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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111화 (11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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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무중

에밀이 결론을 내리고 아이리의 군함들이 포격을 중지한 뒤로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짙게 깔려있던 안개가 무너지듯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전방에 천천히 해적선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리고, 에밀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조금 늦었을 뿐이었나."

안개가 거두어지고 해적들이 보이고 있다는 것은, 방랑자가 안개의 미아를 처리하는데 성공한 모양이군. 에밀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했다.

"모든 군함들은, 정면의 해적들에게 포격을 시작한다."

북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에밀의 기함에서 둔중하게 울려퍼지는 북소리에 맞추어서, 근처의 배들이 다시 북을 두드리고, 순식간에 아이리 공화국의 군함들에 신호가 전해졌다.

"이걸로, 끝이다."

안개가 없어지고 나면 녀석들에게 이길 가능성은 없다. 드러난 배는 대충 30척, 에밀의 함대가 보유하고 있는 군함은 50척 배 하나하나의 화력면에서도, 보유하고 있는 수에서도 압도하고 있다. 해적 함대에서 날아오는 포탄들도 정확도가 높아졌지만, 에밀의 함대가 발사한 포탄들도 해적들의 함대를 향해서 정확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에밀이 잠깐 상황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 했다. 싸늘한 앤은 뭘 하고 있는거야. 녀석이 공격을 하기 시작하면 티가 안 날 리가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돌리자.

"..."

에밀은 침묵한 상태에서 얼굴이 굳엇다. 싸늘한 앤이 자리잡고 있는 자리는 여전히 두꺼운 안개에 휘감겨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안개의 미아가 멀쩡하다는 말이다.

"일부러?"

고의로 안개를 없엔건가. 그럴 만한 이유가...

그리고, 함대의 뒤편에서 굉음과 함께 선원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히 안개 안에서 포격전을 하고 있기에, 배들은 모두 선체의 측면을 해적의 함대 쪽으로 돌린 상태였다. 게다가 해적함대들이 있는 쪽에만 장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즉, 해적들을 향하고 있는 측면이 아니라, 해적을 향하고 있지 않은 쪽은 무방비 상태. 포격을 다시 준비하려고 해도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장전 명령이 채 전달 되기도 전에 바다의 날개는 빠른 속도로 뒤편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해적 쪽으로 향하고 있지 않은 대포들을 물 범벅으로 만들어 못쓰게 만들었다.

"빌어쳐먹을 새끼들이!"

다음으로 일어나게 될 일은 뻔하다. 에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뒤편의 대포를 못 쓰게 만든 다음에는 뻔하다.

에밀은 안개 속에서 자신이 내린 명령과 함께 현재 배들의 배치를 바라봤다.

그리고, 안개 속을 향해서 쏟아지는 포격에 피탄되는 면적을 줄이기 위해서 배들 사이의 거리를 벌려놓은 상태. 그 배들의 틈으로 배 한 척 정도가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니다. 바다의 나날개가 벌어진 배들의 간격 사이로 들어갈 때 마다 한 척의 배는 뱃머리가, 한 척의 배는 후미가 무력하게 노출된다.

빠른 속도로, 바다의 날개가 아이리 공화국의 함선들 사이를 바느질하듯이 지나가면서 군함을 무력화시키고, 부수기 시작했다.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배 다섯 척이 그대로 무력화 되었다. 그렇다고 저 바다의 날개 때문에 함포의 방향을 바꿀 수도 없다. 해적을 향하고 있는 측면을 돌린다면 함포들이 바다의 날개가 쑤시고 돌아다니는 것은 막을 수 있겠지만 정면에서 포를 쏘는 해적들을 처리할 방법이 없으니까.

패배, 에밀의 머리 속에 두 글자의 단어가 자리 잡았고. 그것을 확신하자마자 에밀이 외쳤다. 아직까지 바다의 날게에게 당한 배는 많지 않고, 해적들과의 포격으로 받은 피해도 크지 않다. 에밀은 빠르게 말했다.

"후퇴한다!"

고집 피워봤자 피해만 커질 뿐이다. 에밀은 판단을 하자마자 바로 그렇게 외쳤고, 후퇴를 알리는 느린 속도의 북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지금 빠지지 않으면 빠질 여유도 없을 것이다. 에밀의 기함에서 북소리가 울려퍼지자, 함선들이 천천히 배를 돌리기 시작했다. 해적들의 포격에 뒤통수를 내주는 격이지만. 차라리 그게 나을 것이다.

