여 분 이상을 대치하고 있던 알베르트는 결국 검을 뽑았다.
파훼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보다 더 강한 힘으로 찍어누를 뿐이다.
알베르트가 검을 뽑자 검수들이 몸을 숙였다.
무엇이 오든 바로 대처하겠다는 태세를 보인 거였으나, 그 판단은 틀렸다.
만약 녀석들이 알베르트를 쓰러뜨릴 생각이 있었다면, 그가 검을 뽑게 둬서는 안 됐다.
알베르트의 몸이 앞으로 치고 나간다.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녀석은 몸을 뒤로 물렀으나 알베르트의 추격은 끝나지 않았다. 순간 당혹감이 검수의 얼굴에 떠올랐다. 검기를 두른 검신으로 몸을 보호하듯이 들었다. 검신 위로 알베르트의 검이 떨어졌다. 띠리링, 하고 두 검이 맞물린다. 검이 튕겨 나간다. 아니, 타고 올라간다. 검신을 따라 올라간 알베르트의 검은 멈추지 않는다.
그야말로 신묘한 움직임이다.
떨어지지 않는다.
검수를 돕기 위해 등 뒤에서 두 검이 다가왔지만, 알베르트의 몸에 검은 스치지 않는다. 다가오는 검보다 더 빠르게 치고 올라간다. 검수의 검이 따라가지 못한다. 최소한의 내공을 불어넣은 검은 검수의 무기를 튕겨냈다.
뱀의 혀가 손목을 먹어치운다. 검수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직후, 몸을 돌린 알베르트는 칼자루로 녀석의 머리를 가격했다. 헛, 짧은 비명을 등진 채 알베르트는 따라오는 두 검과 교차했다.
스쳐 지나가는 검 옆으로 앞발이 나아간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얼굴 옆을 검이 지나간다. 골격을 이루는 얼굴 뼈에 상처가 남는다.
뒤에서 엑! 하는 유피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겠지.
이미 알베르트의 움직임은 하나의 춤이다.
들어오는 검에 미끄러지듯이 발을 밟고, 검수의 손목을 노린다. 한 번으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반복할 뿐이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손아귀의 힘이 약해짐과 동시에 검이 맞물린다. 챙, 하고 떨어진 검을 멀리 차버린 알베르트는 마지막 남은 녀석의 검을 노렸다.
창천검법 1장
자추
찌르기와 맞닿은 검신의 중앙에서 균열이 생겨난다.
빗금이 달리고, 검수의 검이 수십 개의 조각으로 박살 났다.
로한은 칼자루만 쥐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그는 알베르트를 올려다보았다.
“더 할 생각인가?”
“…….”
수준이 다르다. 로한은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허리춤의 검집으로 검을 수납한 알베르트는 무진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여기서 그만두는 게 어떤가? 지금이라면 사이좋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우오오, 하고 뒤에서 환호성이 울렸다. 스켈레톤 되게 세잖아! 스켈레톤 주제에 제법이잖아! 스켈레톤이 저래도 되는 거냐!? 뭔가 응원이라기보다는 야유 같다.
무진은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나발째로 술을 들이켜던 그의 손에서 술병이 부서졌다.
촤르르, 하고 안에 남아있던 내용물이 지면 바닥에 흩뿌려졌다.
“멍청한 놈들. 너희는 전부 다 특훈이다. 각오해두는 게 좋을 거다.”
검수들의 얼굴이 굳었다.
훈련의 강도가 끔찍하다는 듯, 그들의 낯빛이 흐려졌다. 탄식하는 부하들 앞으로 무진은 걸어 나왔다. 술에 취한 그 발걸음이 흔들렸다. 자기 한 몸 가누기도 힘들 것 같다. 붉어진 코를 슥 문지른 그는 입을 열었다.
“어이, 낭인. 나는 양양 성의 수비대장인 무진이다. 너는 누구냐?”
술 냄새가 올라온다. 슬럼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주정뱅이와 다를 게 없다.
이런 무인도 있는 건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알베르트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지나가던 무인이다.”
“이름을 대라고 말하는 거다. 별호도 괜찮군.”
“별호, 말인가.”
사부님이 알베르트에게 준 별호는 천마다.
그러나 그 별호를 이곳에서 자칭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런 주정뱅이에게 이름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자네는 내 별호를 알 자격이 없네.”
“…….”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그는 몸 안쪽에서 깊은 웃음소리를 토해냈다. 폭소에 가까운 웃음을 터뜨린 그는 입가에서 미소를 지웠다.
“후회하게 해주마, 스켈레톤.”
무진은 양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