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숲의 마녀(3)
그로부터 일주일, 체력이 회복된 알베르트는 유피에르의 호출을 받을 수 있었다.
낡은 양초를 든 스켈레톤이 알베르트를 안내한 곳은 커다란 홀이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지저분한 장소였다. 깨끗하게 정리된 곳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사용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골동품과 살벌하기 짝이 없는 고문 도구가 홀 바닥을 굴러다녔다. 빛을 잃은 샹들리에 사이로는 한 무더기의 뼈가 걸려있었는데, 기분 탓이 아니라면 뼛조각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홀 한쪽에는 오랫동안 방치해 둔 것으로 보이는 뼈 무더기와 녹슨 무기들이 보였다.
[쓰레기통입니까, 여긴?]
성안을 둘러본 천칭의 소감은 가차 없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루드비히 저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거미줄이 없는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다. 말 그대로 폐성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그 폐성의 한가운데, 붉은 옥좌에는 푸른빛의 스켈레톤이 앉아 있었다.
[설마 저 스켈레톤이 유피에르의 본모습은 아니겠죠?]
‘아닐세. 그녀의 골격은 좀 더 호리호리한 편이지. 저건 그녀가 다루는 스켈레톤 중 하나라네.’
유피에르가 다루는 두 사역마 중 하나다.
붉은 스켈레톤은 롯. 푸른 스켈레톤은 블라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옥좌의 스켈레톤, 블라우의 입이 달그락거리며 열렸다.
“묻는 말에 대답해라, 인간 꼬맹이.”
어눌하게 흘러나오는 말은 제국에서 사용하는 공용어였다.
“이건 어디서 났지?”
스켈레톤의 손안에는 알베르트가 가져온 리치의 로브가 쥐어져 있었다.
나지막이 새어 나온 목소리는 마치 알베르트를 협박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강압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른을 흉내 내고 있는 아이가 눈앞에 있는 것 같다. 알베르트는 블라우 뒤에 숨은 유피에르가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어쩐지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서툰 사람이군요, 유피에르는.]
‘그게 그녀의 귀여운 점이라네.’
만약 그럴 생각만 있었다면, 유피에르는 알베르트가 의식을 되찾은 그 날 로브에 관해서 물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구태여 알베르트의 체력이 회복되는 오늘까지 기다렸다. 유피에르의 성격이 보인 것 같아 알베르트는 안심했다.
다행이다. 이전 시대와는 달리 꽤 일찍 만난 것이 되어버렸지만, 그녀의 성격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한들 좋은 상황은 아니다. 차분하게 말해서는 원하는 답을 끌어내기 힘들다.
하다못해 유피에르가 눈앞에 있는 것도 아니다. 표정은 물론이고, 분위기를 읽어낼 수 없는 스켈레톤이 대화 상대다. 처음부터 마음을 다잡고 대화에 임해야 했다.
알베르트는 천천히 가면을 골랐다.
유피에르의 침착함을 무너뜨리고, 정신적으로 그녀를 흔들어야 한다. 인간에 대한 호기심. 그녀가 흥미를 느낄 만한 인간을 연기해야 한다. 그럼 지금 골라야 할 가면은 어떤 것일까. 기억 속의 유피에르를 떠올린다. 인형을 좋아하고, 사소한 것에 기뻐하던 여인.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작은 선물에도 그녀는 좋아했다. 몰래 숨기고 있던 물건이 들키는 날에는 얼굴이 붉어진 채 화를 냈었다. 호의를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거겠지. 그러나 그건 유피에르와 어느 정도 사이가 돈독해진 이후의 이야기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녀는, 그러네. 인형극을 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첫인상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녀의 말투는 오해를 사기 딱 좋았으니까. 그래, 그렇다면 지금 연기해야 할 가면은 정해져 있었다.
고심 끝에 마음속의 가면을 꺼낸 알베르트는 입을 열었다.
“고성의 리치를 죽이고 얻었어.”
“죽였다고? 누가, 누구를?”
“리치를. 내가. 죽였어.”
“······.”
가만히 듣고 있던 스켈레톤의 몸에서 뼈가 꺾이는 소리가 났다. 시선을 들어보니 로브를 쥐고 있던 손이 반대쪽으로 꺾여 있었다.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을, 너 따위 인간 꼬맹이가. 사념을 해치웠다고?”
“사실이야. 확인해보면 알 텐데.”
리치가 죽은 이후 고성의 언데드들은 모두 사라졌을 터이다.
