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1황자 시더 아르테니아(2) (30/200)

 # 30

1황자 시더 아르테니아(2)

사람의 주먹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뼛속까지 달리는 충격에 알베르트는 어금니를 물었다. 몇 겹이나 엮어놓은 검사가 시더와 부딪칠 때마다 헐거워졌다. 가벼운 견제의 의미로 들어오는 주먹일 텐데, 그 한 방, 한 방이 무겁기 짝이 없었다.

손목이 아려온다. 거듭되는 합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접근전은 힘들다. 거리를 벌릴 필요가 있다. 검의 리치를 확보하자.

그러나 상황은 알베르트의 생각처럼 잘 풀려나가지 않는다.

붉은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사정없이 번지는 시더의 주먹은 불과 같았다.

들판을 달리는 불길은 멈추지 않는다. 불이 붙기 시작한 초목을 태우고, 기세를 몰아 화마로 번져간다. 거리를 벌리는 건 불가능하다. 지근거리까지 달라붙는 주먹은 떼어낼 수조차 없다. 턱 밑까지 숨이 차올랐다. 내공과는 별개로,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주먹은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았다.

복부를 노리고 들어오는 주먹. 검 끝으로 받아낸다.

예상했다.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권격에서 이어지는 팔꿈치가 쇄골을 노렸다.

바로 대처할 수 없다. 뒷걸음질과 동시에 검을 든다. 무너진 자세는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자세를 잡을 여유는 없다.

떠오른 알베르트는 추적하듯이 시더의 연격이 머리로 떨어졌다.

『이건 좀 크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알베르트는 머리부터 바닥에 처박혔다. 끔찍한 소리가 울렸다.

시선을 찌푸린 라피엘과 달리 시더는 차분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느낌은 있었다. 꽤 타격이 있을 것이다. 이 수로 녀석은 멈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움직일 것인가. 돌아오는 행동에 따라 이 남자의 그릇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알베르트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의식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면에 맞닿은 두 손이 꿈틀거리는 걸 시더는 보았다.

쓰러진 상대는 손대지 않는다.

뒤로 물러난 시더는 알베르트가 일어날 시간을 주었다.

잠시 후, 알베르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땀범벅이던 얼굴이 흙과 피로 더러워졌다. 오가는 말은 없었다. 퉤, 하고 침을 뱉어낸 집사의 눈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재밌군.

투지가 엿보이는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시더는 손을 들었다.

먼저 들어오라는 듯 그 손이 알베르트를 도발했다.

알베르트는 뛰쳐나가지 않았다. 화끈거리는 얼굴과는 다르게 머릿속은 안정을 되찾았다. 검집과 검을 든 그는 시더와 자신의 거리를 쟀다. 호흡을 갈무리하고 시더와의 거리를 한 발자국 좁혔다.

순간, 그 앞으로 시더의 신형이 쇄도했다.

알베르트의 몸 안으로 들어온 시더의 오른발이 땅을 굴렀다.

온다. 무엇이?

알베르트는 반사적으로 검집과 검을 몸 앞으로 가져왔다.

파천권법(破天拳法)

호아(虎牙)

물어뜯었다.

호랑이의 어금니가 알베르트의 검을 먹어치웠다. 충격을 견디지 못한 검집이 박살 났다. 검은? 무사하다. 몇 겹이나 둘렀던 검사가 깨져 있었지만, 괜찮다. 아직은 감당할 수 있다. 알베르트의 내공은 여유가 있었다.

“내공은 쓸 만한데, 그걸 써먹는 기술이 미숙하구나. 실전 경험이 턱없이 부족해!”

알베르트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말 대신에 검을 들었다.

그 동작이 심금을 울린 걸까, 시더의 입가에서 짙은 미소가 퍼졌다.

“그래! 남자라면 입으로 말하는 게 아니지. 이 주먹으로 말하는 거다!”

시더의 모습이 사라졌다.

알베르트는 몸을 물러 거리를 벌렸다. 곁에 붙은 기척은 떨어지지 않았다. 검사를 두른 검을 곤두세웠다. 검신 위로 충격이 떨어졌다. 시더의 권은 멈추지 않는다. 조금 전과 똑같다. 주먹은 밀려오는 파도처럼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웃음소리가 울렸다. 이 비무가 즐거워서 멈출 수 없다는 듯 시더가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흉악한 연격이 이어지기 전에 알베르트는 힘으로 주먹을 밀어냈다. 밀려나는 주먹과는 반대로 우측에서 빠른 속도로 무언가가 다가왔다. 발이다. 피할 수 없다.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 선택할 수 있는 수는 하나뿐이다.

판단을 마친 알베르트는 최대한 몸을 뒤로 젖혔다.

