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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그 집사의 외출(3) (2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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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사의 외출(3)

[친구는 없으셨습니까?]

‘친구? 적군이라면 많았구먼.’

슬럼가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하루하루 끼니를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고, 식당의 뒷문을 두들긴다. 운 좋은 날에는 살점이 붙은 고기를 먹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허탕을 치기 마련이다. 간신히 발견한 끼니도 다른 아이들에게 빼앗기기 일쑤다. 그래도 아이들끼리의 다툼은 나은 편이다.

뒷골목의 조직에 걸리면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제법 얼굴이 괜찮은 아이들은 그대로 노예가 되었다. 여자아이인가, 남자아이인가는 관계없다. 여자아이라면 사창가로 팔려가고, 남자아이라면 더 험한 꼴을 본다. 나이 든 귀족 부인에게 팔리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남색가인 귀족에게 걸린다면 그 끝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알베르트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딱히 잘생긴 얼굴도 아니고, 귀여운 얼굴도 아니다. 인상 하나는 오히려 나쁜 편에 속했다. 유괴범의 눈에서 벗어난 그는 제법 쓸만한 세력의 밑으로 들어갔다. 몸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한들 생활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는 않았다. 드러난 위험에서 몸을 숨겼을 뿐이지, 힘든 나날은 계속됐다. 폭력과 굶주림. 어떤 대가도 없이 물건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아직 어린아이에게는 싸늘한 현실을 몸으로 깨달은 알베르트는 그렇게 눈칫밥을 배웠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집사라는 건 수십 개의 가면을 갖고 있어야 하는 법이네. 어떤 때는 아둔하게, 어떤 때는 약삭빠르게 행동할 필요가 있지. 말투, 목소리, 행동, 몸짓, 그 모든 걸 적재적소에서 써먹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집사라고 불릴 수 있는 거네.’

사용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윗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무엇을 바라는지 알아낸다. 필요 이상으로 호기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의심의 싹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돌이킬 방법은 없다. 머리가 비상하다는 걸 알릴 필요도 없다. 주인보다 똑똑한 사용인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너무 멍청하게 굴어도 문제가 된다. 자신의 처우를 단번에 결정짓는 행동은 반드시 피해야 했다.

[집사라는 건 많은 걸 요구하는군요?]

‘비단 집사만 그런 것이 아니네. 어느 사용인이나 마찬가지네.’

[그 시간에 힘을 좀 쌓아두지 그러셨습니까?]

‘다른 사용인과 비교한다면 집사의 힘이 약한 편은 아니네. 여차하면 주인님의 방패가 될 정도의 힘은 있지. 단지, 우리가 바라는 힘은 그런 일반인의 수준이 아닌 게 문제지.’

일반인을 웃도는 힘은 갖추고 있겠지만, 달리 말하면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그 힘으로는 아가씨를 지킬 수 없었다.

장을 보는 데 많은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돈은 유피가 준 작은 금덩어리 하나로 충분했다. 알베르트는 현물로 나와 있던 식재료를 대량으로 구매했다. 보관하기 껄끄러운 재료도 문제없다. 유피의 마법이 있는 이상, 뒤는 그녀에게 맡기면 되리라. 또 들러 달라는 가게 주인의 배꼽 인사를 받으며 알베르트는 식료품점을 나섰다.

문 앞에는 꾀죄죄한 꼬맹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가게에서 나온 알베르트를 보았다. 두 손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은 것을 본 그 눈에 실망감이 어렸다. 어서 꺼지라는 가게 주인의 빗자루를 피해 아이들은 골목으로 도망쳤다.

‘여기는 달라진 게 없구먼. 시간이 이곳만 피해 가는 느낌이야. 정말로···.’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늘어놓는군요.]

‘실제로 애늙은이니까 말일세.’

[그렇게 안타까우면 먹을 거라도 좀 던져주지 그러십니까?]

‘해결책이 되지 못하네.’

여기서 알베르트가 먹을 것을 적선한다고 해도, 언 발에 오줌 누기밖에 되지 않는다.

역으로 소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힘없는 자가 가진 소유물은, 결코 지킬 수 없는 법이다. 특히나 법이 통용되지 않는 이곳에서는 말이다.

약육강식.

강자는 모든 것을 가진다. 약자는 빼앗길 뿐이다. 손에 넣은 것을 잃고 싶지 않다면 강해져야 했다.

알베르트는 고개를 들었다. 해는 아직 중천에 걸려 있었다.

