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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수집하자
"그 말을 지금 믿으라는 건가?"
익숙한 모래톱, 익숙한 얼굴, 익숙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눈 앞의 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즘 많이 힘든 모양인지 안색이 말이 아니네. 힘내 자식아, 원래 사는게 다 고통인 법이야.
양 눈에 반지에 박힌 다이아처럼 반짝이는 의심을 직면한 나는 조용히 말했다.
"어."
... 뭐라고 말을 더 해! 진짜인데. 내가 요즘 하도 남들 앞에서 뻥만 치다 보니까 진실을 들고 달려들었을 때 저런 반응인게 되게 어색하네.
당연한 말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어, 라는 한 마디에 설득당할 거였으면 세계 2차대전은 일어나지도 않았겠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로만의 표정에서 의심과 함께 황당함이 같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바다에는 아주 오래 전 부터 악마들이 네 마리 살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풀려났고. 그래서 항구와 어촌에서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거군."
그런 셈이지. 정리해줘서 고마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로만이 자신의 머리를 긁다가 말했다.
"그리고 그걸 막아내기 위해서는 지금 바다 위를 싸돌아다니는 다섯 척의 더 쉽이 필요하고."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로만이 잠깐 나를 바라봤다.
"요즘 해적들 사이에 사이비 종교 같은게 유행하나?"
로만은 비웃듯이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를 살벌하게 바라봤다.
"차라리 그 소재로 소설이나 한 편 쓰지 그랬나?"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나도 그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카멜롯 왕국에서 일어난 일만 아니었다고 한다면 너는 이 자리에서 목이 떨어졌다. 레이먼드, 이 비열한 해적 새끼. 우리는 그 동맹에 대항할 필요 최소한의 조약만을 체결하러 왔다. 그 이외의 것들은 논의할 필요가 없지. 네가 말한 사실이 참이라고 해도, 우리는 네놈과 거기까지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로만이 씹어 뱉듯이 말했고, 나는 그를 보면서 말했다.
"우리, 너무 결과만 보고 뭐라고 하지 말자고."
나의 말에 로만이 어금니를 문 채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를 보면서 빙긋 웃었다.
씨팔... 어차피 이제 와서 하하호호 하면서 화목한 가 족같은 관계~ 라는 어린이 만화동산 같은 훈훈한 관계가 되는 건 힘들 것 같으니까.
"그때 우리가 한 건 확실히 전쟁이었는데, 로만 제독."
나의 말에 로만이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음모와 배신과 계략이 없는 싸움은 전쟁이 아니야. 그냥 콜로세움에서 기사들이 갑주 입고 말 달려서 꼬라박는 토너먼트지."
원래 그런 것들이 난무하는게 당연한 싸움에서 선빵 맞고 진 걸 가지고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는 말이야. 나는 그를 바라봤다.
"그래서, 잘했다는 건가?"
그 말에 나는 웃었다.
"내가 못한 건 뭔데? 너는 너의 국가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나는 내 해적단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지."
그 말에 로만이 침묵했다. 게다가... 나는 어깨를 으쓱 하고는 말했다.
"어차피 그대로 진행했으면 너도 우리와의 연합을 깨고 우리까지 싸먹을 생각 아니었나?"
서로 배신 때릴 생각 만땅이었으면서 먼저 배신 때렸다고 뭐라고 하지 말라고. 그 자리에서 카멜롯 왕국을 해적들과 아이리 공화국이 싸먹고 났으면, 아이리 공화국 함선의 대포들은 바로 우리를 향했을 거잖아.
로만은 나의 말에 침묵했다. 거봐, 맞잖아. 지들도 배신 때릴 거였으면서. 자기가 털려고 찍어놓은 집 다른 도둑이 털었다고 나쁜 새끼라고 하는 거랑 뭐가 틀려.
나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로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과거의 원한은 잊자고. 어차피 전쟁이었잖아. 중요한 건 눈 앞의 문제라고. 아이리 공화국이 피해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텐데."
나의 말에 로만이 한 동안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동맹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법이지.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믿지? 로만은 그렇게 말했고 나는 흠, 하고 콧김을 뿜고는 말했다.
"니네 싸늘한 앤 타고 오는 것도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오케이를 내린 건데. 부족한가?"
에밀과는 다르게, 로만은 싸늘한 앤의 선장이고 마음만 먹으면 바다의 날개가 싸우자고 덤벼들어도 그대로 얼음땡을 시킬 수 있으니까. 편지에서도 그냥 각자 배 끌고 오자고 되어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바다의 날개를 끌고 왔고, 로만은 싸늘한 앤을 끌고 왔다.
벌써 우리는 거기에서부터 져줬다고. 니들이 딴 생각 품고 있으면 죽엇어!
나의 말에 로만이 서늘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부족하지."
헤, 역시 그렇지? 알았어 임마.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나는 말을 마치고 나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서 그대로 풀렀고, 두루마리가 풀리면서 주르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건 다 뭐지?"
뭐긴 뭐야. 계약이지. 나는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우리의 신뢰는 계약서의 강제력과 구속으로 돈독해 질 거야. 로만 제독."
로만은 그 계약서를 읽지도 않고 대답했다.
