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일류 집사와 아가씨 (24/200)

 # 24

일류 집사와 아가씨

아침마다 스켈레톤을 돌려보내는 건 유피의 일상이 되었다.

사부님과 작별을 마친 무인들이 사라지는 건 익숙한 모습이 되어갔다. 그 사이 알베르트는 성의 청소를 시작했다. 치울 건 치우고, 버릴 건 버리고. 대부분이 버릴 것투성이였지만, 이따금 쓸만한 물건이 눈에 띄기도 했다.

버려진 공방에서 발견한 꾸러미도 그중 하나였다.

보잘것없는 누더기처럼 생긴 이 물건은, 무한의 꾸러미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마도구였다.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실제로 수납할 수 있는 물건은 소유주의 마나에 따라 달랐고, 안에 담긴 물건의 무게도 반절밖에 줄이지 못했다는 모양이다.

경량화 마법의 실패.

소유주가 보유한 마나에 따른 보관량의 차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러운 외관은 유피의 눈에 차지 않았고. 그 결과, 이 마도구를 실패작이라고 치부하고 방치한 것 같다.

‘쓰고 싶으면 써. 대신 겉으로 드러내지는 마. 내 집사라는 남자가 변변찮은 도구를 들고 다닌다고 손가락질받는 건 보고 싶지 않으니까.’

‘사용인이 받는 부끄러움은 곧 주인을 향한 모욕이라. 알았어, 아가씨의 뜻이 그렇다면 집사인 내가 따라야지.’

그렇게 무한의 꾸러미는 성을 청소하는 알베르트의 손에 들어왔다.

덕분에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이 수 배는 쉬워졌다. 쌓아놓은 쓰레기더미를 치우기 위해 두세 번은 방을 들락날락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아침 청소를 끝마친 알베르트가 꾸러미를 들고 주방으로 향하던 도중이었다.

스켈레톤이 갖고 가는 귀리 빵과 우유를 본 알베르트는 그를 멈춰 세웠다.

“유피에게 올리는 거야?”

일찍이 무인이었던 스켈레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베르트는 그가 들고 있는 식사를 확인했다. 이전에 그가 먹었던 딱딱한 귀리 빵과 우유다. 알베르트의 얼굴에 떨떠름한 표정이 떠올랐다. 평민들이나 먹을 법한 식사다. 혀를 즐겁게 하기보다는, 그저 허기를 달래기 위한 식단. 혹시 유피가 일부러 이런 식사를 즐기는 걸까?

알베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

지난 생에서의 그녀는 미식가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에 집착했다.

어느 마을을 여행하더라도, 그 지역에서 유명한 요리를 하나씩은 시켜 먹었다. 그녀의 식도락에는 아가씨도 몇 번이나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이건···. 유피의 취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단순히 이 성에 요리할 줄 아는 이가 없는 거겠지. 스켈레톤들의 출신이 무공밖에 모르는 무인인 이상, 먹을 것에는 크게 집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 맛없는 벽곡단만 수십 년을 먹는 이들이다.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운 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건 그냥 치워줘. 유피의 식사는 내가 챙겨갈게.”

스켈레톤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점심은 간단하게 먹을 생각이었는데. 예정에는 없던 일이 생겼다. 알베르트는 주방으로 가던 발걸음을 바깥으로 돌렸다. 이곳에 있는 재료는 몇 되지 않았다. 급한 대로 바깥에서 요리 재료를 조달해 올 필요가 있었다.

*&*

유피의 공방은 알베르트의 방에서 정반대 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식기를 담은 카를 끌고 온 알베르트는 스켈레톤으로 가득한 복도를 지났다. 통로 양옆에는 가고일(Gargoyle)과도 비슷한 악마상과 성녀의 모습을 본 따 만든 천사상이 공존하고 있었다. 손재주가 뛰어난 조각상이 만든 모양인지, 잘 보면 제국의 국교라는 루미에르 교의 로사리오가 음각되어 있었다. 꽤나 정교하다. 조각상을 손으로 만져본 알베르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무엇이 말입니까, 마스터?]

알베르트는 유피의 공방으로 카를 밀었다.

복도 옆으로는 여전히 많은 조각상이 있었지만, 입구에 있던 천사상과 비슷한 조각상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건 무인과 악마를 묘사한 상과 아리따운 아가씨의 상이었다.

