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무인(武人)의 길(2) (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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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武人)의 길(2)

“그래서 사부님을 찾아 왔습니다. 지키기 위해서 배움을 청한 겁니다.”

[마스터가 얻은 힘은 위험하다고 하는군요. 한 사람이 쥐고 흔들기에는 터무니없이 큰 힘이랍니다.]

사부님의 대답을 들은 알베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사부님. 힘이 위험한 게 아닙니다. 힘 자체에는 선과 악이 없습니다. 그 힘을 쥐고 다루는 자가 위험한 겁니다.”

[······.]

힘은 잘못되지 않았다.

언제나 힘을 쥐고 누리는 쪽이 잘못됐었다. 이전 삶에서는 마족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압도적인 힘으로 제국을 침략했고, 이윽고 신민을 학살했다. 그 마수는 결국 제국의 수호자였던 아가씨마저 앗아갔다.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재능도, 노력도, 기질도.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시간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미 절벽을 향해 달리고 있는 마차입니다. 떨어지고 나면 멈출 방법이 없습니다. 사부님에게 가르침을 청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 단시간 안에 제가 사부님이 걱정하실만한 힘을 손에 넣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사부님의 눈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 눈빛에 깃든 감정은 어둡고 혼탁한 것으로 보였다. 알베르트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감정. 그건 광기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 사부님의 눈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사부님은 손을 들었다.

그 손끝에는 하늘이 있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사부님의 허리춤에 있던 지팡이 검이 분리되었다. 햇빛 아래로 드러난 하얀 검신이 눈부시게 빛났다. 사부님의 손가락을 따라 검은 두둥실 떠올랐다.

마나도 비명을 지른다는 걸, 알베르트는 그 순간 처음으로 깨달았다.

사부님의 몸 어디에 그런 힘이 숨겨져 있는 걸까. 발현된 마나가 끝도 없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마나의 흐름이 너무 밀집된 나머지 사부님의 주변 풍경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폭발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이 알베르트의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주변을 잠식하던 기운이 일순간 하나로 합쳐졌다.

찬란한 빛이 눈 위로 떨어졌다.

검붉은 빛의 오러. 사부님의 검 끝에서 칠흑과도 비슷한 붉은 오러가 솟아났다.

흐릿한 연기와도 같던 알베르트의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처음부터 완벽한 형상을 한 오러는 검신을 덮었다. 완성된 오러 블레이드. 그 위에 덧씌워진 검붉은 오러는 끊임없이 타올랐다.

주인의 부름에 답하듯이 우웅, 하고 깊은 검명이 났다.

허공에서 부르르 떨리던 검은 이내 하늘로 치솟았다.

승천한 검이 지나간 자리에는, 타오르는 붉은 궤적만이 잔재했다.

사부님이 보인 수가 무엇인지 알베르트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다. 무(武)에 끝이 있다면 방금 사부님의 손에서 펼쳐진 기예가 아닐까?

“사부님은 무의 끝을 보신 겁니까?”

[그는···.]

갑자기 천칭의 목소리가 끊겼다. 무슨 일인가 싶어 알베르트가 되물으려 할 때.

『끝은 없다. 순환만이 있을 뿐.』

또 하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사부님?”

『끊임없이 반복되는 순환 속에 오를 뿐이다. 무를 닦는다면 누구나 그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된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천칭의 목소리와는 다르다.

중후하게 울리는 사부님의 음성은 마치 귀를 통해 들리는 것 같았다.

『아이야, 너는 그랬지. 힘을 원해서 이 몸을 찾아 왔다고. 네가 이 몸을 골랐다고 말이다. 하지만 네가 이 몸을 고른 게 아니다.』

“사부님께서 절 고르셨다는 말씀을 하고 싶은 겁니까?”

『이 몸이 널 고른 것도 아니다. 위대한 무의 의지가, 널 선택한 것이다.』

“······.”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해하지 못한 알베르트를 앞에 둔 채 사부님은 물었다.