"어차피 종이다. 너는 마음만 먹으면 이 계약서를 불쏘시개로 쓸 놈이고."
그 말에 나는 히죽 웃었다.
"머메이드 좋아하나?"
이 상황에서 질문하기에는 영 좋지 않은 질문이었고. 로만의 얼굴이 굳었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무슨 소리지."
나는 그 말에 그를 보며 말했다.
"있어봐."
나는 말을 마치고 나서 머메이드가 건네주었던 나팔을 꺼냈다. 오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그 소라나팔을 로만이 살펴보기 시작한다.
"머메이드를 부르는 나팔."
나는 말을 마치고 나팔에 입을 가져가 불었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로만이 나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다가 한 손을 자신의 허리에 메어져 있는 피스톨에 가져갔다.
"쓸데없는 수작을 부리면 즉시 머리통에 쇠구슬을 넣어주지."
파칭코냐?
로만은 한 손에 피스톨을 들고 나를 겨누었고. 잠시 뒤에 바닷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무슨 일이시죠?
그 목소리에 로만의 표정이 약간 변하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바닷가, 모래사장 근처에 있는 거대한 바위 위에 엘론델이 앉아서 지느러미를 살짝 흔들고 있었다.
"엘론델, 헤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불러서 미안해요."
그녀는 주변을 슥 바라보다가 로만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 크리스탈룸의 선장님이 있었군요. 안녕하세요.
그 말에 로만이 약간 당황하면서 마주 인사를 했고. 나는 그를 보면서 픽 웃었다.
"저건...?"
상반신이 미녀에다가 다리에 지느러미 달고 있는 여자를 보고 저게 뭐냐고 물어 보다니. 나는 그를 보면서 말했다.
"머메이드, 우리 둘 사이 계약의 보증인이지."
나의 말에 엘론델이 나를 바라봤다.
- 보증인이라 하심은?
나는 그녀를 보면서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고. 그녀는 나름대로 이해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니까... 크리스탈룸의 선장님은 확신이 필요한 모양이시군요.
말을 하고 나서 엘론델이 나를 보며 말했다.
- 가능해요. 그리고 보증은 제가 서는게 아니죠.
바다가 서는 거지. 나도 알고 있어. 나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로만을 보면서 말했다.
"우리가 맺은 계약은 바다에 새겨질 거다. 어기는자는 다시는 바다 위에 배를 띄울 수 없어."
로만은 그 말에 조용히 나와 엘론델을 바라봤다.
"두 명이 짜고 치는 거라면?"
나름대로 신중하네. 하긴 나한테 맞은 뒤통수의 혹이 아직 가라앉지도 않았을 테니까.
로만의 물음에 엘로델이 약간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 약속은 중요하고, 나가의 딸들은 약속에 잔꾀를 부리지 않아요. 게다가 계약된 내용의 준수 여부는 제가 아니라 바다가 판단하지요. 그대는 바다가 어떤 배만 미워하고, 어떤 배는 편애하는 걸 보셨나요?
로만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말했다.
"계약서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군."
그러니까 보여 줄 때 성실하게 읽어볼 것이지. 나는 로만에게 두루마리를 건네주었고. 그가 그걸 바라보다가 혀를 찼다.
"다 읽어보는데 하루 종일 걸리겠는데."
내용을 파악할 때 까지는 보류해 두겠다. 로만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를 바라봤다.
"내용에 질문이 있을 수 있으니. 네놈과 그 해적 동료들... 그리고 미나도 계약이 끝나기 전까지는 여기에 남아있도록."
그러도록 하지. 나는 말을 마치고 나서 그를 바라봤다.
"그럼, 내일 아침까지 내가 이틀 밤을 새가면서 만들어낸 그 계약서를 잘 살펴보고 의심가는 걸 말하라고."
이번에는 진짜 아무 잔재주도 부리지 않았어. 난 존나 떳떳하다고.
- 그럼, 저는 내일 아침까지 이 자리로 오도록 할게요.
말을 마치고 엘론델은 다시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도 이제 슬슬 돌아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나의 배로 가기 시작했고. 로만이 뒤에서 나를 불렀다.
"미나 웨스트우드 항해사를 만나고 싶은데."
나는 그 말에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우리 배로 놀러오라고."
나는 말을 마치고 나서 다시 휘적휘적 바다의 날개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작고 귀여운 돛단배를 타고 휘적휘적 바다의 날개에 도착하자. 나는 배를 기어올라갔고. 난간 위로 고개를 내밀자마자 보이는 건 수많은 선원들의 긴장된 얼굴이었다.
"어떻게 됬냐?"
마리아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 하고는 말했다.
"일단, 계약서 확인해보고 문제 없나 체크한다고 합니다."
그 말에 마리아가 약간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거 되게 모호한 결과네."
뭐, 절반 넘게는 왔지. 녀석들이 마음에 안 드는 내용들이 있으면 우리한테 피해 안 가는 수준에서 바꿔주면 될 일이니까.
그리고 조심스럽게 미나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로만 제독은 좀 어떻지? 너한테 심하게 대하지는 않던가?"
나는 그 말에 웃으면서 미나를 바라봤다.
"안 맞은것만 해도 충분히 상냥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가, 라고 미나는 말하고 나서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 작품 후기 ============================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