에일린을 루드비히 저택으로 인도한 것 치고는 시간에 여유가 있는 모양이다. 이것도 유피가 준 인형 덕분이겠지. 꾸러미 속의 가고일 인형을 떠올린 알베르트는 시장 근처의 선술집으로 발을 옮겼다.

어두운 분위기의 선술집이었다. 일부러 햇빛을 가려놓은 건지, 두꺼운 블라인드가 창문을 가리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바와 촛불 하나에 의지하는 테이블이 듬성듬성 떨어져 있다. 위험한 분위기의 남자들이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알베르트는 카운터 쪽으로 다가갔다.

“위스키로 한 잔 부탁하네.”

바 위에 은화 두 개를 올리자, 점주는 익숙한 동작으로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술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있다. 알베르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1층에 보이는 자리만 해도 8개가 넘어간다. 빈 테이블은 보이지 않는다. 알베르트처럼 혼자서 온 손님들은 바 쪽에 앉아 있었지만, 단체로 온 손님들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등에 검을 멘 자도 보이고, 후드로 얼굴까지 덮은 마법사들도 종종 보인다.

주문한 위스키를 받은 알베르트는 잠시 술잔을 바라보았다. 그는 술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목을 끌 필요는 없다. 풍경에 녹아들 필요가 있었다. 천천히 잔을 기울인다. 알코올과 닿은 목이 타오른다. 식었던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자 그는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세웠다.

“크로만 공작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군.”

“최근 발견된 던전 중에서 진짜가 있다는 모양이야.”

“루미에르 교의 전대 성녀가 아직도 행방불명이라는 말이 있어.”

“아르웬 성녀가 말인가? 그렇군. 성수 값이 비쌌던 것은 그런 까닭이었어.”

대륙을 정처 없이 떠도는 모험가들이 모이는 장소다.

정보상과 이야기를 나누는 용병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알베르트는 생각을 정리했다.

[뭔가 알고 싶은 정보라도 있는 겁니까?]

‘내가 기억하는 이전 시대의 이야기는 큰 사건밖에 없다네. 혹여 놓치고 있는 정보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알아보는 편이 좋지 않겠나?’

알베르트는 모든 걸 알지 못한다.

저택의 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나이도 어렸을뿐더러, 저택 내에서 벗어날 길이 없던 집사 신분이었다. 혹시 도움이 될만한 소문이 있을지도 몰랐다.

“북쪽이 심상치 않아.”

“챈드리 백작이 북부의 이교도들과 벌이는 전쟁이 커지고 있다는 소문 말인가?”

“사실일지도 모르네. 야만인들은 성전(聖戰)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야.”

“용병이 많이 필요하겠군.”

“돈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나?”

…….

“성 미뉴에트 백작의 차남이 상태가 이상하다는 소문이 있네.”

“큰 병이라도 앓고 있는 건가?”

“선천적으로 마나가 폭주하는 병이라는 모양이야. 통용하는 약이 없는지라 오래 살기는 글렀다는 말이 있어.”

“신성력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모양이군. 안 됐어. 끌끌.”

…….

“크로만 공작가의 마도 병단이 반절로 줄었다는 말이 있지.”

“제국은 다른 왕국을 침략할 셈인가? 하긴, 이번 황제님은 너무 조용했어.”

…….

“루미에르 교의 사제들이 금지된 숲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다.”

“잃어버린 유산을 찾으러 왔다는 소문 말인가?”

…….

귀가 뜨이는 이야기는 없었다.

마족의 정세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금지된 숲을 탐색하는 모험가들이 있긴 했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 마족의 정보를 얻으려면 숲 너머, 마족의 땅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그곳까지 도달한 이들은 아직 없었다.

“정보를 사러 오신 건가요?”

위스키를 마시는 알베르트의 옆자리로 한 남자가 앉았다.

로브를 몸에 두른 남자는 후드를 깊게 눌러 쓰고 있었다. 얼굴은 확인할 수 없다. 눈에 띄는 표식은 보이지 않는다. 선술집 안에 있는 다른 정보상들과 같은 모습이다.

“마족에 대한 정보를 사고 싶다.”

“마족이라, 꽤 비싼 정보를 원하시는군요. 대금은 치르실 수 있겠습니까?”

알베르트는 식료품을 사고 남은 거스름돈을 바에 올렸다.

반짝거리는 금화가 다섯. 정보를 사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양의 금액이었다. 휘유, 하고 정보상이 즐거운 휘파람 소리를 냈다.

“이거 귀한 손님을 못 알아볼 뻔했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가 필요하신지요?”