『힘을 원하느냐?』

“사부님이 지금까지 가르쳐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걸 묻는 게 아니다. 네가 바라는 힘, 모든 걸 지킬 수 있는 힘.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을 원하느냐?』

“······.”

사부님이 조금 전에 보였던 힘.

알베르트는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는 힘에 대해서 사부님은 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사부님이 베풀던 가르침과는 달랐다.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그 제안에서는 달콤하면서도 섬뜩한 기류가 느껴졌다.

“강력한 마법에는 족쇄와도 같은 제약이 따라왔습니다. 하물며 사부님이 말씀하시는 힘이라면, 마법마저 뛰어넘는 힘이겠죠. 그렇다면 대가는 무엇입니까?”

『대가는 없다. 다만···.』

“다만?”

『무의 길을 걷는 자가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

『그것이 무인(武人)이다.』

사부님은 지팡이로 알베르트와 자신의 발치를 그었다.

『만약 네가 힘을 얻고 싶다면 이 선을 넘어와라.』

알베르트는 망설였다. 이전의 그였다면 머뭇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롯과의 교전에서 마치 검과 하나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 그는 쉽사리 발을 뻗지 못했다.

그때 몸 안을 달렸던 것은 황홀감이었다. 길고 긴 인생 동안 그런 충족감을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아가씨는 힘을 쓸 때마다 그런 감각을 느꼈던 것일까. 이성이 마비되어버릴 것 같은 달콤함. 그것이 힘에 취한다는 걸지도 모른다.

알베르트는 자신의 두 손을 보았다.

그 황홀감을 다시 느낀다면 자신은 멈출 수 있을까? 한두 번은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면 이성을 붙잡아 둘 자신이 없었다. 힘에 취해 선과 악의 경계선이 아무래도 좋아지고 말 것이다.

만약 그 상태에 빠진 자신의 검이 아가씨나 유피에르를 향한다면···?

아가씨를 구하기 위해서 갈구했던 힘이, 아가씨를 파멸로 몰고 간다면?

그런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저는, 그런 힘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것이 알베르트의 대답이었다.

이제 간신히 겉핥기식으로 배운 초식마저 그런 힘을 냈다. 사부님이 손에 쥐고 다루는 힘을 이 손에서 펼쳐내게 된다면, 자신은 분명 그 힘에 취하고 말 것이다.

『힘이 두려우냐?』

“두렵습니다.”

『조금 전과는 말이 다르구나. 힘에는 선악이 없다. 선악이 있는 것은 그걸 손에 쥔 자라고 말하지 않았더냐?』

“제가 사부님처럼 강했다면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약합니다. 제 분수를 넘는 힘을 손에 쥔다면 분명 망가질 것입니다.”

알베르트는 얄팍한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작은 불꽃을 키울 필요는 없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뭐든지 자신의 마음대로는 할 수 없다.

바라고 원하더라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알베르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자신은 강자가 아니다.

그저 어쭙잖은 힘을 손에 넣은 약자에 불과하다.

알베르트는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힘을 손에 넣은 자신이 과연 알베르트로 있을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 였다.

그러니까 지금 손에 쥔 힘으로도 충분했다. 이 이상은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이었다.

과욕은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을 부술지도 몰랐다.

대답을 들은 사부님은 검이 빠져나간 지팡이 검집을 들었다.

쐐액, 하는 낙하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승천했던 검이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좋은 대답이다. 탁상공론밖에 못 하는 학자들이 하는 말은 다 쓸데없는 것이지. 힘이라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두려워해야 한다. 네가 힘을 다룰 생각이라면 결코 그 마음을 잊지 말아라, 란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여.』

“사부님···?”

이것도 일종의 시험이었던 걸까?

멍하니 반문하는 알베르트의 엉덩이를 사부님은 발로 걷어찼다. 엉거주춤 넘어진 알베르트의 손 아래에서 사부님이 그은 선이 지워졌다.

『따라오거라.』

“사부님, 저는···.”

