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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88화 (88/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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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운티 크러시

    다음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로제는 먼저 나갔는지 자리에 없었다. 기운도 좋지. 그렇게 힘든 밤을 보내고도 나보다 먼저 일어나다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나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하늘에 드리워져 있던 가을의 커튼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하고, 그 자리를 대신해서 뒤에 숨어있던 겨울이 모습을 드러내려고 한다. 별자리도 바뀌어서, 지난 가을 동안에 보이고 있던 익숙한 별자리들을 다른 녀석들이 하나씩 점거하기 시작한다.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변해가고 있지만, 바다의 날개에 새로 들어온 신입들은 여전히 어벙하다. 항해를 하는 와중에 바다의 날개는 여전히 흔들거리면서 불안정하게 앞으로 나가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는 건 상관이 전혀 없다. 나는 김이 풀풀 올라오고 있는 항해사실의 욕조를 바라보면서 으흐흐 하고 웃었다. 냉수 목욕을 졸업한 건 한참 지났지. 나는 선원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오늘 배 30번 이상 흔들리면, 니들 목욕탕에서 흑단목 뺀다!"

    그 말에 모두가 나를 돌아보며 귀족한테 마누라 빼앗기는 평민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 시선을 느끼면서 나는 온 몸을 타고 흐르는 사디즘의 쾌락을 즐겼다. 아, 나는 이런거 너무 좋아해서 문제라니까.

    그래도, 하루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약간씩 나아지고 있는 건 확실했다. 저것들 지금 밥만 먹고 물대포 쏘는 기계 수준으로 전락했으니까. 잠깐 뒤에 갑판장이 나를 찾아왔다.

    "항해사, 저것들 하루만 좀 쉬게 해주면 안되나?"

    나름대로 부드럽게 말한다고 노력한 것 같은데. 내 귀에는 니가 그런 부탁 하면 좋게 말할 때 애들 쉬게 해주지 않으면 네 녀석 인생 종치는 소리와 함께 레슬링을 시작하겠어. 라고 협박하는 것처럼 들리는 이유가 뭘까.

    나는 갑판장의 말에 한숨을 한 번 쉬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가르시아 해에서의 일 기억하나?"

    나의 말에 갑판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우리는 물대포에 익숙하고, 싸움을 잘하는 선원들과 함께 항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 한 번의 포위 공격으로 거의 대부분의 선원들을 안타깝게 잃고 말았다.

    "지금 생기는 근육통이, 팔다리가 잘리는 것 보다는 나을걸. 지금 흘리는 땀이, 나중에 쏟아낼 피보다는 나을테고."

    나의 말에, 갑판장이 잠깐 침묵하고 있다가 말했다.

    "항해사의 말이 틀린게 없구만. 알았네."

    나는 뒤돌아서 걸어가는 그를 보면서 말했다.

    "내일 하루 정도는 쉬자고."

    나보다 더 선원들의 상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사람이 바로 갑판장이다. 저 남자가 직접 찾아와서 말할 정도면 선원들 컨디션이 많이 상해있는 상황이겠지. 나의 말에 다시 갑판장이 몸을 돌리고 말했다.

    "그래, 그럼 그렇게 알고 있지."

    나는 갑판장이 다시 내려가는 걸 보면서 쯧 하고 작게 혀를 차고 조타륜을 살짝 돌렸다. 그래, 심지어 이 배는 이제 조타수도 없다!

    그건 내가 뭐라고 할 수가 없지. 마리아랑 갑판장이 뽑아놓으면 내가 죄다 퇴짜를 놓았으니까. 차라리 나 혼자 하는게 속이 편하겠다 싶은 녀석들 뿐이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불어오는 바람을 확인한 나는 조타륜을 좌로 반 정도 꺾었다.

    "이것들 봐라?"

    거봐 할 수 있잖아. 나는 약간 주춤거리기는 했지만 금세 균형을 잡아내는 바다의 날개를 보면서 살짝 웃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가지 않아서 저 멀리에서 꼬물거리는 상선들이 눈에 들어온다.

    "선장! 저거 어떡할까?!"

    나의 말에 마리아가 선장실 옆에 기대 있다가 그대로 엄지를 아래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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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 웨스트우드는 로만의 지시로 인해서 잠시 행동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에밀 자체도 로만의 배에서 항해사를 하고 있던 미나를 굳이 불러들일 생각이 없었기에. 그녀는 계속해서 혼자서 바다에 대한 공부를 진행하고 있었다.

    늦은 밤이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여관의 창문 너머에서는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미나의 얼굴은 척 보기에도 그렇게 괜찮아보이지는 않았다. 3일째 밤을 새워가며 그녀는 수많은 종이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서부 가르시아해, 1237년 4월 마르딜의 해도."

    미나의 방 테이블 앞에는 수십장의 지도가 붙어있었다.

    "서부 가르시아해, 1237년 8월 뒤르켈의 해도."

    수많은 지도들에 미나는 넋이 나간채로 계속해서 뭔가를 그리기 시작한다.

    "북부 로른해, 1239년 11월 스티븐의 해도."

    점점, 미나의 얼굴이 복잡해진다. 그리고 그녀는 탄식했다. 원래 목적은 항해에 대한 공부였고. 그걸 위해서 해도를 몇 개 챙겨왔을 뿐이다. 왜 아무도 이걸 눈치채지 못한 거지?

    "섬 하나가 이상해."

    미나는 그렇게 단언했다. 큰 섬은 아니었다. 서부 가르시아 해를 그린 마르딜의 해도에 그려져 있는 섬이, 뒤르켈이 그린 해도에는 없다. 대신에 가르시아 해의 다른 곳에 마르딜이 그려넣지 않은 섬이 있다. 그려져 있는 축적과, 형태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는 섬이.