유피에르가 따로 심어둔 눈과 귀가 있다면, 그 변화는 바로 그녀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문답은 그저 확인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유피에르도 그렇게 여긴 것인지, 물음은 매끄럽게 이어졌다.
“좋아. 그럼 리치의 지팡이에 있던 마석은 어디에 있지?”
“내가 아는 곳에.”
“역시 거짓말이구나, 리치를 쓰러뜨렸다는 건.”
“마정석의 위치를 알려주면 날 죽일 거잖아?”
“네놈···.”
스켈레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로 꺾였던 팔이 맞춰지며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렸다.
“처음부터 마정석이 목적이었던 거냐?”
“마정석은 덤이야. 나는 당신과 만나고 싶었어.”
알베르트가 무심코 흘린 웃음을 도발이라고 판단한 건지, 스켈레톤의 몸이 일순간 조각났다. 갈기갈기 분리된 뼈가 알베르트의 주변으로 날아왔다. 날카로운 뼈가 알베르트의 눈과 목, 심장과 배를 노렸다. 어디를 노리더라도 그 목숨을 앗아가는 건 일순간이다. 유피에르의 마나가 흘러드는 순간 알베르트의 숨은 끊어지리라.
[마스터!]
알베르트는 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이쪽을 향한 스켈레톤의 뼛조각에서 강렬한 마나가 느껴졌다. 마치 뼛조각 하나하나가 오러를 품은 것 같다. 알베르트의 목숨을 위협하는 기운은 점차 색이 짙어졌다.
“이대로 죽여버릴 수도 있다. 네 주제를 알아라, 인간.”
“내가 죽으면 마정석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는 알아내지 못할 텐데?”
“우스운 소리구나. 널 죽인 후에 마법으로 알아내면 그만이야.”
입만 떠다니는 스켈레톤의 대답에 알베르트는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소리야. 너희는 그런 마법을 쓰지 않잖아. 당신들은 서클 마법을 구사하지 않아. 그와 비슷한 마법이 있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당신은 쓰지 않아. 그렇지, 숲의 마녀 유피에르?”
“······.”
알베르트는 해골의 입이 아니라 옥좌를 바라보았다. 사치스러운 의자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알베르트의 시선은 블라우가 사라진 옥좌를 향하고 있었다. 잠시 후, 옥좌에서 눈이 녹아내리듯이 한 은발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피에르 바토리. 마족의 제 13황녀가 그 자리에 있었다.
“너, 진짜로 정체가 뭐야?”
자리에서 일어난 유피에르는 알베르트의 앞으로 다가왔다.
얼굴이 가까워진다. 고운 미간을 찌푸린 그녀는 알베르트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그 얼굴이 투명하게 흐려졌다. 인간의 얼굴이 사라지고 안에 있는 골격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비현실적인 광경이다. 투명한 얼굴 안에서 나타난 백골이 알베르트를 쳐다보았다.
마족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이다. 힘을 발현한 그들은 자신의 몸을 투명하게 드러냈다. 그렇기에 제국은 그들에게 마족이라는 이명을 붙였다. 이해의 범주 밖에 있는 이종족. 마족 한 명, 한 명이 인간을 능가하는 힘을 지닌 그들은 공포를 뿌리는 존재였다.
소년은 대답하지 않는다. 멍하니 유피에르의 얼굴을 응시할 뿐이다.
“뭐야? 무서운 나머지 말문이라도 막힌 건가?”
“아니, 새삼스럽지만 아름답구나 해서 말이야.”
“···?”
알베르트의 대답에 유피에르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꼬맹이 주제에 보는 눈은 있구나. 하지만 살고 싶었다면 다른 말을 했어야지.”
“위협은 그만둬, 유피에르. 난 당신과 싸우러 온 게 아니야.”
유피에르의 손에 담긴 마나를 무시한 채 알베르트는 말을 이었다.
“내 이름은 알베르트 라나. 당신의 집사가 되고 싶어서 찾아 왔어.”
“집사?”
“그 로브는 선물이야. 딱 5년만 날 고용해보지 않겠어?”
“······.”
대답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는지, 유피에르의 손이 움직였다.
그녀의 상징과도 같은 지팡이를 불러내는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잠시 멈춰있던 스켈레톤의 뼈가 좀 더 알베르트를 향해 가까워졌다. 날카로운 뼛조각의 끝이 보인다. 모양새가 우스울 뿐이지. 알베르트를 향한 뼈들은 하나하나가 훌륭한 무기였다.
