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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고성의 스켈레톤(2) (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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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의 스켈레톤(2)

    요즘 들어서 기절하는 일이 많아진 것 같다.

    거미줄이 처진 천장을 바라보며 알베르트는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쓰러진 지 며칠이나 지났나?’

    [5일 쨉니다, 마스터. 이제 좀 정신이 드시나 보군요.]

    사부님의 가르침을 받은 지 35일차라는 말이다.

    쓰러지기 전의 일은 기억난다. 마치 불 속에 뛰어든 불나방처럼 몸 전체가 타오르던 끔찍한 통증. 무심코 알베르트는 자신의 몸을 만져보았다. 화상을 입은 곳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투성이던 몸이 어딘지 모르게 깨끗하게 변한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신체가 가벼워진 느낌. 머릿속도 무언가 개운해진 기분이었다.

    알베르트는 몸 안의 마나를 확인해보았다.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마나가 손쉽게 움직였다. 사부님이 태워버린 거로 생각되던 길은 마치 정비된 도로처럼 부드럽게 나아갔다. 혹시나 하지만, 사부님이 가르쳐준 건 마나 연공법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제국 내에서도 저명한 기사단들은 모두 마나 연공법이라는 특수한 기술을 사용했다. 루드비히 공작의 휘하에 있는 사자기사단만 해도 오전 일과 중에 마나 연공법 시간이 있었다.

    알베르트는 말끔하게 트인 길을 따라 마나를 일주천시켰다.

    [마족은 내공심법(內功心法)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이 다루는 연공법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인간도 다룰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는데, 이제 보니 별 문제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런 것 같군. 몸 안의 마나가 완전히 달라졌네.’

    알베르트가 마석으로 흡수한 마나는 잘 운용되지 않았다.

    마석으로 흡수한 마나는 마치 하나의 돌덩어리와도 비슷했는데, 그 덩어리를 천천히 녹여가며 자신의 몸으로 흡수하는 방식이었다. 알베르트의 몸에는 수십 개가 넣는 마석 덩어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덩어리가 모두 녹아 있었다. 흘러나온 마나의 양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몸 안 곳곳으로 퍼진 마나는 알베르트의 의지에 응해주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오러를 뽑아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알베르트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5일 만에 내려온 정원은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주변을 오가는 스켈레톤과 정리되지 않은 수풀. 막무가내로 자란 잔가지가 사방으로 삐친 정원은 마치 버려진 숲을 보는 것 같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이곳을 정리해보고 싶다. 그런 감상은 치워둔 채 알베르트는 뼈 무더기 속에 널브러진 녹슨 검을 들어보았다.

    몽둥이에 가까운 검. 벤다기보다는 뚜드려 패는 용도에 더 어울릴 것 같은 검에 알베르트는 마나를 불어넣어 보았다. 우웅, 거리며 검명이 울렸다. 검은빛의 기운이 검신을 두르는가 싶더니 이내 검은 산산이 조각났다.

    [실패군요, 마스터.]

    검이 알베르트의 마나를 버티지 못한 것 같다. 별수 없다. 다른 검을 찾은 알베르트가 다시 한 번 마나를 넣으려고 할 때였다. 알베르트의 뒤통수를 무언가가 후려갈겼다.

    “큭!”

    뒷머리를 부여잡은 알베르트가 뒤를 돌아보았다.

    지팡이를 든 스켈레톤이 못마땅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부님.”

    알베르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알베르트의 인사를 받은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내밀었다. 사부님이 갖고 있던 지팡이와 똑같은 물건이었다.

    “이걸, 제게 말입니까?”

    사부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님이 주는 선물인 걸까? 조심스레 지팡이를 받은 알베르트는 몸체를 살펴보았다.

    손잡이 부분에 작은 균열이 있는 게 보였다. 힘으로 지팡이 안의 검을 뽑아보려 했지만, 검신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잠시 지팡이를 잡고 낑낑대던 알베르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나를 넣어보았다.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지팡이의 균열이 열렸다. 지팡이 안쪽에서 스르르 흘러나온 검신은 아름다운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알베르트는 지팡이 안으로 검을 집어넣었다. 사부님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팡이를 쥔 알베르트는 호기롭게 말했다.

    “이번에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겁니다.”

    알베르트의 목소리에 반응하듯이, 신체의 마나가 춤을 췄다.

    *&*

    ‘하늘이 맑군.’

    [그렇군요, 마스터.]

    ‘눈이 안 오는 게 천만다행이야.’

    [눈이 왔어도 별로 달라질 건 없었다고 봅니다만.]

    ‘아니, 혹시 아는가? 사부님이 빙판에 미끄러졌을지.’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길 바랍니다, 마스터.]

    정원 땅바닥에 누운 알베르트의 몸에는 짙푸른 멍이 남아 있었다. 조금 전 사부님과의 대련이 끝난 참이다. 분명 몸의 상태가 완전히 달라졌을 터인데, 사부님의 지팡이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피하는 건 고사하고, 막아낸 것조차 없다. 몸이 가벼워졌던 것은 마치 자신의 착각이라는 기분이 들 정도다.

