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숲의 마녀(1) (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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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마녀(1)

금지된 숲에 들어온 지 어느새 나흘이라는 시간이 흘러있었다.

쪽잠으로 밤을 보내던 알베르트의 체력은 거의 한계에 이르러 있었다. 천칭의 경고로 마물을 피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장소는 발견할 수도 없었다. 금지된 숲은 침입자에게 상냥한 곳이 아니었다. 먹을 것조차 변변치 못했다. 저택에서 받아온 3일치의 식량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식수가 있다는 사실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알베르트의 상태는 나빠졌다. 기계적으로 걸음을 옮기는 소년은 이제 천칭의 물음에 대답하는 일도 드물어지고 있었다.

[마스터.]

“······.”

전방에서 느껴지는 마물의 기운에 천칭은 알베르트를 불렀다.

[마스터.]

“응? 무슨 일인가?”

반쯤 졸면서 걸음을 옮기고 있던 알베르트가 뒤늦게 대답했다. 정신이 들자 발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기나긴 행군을 한 것 같다. 질질 끌리는 발바닥은 이미 물집투성이로 변해있었다.

[오우거(Oger)입니다. 나무 위에서 몸을 피하는 걸 추천해드립니다.]

“음, 그런가. 고맙네.”

상처투성이가 된 손으로 나무를 타고 올라간 알베르트는 기척을 죽였다.

잠시 후, 나무 아래로 포레스트 오우거가 어기적어기적 나타났다. 숲에서는 보이지 않던 하늘이 나무 위에서는 어렴풋이 보였다. 어두컴컴하게 흐려진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언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다. 오우거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잖니, 얼어붙을 것 같은 하늘은 이내 하얀 눈을 내리기 시작했다.

[좋지 않군요, 마스터.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게 우선입니다.]

“걱정하지 말게나. 피할 곳을 찾으러 가고 있으니 말일세.”

[지금 태평한 소리를 늘어놓을 때입니까? 숲 안으로 더 들어가고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마물과 조우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안쪽은 바깥쪽보다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지만 마스터. 만약 마스터가 죽어버린다면 다시 회귀한다는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때는 끝입니다. 모든 게 수포가 될 겁니다.]

알베르트는 천칭의 항의에 쓴웃음을 지었다.

천칭의 걱정도 당연했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알베르트가 가져온 물건은 이제 작은 가방밖에 없었다. 연미복인 옷도 두꺼운 소재가 아닌 관계로 한겨울에 이른 계절은 알베르트의 체온을 앗아가고 있었다. 방법이 없다. 요 5년간 하급 마물의 마석을 닥치는 대로 흡수했다고는 하지만, 그래 봤자 알베르트의 현주소는 마나를 좀 다룰 줄 아는 어린애에 불과했다.

[여기는 평범한 숲이 아닙니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마스터?]

“물론이네.”

델리아 신성 제국의 국경선에 맞닿은 금지된 숲.

루드비히 공작령과 맞닿은 이 숲은, 온갖 마물의 근원지로 지목되는 대륙 최흉의 지역이었다. 이 안에는 하급 마물부터 상급 마물이 종류별로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던전이 수두룩하게 있다는 인외마경의 숲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숲속에는 고깔모자를 쓴 해골 마녀가 있다든지, 마왕의 유산이 곳곳에 남아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는 괜찮다.

마물이 많은 숲이나 산맥이라면 대륙 곳곳에 남아 있었으니까. 제국의 서쪽, 죽음의 바다 건너편에 있다는 드래곤의 섬도 미지의 장소였으니 말이다.

[이 진절머리 나는 기운, 마족의 것이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이 숲에 마족이라는 이종족이 산다는 것이었다.

일찍이 이 대륙에는 1차 대전쟁이 있었다.

대륙의 짙은 상흔을 남긴 1차 대전쟁. 소문처럼 떠돌던 마족의 존재가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다. 마족이라는 위협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던 왕국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수많은 희생자를 낸 마족의 공격을 막은 건 제국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약소국이었던 제국이 마족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던 까닭은, 수도에 있는 마정석의 힘이었다. 초대 황제 이실리아는 마정석의 힘을 이용해 마족의 침략을 막아냈고, 1차 대전쟁은 제국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이 끝난 뒤 멸망한 왕국들은 하나 같이 제국령으로 흡수되었다. 순식간에 세를 불린 제국은 전쟁의 상흔을 치료해나갔고, 이윽고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는 검성 블라드 루드비히가 활약하는 2차 대전쟁의 시기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마족을 패퇴시킨 제국의 수호자. 말년에는 드래곤을 쫓아 사라졌다는 검성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영웅이었다.

