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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106화 (106/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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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운티 크러쉬 - 쥐와 고양이

    "... 그게 무슨 소립니까?"

    계획했던 대로, 항해를 나가서 호른 항구 근처의 작은 어촌에 며칠 머무르고, 로제를 태우는 척 한 다음 다시 바다의 날개로 돌아왔을 때, 나는 한 해적 선장이 나에게 궁시렁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네가 지도에 적어놓은 대로 항해를 하다가 큰일이 날 뻔했다고. 지시한대로 바람 받으면서 계속 가는데, 갑자기 해류가 빨라지면서..."

    그럴리가 없잖아. 내가 만든 지도라고.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가면서 자료를 모아서 만들어낸. 갑자기 바다의 지형이 바뀌거나 하지 않는 한에는...

    "설마."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진지한 표정으로 마리아를 바라봤다.

    "죄송하지만, 지금 당장 배에 올라야 할 것 같습니다."

    마리아는 굳어있는 나의 표정을 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밤이고... 애들도 항해에서 막 돌아와서 피곤해. 얼마나 급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일 아침에 해도 괜찮지 않겠어?"

    아니. 전혀 괜찮지 않아. 불길한 생각이 든다고.

    "제가 지도를 그려서 선장들에게 건네주기 전에는 바다의 담요 목덜미에 칼이 닿아있었습니다."

    나는 말을 하고 깊게 숨을 내쉰 다음 마리아를 바라봤다.

    "지금은 굉장히 높은 확률로 목에 닿아있던 그 칼이 목을 파고 든 것 같습니다."

    확인해 봐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 안된다면...

    "정 내키지 않으시면, 저만이라도 일단 바다의 날개를 타고 나가서 확인해보겠습니다."

    마리아가 머리를 짚고 있다가 말했다.

    "젠장... 너만 덜렁 보낼 수는 없지. 애들 깨우마."

    오래 걸리지는 않을겁니다. 가서 확인하는 걸로 충분하니까.

    마리아는 알았어, 라고 말하고 갑판장을 불러서 선원들에게 배에 오를 준비를 하게 시켰다. 보급 같은 건 필요없다. 그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이전에 내가 가본 해역에 도착해서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넘실거리는 파도들 아래로 흐르는 해류를 파악하기 시작하며, 머릿 속으로 바다 아래의 지형을 대충 짐작해보기 시작한다.

    30분 정도 그러고 있던 나는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비명을 질렀다.

    "이런... 개씨발같은 경우가 있냐?! 그럼 난 왜 그 개고생을 한 건데!"

    거의 발광 수준으로 짜증을 내는 나를 보면서 선원들이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나는 잔뜩 솟구치는 짜증을 털어내려고 머리를 휘휘 저으면서 마리아를 바라봤다.

    "바다 아래 지형이 약간이지만 바뀌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바다 아래에 만들어져 있는 지형들 중에 몇 장소의 흐름이 달라졌다. 이게 한 500년 정도 시간이 지난 뒤라면 모를까.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이 정도로 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이러한 변화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건데... 해저의 지형을 바꿀 수 있는 배가 도대체 뭐가 있을까. 마리아가 내 설명을 듣고 표정이 굳기 시작한다.

    "니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말이지."

    방랑자가, 이 안으로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해적선들을 추적하는데 성공했다. 바다 아래의 지형을 뜯어내는 공을 들여가면서. 무슨 짓거리를 해서 그걸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계속해서 바다를 돌아다니면서 이것 저것 확인을 시작했고. 확인할 수록 점점 더 확신이 생겼다.

    방랑자라고 하는 그 잠수함이 이 해역 안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고, 최악의 경우에는 바다의 담요가 발각되었을 확률이 높다!

    나의 결론을 들은 마리아가 눈을 잠깐 감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로제를 다시 불러들이자."

    그래야 한다. 여기의 위치가 탄로난 이상에 해상 백병전에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로제는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 게다가 바다의 담요 위치가 들켜버린 이상에는 더 이상 해적 사냥꾼들이나 정보 제공자들을 정리할 여유가 없으니까.

    "다른 해적들에게도 내용을 빨리 전달해야 합니다."

    방랑자가 위치를 알아내었고, 그 소식이 에밀 제독에게 들어가는 순간. 아이리 공화국의 모든 병력들과 해적 사냥꾼들이 바다의 담요로 달려오게 될 테니. 더 이상의 술래잡기는 없다. 쥐구멍이 들통났으니. 이제 남은 건 전면전. 그것도 바다의 담요 앞에서 일어나는 전면전이 될 것이다.