“!?”

알베르트의 몸이 튕겨 나갔다. 기분 나쁜 부유감이 뒤를 잇는다.

두 다리를 땅에 붙인다. 간신히 잡은 시야 사이로 시더의 모습이 보였다.

숨을 돌릴 틈은 없다.

굳건히 쥐어진 손. 푸른 강기가 맺힌 시더의 권이 지면에 꽂혔다.

파천권법

맹아(猛牙)

정원 바닥이 강기를 토해냈다.

마치 기둥처럼 연이어서 터져 나오는 강기를 본 알베르트는 검을 들었다.

창천검법 4장

화무

알베르트의 주변에 꽃이 피어났다.

검사가 만들어낸 검막의 꽃잎은 총 8장이다. 알베르트는 충격에 대비했다.

첫 번째 강기. 단 한 번의 부딪침으로 4장의 꽃잎이 찢어졌다.

알베르트의 검은 멈추지 않는다. 두 번째 강기가 닿기 전에 2장의 꽃잎이 다시 자리를 메꿨다.

그러나 연약한 꽃으로는 그것이 한계다.

부질없게도, 두 번째 강기와 맞닿은 6장의 꽃잎은 한 번에 폭사했다.

부서진 검막을 복구할 시간은 없다.

검을 바로 쥔 알베르트의 앞으로 권압이 휘몰아쳤다.

카라락, 하고 권과 검이 맞닿은 거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났다.

때리고, 부수고, 지른다.

주먹과 부딪친 검으로 시더가 머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입을 벌린 그는 망설임 없이 검을 깨물었다.

“?!”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울리며 검사가 끊어져 나갔다. 기묘한 열기가 일렁이는 얼굴이었다.

투명한 골격을 드러낸 시더의 눈은 희번덕거리고 있었다. 알베르트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게 정녕 그와 같은 사람이라는 말인가.

이해할 수 없다. 시더가 드러낸 감정은 광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인의 일면을 본 알베르트의 손이 머뭇거렸다.

순간적으로 생긴 그 공백을 시더는 놓치지 않았다. 시야 한 편에서 매서운 속도로 각이 다가왔다.

걸러낼 수 없다. 주는 것이 맞다.

중요한 것은 어떤 걸 시더에게 내주냐는 것이다.

검을 주느냐. 어깨를 주느냐.

고민은 길지 않았다.

결정을 내린 알베르트는 왼팔을 들었다.

쿵, 하고 시더의 각을 받은 어깨에서 뭔가 빠지는 소리가 났다. 아픔을 느낄 사이는 없다. 들어오는 후속타를 받아내기 위해 알베르트는 바로 손을 옮겼다. 머리, 받아낸다. 목, 넘길 수 없다. 왼손을 준다. 축 늘어진 팔에서 통증이 달렸다. 왼팔은 쓸 수 없다. 시야를 바로 잡은 알베르트는 시더를 응시했다.

절호의 기회임에도 그는 들어오지 않는다. 두 발을 가볍게 총총거린 그는 턱짓을 보냈다.

알베르트는 빠진 왼쪽 어깨를 맞췄다. 관절이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먹을 쥐어본다. 문제없다. 오히려 달리는 통증 쪽이 문제다. 알베르트가 다시 검을 들자, 시더의 발치에서 흙먼지가 일었다.

눈으로는 따라갈 수 없다.

시더의 움직임은 이미 알베르트를 상회하고 있다. 그러니까 수를 계산한다.

녀석이 들어오는 방향.

녀석의 리치가 닿는 거리.

녀석이 움직이기 편한 장소.

알베르트가 검을 내지르자 권이 부딪혔다.

일합, 이합, 삼합.

합이 늘어갈수록 손의 감각이 사라진다. 분명 신체와 검의 경합일 텐데, 시더의 주먹은 무뎌지지 않는다. 검사로는 뚫을 수 없다. 모든 상황이 검강을 요구하고 있었다.

검사의 형체가 더 선명해진다.

위로 짜 올린 실이 형체를 만들고 이내 검강의 모습을 갖췄다.

그러나 그걸 지켜보고 있을 시더가 아니다.

[마스터!]

천칭의 경고에 반응한 건 요행에 가까웠다. 사부와의 비무를 거듭하면서 얻은 경험의 산물.

알베르트가 머리를 뒤로 무르자, 날카로운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권이 아니다. 알베르트의 머리를 노린 것은 각이다.

조금 전 어깨를 가져갔던 수다. 잘못했으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다.

시더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권과 각. 권에 중점을 두던 움직임에 각의 변화가 추가되었다.

선과 선을 잇는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다. 그 속에 섞이기 시작한 것은 선과 회의 변화다.