‘루미에르 교를 상징하는 성녀의 조각상일세. 왜 마족의 성과 어울리지 않는 조각상이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구먼.’

[전리품으로 얻은 물건을 그대로 장식에 쓴 거겠죠. 흔하게 있는 일 아닙니까?]

‘그게 마족에게 치명적인 성수를 만드는 교단이어도 말인가?’

[저 조각상이 만들어내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생각이 너무 깊은 걸까. 꺼림칙한 느낌을 저버리지 못한 알베르트는 유피의 공방에 도착했다. 이 의문은 차후에 풀어보자. 알베르트는 그녀의 방문에 노크를 넣었다.

들어와, 하고 유피의 허락이 떨어졌다. 알베르트는 준비해온 식사를 갖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유피의 공방에서 알베르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책상 위에 놓인 빳빳한 깃펜이었다. 잘 마른 양피지의 냄새가 코를 간질이고, 곳곳에 널린 서적들이 눈에 밟혔다. 무엇에 사용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시약병은 물론이거니와 마법에 사용되는 거로 보이는 촉매제마저 이곳저곳에 걸려있었다.

그 안에서 알베르트는 익숙한 은발 여인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시약병을 만지고 있는 유피는 얇은 네글리제 차림이었다.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 걸까. 뭔가 걸리는 게 많은 다른 옷차림에 비하면 움직이기는 쉬우리라. 혼자서 일하기에는 적합한 옷차림이다. 하지만 이곳은 이제 그녀 혼자 사는 성이 아니다.

알베르트는 얼굴이 붉어졌다. 눈의 착각이 아니라면 귀여운 속옷이 보인 것 같았다.

[남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늑대라고 하더니. 마스터도 마찬가지군요. 어쩐지 안심했습니다.]

‘자네가 왜 안심하는 건가, 자네가 왜?’

얼굴에 손을 올린 알베르트는 한숨을 쉬었다.

유피는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책상 한쪽으로 손짓했다. 아직 연구가 끝나지 않았으니 좀 기다려 달라는 모양이다. 그녀가 가리킨 책상으로 향한 알베르트는 쌓인 물건을 정리했다. 책을 한쪽에 쌓아놓고, 시약병은 통째로 옮긴다. 손때 하나 묻지 않은 푸른 수정구까지 안전한 곳에 내려놓은 뒤에야 그는, 식탁보를 깔고 나이프와 포크를 차렸다.

접시 옆에 하얀 냅킨을 준비하고, 메인 요리를 상 위에 올린 그는 유피를 기다렸다.

“왜 네가 여기 있는 거야?”

“보다시피 식사를 준비해 왔어.”

연구를 마치고 온 유피는 긴 스톨을 네글리제 위에 둘렀다. 하얀 속살이 면적을 줄이자, 알베르트는 비로소 눈 둘 곳을 찾았다. 맨발을 그대로 드러낸 그녀는 의자에 앉았다. 책상 위에 준비된 요리를 본 유피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쩐지 점심이 늦는다 싶더니, 네가 중간에서 가로챘구나.”

“가로챈 건 아니고···. 점심이 조금 허전해 보이길래. 괜한 참견이었어?”

“알면 물어보지 마.”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불쾌함이 어려 있었다.

유피의 기분이 나쁜 것도 당연했다. 점심을 먹기에는 상당히 늦은 시간이다. 알베르트는 재료를 조달하기 위해 숲으로 나가야만 했고, 구해온 재료를 손질하는 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12시면 먹을 점심을 2시가 넘어가는 이 시간에야 보게 되었다.

“오래 기다린 만큼, 오늘 점심은 후회하지 않을 거야.”

“그랬으면 좋겠네.”

알베르트는 첫 번째 접시를 공개했다.

애피타이저로 준비해 온 요리는 귀리 빵으로 만든 토스트였다.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자른 토스트 위에는 작은 딸기가 데코레이션으로 올라가 있었다. 실망스러운 빛이 유피의 눈에 떠올랐다. 뭔가 특별한 요리가 나올 줄 알았는데, 막상 내용물을 공개하니 이 모양이다. 따뜻하게 데운 걸 제외하면 평소에 먹는 빵과 별로 다를 것도 없어 보였다.

유피는 손을 옮겨 귀리 토스트를 입으로 가져갔다.

체념했던 눈이 반짝 뜨였다. 순식간에 입안의 토스트를 먹어치운 유피는 다른 토스트로 손을 옮겼다. 시선을 내려 빵 안을 확인해보니, 울긋불긋한 색의 잼이 발라져 있었다.

