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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108화 (108/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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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 따라서 나쁜 선택이 좋은 선택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바다의 담요에 위치한 숙소 방 안에서 고민하던 나는 턱을 감싼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 위를 빙빙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리 이 새끼들은 도대체 왜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거야?!"

그게 이상하다. 계속해서 마음에 걸린다. 애초에 아이리 공화국이 바다의 담요를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닐 이유가 없다. 설사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녀석들이 우리를 공격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카멜롯 왕국은 아이리가 우리와 싸우는 동안 계속해서 힘을 비축할 것이고. 만약에 아이리 공화국이 이번에 우리와 싸워서 패배한다면 카멜롯 왕국과는 따라잡기 버거울 정도의 해군력 격차가 벌어질 것이다.

그래, 우리가 기승을 부리고 그걸로 인해서 바다가 어지러워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해서 우리가 정리되고 나면? 카멜롯 공화국은 손도 안가져가고 코 푸는 상황 아닌가? 누가 이기던 카멜롯 왕국에게는 도움이 되는 일이다. 아이리가 진다면 앞으로 자신들의 행보에 시비를 걸 해군 세력 하나가 없어지는거고. 해적들이 없어지면 그건 그거대로 만세고.

원래 싸우기 전에 이겨놓는 법이지. 생각해보니까 지금이야 바다의 담요 발견했다고 다들 우와아아아아! 하면서 에밀 제독의 명령에 따라서 우리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금세 알 수 있겠지. 지금 싸우는게 자기들한테 이득이 되는 상황이 결코 아니라는 걸.

"그랜트를 엿먹일 때도 재미를 좀 봤었는데 말이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 싸우지 않으면 진짜 무시무시한게 다가올거다."

생각해보니까 이제 진짜 거지같은 상황이다. 바다의 담요가 걸리지 않았으면 싸우지 않는게 제일이다. 어차피 우리 근거지가 어딘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지금은 우리 여기에서 둥지 틀고 살고 있어요! 라고 말해놓은 상황인데 여기에서 싸움을 뒤로 늦추면.

더 많은 아이리의 해군들이 나중에 바다의 담요를 조지러 몰려오겠지. 차라리 아이리 공화국의 해군력이 불완전한 지금 상대를 하는게 훗날이 더 안전하다.

"그럼 방랑자랑 싸워야 하는거 아니야!"

나는 울상이 되어서 벽에 대고 소리쳤다. 미나 이 나쁜 계집! 하필이면 지금 그런걸 끌고 떡 하니 나타나면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그림이 바로 그려진다. 안개의 미아가 방랑자에게 당하고, 안개가 없어지고. 싸늘한 앤 위에서 로만이 아x델 좆까를 시전하면서 바다의 날개를 냉동포장 시켜버리는 그림이! 그렇게 땡땡 얼어버린 바다의 날개는 다른 녀석들이 대포를 맞고 순식간에 바다 아래로 가라앉아버리겠지.

최악이다. 싸움을 피할 수도 없는데다가 이길 가능성도 낮아. 하다못해 방랑자를 어떻게 처리하지 않으면...

그렇게, 나는 방 위를 빙빙 돌고, 머리를 부여잡고 쥐어뜯고. 신음소리를 내고. 침대에 구르는 정신병자 취급받기 딱 좋은 짓거리를 하면서 방 안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아, 손무님! 제갈공명님! 야신월 사마! 나에게 어마어마한 지략과 뒤통수 잡게 만드는 반전 같은 매력을 주세요.

제갈공명 생각이 튀어 나오자 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었다.

"저 새끼들이 미쳐서 배를 다 사슬로 묶은채로 오면 좋겠다..."

그러면 싹 불질러버리고 동남풍을 부르면 되는 건가. 내가 바로 바람의 아들이다 쌍쌍바들아! ... 내가 진짜 반쯤 미쳐가는구나.

혼자 피식거리고 있던 나는 이내 눈을 크게 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네 씨발! 그런 초월적으로 인텔리한 방법이 있었어!"

