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아가씨의 유산(1)
저택의 주방을 무단으로 사용한 죄로 알베르트는 다락방에 갇혔다.
초범인 것과 요리장 슈바인의 적극적인 변호로 인해서, 시녀장은 그의 죄질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감금 기간은 오늘 밤 하루였다. 비좁은 다락방은 물건들로 가득했다. 아직 포장도 풀지 않은 물건이 가득하고, 쓰레기처럼 보이는 물품을 있는 그대로 쑤셔 넣었다. 찻잎과 술은 물론이고, 공작령에서는 흔한 성수(聖水)도 이곳에 쌓여있었다. 저택의 후원 쪽 호수에 따로 창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락방은 저택의 물건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다락방을 둘러본 알베르트는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다락방은 어린 시절 그에게 있어 비밀기지나 다름없던 장소였다. 저택에 들어온 알베르트는 이리저리 튀어 오르던 문제아였다. 의지할 곳 없이 뒷세계를 전전했던 그의 유년기는 수많은 상처로 얼룩져있었다. 철이 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가.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을 알고 있었다. 만약 안주인님의 자비가 없었다면 그는 진작에 슬럼가로 쫓겨나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알베르트는 곰팡이가 핀 침대 위에 앉았다.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의 몸이 어려졌다. 슈바인 요리장의 말을 보았을 때, 수습 집사로 저택에 들어온 지 이제 일주일이 지났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나이는 이제 10살이다. 어머니를 여의고, 뒷골목으로 쫓겨난 그는 우연히 루드비히 공작가의 은혜를 입어 이곳에 오게 되었다.
시간을 거슬러 왔다는 걸까?
그러나 마법의 종주(宗主)라는 드래곤(Dragon)도 시간을 거스르는 마법은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났다···.”
무언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잠자리에서 깨어나 보니 저택의 모든 것이 크게 보이고, 자신의 시야가 어딘지 모르게 낮아진 위화감. 야채를 꺼낼 때도, 손질을 위해 칼을 들었을 때도. 모든 것이 힘들게만 느껴졌다. 단순히 아가씨를 잃었다는 슬픔 때문에 그런 게 아닐 거라고는 치부할 수 없었다.
물집이 가득한 손바닥이 아프다. 굳은살과 주름으로 가득한 자신의 손이 아니다.
아직 여리디여린 소년의 손은 갑작스러운 노동으로 인해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회귀는 어떻게 이루어진 걸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법을 써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노집사였던 알베르트가 그 몸에 익혀온 기술들은 분명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아가씨를 위해서 잡다한 일을 두루 섭렵한 그였지만, 마법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자연에 퍼진 마나에 대한 친화력이 필요했는데. 알베르트에게는 그 재능이 부족했다.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신체의 마나를 다루는 일은 가능했지만, 마법을 구사하는 것은 대마법사였던 아가씨의 은혜를 입고 나서야 가능했다.
그런 대단한 마법을 자신이 썼을 리는 없다.
하면, 이 회귀는 무엇일까?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었다. 노집사인 그가 어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이것이 죽어버린 아가씨의 마지막 안배였을까? 나이가 들수록 많은 것을 배우고, 먼 곳의 사람이 되어버린 아가씨는 알베르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많이 하곤 했다. 그렇다면 이 마법도 아가씨가 준비한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알베르트는 자신이 걸고 있는 로사리오에 생각이 닿았다.
일찍이 아가씨에게 그가 선물했던 집안의 가보다. 언젠가 위대한 자를 올바른 길로 이끈다는 전승이 어린 마정석. 홍염빛으로 불타오르던 그 보석이, 지금은 거무튀튀한 돌로 변해있었다.
알베르트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시계(視界)가 하얗게 흐려졌다.
그렇다. 안배가 맞았다. 이것은 분명 아가씨가 준비한 회귀였다. 인류 최초로 7서클 대마법사라는 경지를 이룩한 그녀가 준비한 마법일 것이다. 자신이 죽었을 때를 대비해서,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를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아가씨는 왜 직접 회귀하지 않은 걸까?
수면 아래에서 떠오른 의문에 노집사는 아가씨가 이야기했던 마법학개론을 떠올렸다.
‘바보구나, 알은. 완벽한 마법은 없어. 특히나 그게 서클 마법이라면 기적과는 거리가 멀어. 알겠어, 알? 모든 마법에는 제약이 있고 그에 따른 대가가 있다는 거야. 만약 그 마법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면, 대가 또한 그만큼 커지는 법이야.’
제약과 대가.
아가씨의 말대로다.
만약 회귀 마법이 자기 자신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거라면?
제약을 딛고 다른 이에게 이 마법을 걸어야만 했다면?
회귀하더라도 이를 악용하지 않고 올바른 길로 이끌 사람에게 맡겨야 했다면?