“귀리 빵은 토스트로 만들었고, 안쪽에는 버터와 크랜베리 잼을 발랐어. 내가 먹으려고 만든 잼이어서, 다른 잼보다는 비교적 덜 달 거야. 유피의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어.”

“······.”

말없이 우물거리는 유피를 보니, 알베르트의 걱정은 기우였던 모양이다.

식전 토스트를 해치운 유피는 다음 접시로 손을 옮겼다. 안에서 나온 건 스테이크와 샐러드였다.

“사슴 고기야. 조리한 부분은 등살이고, 냄새를 잡기 위해서 와인을 조금 넣었어. 향신료는 많지 않더라고. 일단 사용할 수 있는 건 대부분 넣어봤는데, 생각보다 맛이 괜찮게 나왔어.”

과일까지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한겨울인 지금 과일을 구하는 건 무리였다.

사슴 고기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향긋한 냄새가 퍼졌다. 냄새에 반응한 유피의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유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알베르트는 말없이 그녀의 뒤로 물러났다.

스테이크를 입으로 가져간 유피는 눈을 감았다.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지는 것이 보였다. 배가 많이 고플 텐데도 그녀는 품위를 잃지 않고 천천히 포크를 들었다.

식사가 끝난 후 유피는 입가를 냅킨으로 닦았다.

“알은 이미 먹은 거야?”

“집사가 아가씨보다 먼저 식사를 할 순 없어.”

“이상한 데서 고지식하구나”

“말했잖아, 나는 일류 집사라고.”

꼿꼿이 허리를 편 알베르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재수 없어.”

“······.”

매력 어필은 고사하고, 역효과만 가져왔다.

“성안에 쓸만한 식재료가 몇 없어서 장을 좀 봐야 할 것 같아.”

“마계로 갈 살 생각은 아닐 테고, 돈은 충분해?”

“조금 모아둔 게 있어.”

저택 생활을 하면서 받은 봉급은 아쉽게도 사용할 수 없었다.

시험을 치르러 나올 때 가지고 오지도 않았을뿐더러, 지금 와서 챙기러 가는 것도 무리였다. 지금 쓸 돈은 알베르트가 고향에 두고 온 비상금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베르트의 고향인 라베린 도시는 금지된 숲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식재료도 그곳에서 조달한다고 하면, 성까지 오고 가는 길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유피는 손을 들었다.

공방 한쪽에 있던 검은 꾸러미가 알베르트 앞으로 날아왔다.

책상 위로 올라온 꾸러미 안쪽에는 환한 빛을 내는 금덩어리가 가득했다.

“너희 나라에서 쓰는 화폐는 없지만, 이거라면 환전할 수 있을 거야. 넉넉히 챙겨가.”

“이건···. 너무 많은데. 됐어, 유피. 그냥 내 돈으로 해결할게.”

“착각하지 마. 너 좋으라고 주는 게 아니니까.”

디캔더의 와인을 잔에 따른다. 화이트 와인을 받은 유피는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무심해 보이지만, 그건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의 속마음은 다르다. 아직은 서툴기만 한 유피의 배려를 보며 알베르트는 꾸러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알았어, 유피. 식재료를 사는 것 외에 다른 용도로는 쓰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좋은 마음가짐이야.”

꾸러미 안에는 금괴 외에도 가고일 모양을 한 인형과 약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담겨 있었다.

“그 인형은 널 숲 밖으로 안내해 줄 길잡이야. 착실하게 안내를 받는다면 하루도 안 돼서 다녀올 수 있을 거야. 숲과 연결된 인간들의 마을은 두 군데밖에 없으니까, 숲속에서 길을 잃는 일은 없을 거야.”

“이건 약이네.”

“맞아. 생소할지도 모르겠네. 우리 마족들이 쓰는 금창약(金瘡藥)이야. 마족이 다루는 치료 마법은 한정되어있으니까. 제국과는 달리 의학이 발달했거든.”

“치료 마법이?”

금창약은 예전에도 종종 본 일이 있었다. 그렇지만 치료 마법이 약하다는 말은 생소했다. 유피가 다루는 치료 마법은 루미에르 교의 사제들과 비교해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너희는 신성력을 다루지만, 우리에게 신성력은 독이니까.”

“음….”

