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고성의 스켈레톤(1) (9/200)

 # 9

고성의 스켈레톤(1)

1일차.

내리쬐는 햇살이 하얗게 바스러지고 있었다. 어제 내렸던 눈발이 거짓말 같다. 블라우에게서 귀리 빵과 물을 얻어온 알베르트는 늦은 아침을 먹으면서 사부님을 지켜보았다. 정원 바닥은 생각보다 더 차가웠다. 자세를 몇 번이나 고쳐봤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바닥은 없었다. 사부님은 온종일 나무만 쳐다보고 있었다. 기다리는 그를 향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해가 지고 난 뒤 알베르트는 방으로 돌아왔다.

2일차.

사부님은 오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는 햇볕이 드는 장소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혹시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인가 싶어 알베르트가 몇 시간을 들여 관찰한 결과. 그저 입안에 물이 생기기를 기다린 행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알베르트의 생각보다 사부님은 괴짜일지도 모른다.

3일차.

사부님의 손에서 지팡이가 빙빙 돌고 있었다. 보행을 보조하기 위한 지팡이가 아니었는지, 지팡이는 마치 깃펜처럼 회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채 몇 분이 이어지지 않았다. 지팡이를 돌리는 행위에 질려버린 사부님은 다시 나무로 시선을 옮겼다. 그 날도 사부님은 알베르트를 돌아보지 않았다.

5일차.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천칭이 드물게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 미친 짓이다. 스켈레톤은 그저 언데드다고 말이다. 자율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천칭의 주장이었다. 스켈레톤 문지기에게 이성 같은 건 없다. 그저 유피에르가 알베르트를 놀리기 위해 가끔 장난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알베르트는 천칭의 항의를 웃어넘겼다.

현 상황이 갑갑한 나머지 그가 불만을 토로했다는 것을 알베르트는 알고 있었다.

사실 천칭이 알베르트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눈앞의 스켈레톤은 유피에르가 조종하는 언데드가 아니다. 의지가 없는 존재는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을 그는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낡은 삿갓을 눌러쓴 스켈레톤은 특별한 존재였다.

7일차.

새벽부터 이어진 눈발은 아침이 되도 그치지 않았다.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알베르트는 사부님을 관찰했다. 처음에는 눈을 맞으며 문을 지키고 있던 사부님이었지만, 본격적으로 눈이 거세지자 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삿갓 위에 쌓인 눈을 털어내던 사부님은 이내 그 행위를 중단했다. 아무리 털어도 눈이 금방 쌓이는 터라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이날, 온종일 눈을 맞은 알베르트는 감기에 걸렸다.

8일차.

감기에 시달리면서도 알베르트는 사부님을 관찰했다. 콜록거리는 알베르트에게 관심을 보일만도 했지만, 사부님은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눈꽃이 핀 나무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콧물을 훔치는 알베르트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블라우는 그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곰팡이가 핀 손수건은 아쉽게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도 알베르트는 유피에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10일차.

망부석처럼 자리를 지키던 사부님이 드디어 움직였다.

성을 향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온 것이다. 길을 잘못 들린 거로 보이는 미노타우로스(Minotaur)는 성 앞을 기웃거렸다. 금지된 숲에서 서식하는 마물답게 여타 미노타우로스와는 그 무기부터 남달랐다. 방금 전까지 다른 마물을 사냥하고 있던 건지, 배틀 엑스(Battle Ax)는 피와 살점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사부님은 그런 미노타우로스의 앞에 섰다. 지팡이에 몸을 지지한 스켈레톤은 마물을 올려다보았다. 하급 언데드와 상급 마물이 서로 마주 보았다. 우스운 광경이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스켈레톤을 보고 미노타우로스도 어이가 없었는지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웃음소리가 녀석의 마지막 행위가 되었다.

[마스터!]

‘봤는가?’

보이지 않았다.

사부님에게서 한 시도 눈을 떼지 않던 알베르트조차 번뜩이는 광채만을 보았다.