    "도리안도 필요해."

    이 상황에서까지 싸늘한 앤을 에밀이 쓰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일단, 상대도 바다의 날개와 싸우게 될 것이 확실시 되는데 대놓고 카운터인 싸늘한 앤을 버릴 것 같지는 않으니까. 게다가 방랑자까지 가지고 있는데.

    그 새끼를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지 답이 서지를 않는다. 바다 아래를 돌아다니는 새끼를 어떻게 사냥해. 기뢰를 깔아야 하나. 근데 기뢰는 또 어떻게 만들어. 우리 지금 범선쓰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데. 기뢰를 어떻게 만들어! 설사 만든다고 해도, 그 방랑자라는 자식이 얼마나 깊이까지 잠수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데?

    싸늘한 앤은 도리안이 시야를 가려주면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방랑자가 문제다. 아직 직접 만나본 적도 없는 전설의 배. 다른 배들을 바다 아래로 끌어당기는 그 기술이 얼마나 빠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바다의 날개가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잡을 정도라고 한다면 우리는 곧바로 익사행이다.

    아니라고 믿고 싶다. 배를 바다 아래로 끌어당길 정도로 강력한 공격을 바다의 날개를 잡아챌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할 수 있다면 밸런스 붕괴잖아. 여태동안 만나본 더 쉽들은 나름대로 단점들이 있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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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는, 바다의 아래에서 짜증이 잔뜩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너무 심하잖아."

    바다 아래가 어떻게 이런 모습일까. 높게 솟아있는 지형들과, 낮게 들어가 있는 지형들. 몇 번을 배가 바다 아래에 있는 거친 지형에 부딪칠 뻔했지만. 어떻게든 빠져나오는데 성공한 모양이다. 시간이 약간 걸리기는 했다. 그냥 잠수함이 지나갈 수 있는 방법이 도저히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해적으로 추정되는 배들이 저 해역 너머로 가는 걸 확인한 미나는 저 안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하면 바다의 담요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방랑자를 이용해서 바다 아래의 지형을 바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로 거대하게 솟구쳐 있는 것들은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그 이외에 자잘하게 방랑자의 진로를 방해하는 것들 중 몇 개는 부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 파편들을 활용하기 위해 방랑자가 어마어마한 고생을 해야 했다.

    와이어는, 발사되어서 박힌 다음에, 박힌 물체를 와이어를 회수하면서 끌어당길 수 있고. 그 힘이 장난이 아니다. 부수는 데 성공한 돌덩어리에다가 와이어를 박은 다음에...

    와이어를 당기면서 선체를 빙빙 돌린다. 와이어가 회수되는 힘에 돌이 움직이기 시작하다가. 그대로 박자 맞추어서 와이어를 다시 풀어버리면 돌이 날아가서 방해가 되는 자잘한 지형들을 때려부순다.

    길게 설명했지만. 그냥 돌을 집어 던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금만 가고 완전히 처리가 되지 않은 방해물들은 또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위에 있는 배들을 아래로 끌어내릴때 쓰던 와이어들을 전방으로 두어개 사출해서 길을 막고 있는 지형에 박아넣고, 뒤편으로 남은 와이어들을 전부 사출한 다음에, 와이어를 되감는 힘으로 길을 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뜯어내는 방식.

    잡아 당기는 거다.

    그렇게 돌을 집어 던지고, 방해물들을 잡아당기면서 방랑자가 해적들을 얼마나 쫒았을까.

    그 녀석들이 다시 이 거지같은 해역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미나는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한 번 터뜨렸었다.

    "결국, 저 녀석들은 뭐하러 거기로 들어갔다 나왔던 거야."

    나가는 경로를 확인한 다음에는 쉬웠다. 주변에 배가 없을 때, 해수면 위로 떠올라서 이동해서 그 해역을 벗어난 다음에 다시 기다리고 있자 다른 해적선들이 바다 아래에 숨어있는 방랑자 근처를 지나갔다. 그리고 그 녀석들을 계속해서 끈질기게 추적한 결과.

    마침내 그녀는 바다의 담요 위치를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녀는 배들이 바다 인근에 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 장소의 위도와 경도를 파악한 다음. 천천히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위치를 알아냈으면, 남은 건 보고 뿐이다. 배의 속도가 느리다고 하지만. 근처를 돌아다니는 해군들도 있을 것이고.

    이 장소의 위치가 에밀 제독에게 넘어가는 건 아무리 길어도 2주를 넘지 않을 거다. 그걸로 일단 미나의 임무 하나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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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난하지 마세요."