『말이 많구나. 이 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점에서, 너는 이미 훌륭한 무인이다. 무를 추구하면서도 인간의 행복을 바란다. 보통은 이룰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본좌의 가르침을 따라올 수 있다면, 이루지 못할 것도 아니지.』

사부님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알베르트가 사부님을 본 이후 처음으로, 그는 성문과 정원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성안 쪽으로, 알베르트가 가보지 못한 곳으로 사부님은 계속 걸음을 옮겼다.

사부님이 안내한 곳은 후원 깊숙한 곳에 있는 창고였다. 유피에르가 그나마 사용하는 홀도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장소였는데, 이곳은 아예 버려진 곳 같았다.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창고는 먼지와 벌레로 가득했다. 술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나무통과 하얀 먼지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던 사부님은 창고 끝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발치에는 고목으로 된 커다란 덮개가 있었다.

“문, 입니까?”

『열거라.』

고목으로 된 문은 얼마나 무거운지, 알베르트의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신체의 마나를 활성화한 후에야 알베르트는 간신히 덮개를 열 수 있었다. 쿵, 하고 바닥에 떨어진 덮개는 하얀 먼지를 일으켰다. 손등으로 입가를 가린 알베르트는 덮개 아래로 드러난 통로를 볼 수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100일 주마. 100일 안에 이곳을 정화해라. 본좌가 네게 내리는 입문 시험이다.』

“입문 시험이요···?”

『통과한다면 널 본좌의 정식 제자로 받아들여 주마.』

“······.”

알베르트는 통로를 내려다보았다.

어두운 지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싸늘한 한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불만이냐? 너에게 거절할 권리는···.』

“아뇨. 어차피 제가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성의 청소니까요.”

가능하다면 유피에르가 자주 사용하는 홀부터 청소하고 싶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청소는 내부부터 시작해서 외부로 나아간다. 내부 중에서도 가장 안쪽인 지하부터 시작하면 순서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 청소와 수련을 병행할 수 있다면 알베르트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유피에르와 약속했거든요. 이 성을 그녀에게 어울리는 성으로 바꿔 보이겠다고.”

유피에르의 세계는 이 성이 전부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찬 작은 성. 한 걸음만 옮겨도 다양한 스켈레톤이 주변을 지키고 있다. 누구 하나 간섭하는 사람은 없다. 듣고 싶은 것만 들어도 되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지 않아도 된다. 손님을 거절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채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원할 때는 언제나 손을 뻗어 인족을 관찰한다.

마치 철이 없는 아이가 만든 모래성이나 다름없다.

원하는 것을 손쉽게 만들고, 원하지 않는 것은 손쉽게 무너뜨린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 작은 성안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를 둘러싼 환경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이전 시대의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성 밖으로 나온 그녀는 세상과 마주했다. 알베르트를 만나고, 아가씨를 만나고. 수도에서 많은 인간을 두 눈으로 보았다. 다만, 그 시기가 늦었을 뿐이다.

『네가 할 수 있겠느냐?』

“제가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사부님.”

소꿉놀이는 언젠가 끝이 난다.

아이가 어른이 되듯이, 작은 새장에서 벗어나 푸른 하늘(蒼天)로 날아올라야 하는 법이다.

유피에르는 무서운 것이다.

처음으로 하는 비행, 과연 자신의 날개로 새장을 벗어날 수 있을지, 새장에서 벗어난 세계가 자신에게 친절할지. 끝없는 하늘을 아무런 이정표도 없이 날아가는 게 두려운 것이리라.

혼자서는 누구나 그렇다.

그건 알베르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그녀와 둘이서 걸어 나가고 싶었다.

“이런 저라도, 이정표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알베르트를 가만히 응시하던 사부님은 말을 이었다.

『이정표라···. 그것 또한 하나의 길이겠지. 가거라, 아이야.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마.』

“걱정하지 마세요, 사부님. 100일은 너무 기니, 50일 안에 정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두 손을 마주 모은 알베르트는 사부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지팡이 검과 양초를 쥔 알베르트는 지하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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