내가 생각해도 약간 정신나간 방법이지만. 이거 먹히고도 남음이 있는 기똥찬 방법이다. 애초에 우리는 방랑자를 박살내서 다시는 우리 영해에 깝죽거리지 못하게 하는게 목표가 아니잖아. 어차피 방랑자는 바다의 날개나 미스 가이드의 목을 노리고 있는 암살자다. 배를 바다 아래로 가라앉히는 그 능력은 검은 어금니와 비슷해서. 대가리를 따버리는 방식으로 전황을 바꾼다. 그 뭐냐.... 팀 포트x스 2에 나오는 스파이 같은 거지. 누구 하나 죽이는데 실패하면 별로 전황에 도움이 될 수 없는 녀석.

안개의 미아나, 싸늘한 앤 처럼 전황 자체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게 아니라서. 공격해도 상대가 무력화 되지 않아버리면 이미 해전에서 그 가치가 크게 상실되어 버린다.

"조조... 이 사랑스러운 남자. 매력적인 남자!"

나는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저번에도 그렇고, 해군이랑 싸우면 이상하게 삼국지가 땡긴다는 말이지. 나는 머릿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을 종이 위에 그려넣고는 그걸 들고 훨훨 날아서 마리아의 숙소와 도리안의 숙소를 두들겼다.

"동네사람들 잠시 저 좀 봅시다!"

잠시 뒤에 도리안과 마리아는 테이블 앞에서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마리아는 피곤한 표정이었고, 도리안은 띠꺼운 표정이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너무나도 신난 나머지 왠만하면 참고 있던 온갖 시시껄렁한 농담을 내뱉기 시작했다.

"오, 그날은 어느 맑은 날이었습니다. 천재 항해사 레이먼드는 조류의 흐름과 바람이 범선의 진행속도와 경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공식을 만드는 와중, 잠시 쉬기 위해서 사과나무 아래에 자리잡고 바람을 쐬기 시작했죠. 바람은 시원하고, 햇살은 따스해서 그는 잠깐 잠들고 말았습니다!"

마리아가 텔레토비로 BL 쓰는 수준의 개소리를 듣다가 손을 휘휘 저었다.

"남들한테 잠꼬대 듣게 하는 취미 있어? 본론만 말해, 본론만."

그 말에 나는 쉬이이이이 하는 소리와 함께 검지를 올려 조용히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때, 하늘에서 갑자기 사과 하나가 뚝 떨어져서 제 이마를 뽷 치고 떨어지는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 사과를 들어서 바라보다가... 마침내! 깨닫고야 말았습니다."

도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걸, 거의 다 끝났습니다. 30초면 됩니다! 라는 말과 함께 잡아둔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과가 저한테 말해줬어요. 방랑자 강간하는 방법을."

나는 말을 마치고 내가 그려온 그림을 마리아와 도리안에게 보여줬다.

"... 이게 뭐지."

도리안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보시다시피, 배 한 15척 정도를 쇠사슬로 묶은 다음에, 그 위에 널판지를 발라버린 모습인데요."

그 말에 도리안이 이마를 짚었다.

"이 위에서 축구라도 하길 바라나."

그것도 좋지만. 나는 손가락을 흔들면서 도리안을 바라봤다.

"모든 배는 물에 뜨지요. 그건 부력 때문이고요."

배가 무지무지하게 커지면, 아래로 잡아당기기 위해서 들어가는 힘도 무지무지하게 많이 필요하다. 당연하지, 큰 배는 부력도 더 강할테니까. 나의 말에 마리아가 턱을 괴고 졸던 자세를 약간 바로잡고. 도리안 쪽에서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15척 정도 되는 배가 하나로 묶여있으면. 방랑자가 이 커다란 배 덩어리를 아래로 잡아당겨 익사시킬 수 있을까요?"

나의 말에 마리아가 팔을 꼰 채로 입을 열었다.