    시야 한 편에서 까악, 까악 하고 보랏빛의 까마귀가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딸그닥 딸그닥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알베르트가 시선을 올려보니 사부님의 턱이 연신 부딪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아, 그렇구나. 사부님은 웃고 있었다. 떨리는 아래턱을 보아하니, 해골이라도 저런 식으로 웃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지금까지 봤다고 생각했던 사부님의 웃음은 진짜로 웃던 게 맞았던 걸까?

    모르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사부님은 분명 사람을 괴롭히는 악취미가 있다.

    다른 방법을 통해서 가르침을 줄 수 있다고 해도, 그는 그 방법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 기분이 나쁘군요.]

    ‘이럴 때는 더럽다고 말하는 걸세.’

    알베르트는 조금 거친 목소리를 뱉어냈다.

    50일차.

    알베르트의 움직임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사부님이 가르쳐준 내공심법 때문일까. 몸 안의 마나는 알베르트가 의식하는 것보다 먼저 움직여주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럼에도 사부와의 대련은 똑같다. 달라지는 게 없다. 매번 뚜드려 맞고, 그때마다 차디찬 정원 바닥에 드러눕게 된다. 나름 변수라고 생각한 방법을 써 봐도 결과는 똑같았다.

    처음에는 알베르트도 혹시 자신의 성장이 정체된 건 아닐까 싶었다. 불안한 마음에 대련이 끝난 후에도 방 안에서 수련을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성장이 멈춘 게 아니다. 사부는 자신의 성장 속도에 맞춰서 강도를 올리고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대단한 분이군.’

    [정체가 궁금해지는군요. 이런 실력을 갖춘 사람이 무명의 검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2차 대전쟁의 영웅, 검성이라고 불렸던 블라드 루드비히의 경지가 이 정도였을까?

    루드비히 가문의 초대 공작이라는 제국 최강의 기사. 전설 속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는 경지가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는 검의 달인이다. 그의 검이 휘둘러질 때면 땅이 갈라지고, 번개가 치는 것과도 같았다고 하는데, 눈앞의 사부님을 보고 있으면 그 전설이 허황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됐다.

    ‘만약 내가 사부님과 같은 힘을 갖게 된다면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겠구먼.’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을 생각하시죠, 마스터.]

    이 길의 끝에 저만한 힘을 다룰 수 있다면, 알베르트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건 분명 아무것도 없으리라.

    60일차.

    사부님은 정원의 나무 앞에 서 있었다. 매번 올려다보고 있던 바로 그 나무다. 정원으로 내려온 알베르트의 인사를 받은 사부님은, 주변에 흩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들었다. 뼈로 된 손가락이 나뭇가지를 쥐었다. 어디 하나 특출난 기색이 보이지 않는 평범한 나뭇가지다. 그 나뭇가지를 사부님은 그대로 나무에 찔러 넣었다.

    푹, 하고 관통음이 울렸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나뭇가지가 나무를 뚫고 박혀 있었다.

    “······.”

    [······.]

    마나의 흐름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부님은 그저 단순하게,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찔러 넣었을 뿐이다.

    ‘천칭.’

    [마스터가 보신 게 맞습니다. 그는 마나를 운용하지 않았습니다.]

    ‘쇠꼬챙이였나?’

    [그랬으면 좋겠군요.]

    하나 더 나뭇가지를 주운 사부님은 알베르트를 향해 내밀었다. 그는 나무를 툭툭 두들겼다.

    한 번 해보라는 것 같다.

    알베르트는 엉거주춤 나무 앞에 섰다. 손안에 쥔 나뭇가지는 세게 쥐면 부러질 것 같다.

    사부님의 나뭇가지보다는 좀 더 마디가 굵어 보이지만, 거목의 두께와 비교하면 아무 의미도 없다. 깊게 숨을 내뱉은 알베르트는 나뭇가지를 단숨에 찔렀다.

    우두둑, 하고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

    [······.]

    아니, 뭐. 이게 당연한 이치겠지만.

    사부님은 몸을 숙였다. 주운 나뭇가지를 재차 그에게 건넸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그저 부러진 나뭇조각이 땅바닥에 떨어졌을 뿐이다.

    “사부님, 아직 제게는 무리입니다.”

    차라리 나뭇가지에 오러를 두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이 아닌 나뭇가지에 오러를 생성하는 건 알베르트의 실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나뭇가지로 흘러 들어간 마나는 그대로 흩어졌다.

    사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나무를 손으로 가격했다.

    나뭇가지와 죽은 나뭇잎이 수두룩 떨어졌다. 할 말은 그것이 전부라는 듯, 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남은 건 떨어지는 나뭇잎과 알베르트뿐이다.