알베르트는 안개로 가려져 있던 머릿속이 단번에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아가씨의 대답입니까.”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돌봐주었던 미련한 집사.
언제나 자신의 편이 되어줄 거라고 믿었던 단 한 사람.
그러나 그 마지막에는 결국 아가씨를 버리고 떠난 노집사.
하지만 아가씨는 믿었던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알베르트가 자신의 부름에 응할 거라고 믿고, 회귀 마법을 준비한 것이다.
“아가씨는, 죽어서도 이 미련한 노집사를 또 한 번 울리시는군요.”
슬픔은 길지 않았다. 눈물을 닦은 알베르트의 눈에 총기가 돌아왔다.
상황을 받아들인 알베르트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던 목소리에 응했다.
“이 늙은이가 치매에 걸린 게 아니라면 대답해주겠지. 자네는 누구인가?”
[안녕하세요, 3대 마스터. 천칭이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굳이 목소리를 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스터가 제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사를 읽어낼 수 있으니까요. 자, 이제 청승은 끝나신 건가요?]
무기질적인 목소리였다.
딱딱한 목소리는 남자 같기도 하고, 그 속에 섞인 부드러움은 여자 같기도 했다.
“천칭···. 그런가, 아가씨가 다루는 고대 마법이 분명 천칭이라고 했지.”
[마스터가 말씀하시는 아가씨가 전 마스터인 아리시엘 루드비히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맞습니다.]
“자네는 아가씨의 마법인가?”
[마스터가 말씀하시는 마법이 서클 마법이라는 분류라면 저는 그런 것과는 궤를 달리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나를 억지로 비틀어 심상을 구현하는 원시기술과 저를 비교하다니. 지나가던 드래곤이 침을 뱉을 일입니다.]
“흠, 여튼 마법이라는 것이구먼.”
[그 표현은 기분이 나쁘군요, 마스터. 정정을 요구합니다.]
“마법이 감정을 갖고 인간처럼 말한 다라. 자네는 정말 신기하군.”
알베르트는 짧게 웃었다.
허허허, 하고 인자하게 웃을 생각이었는데, 그의 입에서는 변성기가 오지 않은 소년의 목소리가 새어 나올 뿐이었다.
“그래. 나는 돌아온 것인가? 아가씨는 어떻게 된 거지?”
[마스터의 의문에 대답하겠습니다. 현시대는 제국력 1207년. 마스터의 나이는 10살입니다. 전 마스터, 아리시엘 루드비히의 탄생까지는 아직 5년의 세월이 남아있습니다.]
“아가씨는, 회귀하지 않은 건가?”
[불가능합니다. 천칭의 저울에는 천칭의 소유자가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런 짓을 한다면 세계가 단숨에 비틀어지겠죠.]
“그렇다면 아가씨는······.”
[마스터가 내놓은 해답이 맞습니다. 전 마스터는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가진 거라고는 쥐뿔도 없는 늙은이를 말이죠. 뭐, 어느 정도 머리가 돌아가는 건 인정하겠습니다. 전 마스터를 곁에서 모신 인족(人族)답게 다른 머저리들보다는 조금 낫군요.]
“그런가. 역시 그랬는가.”
알베르트가 답을 내놓을 때까지 천칭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천칭이 개입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추측이 어느 정도 맞았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왜 하필 이 시점인가? 아가씨가 위기에 빠진 그 순간으로 가면 안 됐던 건가? 이 노집사는 아가씨를 위해서라면···.”
[그 늙어빠진 몸뚱아리로 전 마스터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까? 자만도 정도껏 하시죠, 마스터. 끽해야 고기 방패밖에 못 하는 몸으로는 1할의 가능성도 없습니다. 마스터는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전 시대의 당신이 갖췄던 능력은 평범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세계의 축복을 받은 전 마스터와는 비교하는 게 부끄러울 정도의 사람입니다.]
알베르트는 눈썹을 찌푸렸다.
말투가 매섭다. 천칭의 비난은 가만히 듣고 있기 힘들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말하는 게 매정하구먼. 잔소리로 생각하지 말고 듣게나. 아무리 그 사람이 싫다고 해도 눈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피하게. 직설적인 화법은 본인은 물론이고, 그 주변 사람들도 모두 힘들게 하니 말일세.”
[누가 노친네 아니랄까 봐···. 마스터는 이야기하면 피곤해지는 스타일이군요. 됐습니다.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이나 해보시죠.]
알베르트는 천천히 자신의 마나를 살펴보았다.
주인의 의지에 답하지 않는다. 몸 안의 마나는 굳어 있었다. 대기에 흐르는 마나는 어떠한가. 친화력이 거의 없는 그로서는 간섭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정령사였던 에일린의 도움으로 계약을 맺었던 보이드 또한 그의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모든 게 처음이구먼. 다시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말인가?”