“그런가. 그거 다행이구먼. 오랜만인데도 내가 길은 잘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네.”

[의탁할 곳이라도 있는 겁니까?]

“도박일세. 날 받아들여 준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겠지. 하지만···.”

알베르트는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천칭은 마스터가 삼킨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굳이 이렇게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는 일입니까?]

천칭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시험은 본래 5일이면 끝날 관례행사였다. 가문의 깃발로 표시된 안전한 길을 지나 숲 안쪽에 마련된 상징을 가져온다. 서두른다면 지급된 보급품에 맞게 3일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알베르트는 그렇지 않았다. 기사단이 지키고 있는 시험을 치르는 길에서 벗어나, 숲의 안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시험을 끝낼 방법은 있었다.

알베르트의 가방 안에 있는 스크롤을 찢으면 사자기사단이 그를 구하러 올 것이 틀림없다. 그 이후는 힘을 기르면 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루드비히 가문의 비호 아래에서 하나하나 쌓아가면 되는 것이다.

천칭의 제안에 알베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시험을 통과하는 건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숲의 외곽이 아닌 중심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한 번 더 눈앞의 광경이 바뀐다.

공간이 일그러진 금지된 숲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특정 구간으로 걸음을 옮기면, 숲 이곳저곳을 건너뛰었다. 환상과 일그러진 공간이 공존하는 인외마경. 경험이 많은 이들도 숲 안에만 들어오면 길을 잃기에 십상이다. 그건 알베르트도 마찬가지였다. 어렴풋이 남은 기억을 따라 발을 옮기고는 있었지만, 이 길이 확실한지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당시와는 시간 때가 다르다.

숲은 사람과는 다르다. 연 단위로 모습을 바꾸는 게 아니다. 하루하루마다 같은 곳이라도 미세한 변화가 생겨난다. 특징적인 구조물이라도 있으면 구분하기 쉽겠지만, 그런 편리한 표식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평범한 방법으로는 아가씨를 구할 수 없다네.”

천칭이 제안은 잘못된 방법이 아니다.

힘을 쌓는 길에 지름길은 없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단련으로 몸의 기반을 만든다. 몸을 완성한 다음은 간단하다. 한 번 나아갔던 길을 되풀이한다면, 알베르트가 손에 넣을 힘은 이전 삶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과장되게 말한다면 라시엘 공작과 같은 경지인 모든 기사가 꿈꾸는 소드 마스터에 이르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로도 무리다.

소드 마스터였던 라시엘 공작조차 마족의 앞에서는 살아남지 못했다.

전대미문의 경지였던 7서클의 벽을 허문 아가씨조차 마족의 앞에서는 살아남지 못했다.

힘이 문제가 아니다.

만약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면 아무도 닿지 못할 경지를 이룩해야만 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안 되네. 평범한 방법으로는.”

아가씨를 살리기 위해서는 더 근본적인 부분을 해결해야만 했다.

메고 있던 가방을 내린 알베르트는 안에 담긴 옷가지를 꺼냈다. 시험을 치르는 가방 안에 그가 챙겨두었던 옷이다. 누더기를 덕지덕지 기워놓은 것 같은 보랏빛의 옷. 고성에 있던 리치의 로브다.

[아하. 하긴, 평범한 로브는 아니죠. 마스터의 마나로는 활성화조차 되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그렇군요. 그 로브를 전 마스터에게 준다면 잘 써먹을지도 모르겠네요. 죽기 직전에 그 목숨을 구한다든가, 뭐 그런 거 말이죠.]

리치의 마력이 사라진 로브는 그저 되다만 마도구일 뿐이다.

알베르트가 모은 마나로는 사용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저 짐밖에 되지 않는 옷가지. 차라리 두꺼운 외투라도 가져오는 편이 더 도움 됐을 것이다.