미노타우로스는 움직이지 않는다. 지팡이에 지지하고 있던 사부님은 문으로 돌아왔다. 제자리로 돌아온 사부님의 눈이 나무를 향하는 것과 동시에 미노타우로스의 몸이 반으로 쪼개졌다. 쿵, 하는 굉음과 함께 쓰러진 미노타우로스의 시체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잠시 후, 성안을 돌아다니던 스켈레톤들이 고기 조각이 된 미노타우로스의 시체를 치우기 시작했다.

[믿을 수가 없군요. 스켈레톤 주제에 무슨···.]

‘이제 내 말을 좀 믿어주겠나?’

알베르트의 눈을 틀리지 않았다.

눈앞의 스켈레톤은 이미 스켈레톤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다.

14일차.

오늘도 사부님은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문 앞에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무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무 위에는 보랏빛의 까마귀가 앉아 있었다. 사부님은 까마귀를 보는 것 같지는 않다. 평소와 똑같은 자리에 까마귀가 나타났을 뿐이다. 알베르트는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그는 자신이 앉아 있던 장소에 녹슨 검과 어떤 글자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마스터.]

‘이제 시작할 수 있겠구먼.’

사부님이 남긴 거로 보이는 글자는 하나다. 대륙의 공용어는 아니다. 마족의 언어다.

다행히 어려운 단어는 아니었다. 유피에르에게 배웠던 마족의 언어를 떠올린 알베르트는 금방 해독할 수 있었다.

鬪.

싸움. 사부님은 대련을 원하고 있었다.

알베르트는 녹슨 검을 들었다.

알베르트가 검을 쥐자 사부님이 처음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지팡이를 쥔 오른손은 움직이지 않는다. 자유로운 왼손만이 그를 향해 까닥, 하고 움직였다. 알베르트는 검을 뽑았다. 이곳저곳이 녹슬고 이가 빠진 무기는, 검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볼썽사나운 행색이었다.

오히려 몽둥이에 가깝다고 하는 편이 어울렸다. 그저 검의 모양새를 하고 있을 뿐인 무기. 그렇다고 해도 녹슨 검의 무게감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검을 든 알베르트는 사부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무운을, 마스터.]

땅을 박찬 알베르트는 사부님을 향해 쇄도했다.

그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 마석에서 흡수한 마나로 강화한 신체는 순식간에 사부님과의 거리를 좁혔다. 검의 리치 안에 사부님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다. 알베르트의 녹슨 검이 사부님의 머리를 향했다. 검이 삿갓 앞에 당도했다. 그래도 사부님은 반응하지 않는다. 닿는다. 피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딱, 하고 알베르트의 눈앞에서 별이 반짝였다.

검로가 어긋난다. 사부님의 발이 움직였다. 틀어진 검이 허공을 스쳤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알베르트의 등을 지팡이가 찔렀다.

“읏!”

알베르트는 등을 움켜잡고 뒤로 물러났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머리와 등에서 달리는 통증은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부님의 자세는 조금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알베르트를 도발하듯이 까닥거리는 손가락도 그대로다. 알베르트는 재차 사부님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크억!”

알베르트의 몸이 앞으로 꺾였다. 무언가에 가격당한 복부를 쥐어 잡은 그는 입가를 닦았다.

사부님의 모습은 달라진 것이 없다. 처음과 같은 자세 그대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알 수 있었다.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사부님은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그 신형이 두 개로 늘어난 것을 볼 수 있었다.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사부님과 알베르트의 앞에 나타난 사부님. 그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휘둘렀다. 얼마나 수준 차이가 벌어져 있는지 짐작도 할 수 없다.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니.

[이형환위(移形換位)!]

무언가 알고 있는지 천칭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그게 무엇인지 자네는 알고 있나 보군. 마법인가?’

[마법이 아닙니다, 마스터. 1황자인 시더가 쓰는 걸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가 전 마스터에게 말했습니다. 무의 극한에 달한 마족이 쓸 수 있는 체술이라고.]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방금 그게 체술이라고?’

차라리 마법이라고 말해줬으면 했다. 대륙의 어떤 기사도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는 없다. 신속으로 다가오는 것은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마치 두 사람이 된 것처럼 늘어나는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충격에 빠진 알베르트를 사부님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가 들어오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본격적으로 사부님은 움직임을 취했다. 씨익, 하고 골격만 남은 해골의 입이 웃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사부님과 대련을 시작한 첫날, 알베르트는 수백 대를 뚜드려 맞고 기절했다.