    두 사람 다 탐험가로써는 이름을 날리고 있는 데다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는데.

    그들이 해도를 그리기로 마음먹은 지역의 섬을 놓칠 리 없다.

    그리고, 계속해서 북부 로른해의 지도에는, 그 이전에는 그려져 있지 않았던 섬 하나가 그려져 있었지만, 몇 개월이 지난 다음에 그려져 있는 해도를 보면, 거기에는 섬이 없다.

    "도대체 뭐야, 그 섬은."

    그렇게 시작된 의심은 계속해서 번져나갔고. 마침내, 거의 미나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4분의 1을 털어서 구한 900년대의 해도에는.

    서부 가르시아해, 마르딜이 섬을 그려넣었던 위치에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솟아나오기라도 하는 건가.

    미나의 머리 속이 복잡하게 뒤얽히기 시작했다.

    올해 11월, 지금까지의 판단대로라면 이 섬은 북부 로른해에 솟아오른다. 미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변하기 시작하는 10월, 배를 하나 구할 수 있으면 그걸 타고 가볼 수 있겠지.

    그리고, 미나는 마침내 근처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근처 경로를 지나가는 상선도 확인해야 했고, 과정에서 잠깐 그곳을 들르는 데에 추가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지불해야 했기에 미나는 꾸준이 저축했던 돈을 다 털어내고, 거기에 추가로 70달란트 정도의 빚을 지게 되었지만.

    미나는 자신의 앞에 보이고 있는 섬을 바라봤다. 큰 섬은 아니었고, 작은 돌 섬 같은 모습이다. 다 돌아보는데 이틀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 크기. 배에 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내리기를 거부했기에, 미나는 혼자서 노를 저어서 섬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미나는 바로 돌을 살짝 만져본 다음,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작은 섬이라고 해도 안쪽까지 파도가 치지는 않는다. 계속해서 안으로 걸어들어가던 미나가 돌 하나를 주워서 가만히 살펴보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말라붙은 해초..."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이 곳에 해초 같은게 있다는 건.

    이 섬이, 잠수를 했다는 거다. 바다 아래로. 그리고, 미나의 머릿 속에서는 어떤 가능성 하나가 떠올랐다. 지금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고 있는 전설의 배는 네 척이다.

    "로만 제독님의 싸늘한 앤, 마리아 해적단의 바다의 날개, 도리안의 안개의 미아... 바리스의 검은 어금니."

    남은 배는 하나. 바다 아래로 다닌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배 방랑자, 언도커. 미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애초에 저 배에 이야기 하기는 이틀만 살펴보면 된다고 했지만. 일단 작은 배에 실은 음식은 아껴 먹으면 일주일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생각이 맞다고 한다면... 미나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 뒤로 삼 일이 지났다. 이미 미나를 기다리고 있던 배는 자기 갈 길을 떠나버렸다. 애초에 상선은 시간 계약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돌아오지 않으면 버리라고 한 것은 미나 자신이 한 말이었으니까. 그녀의 옷에는 때와 먼지가 잔뜩 묻어있었고, 3일을 감지 않은 머리는 기름과 때가 엉켜서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

    여기가 미나가 생각하고 있던 그게 아니라면, 그녀는 여기에서 굶어죽게 될 것이다. 물 한 방울 없는 돌뿐인 섬에서. 앞으로 남은 기한은 사흘. 그나마도 항상 허기에 시달리며 돌아다녀야 할 정도로 아껴먹어야 가까스로 가능한 정도다.

    쉬지 않고 음식을 달라며 꼬르륵 거리는 배와, 더러워진 몸과 옷, 퀭하게 드리워지는 다크 서클 속에서도 미나의 눈은 아직 번쩍이며 빛나고 있었다.

    식량을 담아놓았던 자루에 손을 넣자, 딱딱한 건빵 한 덩어리가 가까스로 잡혔다. 이제, 식량은 없다. 일주일이 넘었다. 아마 열흘즈음 되지 않았을까. 그녀는 물이 담겨있는 부대자루를 바라봤다. 그녀의 뱃 속 처럼 쪼그라들어있는 부대자루에는, 물이 아마 몇 방울 정도밖에 없겠지.

    "끝인가."

    미나는 그렇게 탄식하듯이 말하면서도 주변을 살피는 걸 멈추지 않았다. 눈 앞이 어질어질 할 정도로 극심한 허기가 몸 속을 좀먹는 것 같고. 입술부터 목젖을 타고 위장까지 모두 바싹 말라버릴 정도로 갈증이 심해지고 있다.

    딱딱하고 울퉁불투한 돌 위에서, 제대로 보온도 하지 못하고 새우잠을 잔 몸은 걸음을 움직일 때 마다 온 몸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욱신거렸고.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면서 그대로 엎어졌다. 돌에 할퀴어진 뺨에, 작게 서너 줄기의 긁힌 상처가 난다.

    미나는 젠장, 이라고 마른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 양 팔로 바닥에 박혀 있던 거대한 돌을 짚었다. 돌이 약간 흔들리면서 미나는 다시 일어났다.

    "...?"

    방금 짚은 돌은 작은 돌이 아니었고, 미나에게 남은 힘으로는 저 바위를 움찔거리게 할 수조차 없다. 미나는 콜록거리는 기침을 하면서 돌을 다시 움직여 보았고. 그 거대한 돌은 별로 어렵지 않게 옆으로 밀렸다.

    "아... 아아..."

    그리고, 옆으로 치워진 돌 안으로 보이는 것은, 새하얀, 커다란 직사각형의 통로. 배고픔과 갈증과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씻겨져 나가는 듯한 기분과 함께 미나는 그 통로 안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 작품 후기 ============================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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