    레인의 얼굴에는 분노가 잔뜩 퍼져서 그 온통 검은 눈동자가 에밀을 노려보고 있었다. 에밀은, 피식 웃으면서 그를 바라봤다.

    "그럼, 없던 일로 하던가. 내가 손해볼 일은 아니지."

    에밀의 말에 레인의 몸이 멈칫했다. 그리고 에밀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 망가져라, 망가져. 그걸 보고 싶어서 네가 칭얼거리는 것도 이렇게 참아주고 있잖아.

    "... 다른 거로 하죠."

    레인의 말에 에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분명히 말했어, 내 첫번째 부탁을. 차선책은 없다."

    레인이 어금니를 꽉 물고 눈 앞에서 비실비실 웃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악마같은 새끼.

    "저보고... 아빠 없이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아이의 어머니를 죽이라고요. 그것도 다섯 명이나?! 그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에밀은 속으로 웃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그래서 시키는 일인 걸.

    자신이 당한 이 어마어마한 고통과 절망을,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 피해자인 자신이 다른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라는 것이다. 그 와중에 레인은 눈 앞에서 자기와 똑같이 망가져가는 아이를 다섯 명이나 보게 될 것이다. 그의 부탁을 완료하고 나서도, 레인의 정신이 멀쩡할 수 있을까? 에밀이 웃음기를 지우지 않은채로 말했다.

    "뭐가 문제지? 니 엄마를 다시 죽이라는 부탁도 아닌데."

    한 번 죽은 사람을 다시 죽일수가 없잖아. 라고 말하며 에밀은 레인을 바라봤다.

    "다시 말하지만, 내 부탁을 거절한다면 여기에서 사라져줬으면 하는데."

    신뢰할 수 없는 녀석과 함께 일할 수야 없지. 라고 말하면서 에밀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레인이 말을 더 이어가지 못하고 그를 바라봤다.

    "그걸 하고 나면... 다음 부탁은 뭐지요."

    에밀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 일이지. 걱정하지말라고. 똑같은 부탁을 두 번 하는 취미는 없으니까."

    레인의 눈에 고민과 분노가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래, 내 어머니는 아니다. 하지만, 이전의 나와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아이들의 엄마를 죽이라니. 도대체 저 남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잔혹한 일을...

    레인이 고개를 들고 에밀을 바라봤고.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물러서야 했다. 빙글빙글 웃으면서 한 손에 위스키 잔을 들고 있는 에밀의 모습.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부탁하지. 이번에도 고민하면 너와의 이야기는 없었던 일이 된다."

    에밀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레인에게 다가갔다.

    "그 정도도 못하나?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슬픔과 분노, 절망! 그 모든 것들이... 함께 같은 세상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조차 역겹다고 하던 그 녀석들을 죽일 각오가 고작 그정도였어? 그럴거면 악마한테 영혼은 왜 판건지 모르겠는데. 마리아 해적단을 만나서 도대체 뭘 하려고 했던거냐? 회초리로 종아리라도 때리려고 했냐?"

    에밀은 이미 정신적으로 밀리기 시작한 레인을 계속해서 몰아치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레인이 대답했다.

    "할게요. 하지만, 당신이 분명히 말했어요. 같은 부탁은 또 하지 않는다고."

    레인의 말에 에밀이 서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한 말은 지키는 편이거든."

    양 손을 꽉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던 레인이 대답했다.

    "알겠어요."

    아, 라고 말하면서 에밀이 레인을 바라봤다.

    "3일 안에 처리해. 더 늦으면 그걸로 이야기는 끝이다."

    레인이 다시 한 번 에밀을 노려보고 이내 흩어지듯이 사라졌다. 혼자 남은 방 안에서 에밀이 콧노래를 부르다가 이내 배를 잡고 폭소를 터뜨린다.

    "크하핫! 아하하하하하하! 이거 완전 병신이 따로 없구만! '그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란다, 머저리 같은 꼬맹이!"

    다음으로 에밀이 시킬 부탁을 레인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을거다. 에밀이 죽인 다섯명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자식들을 모조리 장님으로 만들라고 할 생각이니까.

    "그런 일을 하고도 망가지지 않으면, 나름대로 재미는 있겠지만."

    에밀은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한다면 저 솜털이 보송보송한 꼬맹이는 거의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한 에밀은 자신의 추측이 틀릴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 이런거 너무 좋다니까."

    ============================ 작품 후기 ============================

    좋은 밤 되세요.

    바운티 크러쉬가 너무 질질 끌리는 느낌이라 가속을 시키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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