“마족의 최근 정세에 대해서 알고 싶다. 사소한 거라도 상관없다.”

“정세, 말입니까?”

정보상은 난처하다는 듯 목소리를 골랐다.

“최근 정세에 대해서는 별로 나온 이야기가 없습니다. 북부 야만인들과 마족이 부딪치고 있다는 소문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죠. 금지된 숲을 여행하는 모험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던전에서 종종 마주치는 일 정도가 전부입니다. 다행인 것은 이쪽에서 적의를 드러내지 않으면, 몸 성히 보내주는 일이 많다더군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군.”

“그렇죠? 하지만 사실이라는 모양입니다.”

점주가 주는 술을 한 입 삼킨 그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정세는 아니지만, 마족에 관해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어떤 소문인가?”

“사실 마족이 루미에르 교에서 이야기하는 진짜 악마(惡魔)라는 말이 있습니다.”

“악마?”

알베르트가 반문하자 정보상은 쉿, 하고 목소리를 낮췄다.

“예전부터 떠돌던 소문입니다. 손님도 알다시피 마족이라는 것들은 얼핏 보면 인간과 똑같지만, 자신의 몸을 다 드러내는 끔찍한 녀석들이죠. 그런데 그 모습조차도 가짜고, 진짜 모습은 마기를 흩뿌리는 악마라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루미에르 교의 성수가 통하는 거고, 신성력이 효과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

“뭐,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왜 1차 대전쟁과 2차 대전쟁 때 그들이 악마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지도 의문이고 말입니다.”

“그래도 꽤 흥미가 있는 이야기군.”

“그렇죠?”

위스키를 비운 알베르트는 금화를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하고 돈을 챙기는 정보상을 뒤로 한 채 그는 선술집을 나왔다.

‘방금 그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나?’

[모르겠군요. 사실이라고 해도 마족은 마족입니다. 달라지는 건 없겠죠.]

‘그것도 그렇군.’

원했던 정보는 아니지만, 재밌는 정보는 얻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유피에게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선술집에서 나온 알베르트는 마을 중앙에 있는 게시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아직 한 군데 더 남아있었다.

주변에는 수많은 모험가가 모여 있었다.

마물을 토벌해달라는 의뢰는 기본이고, 숲의 안내를 부탁하는 의뢰도 종종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들어오는 의뢰는 던전에 대한 내용이었다.

“던전이 발견됐다는 모양이야, 제이크.”

“껍데기만 남은 던전 아냐?”

“마왕의 유산이 있는 던전이라는 모양이야. 입구부터 막혀서 다른 팀의 도움을 바라는 것 같아. 대신에 배분에 관해서는 한 번 생각해보자는데?”

“그거 진짜야?”

공고문은 간단했다.

마왕의 유산이 있는 던전을 발견했다. 뜻이 있는 모험가들은 함께 던전을 수색하자는 내용이다.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이 도시에 모이는 모험가들은 대부분 베테랑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네. 일반적으로 열에 칠은 성공할 정도의 실력자들이지. 하지만···. 이건 힘들겠지.’

공고가 올라왔다는 것만 봐도 자명한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던전은 최초의 발견팀이 천천히 수색한다. 던전의 위치를 남과 공유하는 황당무계한 짓은 저지르지 않는다. 만약, 발견자가 그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공표했다면 그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던전이라는 걸 의미했다. 위험한 함정이 곳곳에 도사린 던전이라든지, 혹은 엄청난 마물이 자리를 잡은 던전이라든지 말이다.

모험가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욕심이 그들의 발길을 묶고 있었다. 우연이라도 마왕의 유산을 얻을 수 있다면, 일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원해서 모험가가 되었든, 원하지 않아서 모험가가 되었든.

모험가 생활을 끝낼 수 있는 길이니 말이다.

[그러면 뭐합니까. 죽으면 모든 게 끝장이지 않습니까.]

‘그들도 알고 있네. 그런데도 어쩔 수 없는 게야.’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것. 그게 사람의 욕심이라는 거다.

“좋아, 가자고! 이 던전은 우리가 접수한다!”

“화끈하네, 역시 대장이라니까!”

“저기요, 좀 더 생각해보면 안 될까요? 저 아직 죽고 싶지 않은데요.”

“소심하게 뭘 뒤로 빼고 그래? 이럴 때는 단순 무식하게 밀어붙일 필요도 있는 거야!”

“고생하는 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들 중 살아올 수 있는 자는 몇 명이나 될까?

웃음소리와 함께 게시판을 뒤로하는 모험가들을 보며 알베르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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