군더더기라고 부를 초식이 없다. 끊어지는 동작은 보이지 않는다. 매끄럽게 연결되는 움직임은, 마치 유려한 솜씨를 가진 무희의 춤을 보는 기분이었다.

알베르트는 시더의 공격을 따라가기 급급했다. 검사가 만들어지기 무섭게 부서지고, 다시 만드는 것을 반복한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다. 알베르트가 버티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버티는 것이 기적.

갑자기 떠오른 상념에 시더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알베르트의 상태는 이미 쓰러졌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건 자신이다. 그럴 터인데, 왜 녀석은 쓰러지지 않는 걸까?

시더는 수세에 몰린 알베르트의 눈을 보았다.

상황은 절망적인데도 불구하고 그 눈은 빛을 잃지 않았다.

벼랑 끝에 몰린 남자의 눈이 아니다. 등껍질에 몸을 숨긴 거북이처럼, 그는 한 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 어떤 수를 기다리고 있는 거지? 무언가 준비한 것이 있는가?

의문은 길지 않았다. 답에 도달한 시더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퍼졌다.

이 비무의 결판을 지을 수다.

재밌는 남자다.

이미 비무의 행방은 결정되었다. 이대로 시더가 연격을 이어간다면, 변수 같은 건 생기지 않는다.

알베르트는 자신의 주먹 아래 쓰러지고, 시더는 정해진 승리를 가져오리라. 하지만, 그래서야 알베르트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시더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알베르트 란. 녀석은 자신을 집사라고 밝혔지만, 그건 이 남자의 본질이 아니다. 시더와 마찬가지로 일그러진 얼굴은 한 감정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알베르트의 몸은 자신이 무인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좋다. 그렇다면 거기에 응해주는 것 또한 남자의 대답이다.

거리를 벌린다. 단숨에 뒤로 물러난 시더는 몸을 수그렸다.

무릎을 구부리고, 왼손을 지면에 붙인다. 말아 쥔 오른 주먹에 푸른 강기가 맺혔다.

서로 펼치는 것은 최강의 수다.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녀석과 함께 오갔던 주먹이 시더의 말을 대변했다.

알베르트도 시더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남은 내공을 전부 쥐어짠다. 검신에 맺힌 것은 검붉은 검강이다. 한계까지 응축된 검강 때문일까, 우웅거리는 검명이 주변을 울렸다.

숨소리가 사라진다.

검강이 자아내는 검명과, 응축된 권강이 일렁인다.

홀짝.

라피엘이 차를 마시는 순간, 시더가 돌진했다.

파천권법 오의

지룡아(地龍牙)

지면을 부수며 용의 턱이 다가온다.

용의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용이 만족할 때까지, 그 턱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 위험한 것은 턱이 아니다.

그 안에서 드러나는 용의 어금니야말로, 이 권법의 진수. 시더의 권이 모든 걸 집어삼켰다.

다가오는 용을 보며 알베르트는 검을 쥐었다. 더는 검사가 아니다. 검신 위에 맺혀진 것은 검강이다. 마르지 않던 알베르트의 내공도 거의 바닥에 가까웠다. 뒤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때려 박는다. 펼치는 것은 사부님의 독문 무공 중 하나. 성공한 적은 없다. 이 초식을 펼치기 위해서는 검강을 다루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 완성한다.

지금 이 순간, 생각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알베르트는 검을 뽑았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오의

천마혈참(天魔血斬)

과거 천마가 사용했다던 필살의 검격이 펼쳐졌다.

알베르트의 손에서 펼쳐진 검붉은 강기가 용의 비늘을 갈랐다.

정원을 달리던 푸른 용의 턱이, 반으로 쪼개졌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줄기의 피가 흩날렸다.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최강의 초식을 펼친 두 사내는 서로 등을 보이고 있었다.

한 방울의 피가 지면에 떨어졌다. 툭, 하고 튀어 오른 핏방울은 시더의 신발에 흔적을 남겼다.

붉은 핏방울. 상처 하나 입지 않았던 그의 몸에 상흔이 남아 있었다.

“설마···.”

이 승부, 이 몸의 패배인가.

알베르트를 지나친 시더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살짝 피가 흩날린 정도지만, 그의 오른손에는 상처가 떠올라 있었다.

“좋은 수였다, 알베르트. 네 검은 꽤 재밌···.”

시더는 말꼬리를 흐렸다. 손을 거둔 그와는 달리 알베르트는 아직도 초식을 펼쳐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검격을 견디지 못한 검집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다. 발치에서 나뒹구는 쓰레기를 걷어찬 시더는 뒷머리를 박박 긁었다.

“뭐야. 기절했잖아, 이놈?”

초식을 펼쳐낸 알베르트는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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