해적들의 포격이 멈추었다. 그럴 수 밖에. 녀석들도 앞으로 오랫동안 포격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포탄은 없을 것이다. 꽉 다문 에밀의 입술이 짓이겨지며 핏줄기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후퇴를 하기 시작하면 포를 굳이 쏘지 않겠지만. 계속해서 싸운다면 바다의 날개가 우리 함선들 대부분을 정리할 동안 유지할 포탄은 있는 모양이지.

배들이 물러나기 시작하고, 후퇴를 위해 해적들에게 뒤통수를 보이자 바다의 날개도 재빠르게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후퇴를 하려고 방향을 돌리는 순간부터 아이리 함대들 사이의 간격을 가지고 바느질은 더 못할 테니까.

그리고, 물러나고 있는 아이리 공화국의 뒤통수에서 비웃는 듯한 해적들의 외침이 들렸다.

"우리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애들 동요같은 멜로디를 가지고 조롱하듯이 들려오는 노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에밀은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미 진 싸움에서 상대한테 조롱을 듣는 건 당연한 일이지.

지금 중요한 것은 희생양르 찾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바다의 담요 공략을 위해서라도 에밀은 계속해서 자신의 제독 자리를 유지해야한다. 굳이 잡고 있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자리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굴욕과 분노를 반드시 되돌려주어야 한다. 자신이 제독으로 남아있어서, 아이리 공화국의 함대를 통솔해서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싸그리 바다 속으로 쳐박아버려야 한다.

전쟁에서는 패배했다. 패배한 해전에는 패배한 선장이 필요하다. 모두가 에밀을 떠올릴 것이다. 반대하던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작한 무리한 출정. 애초부터 무리했던 출정이었지만 가능성이 있었던 싸움이었다.

"..."

미나 웨스트우드. 에밀의 머리 속에 떠오른 희생양은 현재 방랑자의 선장인 미나였다. 작전의 핵심이었고, 안개의 미아를 침몰시키기라는 명령을 수행하는데 실패한 선장. 재능이 아까운 인재지만, 여기에서 희생해야 할 것 같군. 에밀의 머릿 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받아야 할 여론의 비난을, 미나에게 넘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해적들은 별로 추적할 마음이 없어 보였고 아이리 공화국의 함대는 어떻게든 바다의 담요 인근 해역을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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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났다.

바다의 날개에서, 조타륜을 잡고 선원들을 갈구던 나는 숨을 깊게 내쉬고 바다를 바라봤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달빛과, 그 빛을 받고 있는 바다. 박살난 배의 파편들이 아직 떠다니고, 사람들의 팔다리가, 부서진 몸이 떠다니는 바다의 모습이 들어온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고, 마리아가 나에게 다가와서 가슴을 손등으로 탁 치고 말했다.

"고생했다."

마리아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고생? 이게요? 그냥 애들 장난이었습니다."

나는 말을 마치고 럼주병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이걸로 귀찮을 일들은 한꺼번에 정리가 되었겠지. 몇 개월을 준비한 프로젝트 발표를 끝낸 기분이다. 이제는 현상금 사냥꾼들이 나돌아다니면서 해적들을 공격할 일도 없을 것이고, 정보를 해군에게 제공하는 민간인들도 없을 것이다.

바다의 담요 위치가 걸린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설사 위치를 안다고 해도 이제는 함부로 이 안으로 들어올 생각은 하지 않으리라. 전쟁을 하는 건 군인이지만, 시키는 건 사람들이니까. 한 번 이렇게 불똥을 당하고 나면 백프로 이길 싸움이라고 해도 하기 싫어지는게 사람들 마음이다.

당분간은 좀 조용하겠지. 이제 좀 해적질 좀 하고 살자. 왜 자꾸 해적들이 별로 할 것 같지 않은 일들만 자꾸 얽히는 거야?

"... 백병전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로제의 목소리가 들리자, 레이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녀석들 반응이 너무 빨랐어. 말려들었다고 생각하자마자 바로 토끼다니."

애초에 배의 수는 그쪽이 더 많았기에 백병전을 걸어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되더라도 크게 변하는 건 없었으니까. 오히려 달려드는 동안 아이리 공화국의 피해만 더 커졌겠지. 그런 의미에서는 빠르게 발을 빼버린 지금이 약간 아쉬운 승리가 된 감이 없잖아있다.

배 위에서 마리아가 함께 일하던 해적선들을 보며 말했다.

"집에 가자아아아아!"

그래, 가서 좀 쉬자.

============================ 작품 후기 ============================

좋은 밤 되세요.

감기 때문에 죽겠어요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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