    [될 때까지 하라는 것 같습니다.]

    ‘말해줄 필요 없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네.’

    우뚝 선 거목을 두들겨 본 알베르트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이걸 성공할 수 있을지, 그는 자신이 없었다.

    70일차.

    알베르트는 거목을 올려다보았다. 거목에는 보이지 않던 상처가 많이 늘어나 있었다. 나무에 박힌 나뭇가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하나뿐이다. 사부님이 꽂아 넣었던 나뭇가지다. 알베르트가 시도했던 나뭇가지는 그의 발치에 흩뿌려져 있었다.

    ‘혹시 우리가 몰랐을 뿐이지, 사부님은 마나를 쓴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하지만 말이 안 되질 않나.’

    거목을 뚫고 들어간 사부님의 나뭇가지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반면, 알베르트의 나뭇가지는 어느 것 하나 성공하지 못했다.

    사부님은 주변을 멍하니 둘러보고 있었다. 실패만 반복하는 제자가 신경 쓰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알베르트는 나뭇가지에 마나를 흘러 넣어보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넣는 것처럼 마나는 금방 흩어졌다. 그래도 마나가 흐르고 있는 동안에는 나뭇가지는 단단한 강도를 가졌다. 그렇다고 하면···.

    사부를 흘깃 살펴본 알베르트는 나뭇가지에 억지로 마나를 쑤셔 넣었다. 부르르 떠는 나뭇가지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산산조각이 나는 검을 떠올린 알베르트는 마나가 흩어지기 전에 나뭇가지를 나무에 박아 넣었다.

    쿡, 하고 나뭇가지의 끝이 나무를 관통했다.

    “좋았···. 우악!”

    알베르트의 뒤통수에서 통증이 달렸다.

    언제 다가온 것인지, 지팡이를 휘두른 사부가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거, 반칙이랍니다.]

    “아니,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뭔가 속임수라도 쓰신 거 아닙니까?”

    뒤통수를 부여잡은 알베르트는 사부님에게 원망의 시선을 보냈다.

    사부님은 떨어진 나뭇가지로 손을 옮겼다. 한 번 더 보라는 건지, 그는 툭툭 나뭇가지를 두들겼다. 손가락 안에서 한마디도 안 되는 나뭇가지가 쉽게 부러졌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든 사부님은 그대로 나무를 향해 손을 옮겼다.

    [또 박혔군요.]

    “······.”

    어떤 기교도, 재주도 없다. 그저 일직선으로 나아간 나뭇가지는 나무에 박혔다.

    팔짱을 낀 사부님은 알베르트를 바라보았다. 알베르트는 다시 나뭇가지를 주웠다. 며칠 동안 반복했던 자세 그대로 그는 나뭇가지를 찔러 넣었다. 이번에도 실패다. 나무에는 애꿎은 상처만 늘었다.

    고개를 가로젓는 알베르트를 보며 사부님은 다시 한 번 나뭇가지를 잡았다. 한 번 더 나뭇가지가 나무를 관통했다. 어느덧 3개로 늘어버린 나뭇가지는 나무에 삼각형처럼 박혀 있었다. 사부님은 알베르트에게 나뭇가지를 건넸다. 손안에서 나뭇가지를 굴려본 알베르트는 나무를 향해 찔렀다.

    딱, 하고 사부님의 지팡이가 알베르트의 다리를 가격했다.

    알베르트의 자세가 무너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지팡이가 그의 허리를 때렸다.

    “뭐, 뭡니까?”

    사부님은 턱짓을 보냈다. 다시 한 번 해보라는 모양이다.

    다리를 문지른 알베르트가 나무를 향해 나뭇가지를 찔러 넣자 또 한 번, 지팡이가 그의 허리와 다리를 때렸다.

    [마스터.]

    이유 없이 괴롭히고 있는 게 아니다. 사부님의 지팡이는 다리 안쪽과 허리를 두들겼다.

    사부님은 마지막이라는 듯 앙상한 검지를 들었다. 나뭇가지를 주운 그는 나무가 아닌 허공을 향해 내질렀다. 공기를 꿰뚫는 파공성이 울렸다.

    아직도 모르겠느냐는 듯 가만히 응시해오는 사부님의 시선을 느낀 알베르트는 깨달았다.

    ‘내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네.’

    중요한 건 나무를 꿰뚫는 게 아니었다. 알베르트는 사부님의 자세를 떠올려보았다. 살짝 구부러졌던 다리와 꼿꼿이 세웠던 허리. 팔의 기울기와 나아가던 속도. 천천히 그의 자세를 모방한 알베르트는 허공에 나뭇가지를 찔러보았다.

    휙, 하고 이전과는 달리 바람을 가르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손안에 잡히는 감각이 다르다. 알베르트는 고개를 들었다. 사부님의 지팡이는 휘둘러지지 않았다. 가만히 이쪽을 지켜보더니 이내 만족한 건지, 그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알베르트는 그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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