[어쩔 수 없군요. 이렇게 된 이상 마스터는 제가 지키겠습니다. 마스터가 의식을 잃으면 그 순간부터 마스터의 몸은 제가 제어하겠습니다.]

“그거 고마운 말이구먼.”

[고마워하기에는 이릅니다. 제가 마스터의 몸을 제어한다 한들, 특별한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천칭의 말은 사실이다. 알베르트의 신체 능력이 뛰어나면 모를까, 변변찮은 아이의 몸으로는 해낼 수 있는 일이 몇 되지 않았다. 5년 동안 마석을 흡수하긴 했어도, 아직 마나를 다루는 것도 서툰 몸이었으니 말이다. 천칭이 나선다면 일순간 위기를 모면하는 정도나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 그걸 말하는 게 아닐세. 자네가 말을 걸어준 덕분에 의식을 잃지 않고 잘 도착할 수 있었구먼.”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마스터?]

“보게나, 이곳일세.”

로브를 든 알베르트의 앞에 있던 숲의 풍경이 크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분명 평범하게 이어질 터였던 숲길이, 돌벽으로 막혀 있었다.

[마스터, 이건···.]

숲 안쪽에서 드러난 정경.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커다란 성의 윤곽이 보였다.

이전에 알베르트가 들어갔던 고성과도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눈앞의 성은 좀 더 작고, 벽 곳곳에서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다. 마치 오랜 시간 방치된 성을 보는 것 같다.

알베르트는 성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쇠로 된 문 앞에는 문지기로 보이는 스켈레톤이 있었다. 삿갓을 눌러 쓴 스켈레톤은 특이하게도 창이 아닌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소리 없이 적의가 피어올랐다. 그는 다가오는 인간의 기척을 확인하고 지팡이를 바로 쥐었다.

알베르트는 스켈레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성의 주인을 찾아 왔습니다. 문을 열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

당연하지만 스켈레톤은 대답하지 않았다.

언데드를 향해 격식을 차리는 마스터의 모습에 말문이 막혔던 천칭이 말했다.

[마스터, 여기까지 와서 노망이 들었다는 결과는 조금···.]

천칭은 말을 끊었다. 놀랍게도 지팡이를 쥐었던 스켈레톤이 몸을 돌려 문을 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다음에 이야기해줌세. 일단은···.”

알베르트는 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성안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렇게나 자란 잡초와 나무들이 정원의 풍경을 헤치고 있었다. 덩굴줄기가 옮겨붙은 성벽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사람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따금 성안을 돌아다니는 존재가 있기는 했지만, 모두 스켈레톤이었다.

리치의 로브를 들고 있기 때문일까?

스켈레톤들은 알베르트를 보아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강령술사(Necromancer)라도 사는 겁니까, 이 성은?]

“아닐세, 뛰어난 인형사가 살고 있다네.”

[인형사?]

그 대답에 무언가 짚이는 바가 있었는지 천칭은 말을 이었다.

[마스터,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나 하지만 이 성의 주인은···.]

그러나 그 물음이 끝나기 전에 알베르트의 신형이 흔들렸다.

갸우뚱, 하고 넘어가는가 싶더니. 소년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알베르트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리라.

[마스터!]

“걱정하지 말게. 그냥···. 조금 지쳤을 뿐이네.”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아아. 됐습니다, 마스터! 이제부터 그 몸은 제가 넘겨받겠습니다.]

천칭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사람은 천칭의 기억에도 있는 사람이었다.

[진짜 바보군요, 마스터. 인형사라고 해서, 혹시나 했더니···. 대체 왜 이렇게 무모한 짓을···.]

기가 찬다는 천칭의 목소리는 점차 들리지 않게 되었다.

가물가물해져 가는 시야 속에서 알베르트는 그리운 모습을 보았다.

흩날리는 눈꽃 사이로 천천히 다가오는 검은 드레스의 여인. 하얀 눈송이 사이에서도 유난히 빛나는 은빛의 머리카락. 눈의 요정과도 같은 아가씨가 알베르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알베르트는 별무리를 닮은 그녀의 은발을 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안도했다. 반갑다든가, 그립다든가. 그런 감정은 뒷전이다.

알베르트는 그저 기뻤다.

‘이것 참. 이 시점에도 여전히 아름답구먼, 그녀는.’

그것이 의식을 잃기 전, 알베르트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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