“심심풀이치고는 꽤 재밌었어. 실망하지 마. 내 집사가 되고 싶다면, 죽이고 난 뒤 스켈레톤으로 부려 먹어줄 테니까.”
“마정석.”
유피에르의 손이 멈췄다. 살이 익어가는 냄새가 났다.
스켈레톤의 날카로운 쇄골에 닿은 알베르트의 목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만약 5년 후에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마정석을 건네주겠어.”
“내가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을까? 지금 이 자리에서 널 죽이고 가져가는 수도 있는데?”
“없다는 걸 알고 있잖아. 날 죽여버리면 마정석을 찾을 유일한 수단을 잃게 될 거야.”
“대단한 자신감이구나. 인간 주제에 말이지.”
유피에르와 알베르트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은빛의 머리카락이 달린 해골 머리와 검은 머리의 인상 나쁜 소년. 삼류 공포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먼저 시선을 거둔 건 유피에르였다.
“운 좋은 줄 알아, 꼬맹이.”
뼛조각이 알베르트의 목에서 멀어졌다.
쇄골에 찔려 상처가 났던 목은 인두를 지진 것처럼 피가 멈춰있었다.
“이 몸의 사용인이 되고 싶다면 먼저 옷차림부터 챙겨 입어. 블라우가 안내할 거야.”
알베르트를 위협하던 뼛조각이 다시 스켈레톤으로 돌아왔다. 대퇴부와 상완골이 잘 맞지 않는 듯 딸그닥, 딸그닥거리는 소리가 울리더니, 관절이 맞물리며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능력껏 잘살아 봐. 운이 좋다면 또 볼 수 있겠지.”
유피에르는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이 투명하게 흐려지더니, 이내 홀 안에서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블라우라고 불린 푸른 스켈레톤뿐이다.
녀석은 문으로 걸어가더니, 알베르트를 기다리는 것처럼 멈춰 섰다.
[잘 풀린 것 같습니까, 마스터?]
‘생각한 것보다는 괜찮네.’
알베르트는 목을 매만졌다.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그저 열기로 인해 피가 멈췄을 뿐이다.
유피에르의 실력이라면 굳이 알베르트를 살려둘 필요는 없었다. 서클 마법에서 다루는 정신 계열 마법을 쓰지 않을 뿐이지, 유피에르는 강령술에 능했다. 말을 듣지 않는다면 알베르트를 죽인 뒤 강령술로 마정석의 위치를 알아내면 될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호기심.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녀는 인간에 대해서 알고 싶어 했지.’
[그런 거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사실이라네. 숲을 헤매는 사람들을 왜 그녀가 구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나?’
[구하고 있다뇨? 다 스켈레톤으로 만든 거 아닙니까?]
스켈레톤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료가 되는 시체가 필요했다.
성안을 돌아다니는 스켈레톤의 수는 빈말로도 적다고 할 수 없었다. 필요한 재료는, 길을 잃은 인간들로 채운 것이 아니냐는 천칭의 물음에 알베르트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자네 안에 있는 유피가 어떤 마족인지 상상이 가능하구먼.’
[닥치는 대로 인족을 죽인 대학살자, 아닙니까?]
‘결단코 아니라네. 만약 유피가 숲 안에 들어오는 인간을 다 죽였다면 어떻게 소문이 날 수 있겠는가? 다 살아서 돌아왔기 때문에 소문이 난 걸세.’
톡톡 던지는 말투와 뼈를 좋아하는 취향만 없었다면 유피에르의 이름은 꽤 널리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그녀 본인은 관심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게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걸 알베르트는 알고 있었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싶지만, 그것이 두렵다.
그녀가 마음을 내준 상대는 성안의 스켈레톤뿐이다.
그럼에도 숲속에서 길을 헤매는 사람을 보면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그게 유피에르 바토리라는 여자였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마스터.]
‘뭔가?’
[사적인 감정 때문에 일을 그르치지 않길 바라겠습니다.]
‘······.’
알베르트가 품은 애틋한 감정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건지, 천칭의 목소리는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걱정하지 말게. 다른 황자들은 모르더라도 그녀의 신뢰만큼은 반드시 얻어 보일 테니.’
떠나가던 그녀의 등을 기억한다. 다시 한 번 그 슬픔을 맛보는 건 알베르트도 원하지 않았다.
앞장서서 걷는 블라우를 따라 알베르트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따라오는 소년을 본 푸른빛의 스켈레톤은 홀 밖으로 그를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