20일차.

오늘도 알베르트는 온종일 두들겨 맞았다.

맞는 데 요령이 생기다 보니 이제는 어느 부위를 맞아야 덜 아픈 건지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맞는 횟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몸을 비트는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사부님의 지팡이는 팔로 가리지 못한 부분을 노렸다. 통증이 심하다. 근육통에 시달리면서 알베르트는 생각했다. 혹시 사부님은 그를 제자로 생각한 게 아니라 심심풀이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25일차.

사부님이 쓰는 지팡이의 정체는 검이었다. 손잡이는 일종의 힐트(Hilt)였으며, 분리된 지팡이 안쪽에는 검신이 담겨있었다. 지팡이 자체가 검집이라는 기믹을 사용했다고 봐야 하리라. 지팡이 검. 하지만 알베르트와 대련을 하는 사부님은 검을 뽑지 않았다. 그저 검집인 지팡이를 휘둘러 알베르트를 구타했다. 나름 몸을 틀어서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사부님의 지팡이에는 용서가 없었다.

30일차.

대련을 빙자한 구타가 오늘도 이어지는 것일까. 아픈 몸을 이끌고 내려온 알베르트를 맞이한 사부님의 손에는 다행히 지팡이가 보이지 않았다. 알베르트를 본 사부님은 자리에 앉았다. 그는 매번 알베르트가 앉아 있던 자리를 앙상한 손으로 두들겼다.

[앉으라는 것 같군요.]

알베르트가 정원 바닥에 앉자, 사부님은 그의 뒤로 다가왔다.

뼈밖에 남지 않은 손바닥이 알베르트의 등을 짚었다. 사부님의 손바닥과 맞닿은 등에서 무언가 강렬한 기운이 알베르트의 몸 안으로 쏟아졌다. 갑작스러운 마나에 알베르트가 몸을 꺾으려고 한순간, 낯선 목소리가 머릿속을 강타했다.

『喝!』

몸을 비틀려던 알베르트는 가까스로 움직임을 멈췄다. 천칭이 아니다.

머릿속에 울린 목소리는 마족의 언어였다. 처음으로 들은 사부님의 목소리는 경고였다. 뭘 하고자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움직이면 안 된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였다. 알베르트의 몸 안을 파고든 마나는 마치 혈관 속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생리적인 혐오감이 몸 전체에 달렸다. 막을 방법이 없다. 항거할 수 없는 파도가 몸을 덮쳤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력감이 그를 지배했다.

요 며칠간 계속된 사부님의 지팡이 구타와는 또 다른 느낌의 통증이다. 신체 내부를 갉아먹는 느낌. 차라리 구타를 당하는 쪽이 낫다. 몸 안쪽을 뒤집어버리는 고통은 참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사부님의 마나가 휩쓸고 간 자리는 화상을 입은 것처럼 타오르는 아픔이 달렸다. 신음이 새어 나올 것 같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알베르트는 입을 벌렸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잠시 신체의 제어를 제가 맡겠습니다.]

알베르트의 입이 강제로 닫혔다.

분명 자신의 몸일 터인데, 마비가 온 것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끔찍한 통증이 달렸다. 알베르트의 몸을 헤집은 사부님의 마나는 멈추지 않는다. 이미 몸 전체를 한 번 돌았음에도, 타오르는 마나는 다시 한 번 혈로를 달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극심한 통증에 의식이 떨어지고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이윽고 아픔이 사라졌다. 통증 대신에 느껴지는 것은 오묘한 순환을 반복하는 마나다. 혈도를 타고 달리는 마나는 알베르트가 생각할 수 없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아지경에 빠진 알베르트는 사부님의 마나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자신의 마나를 운용하고 있었다.

울컥, 하고 알베르트는 피를 토해냈다. 검게 죽은 피에서는 역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피 맛을 느끼며 알베르트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부님이 그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아니, 착각일지도 모른다. 뼈밖에 남지 않은 스켈레톤에게는 표정 같은 게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사부가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축하드립니다, 마스터.]

‘뭘··· 말인가?’

머릿속에서 울리는 천칭의 목소리를 들으며, 알베르트는 의식을 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