"저거 먹힐 것 같은데. 앞의 개소리 집어치우고 바로 본론 말했으면 뽀뽀 해줄 수 있었는데."

... 그거 엄청 아깝네. 속이 쓰리긴 하지만. 일단 마리아의 긍정적인 반응에 나는 다시 나의 정신을 되찾았다.

그치? 먹힐 것 같잖아. 하지만, 도리안이 그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가 조금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이 상태에서도 안개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이상이 없을거다. 하지만, 방랑자가 계속해서 당기게 된다면 배는 침몰하지 않아도 해수면 아래의 선체가 상할거다."

그건 사실이다. 어찌 되었던 박아넣은 녀석을 방랑자가 계속 당긴다면 나무로 이루어진 선체가 버틸 수 없을테니까. 중요한건 말이지.

"그래도 안개는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도리안이 나를 바라보면서 이걸 죽여야 하나 살려야 하나 고민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내가 말 실수를 조금 하기는 했지. 누가 봐도 내가 지금 '니 배 따위 어떻게 되던 문제는 아니고. 그래서 안개 만들 수 있냐고.' 라는 식으로 말을 내뱉었으니까. 도리안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격양되었다.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치고는, 도리안이 나를 보며 소리쳤다.

"안개의 미아 선체 및이 뜯어져 나가는 걸, 나보고 감수하라는 건가?! 녀석을 고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네 설명은 나보고 안개의 미아를 희생하라는 걸로 들리는데!"

도리아의 표정이 굉장히 살벌했다. 저건 나도 이해한다. 마리아도 바다의 날개를 스커지처럼 희생해버리자고 하면 굉장히 빡쳤을 거고, 그것도 자기 선원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지금쯤 그 사람 마빡에 쇠구슬이 하나 깊숙히 박혀서 연기를 모락모락 내고 있을거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하나의 사실이 튀어나온다는 말이지.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달라고.

"마리아, 셀키가 손등에 키스해준거 기억납니까?"

나의 말에 마리아가 잠깐 있다가 나를 바라봤다.

"... 기억나지."

나와 마리아의 눈이 마주쳤다.

"모먼트가 있었네."

물체와 생물의 구분 없이. 1년의 희생으로 하루의 시간을 되감을 수 있다고 전해지는 모먼트. 우리는 셀키를 구해줄 때에 보답으로. 셀키의 수명을 사용해서 모먼트를 사용할 권리를 받았다.

도리안이 나와 마리아를 바라봤고. 우리는 가르시아 해에서 우리가 겪었던 일들의 축약버전을 들려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 확실히 모먼트로 시간을 돌린다면 안개의 미아가 상한 것은 복구되겠지."

도리안이 고민을 시작했다. 한 동안 눈을 감고 있던 도리안이 심호흡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 셀키들이 모먼트를 너희들의 배가 아닌, 나의 배에 사용해 줄 거라는 확신은 있나?"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그 셀키가 저희에게 말했습니다. '나가들의 배'에 문제가 생기면 가르시아 해에 손을 담궈달라고."

당연한 말이지만, 더 쉽들은 나가의 작품이잖아. 그러니까...

"거의 확실합니다. 안개의 미아에 사용하는 건 조건에 부합합니다."

정 안된다고 하면 내가 말빨로 어떻게든 해보지 뭐. 나의 말을 듣던 도리안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복구하기 위해서, 가르시아 해로 가는 와중에 바다의 날개는 안개의 미아를 인양해라."

나는 마리아를 바라봤고.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당연한 예의지. 안전하게 모실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렇게, 우리는 방랑자의 공격을 막아낼 방법을 구상하는데 성공했다. 방랑자가 안개의 미아만 못 가라앉히면 눈 멀어있는 해군들한테 대포알 배불리 먹여주는 건 쉽고. 해전에서 이길 가능성도 높아진다. 누가 뭐라고 해도 싸늘한 앤 눈만 가리면 바다의 날개는 날아다닐테니까.

============================ 작품 후기 ============================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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