다른 마족이 다루는 마법은 애초에 본 기억이 없다. 유피가 특별하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와인을 깨끗하게 비운 유피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술에 강한 편이 아니었다. 알코올이 많이 들어간 와인도 아닌데, 벌써 취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양손을 볼 위로 올린 그녀는 후우, 하고 뜨거워진 숨을 내뱉었다.

묘하게 야릇한 느낌이 난다. 이쪽을 올려다보는 얼굴에서 색기가 느껴졌다.

“용케도 잘 만들었구나. 재료가 많이 부족했을 텐데.”

“어떤 요리든 하나의 감정만 잘 담을 수 있으면 맛있어져.”

“감정?”

“응, 애정이지. 그게 친애의 정이든, 연심을 담은 정이든 간에 말이야.”

유피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된 게 넌 한결같구나. 하지만 내 대답은 똑같아. 좀 더 나이를 먹고 멋진 남자가 되면 찾아와. 그때라면 또 모르겠네.”

취중 진담이라고 하던가. 배시시 웃는 유피의 모습에 알베르트는 시선을 피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자신도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몸이 어려지면 마음도 어려지게 되는 걸까. 생각이 많다. 평점심, 평정심. 가면을 꺼내 쓰는 데 성공한 알베르트는 다시 유피를 보았다.

“유피만 괜찮다면 식사는 이제부터 내가 준비할게.”

“거절할 이유가 없네. 하지만 시간은 지켜줘. ”

식기를 정리한다.

양념밖에 남지 않은 접시를 카 위로 챙긴 알베르트는, 문득 복도에 있던 조각상을 떠올렸다. 직접 물어보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예민한 문제일지도 모르니까. 알베르트는 일단 유피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알코올이 들어간 그녀는 까닭 없이 기분이 좋아졌는지, 알 수 없는 코맹맹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고양이를 흉내 내고 있는 건지, 냥냥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공방 한쪽에 있던 책과 시약병들이 그녀의 마나에 반응해 떠올랐다가,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다행히 아직 깨진 물건은 보이지 않지만, 이 상태가 지속 되면 난장판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오는 길에 봤는데, 복도에 조각상이 많더라고. 예전부터 이 성에 있던 거야?”

“조각상? 아아, 그것들 말이구나. 그건 내가 갖다 놓은 물건들이 아니야. 일단 내 취향이 아니거든. 칙칙하잖아. 스켈레톤 모형이면 모를까 말이야.”

그럼? 하고 알베르트가 반문하자 유피는 애잔한 얼굴을 그렸다.

“우리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받은 선물이야.”

“어머니?”

유피의 어머니. 알베르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입을 다물던 그녀다. 혼혈이라는 출생 탓이리라. 어머니나 아버지에 대한 화제가 나오면 그녀는 입단속에 힘을 실었다.

“응. 우리 어머니는 루미에르 교도 그렇지만, 고대 문명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거든. 천마의 이야기나 우리가 받은 저주. 일찍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 그런데 이거 말하면 안 되는데.”

유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이 알베르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지척에 맞닿은 숨결이 알베르트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달콤한 향은 나지 않았다. 콧가를 간지럽히는 건 진한 알코올 냄새였다.

“못 됐구나, 알. 모시는 아가씨가 취한 사이를 노려서 뭘 물어보는 거야?”

“…….”

유피는 킥킥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풀썩, 하고 자리에 앉았다.

두근거리는 알베르트를 내버려 둔 채 그녀의 고개가 점점 앞으로 수그러들었다. 책상에 얼굴을 붙인 유피는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반복하더니, 이내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알베르트는 공방 한쪽에 있던 담요를 가져와 유피의 몸 위에 덮었다.

[마스터.]

‘아무 말도 하지 말게.’

이번 건 자신이 나빴다.

아무리 의문을 해결하고 싶었다지만, 술에 취한 유피를 상대로 물어볼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게 아닙니다. 안 덮치는 겁니까? 지금이라면 유피에르도 허락 사인을 준 거 아닙니까?]

‘자네는 성좌라고 그랬지. 혹시 성좌들에게는 발정기 같은 게 있는 건가?’

[발정기는 제가 아니라 마스터에게 왔겠죠. 지금도 불끈불끈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건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네. ’

아직 젊은 이 신체에 유피의 몸은 자극이 강했다.

알베르트는 유피의 공방을 뒤로했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가 이 일을 기억하고 있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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