[하등 필요 없는 걱정입니다. 한 번 봤던 길을 걸어가는 것도 모자라서 시작점까지 달라졌습니다. 무엇을 일궈야 하는지는, 마스터도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렇지, 아가씨를 구해야지.”
시간은 많다.
아가씨가 태어나기까지 앞으로 5년. 일단 몸부터 만드는 게 맞겠지. 이전 삶에서는 너무나도 늦게 마나에 입문했다. 시종으로서, 집사로서 배워야 할 일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이 약한 몸으로는 완벽하게 펼쳐낼 수 없겠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줄 터다.
“이 몸에 재능 같은 건 없는데.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구먼.”
[그렇죠. 마스터가 소유한 마나는 평범하기 짝이 없죠. 일반인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던전에 들어가서 몬스터의 마석을 섭취하는 걸 권장합니다. 아무리 약한 마물의 마석이라도 5년 정도 흡수한다면 조금은 쓸만해지겠죠.]
“그거 좋은 생각이로군. 저택 근처에는 마물이 많았지. 금지된 숲은 항상 마물로 가득하니 말이야.”
몬스터를 죽인 뒤에 희박한 확률로 발견되는 마석. 상등품일수록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마석은 마나의 축복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큰 효과를 주고는 했다. 성인이 된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었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 알베르트의 몸에는 충분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마스터? 설마 정말로 그럴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에라도 치료사에게 가보는 걸 추천해드립니다.]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5년이라면 가능성이 보인다고. 5년 정도야 괜찮네. 이 늙은이에게 있어 그 정도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네.”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5년 내내 오크 같은 하급 마물의 내장을 보고 싶지 않아서 하는 말입니다.]
“걱정하지 말게나. 하급 마물부터 해서 상급 마물도 많은 곳이니, 다른 마물의 내장을 볼 가능성도 클 걸세.”
[누가 다른 마물의 내장이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까? 혹시 싸우자는 겁니까? 그런 겁니까, 이 노친네?]
루드비히 공작가의 영지인 이곳은, 마족의 국경과 맞닿은 장소였다.
마족의 땅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두 땅을 잇는 금지된 숲을 통과해야 했는데, 그 안에는 수많은 마물이 살고 있었다. 대륙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위험한 지역이다. 이름 있는 모험가와 용병들이 일확천금의 기회를 잡기 위해 찾아오고, 성공하는 이들과 실패하는 이들로 나뉘었다.
이전 시대의 기억을 살린다면 알베르트가 전자에 들어가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위험과 성장은 항상 함께했다.
남과 다투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가씨가 갑자기 변하게 된 계기는 루드비히 저택의 참사 때문이었다. 숲과 맞닿은 루드비히 저택은 아가씨가 16살이 되던 해, 마족과 마물의 습격으로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아가씨의 인생에 있어서 그 참사는 첫 번째 시련이었다. 가족이라고 여겼던 식솔 대부분이 그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아가씨의 마음속에 긴 상흔을 남긴 그 참사는 새살이 자라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 그 참사를 막으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 아가씨가 차디찬 전장으로 뛰어들 일은 없게 되는 게 아닐까?
천칭은 알베르트의 의문에 대답했다.
[그것도 하나의 답이겠죠, 마스터. 하지만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타임 패러독스(Time Paradox)를 막기 위해서는 엄청난 힘이 필요할 겁니다. 저택의 참사가 일어나기까지는 앞으로 21년. 그 시간 동안 그만한 힘을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힘을 만들기만 하면 가능성은 있다는 말이군.”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씀드리죠. 특히나 마스터의 현 상태로는 말입니다.]
천칭의 대답을 들은 알베르트는 주먹을 쥐었다.
0%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저 우직하게 나아갈 뿐이다.
“그런데 말이지. 하나만 알려줄 수 있겠나?”
[세계의 비밀 같은 건 대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마스터.]
“그런 사소한 것은 관심 없다네.”
[사소···?]
떨떠름하게 중얼거리는 천칭을 무시한 채 알베르트는 그 물음을 입에 담았다.
“자네는 언제나 아가씨의 곁에 있었던 건가?”
[전 마스터가 천칭을 관측한 이후로, 전 항상 마스터의 곁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제 자율의지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말이죠.]
“그런가. 다행이네. 정말로 다행이구먼.”
알베르트가 아가씨를 떠난 이후, 아가씨의 곁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홀로 그 외로운 전장을 다녔을 아가씨를 생각하면, 지금도 알베르트의 마음은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적어도 한 사람. 아니, 한 마법이 아가씨의 곁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에, 노집사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전 마스터가 왜 당신을 좋아했는지 알 것 같군요. 좋습니다. 까짓것 5년. 제가 참아주죠. 오크는 물론이고 코볼트의 내장도 봐주겠습니다. 그러니 빨리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마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